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 뇌과학이 밝힌 인간 자아의 8가지 그림자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변지영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삶의 어느 시점이든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 궁금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정체뿐 아니라 내 생각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라거나, 자기 팔다리에 이질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고 육신은 나날이 썩어간다고 믿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정체성과 자아 확립 사이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도 우리는 보통 기본적인 자아의식을 잘 지켜낸다. 또 한편으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뇌 손상을 입고 자신을 거의 잃어버리는 경우처럼 우리의 자아 감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하기도 한다. 우리 뇌의 많은 부분은 자신이 온전히 자신일 수 있도록 서로 돕지만, 매우 사소한 손상이나 무해한 오작동으로도 완전히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부류의 ‘비범한’ 인간 자아 여덟 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장.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나는 누구인가? 우리 대부분은 자아, 즉 주체인 ‘나’를 변함없는 존재라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 몸과 마음에 애착을 느끼면서도 정말로 몸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아감은 우리 뇌가 공들여 일한 결과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 뇌가 적절한 자아 감각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적으로 자신이 실제로 죽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코타르증후군 환자는 정말로 자신이 죽었다고 확신한다. 어느 정신과 병동의 중년 환자 그레이엄은 자신이 뇌사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혼과 연이은 자살 시도 실패 이후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고 그의 모든 감정은 생기를 잃었다. 그의 결론은 그가 죽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잠자고 먹고 마시는 행위를 계속하면서도 그럴 필요성을 잃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양치질도 중단했다. 자신이 아직 산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는 믿기를 거부했다. 뇌의 특정 영역은 우리의 자아 감각에 필수적이다. 코타르증후군 환자의 손상된 뇌는 살아있다는 느낌 같은 자아 감각의 기본 요소들을 방해한다. 그레이엄의 뇌를 스캔해본 의료진은 의식적인 인식과 관련된 영역, 즉 전두엽 부분에 대사 활동이 거의 없음을 발견했다. 특히 감정과 같은 내적 활동을 인식하는 연결망에 영향을 주어 자신의 감정과 신체적 필요에 대한 인식을 잃음으로써 자신이 죽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2장. 나의 이야기를 모두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서사적 자아를 형성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서사적 자아 유지 능력을 잃어가며 그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다. 의미 기억은 특정한 형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개념을 ‘자기표현 시스템’에 저장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찬 이 기억 저장소는 우리의 서술적 자아에 통합되는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는 이 과정을 수행할 수 없다. 뇌에서 해마를 제거한 환자가 보이는 증상은 결과적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들과 유사했다. 어머니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기억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글쎄요,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였어요’라고 말한 유명한 환자 H.M.(헨리 몰레슨)은 어머니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 우리의 자아에 대한 모든 감각이 서술적 자아로 귀결되는 듯 보이지만, 알츠하이머에 대해 다르게 증명되는 예도 있다. 오히려 환자의 자아의식의 일부가 보존되기도 하는데 이는 신체가 기억하는 ‘체화된 자아’(몸에 밴 습관, 몸짓, 동작들이 인간성과 개성을 지지하고 전달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마치 손가락 끝에 뇌가 저장된 듯 타이핑은 거의 자동으로 수행되는 작업인데, 이런 체화된 지식은 뇌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동안에도 지속된다. 말을 잃어버린 어느 알츠하이머 환자는 유대인들의 휴일에 유대교 회당에서 기도하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섰다. 놀랍게도 그는 이 의식에 참여하면서 보낸 몇 년 동안 기도문을 그의 몸에 ‘새겨’ 넣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기도문을 암송할 수 있었다. 


