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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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쳐 들고 보니 두 저자 각각 청각과 소아마비 장애인임을 알았다. 순간, 소아마비로 양쪽 다리를 쓰지 못하고 목제 목발을 짚고 다니던 중학교 동창 녀석이 떠올랐다. 다리만 불편할 뿐, 또래보다 훨씬 성숙하고 밝은 녀석이라 그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보다 그의 성품이 먼저 떠올랐다. 사지육신만 멀쩡할 뿐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던 다른 녀석들보다 오히려 그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 품성이나 인격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신체가 불편한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과 이를 대하는 장애인의 입장을 주제로 다룬 이 책의 두 저자들도 그러하리라는 짐작과 함께 일독을 시작해본다.

 

선천적이든, 사고를 당했든 간에 인간의 신체가 기계화되는 경험은 매우 불편할 것이 분명하다. 자신을 정상이라 여기는 비장애인들조차 어느 정도는 이미 사이보그화되었다고 본다. 우리가 매일 수십 차례씩 들여다보고 손으로 감각을 느끼는 전화기, 속칭 핸드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화나 SNS가 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반응하고 전화기를 연신 들여다보니 말이다. SF영화에서 사람의 손바닥에 심어 둔 전화기 기판이나 손목에 띄울 수 있는 액정화면 따위가 나오는 장면을 보셨으리라. 하지만 첨단이라 일컫는 장비와 기술이 보편화되고 장애인들의 편의를 도모할수록, 아무런 장치도 없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신체야말로 가장 값진 자산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사이보그의 시대야말로 인간 중심의 세상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여건을 만들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단지 그것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기술과 취약함, 기술과 의존,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40)

 

누구나 나이 들면 몸이 불편해지고 병들고 뜻하지 않은 장애까지 입을 확률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오로지 장애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쳐올 보편적인 신체의 기능 부전을 보존해 줄 사이보그 기술이 필요하며 이를 생활 속에 실천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가진 세계 최고의 의료보험 제도에 사이보그 기술력이 뒷받침될 경우를 생각해보라. 국민소득 증가에만 목을 맬 일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취약한 현실 수준을 끌어올려 줄 국민의식과 제도의 개선이 더더욱 필요하다.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는 장애인들의 각종 보조장비는 사실 그들 신체의 일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데 갖추지 못한 결함을 대신하기 때문이며, 법 앞에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누릴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도록 도와줄 실천 도구이기도 하다. 반려동물과 똑같은 개념을 표현한 휠체어 작품이나, 근무시간 작업 중 부서진 의족을 보상 처리해준 긍정적 사례와 같이 장애인 보장구라는 명칭부터 바뀌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며 단지 신체 어딘가가 불편하여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할 따름이라는 식으로 점차 개선되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물을 때는 더욱 개방적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동네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선다는 정부 발표에 집값이 내려간다는 가당찮은 이유로 머리띠를 두른 채 길바닥에 드러눕는 집단의 추태 또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대중교통의 실태는 출근길 전철 시위에서 잘 드러난다. 비장애인들에게 단지 일상적 불편함의 문제라면 장애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정 인원을 고용하도록 규정한 장애인 고용 촉진법을 충실히 따라는 사업체 역시 매우 적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과연 동등한 기회를 얻어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장애 접근성과 장애 권리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특정한 기업이나 단체가 소외된 장애인을 위해 시혜를 베푼다는 서사만이 반복되고 있다. 이 온정의 서사 안에서 기술과 실제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들의 진짜 필요는 쉽게 지워지고 만다. (72)

 