우리 뇌는 몸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뇌도 있다. 자기 손을 보고 당연히 자기 몸의 일부라 인식한다면, 아직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지가 자기 일부라는 느낌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대부분이 경험하는 주인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뇌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 쉽게 조작되기도 한다. 이 소유감의 조작이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정상적인 피실험자들에게 앉아서 한 손을 고무손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으라고 말한다. 피실험자는 분리벽에 가려 자기 손 대신 고무손만 보이게 하고, 진짜 손과 고무 손을 동시에 페인트 붓으로 쓰다듬었다. 피실험자들은 가짜 손에 붓질을 느꼈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고무손이 실제로 그들의 손처럼 느껴졌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것은 신체 일부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신체 완전성 정체성 장애(BIID, 팔다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증후군)를 초래하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BIID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특정 부분, 즉 전형적으로 내 몸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팔이나 다리의 절단에 집착한다. 그 이유는 뇌에 있다. 대개 우리 뇌는 모든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 발을 간지럽히면 그에 상응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BIID는 선천적으로 또는 생애 초기 발달 단계에서 뇌의 한 부분이 잘못되어, 팔이나 다리가 뇌에 적절하게 표현되지 않아 보고 느끼는 것이 조화되지 않는 갈등상태로 정의된다. 지도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한 자신의 사지를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이해하는 반면, 만약 지도가 불완전하다면 이질감을 견디지 못하고 실제로 절단시킴으로써 ‘해방되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사례도 있다.


4장.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자기 몸에서 가장 예민한 부위를 찾아 스스로 간지럼을 태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부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이런 걸까? 일반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은 자기 몸을 통제하고 있다는 ‘주체감’이 없어 대리 감각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리잔을 들어 올리는 행동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홀린 것이라 말한다는 사례를 통해 조현병 환자들이 이상한 목소리를 듣는다고 설명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일상적인 정신적 수다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자기 목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종류의 해리는 우리의 대리 감각을 생성하는 뇌 메커니즘이 손상될 때 발생한다. 이 메커니즘의 작동을 설명하는 예로 축구공을 차는 행위가 있다. 축구공을 차게 만드는 운동 피질은 두 가지 신호를 보낸다. 다리를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 명령의 복사본을 뇌의 다른 부분으로 보낸다. 이 복사본으로 우리 뇌는 다리에 가해질 감각을 예측하고, 뇌의 예측과 경험과의 일치가 대리 감각을 만들어낸다. 조현병 환자의 뇌는 이 복사 명령을 보내지 못해 신체가 경험하려는 감각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예측이 없다면, 우리의 행동은 실제로 시작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대신 다른 누군가의 책임으로 느껴진다. 이로써 왜 일부 조현병 환자들이 쉽사리 스스로 간지럼을 탈 수 있는지 설명된다. 이들의 뇌는 손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으며 몸은 아무런 준비가 없어 간지럼을 타게 된다.

5장. 영원히 꿈속을 헤매는 사람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여전히 꿈을 꾸는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자. 아프도록 몸을 꼬집어보아도 현실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면? 할리우드 영화의 대본처럼 들리겠지만 비인격화(이인증)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실제 살아있는 경험이 이렇다. 비인격화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자아의식과 전반적인 인식의 현실감을 방해한다. 비인격화 환자들은 자기 몸, 감정, 삶 그리고 주변의 세계로부터 완벽히 분리된 느낌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 일상생활에서 겉보기에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요약하자면 이 현상은 조현병과 마찬가지로 손상된 뇌의 예측 메커니즘 오작동으로 발생하며 뇌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뇌는 본질적으로 예측 기계로서, 감각 신호의 원인을 예측하고 이를 현실과 비교하여 세상을 인식한다. 단순히 우리의 신체뿐만 아니라 분노와 즐거움 같은 매우 기본적인 감정 역시 신체 상태에 맞추어 예측된다. 자기감정에 대한 뇌의 예측이 정확해야 비로소 자기 것이라 느끼며, 이 감정은 우리의 자아 감각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비인격화의 경우 뇌는 들어오는 감정 신호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므로 자기감정이라 느끼지 못한다. 