비장애인들도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므로 장애는 장애인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아울러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완화해줄 기술이나 지원, 관심은 비장애인들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베풂의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일례로 선구적 기술력을 표방하는 대기업이 장애인들의 불편함에 관심을 보이고 삶을 더 낫게 해준다는 광고는, 선의 그 자체로는 탓할 일이 아니지만 결국 자사의 이미지를 좋게 하거나 비장애인들의 시혜 욕구를 대리만족하는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누군가를 돕고 이롭게 하는 일이 반드시 널리 알려야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닌 익명의 수호천사들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지 않던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복잡한 사회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도모하기 위해 온갖 다양한 제도를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안전의 희열을 추구한다. 역설적으로 이 제도는 모든 이에게 정상성이 담보되었을 때 효력을 발휘한다는 일종의 사각지대가 있으며, 본래의 좋은 의도와는 별개로 사회적 약자나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익히 겪어보았듯 사회 제도는 늘 사회 현상의 뒤를 따라가며 치다꺼리를 해치우기 마련이다. 세상에 갑자기 어느 현자가 나타나 불길한 사회 현상을 예견하고 미리 제도를 마련하는 법은 없다. 손상은 제거의 대상이고 유일한 해결책은 치료라는 전통적인 태도를 지닌 채로는 장애와 치료, 사회생활 영위와 같은 언덕을 넘어가지 못한다. 장애를 보완하거나 없애 줄 기술의 발달은 필요하지만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는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우주 고아가 될 뻔했다가 기적적으로 지구로 귀환하는 영화 <마션Martian>의 주인공 맷 데이먼의 탈출을 결정적으로 도운 것은 바로 흔히 쓰이는 덕트 테이프 duct tape였다. 청테이프라고도 불리던 이 물건은 군대 시절 팔방미인, 만능 접착제로 통했다. 화성에서 홀로 낙오하여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갈 뻔한 귀한 우주인이 가성비 최고의 싸구려 테이프로 목숨을 건졌을 뿐 아니라 함께 사라질뻔한 화성 연구자료도 구해냈다. 대단히 비싼 장비도 아니고, 사용할 때 특별한 전문 지식도 필요치 않은 테이프가 거대한 인류 역사 흐름의 방향을 가른 셈이다. 만일 이 우주인이라는 존재를 장애인으로 치환하여 생각해본다면? 우리 사회가 단지 신체적인 어려움을 탓하며 보석 같은 귀한 존재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장애인들을 위한 하이브리드 기술은 값비싼 기술도 아닌, 그렇다고 대단한 영웅도 아닌 테이프를 닮아야 한다.

 

25년쯤 전, 비싼 장비 대신 인건비가 들지 않아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군대에서 작업 중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그만 허리를 삐끗었했다. 일이 손에 익지 않아 요령을 피우지 않은 대가가 너무 컸다. 요추 4번과 5번 사이의 물렁뼈가 뒤쪽으로 삐져 나가 신경을 누르고 엄지발가락부터 엉덩이까지 마치 달궈진 철삿줄로 지지는 듯 통증이 극심했다. 장애를 판정받을 뻔한 경계까지 갔는데도 적절한 치료는커녕 군 병원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동료를 비롯해 상관까지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데 무슨 장애가 있느냐는 소리에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미련하게도 무려 25년이나 더 버티다 결국은 몸에 칼을 대고 말았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몸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아졌다. 이렇듯 타고난 경우가 아닌, 사고로 인한 장애를 누구나 겪을 수 있기에 장애인에 대한 더욱 세심한 배려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장애인보다 더 심한 마음의 장애가 있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배려한다며 생색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보청기의 경우는 초소형 은폐 장착 방식을 선호하도록 진화되어왔다. 눈에 띄지 않는 보청기를 착용함으로써 정상인들의 무리에 잘 섞이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장애를 공개하고 배려를 받느냐 아니면 장애를 숨김으로써 차별당하지 않느냐를 두고 장애인들은 또 다른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는 점을 새로이 깨달았다. 공개와 은폐의 선택 이후에도 어려움은 또 남는다. 사이보그화 된 장애인의 몸과 보조 장구가 부대끼느라 동반되는 또 다른 어려움이다. 신체 마찰 부위에 유발되는 염증을 걱정하고, 배터리 교환 주기에 몹시 민감해지고, 유지 보수 비용을 걱정해야 하지만, 신체는 회복되는 대신 현상 유지될 뿐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데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마저도 오롯이 장애인 본인의 몫이 된다.

 

장애disability는 단지 몸의 특정한 기능이 결여된 상태가 아니라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깝다. 따라서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기능의 결여를 보완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는 존재할 수 있다.(155)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났든, 불의의 사고를 당하든 몸의 특정 기능을 보완해주는 의수 또는 의족을 착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상성을 회복한 장애인들은 사회적 또는 기술적으로 정상과 장애 사이의 중간 지위를 새로 얻는다. 상업화의 소산이라는 일부 비난도 있긴 하지만 1998년 패럴림픽 육상 선수 에미미 멀린스는 영화 <킹스맨>에서 칼 달린 무시무시한 다리로 사람을 썰어대는 가젤캐릭터에게 영감을 주었다. 한편, 2012년 런던 패럴림픽 육상 선수였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경우 탄소섬유로 만든 치타 의족을 신고 출전하여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았으나 자기 애인을 총기로 살해하고 법정에서 보장구를 벗어 보여 유족을 모욕하면서 인간승리의 표본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례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시혜와 동정으로만 점철되어 있다고 지적하는 심재신 대표의 말처럼, 우리는 장애인에게 보살핌과 배려가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휠체어 출입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건물 입구를 마주칠 때마다 만일 내가 수동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라면 과연 저 경사로를 자력으로 오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과거 병원 신세를 지며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던 짧은 체험이 내 경험의 전부였지만, 우리가 뜻밖에도 장애인들의 교통권이나 이동권에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들의 아픔과 불편은 상상 밖으로 크고 오래 지속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설계가 업계 전반적으로 적극 권장되어야 하겠다.