6장. 자아의 걸음마가 멈췄을 때

‘자신을 생각한다’라는 뜻의 자폐증(auto + ism = autism)은 오늘날 빈번히 접하는 용어이다. 자폐증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는 타인의 표정을 해석하고 감정 상태를 식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예컨대 자폐증 환자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걱정하느라 얼굴을 찌푸린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지 못하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듯 이 표정의 의미를 익혀야 한다. 또한, 이들은 종종 새롭고 예상치 못한 일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말을 반복하거나 같은 영화를 질리지 않고 반복 시청한다. 조현병이나 비인격화와 마찬가지로, 자폐증 역시 뇌의 예측 능력 고장이 원인이다. 뇌는 다가오는 경험을 예측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며, 이러한 예측은 하나의 모형으로 뇌에 저장된 예전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모형이 부정확하여 예측이 잘못될 수 있다. 예측과 현실 사이의 격차에 놀란 뇌는 감각 기관을 통해 새로 들어온 신호의 도움으로 모형을 수정하려 한다. 하지만 자폐증 환자들의 뇌는 자기 몸에서 나오는 공복감이나 타인의 얼굴에 나타난 슬픔 등의 신호를 정확히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뇌 정적'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의 뇌에는 되먹임 신호가 지나치게 왜곡되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되먹임 신호는 뇌의 예측 모형을 업데이트하지 못하며, 새로운 지식이나 자극을 통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규칙적으로 예측 오류를 겪으며 끊임없이 외부 자극에 놀라게 되고, 이 놀라움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므로 이미 익숙한 영화를 반복 시청하게 된다.

7장. 침대에서 자기 몸을 주운 사람

누군가의 복제품인 도플갱어(doppelganger) 현상은 책과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독일어로 doppel은 영어의 double, ganger는 walker로 함께 걷는 두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이 현상은 너무나 사실적이며 도플갱어 효과를 겪는 이들은 실제로 자기 몸이 증식했다는 환각을 느낀다. 만약 이 복잡한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면 또 다른 ‘나’를 보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몸과 환각 상태 사이를 넘나든다고 느낀다. 취리히 출신의 한 청년이 도플갱어 환각으로 자살할 뻔한 사례가 잘 기록돼 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발작 약을 끊고 맥주를 많이 마신 후, 출근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기로 결심했다. 얼마 후 침대에서 일어나 어지럽게 돌아선 그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게을러빠진 또 다른 나에게 분노한 그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 즉 도플갱어를 흔들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의식은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빠르게 옮겨갔고, 그는 두 사람 중 누가 실제로 자신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공포에 질린 그는 창문에서 뛰어내렸으나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무엇이 이런 복잡한 환각을 일으키는 걸까? 뇌에는 모든 종류의 감각 신호를 통합하는 ‘전방 섬엽’이라 불리는 영역이 있다. 자신이 자기 몸 안에 머무른다고 느끼게 하고, 자기 몸이 우주의 어디쯤 있는지를 식별하는 것이 바로 이 뇌 영역이다. 도플갱어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은 왼쪽 전방 섬엽이 손상되어 자신이 몸 밖에 머무르는 유체 이탈을 경험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환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8장. 모든 것이 제자리에

지금까지는 괴상하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뇌의 기능 부전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8장에서는 그 반대이다. 황홀한 뇌전증은 꼭 불쾌하지만은 않은 증상이다. 황홀한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뇌의 특정 부위에서 심한 전기 방전이 발생한다. 환자는 종종 의식을 유지하며, 행복감이나 완전한 안정감처럼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겪는다. 러시아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상상할 수 없는 행복과 완벽한 조화의 느낌을 묘사하면서 그의 황홀한 발작에 대해 웅변적으로 썼다. 이러한 행복감과는 별개로, 갑작스러운 명료함과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꼈다는 보고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앞서 논의된 자폐증의 신경학적 설명과 관련이 있다. 자폐증 환자가 뇌의 예측이 틀리기 때문에 고통받는 한편 황홀한 뇌전증 환자는 자기 뇌가 항상 옳다는 느낌을 즐긴다. 황홀한 뇌전증이 의식과 주관적인 감정이 생성되는 전방 섬에서도 발생함을 발견하였다. 전방 섬은 신체로부터 오는 신호를 통합할 뿐만 아니라 이 신호를 감정으로 변환한다. 스위스의 신경학자 파비엔 피카르는 전방 섬이 우리가 다음에 경험할 것에 대한 뇌의 예측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가정한다. 뇌가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불안과 불확실을 경험하지만, 예측이 맞을 때는 안전과 확실함을 느낀다. 황홀한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전방 섬의 전기 폭풍은 뇌의 예측과 실제 경험을 비교하는 메커니즘을 방해한다. 황홀한 발작 환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맺는말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뇌는 우리 각자가 세상을 얼마나 어떻게 달리 인식하는지를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독특한 성격과 자아를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자아에 균열이 생긴 조현병, 자폐증, 알츠하이머, 탈인격화, 도플갱어 효과를 경험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뇌의 어떤 문제가 어떻게 우리가 자아를 인식하는지, 어떻게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주변의 세계를 인지하고 그 세계와의 관계 맺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중요한 메커니즘, 예측, 모형 등을 잘못 이해할 때 이러한 노력은 뿌리째 흔들린다. 이 매력 넘치는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까지 알려진 최신 뇌 작동법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돌아본다. 그는 자아가 정의되고 창조되고 발견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은 단백질 덩어리를 탐구하고 있다. 

결국,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과학자들은 뇌를 지도화하고 특정한 감정이나 행동을 관장하는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등 여러 주제들을 조사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에게 닫혀 있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얻어내고 있다. 다양한 양태로 고통받는 수많은 정신 질환 경험자들을 접한 저자는 항상 친절하고, 주의 깊고, 빈틈없이 경청하면서 힘들었거나 아직도 힘든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한다. 동시에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과학적 내용을 쉽게 풀어내려 최선을 다한다. 눈높이 과학 교육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준 점에 감사한다. (2023-03-11)

#뇌과학 #인간자아 #아닐 #아난타스와미 #변지영 #더퀘스트 #인지과학 #더퀘스트 #서평단 #리뷰어스 #나는누구 #자아 #조현병 #알츠하이머 #이인증 #유체이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신 그리고 유신 - 야수의 연대기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61년 박정희가 주도했던 5.16 군사 반란은 당시 제3세계에 흔했던 여느 쿠데타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의 유신은 메이지유신 전후의 사무라이들과 황도파 젊은 장교들이 주도했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던 쇼와 유신의 한국판 재탕이었다. 일본의 유신이 폭주해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병영으로 만들고 일본 국민을 인질로 삼아 위기에 이르렀듯, 박정희의 유신도 똑같이 국민 살해의 임계점에 도달했었다. 부마항쟁 당시 몇백만을 죽여도 괜찮다는 박정희의 뜻을 가까스로 막아낸 것은 의사가 아닌 최후의 유신 지사(志士) 김재규였다.


10월 유신은 19721017일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헌정 중단 사태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위헌적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제3공화국 헌법을 정지하며 일본 천황처럼 초법적 존재가 된 것을 말한다. 그는 유신 체제를 '한국식 민주주의'라며 포장했으나 5·16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명분처럼 정권을 민간에 이양할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YH 무역 사건과 김영삼 제명 파동이 터지고, 부마 민주항쟁도 일어나면서 유신 체제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사실 탄생과 몰락의 궤를 함께 하는 유신의 특성상 박정희 정권의 종말은 거의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유신 정권이 지속되기 어려웠던 원인으로 당시 매우 좋지 않았던 경제 사정과 박정희의 무한한 권력욕을 들 수 있다. 박정희는 조카사위 김종필을 극히 견제하여 세 차례나 가택을 수색하였고, 김종필에 의하면 박정희 본인이 심지가 약해 주변을 너무 의심했다고 한다.


더구나 말년으로 갈수록 분별력이나 판단력이 무뎌졌고, 조금씩 민주주의를 맛본 국민은 병영국가가 되어가던 대한민국을 거부했다. 게다가 차지철을 비롯한 측근이 횡포를 일삼았고, 중앙정보부장을 열 차례나 갈아 치울 만큼 부하를 믿지 못하였다. 결국 19791026(속칭 탕탕절)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인 박정희를 총으로 쏘면서 끝났다. 공교롭게도 유신은 태어난 달에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자기 파괴를 완성한 것이다. 2018년 대법원에서 19721017일 비상계엄에 따라 발령된 계엄포고령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위법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혹시라도 새마을운동과 경제부흥의 큰 틀로 박정희를 옹호하는 독자라면, 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는커녕 핍박하고 위험에 빠뜨렸던 위헌사범이었다는 점만큼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서거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필자는 대통령의 피격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한쪽에서는 세상이 무너진 듯 울부짖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꽹과리를 치며 떡을 돌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린 동생은 부모님께 다음 박정희는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가 애꿎은 꿀밤만 맞았다. 그날 이후로 오후 6시마다 사이렌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동사무소에 게양된 국기가 내려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로부터 8년 뒤 대학 신입생이던 1987년에는 반란수괴의 후계자가 세운 군부에 맞서 동기들과 함께 돌을 던지기도 했다. 대학 선배들로부터 빌린 소위 금지 서적을 돌려보며 유신이라는 존재가 일본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우리 역사에 미치고 있던 친일 잔재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유신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암울하다.


필독이라는 필명의 딴지일보 필진이었으며 육십갑자 악마의 필력을 자랑하는 저자는 유신을 역사적 사건이 아닌, 생성 소멸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독특한 접근법을 전개한다. 속칭 주류 사학자의 학술적 저술이 아닌 역사적 사건의 유기체적 해설이라니, 듣느니 참신하다. 그는 유신을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해 남을 파괴해도 된다는 기괴한 신앙적 믿음이라 정의한다. 유신의 역사, 즉 일본에서 탄생 성장하고 한국에서 완성 소멸하는 150년간의 낭만 비극적 서사를 씨앗-잉태-탄생-팽창-폭주-광기-임종-부활-절정-완성의 10단계로 나누어 톺아본다.


그는 비록 유신의 제단에 바치는 글로 삼가 망자를 위로하는 후기를 삼고 있지만, 현재의 국내 정세를 돌아보면 우리가 체감하는 유신은 여전히 진행형인 듯하다. 유신은 죽었지만, 유신의 화신인 박정희를 사모하고 그 후계자 전두환을 존경한다는 통수권자가 친일을 옹호하며 자기 파괴적 언행을 눈에 일삼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도 일본 정당을 따라 지은 어느 정치집단은 유신 지사도 아니면서 정명가도와 탈아입구를 외치며 동아시아의 맹주를 염원하던 군국주의 일본의 망령에 세뇌당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의 제목, <유신 그리고 유신>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한국의 10월 유신까지를 암시한다. 학계에서는 1868년을 메이지 유신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으나, 저자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1274년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공을 지목한다. 유신이라는 독특한 관념은 일본의 지정학적 특징에 기인한다. 일본 열도는 천 년이 넘도록 외부로부터 침공받은 역사가 없어 스스로 신의 영토(神土)라 칭했고 임금을 천황으로 승격시켜 신성불가침의 절대자로 만들었다. 탐라국이었던 인근 제주도의 경우 임금을 별들과 대화하는 자(星主)라 칭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러한 신화적 지위를 천황과 후지산에 부여했다. 단 한 번도 혈통이 끊긴 적 없는 자연물에 가까운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은 계속해서 일본이었으며 다른 존재였던 적이 없다는 만세일계(萬世一系) 개념을 내재화한다.


지구인이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듯 일본인에게는 일본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이다. 이런 일본에 처음으로 닥쳤던 여몽 연합군의 침공은 사활을 걸고 물리쳐야 할 고질라 같은 괴수, 즉 무쿠리고쿠리 이다. 아마 그다음으로 충격적인 침공은 2차대전 당시 미군 폭격기의 본토 폭격과 원폭 투하일 테고, 그래서 유독 미국에는 저자세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일본 침공 당시 몽골의 부마국 지위를 간신히 유지하던 고려는 일본 정벌을 극구 만류하였으나,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하겠다는 몽골의 관념에 밀려 정벌에 참여하게 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일본 침공에 참여한 고려의 곤란한 입장은 일본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독히도 운이 좋게 가미카제의 도움으로 멸망할 운명을 모면한 일본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는 신성하며 그 세계를 위해 낭만적인 죽음을 감수할 수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공유함으로써 훗날 유신의 정신적 토대로 삼는다. 무쿠리고쿠리의 원한을 갚기 위한 시도는 고려 연안에 출몰하던 왜구에서부터 20세기 대동아공영의 명목하에 아시아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기다 걸핏하면 일본의 입장을 알아서 거들고 있는 대한민국 현직 통치자의 정체성 불분명한 언행은 뼈에 사무치도록 고마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신 이후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도 저자의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이 정치·경제·군사 전 분야에 걸쳐 근대화를 성공시키는 과정과 일련의 대사건을 말하며 그 시기는 메이지(明治) 원년인 1868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불과 150년쯤 전이다. 당시 일본은 270년 이상 사무라이가 봉건 영주들을 다스리는 봉건제 사회였고, 조선 원정 실패 후 어수선했던 일본을 안정시키고 문화 발전을 이룬 계기가 되었다. 요시다 쇼인을 중심으로 정한론을 비롯한 팽창정책으로 주변 국가 특히 우리나라에 잊을 수 없는 잘못을 범하고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지만, 메이지유신은 사실상 오늘날의 일본을 있게 한 원동력이자 대변혁으로 근대 일본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의 변곡점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막부에 의해 처형당한 유신과 정한론의 선구자인 요시다 쇼인은 역사적 비중에 비해 평가절상된 추앙을 받는다. 일본을 일으켜 세운 유신의 중심에는 훗날 일본 육군의 전신인 조슈 번이 있었고 이들이 보였던 사상과 패기의 바탕에는 스승인 요시다 쇼인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신은 조슈와 사쓰마의 순혈이 아닌 일반 군인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황도파(皇道波)는 오직 천황이 제국의 모든 것을 친정(親政)해야 한다고 믿었던 육군 내 파벌로, 순혈보다 우월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보다 더 순수한 정신성을 추구하였다.”

 

유신을 이해하려면 뜻있는 사무라이를 가리키는 지사(志士)의 개념을 잘 살펴야 한다. 지향하는 뜻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나 자신의 뜻이 있고 그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다면 지사로 인정해준다는 관습은 오늘날 <바람의 검심>이나 <나루토>, <원피스> 같은 검객 애니메이션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에서는 법을 어기고 사회에 해를 끼쳐도 큰 뜻을 위한 각자의 투쟁방식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멋쟁이로 존중해주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그런데 멋있는 건 이해하겠지만, 그 뒤가 이어지는 법이 없다. 애석하게도 폭발하는 멋짐(또는 멋진 의지)과 광기와 실행으로 그치고 만다. 유신이 자기 파괴적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오로지 미학적 가치만 중요할 뿐, 이렇다 할 윤리적 가치, 즉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윤리적 가치가 없는 행동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으므로 결국 광기와 폭력 그리고 자멸로 이어진다. 이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유신의 관념이 국가 단위의 에너지로 뭉쳐진 결과가 바로 일본 제국이다.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밤새 내린 비에 단 하루 만에 모조리 지고 말면 그뿐이라는 일본인들의 미학적 정서를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벚꽃이 눈발처럼 휘날리는 장관을 보노라면 마치 현실 세계를 벗어난 꿈속의 한 장면 같은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한다. 꽃이 짐으로써 피어났던 소명을 다한 것으로, 그러니까 꽃이 져버리는 그 모습에만 심취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들의 진정성 넘치는 광기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는 최익현, 안중근, 김옥균, 김재규 등을 의인으로 추앙받게 한다.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인제 그만 가보겠다, 즉 목숨을 버리겠다는 결연한 모습에서 멋짐을 인정받은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해본다. 대통령 시해 이후 재판정에서 김재규가 그토록 의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정확히 들어맞는다. 비록 미학적 관점일 뿐이지만 어쨌든 이들은 가치를 위해 선뜻 자신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던지는 이를 지사로 여겨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다.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하듯, 모든 수익 활동도 마다하고 유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한 해를 오롯이 저작 활동으로 보낸 저자의 노고가 빛을 발하는 책이며, 그가 한국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밝혀보기로 작정했던 차기작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저자가 유신 지사는 아니지만 어디, 멋짐이 폭발하는 것 같지 않으신가? 아무래도 당분간 대선진리교의 교세가 약진할 것 같은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차와 포를 떼고 오로지 졸()의 힘으로 자칭 졸저(拙著)를 졸고(拙稿)한 저자에게 딴지일보식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졸라~! 


#유신 #홍대선 #메디치미디어 #박정희 #일본근대사 #김재규 #탕탕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의 말센스 - 일과 관계가 단번에 좋아지는 54가지 말투
히키타 요시아키 지음, 송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살면서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는커녕 이자에 이자가 붙어 마성의 무한 루프에 갇히는 신묘한 경험을 해보셨다면, 당신이 남자일 확률은 적어도 51%이고 유부남이거나 애인 있는 미혼남이라면 95%에 이른다는데 오백 원을 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혼했든 안 했든 남자이기만 하면 해당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이거, 파전에 막걸리 석 잔으로 축하해드려야 하나? 아니, 차라리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지구에서 살지만, 금성에서 온 세 여자와 화성(주의. 경기도 화성 아님)에서 온 남자인 내가 바로 그렇다고. 


이 책의 제목이 <어른의 말센스>라 해서 어떻게 해야 눈치껏 어른스럽게 혹은 어른답게 말하는지를 논한다 생각하고 선택한다면 솔직히 만류하고 싶다. 본래 제목 <Sense of Words>가 뜻하는 바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출신 저자가 사업상 또는 업무상 오가는 대화를 우선 논하기 때문이다. 주로 광고업계의 비즈니스 환경에 어울리는 화법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열여덟 개의 상황별 소주제마다 세 개씩의 모범답안을 제시하며 일과 관계가 좋아지는 54가지 말투를 지향하고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한국의 독자들이 일방통행이 다반사고 한 번 막히면 평생 고생이라는 매우 한국다운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업무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일은 사람이 움직여야 돌아갈 테니 사람을 움직여 일이 되게 만드는 것은 말이다. 1960년대가 지나기 전에 달 정복의 목표를 제시했던 케네디의 사례처럼, 말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결국, 사람을 부리는 자는 사람을 움직이는 말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만나는 교차점에 서면 상대를 이길 방법도, 대립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깊이 이해하면 배려 넘치는 어른스러운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수년 전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회사와 직장인들을 소재로 한 <미생> 같은 드라마를 보자. 입사할 당시 회사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처럼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하던 신입사원이 선배들의 가시 돋친 말에 상처받고 이내 회사를 벗어날 궁리만 하게 되지 않던가. 물론 드라마이니까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 상황에 더 얹고 빼기를 했을 테지만, 극 중 악역을 맡은 부장의 독설처럼 실제 그런 형편없는 체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던 옛날 상사의 비아냥은 2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기억이 생생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수가 되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는 것도 말이고, 내일은 모르겠고 오늘만 살고 죽을 듯 사람 피를 말리는 것도 말이며, 세상 누구보다 격려하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칭찬 역시 말이다. 


악플 세례를 받았을 때도,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게 무슨 큰일인가’라고 외치며, 내 마음을 산산조각 내려는 힘을 저지했습니다. 말로 타인을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로 자신을 멈춰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 치 혀로 자기 명을 재촉했던 역사 속 수 많은 인물의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심코 던진 말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나 역시 상처를 돌려받는다. 그래서 이 책은 상처 주지 않고 미움받지 않는 말투를 지향하고 있다. 어른스러운 말투에는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있다. 이해와 포용이 얼마나 쉽잖은 일인가는 옛 성현과 현자들, 종교 지도자들의 한결같은 조언 속에 빠지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반대로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이의 말 한마디에 목숨까지 바치는 예도 있다. 말의 힘은 이토록 막강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대화의 결론을 책임지는 ‘결정하는 리더’가 되는 법을 말한다. 아울러 무서워하거나 겁먹지 않는 ‘담력’,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식견’ 그리고 말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위엄’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말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통설은 대체로 사실이며 말은 이러한 자질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인 셈이다. 아직도 말이 어눌하다고 마음 한쪽에서 뻗어온 마수에 발목 붙잡히지 말고(나, 떨고 있니?), 스타워즈의 제다이처럼 “May the Force be with you”를 외치며 어른답게 말하는 법을 실천해 봐야겠다.


#더퀘스트 #서평단 #자기계발 #어른의말센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세현의 통찰 - 국제질서에서 시대의 해답을 찾다
정세현 지음 / 푸른숲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네에 성질 사나운 어느 이웃이 있다. 성품이 고약한데다 자력으로 인간다운 삶을 꾸려가지 못해 종종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마저 받는다. 그 이웃의 바로 옆집은 무슨 생각에선지 자신도 어려운 주제에 물심양면으로 이웃을 돕는다. 사람들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몇십 년을 내리 도와주고 있다. 이때만 해도 그럭저럭 함께 어울려 지낼 만한 이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착한 옆집이 안 좋은 일을 겪으며 가세가 기운다. 도움의 손길이 멈추자 어려운 이웃은 오래 안 가 동네 골칫거리가 된다. 그 집 아이들은 동네 꼬마들과 툭하면 싸우고 어른들은 술에 취해 유부녀를 희롱하고 동네 사람들과 시비를 가리며 행패를 일삼는다. 동네 모든 안 좋은 일의 근원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어떻게 달래도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다



결국은 오밤중에 칼을 들고 이웃집 담을 넘어가 도둑질하다 제지하던 사람을 해치기까지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얘기 같지 않은가? 우리도 어려운데 누가 누굴 돕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겠지만, 이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하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십시일반 조금씩만 도왔더라면 동네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지만 실제 국가 간의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동네 관계가 커져서 국제 관계가 되었을 뿐이다.



저자는 어릴 적 기차역 앞에서 동네 형들의 패싸움을 보고 힘이 지배하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깨닫는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며, 이러한 폭력 장치의 근사한 이름이 바로 정치이다. 정장 차림에 예의를 갖춰 좋은 말로 외국 정상과 회담하는 이면에는 국제 정치라는 또 다른 폭력 장치가 숨어있다. 그는 힘없는 꼬맹이가 동네 깡패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방법뿐임을 알았다. 자력으로 자신을 돌볼 수 없어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거나 빚을 얻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 하므로 아쉬운 소리에도 요구에 응하는 것이 역학관계이며, 국제 관계라고 해서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더욱이 우리나라 주변에는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같은 열강들이 옛날부터 진을 치고 호시탐탐 자국의 이익만을 좇아왔으며, 최근의 정권과 일부 국민은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종종 잊어버리는 듯하여 매우 걱정스럽다. 지극히 상식적인 정권이라면 부국강병과 국태민안을 기본적으로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 정치에 옳고 그름은 없으며 다만 유불리만 있을 뿐이라는 입장은 모든 국가가 똑같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는가. 조선시대의 명나라(돼지), 구한말의 일본(원숭이)과 러시아(불곰), 해방 이후 미국(독수리)으로 이어지는 대외 의존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친일 역사를 청산하지 못해 토착 왜구가 여전히 살아서 힘쓰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해방 이후 친일파 숙청에 성공하고 그들 나름대로 주체 정권을 수립한 북한에서는 남한을 미제의 앞잡이, 혹은 괴뢰정권으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미국의 도움으로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은 되었을지언정 여전히 독립하지 못했으며 6.25 동란 당시 도주하다 못해 자국의 독자적인 전시 군사작전권을 자의에 의해 미군정에 이양한 지도자의 원죄는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저자는 독립국도 아니고 작전권도 없으며 남북협상의 당사자도 못 되는 우리의 처지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강 자립을 꿈꾸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새기고, 현시점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시대적 환경에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교역 면에서 미국과는 밑지고 일본과는 약간 이득을 보며 중국에서 많은 이득을 보던 전통적인 국가 수입의 흐름을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에 역전 지속시키는 어리석은 판단 따위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 정치의 질서 판도에서는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중간보스인 일본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는 동시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에게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이웃이 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혼란한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외교의 자국 중심성을 유지 발전시킬 국가 지도자의 혜안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가 곧 세계 경제라는 결론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평생을 통일문제와 국제 정세에 통달한 저자의 고언을 새겨들어야 할 때이다. (2023-02-25)



 

#사회정치 #정세현의통찰 #남북관계 #국제정치 #국제정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세현의 통찰 - 국제질서에서 시대의 해답을 찾다
정세현 지음 / 푸른숲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국제 정치통 정세현 박사의 통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