 

플라스틱 빨대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은 기술과 장애의 관계가 복잡하다는 것, 더불어 특정한 진보적 가치를 위한 운동이 다른 권리운동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환자와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주름 빨대는 주류화되어 어디서나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 그 주류화를 통해 원래의 목적이 잊히고 말았다. 장애 접근성 이슈에서는 이처럼 자원 사용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210)

 

반드시 빨대를 이용해야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장애인을 위해 개발되었던 주름 빨대가 처음에는 병원을 위주로, 나중에는 모두가 즐겨 쓰는 상업 용품이 되었다. 장애인들에게는 희소식이었지만 문제는 환경에 해로운 플라스틱을 종이로 대체하는 최근 추세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여전히 필수품이라는 점이다.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자체도 쉽잖은 장애인들은 이제 별도로 빨대를 요구하지 않는 한 음료를 마시기도 어렵다. 안 그래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장애인들의 필수품이라는 목소리가 대중의 합리성에 묻혀가는 현상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연 플라스틱 말고는 대안이 없는 걸까?

 

장애인들의 손발이 되어줄 보장구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을 방법은 거의 없다. 이들의 디자인은 물론 착용하지 않지만 타고 다니는 휠체어의 디자인 역시 나날이 발전했다. 과거 기능과 가격을 고려하여 투박한 디자인일 수밖에 없었다면 요즘은 이음새 없이 매끈한 디자인을 고려하는 추세다. 이를 항상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이쯤에서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디자인이 좋고 이쁘다고 한들, 보장구와 몸에 닿는 부위의 쓰라린 통증마저 잊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신체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고 이어가려는 이들의 의지를 비장애인인 우리가 이해하기란 정말 요원한 것인가. 출근길 전철에서 통근 시위하는 전장연 분들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크게 와 닿는 듯하다.

 

직접 체험한 것만이 온전한 나의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그 세상에서 겪은 것들이 또한 온전히 나의 삶에 묻어나느냐는 또한 별개의 문제다. 일시적 또는 간접적으로 정상이 아닌 상태를 겪어보고 장애를 체험하고 이해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 확신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이해한다는 말은 그래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나 역시 섣불리 이해한다는 말을 삼가야 하리라. 이로써 장애는 정상이라는 말과 그다지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이라 여기던 그 누구라도 단순히 상상하기만 해도 장애를 겪을 수 있다니. 고질병인 요통과 이명 증상이 있긴 하지만 이렇다 할 장애도 아니고 하니 이런 처지를 감사할 일이다.

 

주제와는 조금 다른 얘기일지 모르겠다. 현대적인 여성의 신체 곡선과 미의 기준은 동서양이 서로 매우 달랐지만, 점차 서구화 쪽으로 통일되어 가는 것 같다. 식단이 서구화되면서 실제 서구인의 신체를 닮기도 하고, 실제 외모 면에서도 호소력이 더 커 보인다. 덜 이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이러한 미의 기준을 이제부터 따지지 않기로 한다면, 미모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사그라들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러한 미모차별주의 혹은 외모지상주의가 존속되는 한 성형을 해서라도 미인으로 살겠다는 욕망이 언제나 정당화되다 못해 추앙받는 사회로 지속될 것인가? 덜 이쁜 이들의 미모차별주의나 장애인의 능력차별주의는 서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첨단인 시대가 오더라도 누구 할 것 없이 다 이쁘고 다 정상인 세상은 결국 오지 않을 테니까.

 

의존은 우리에게 공포다. 나이가 들든, 사고나 질병으로 걷지 못하게 되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자신의 몸에 나름대로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의존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일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적응하기 어렵다. (288)

 

수년 전 치매 증세가 의심되니 보건소에 가서 검사받아보자는 권유에 아버지는 부자지간의 연을 끊겠다시며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격렬한 분노를 쏟아내셨다. 두 팔 걷고 나선 며느리가 어린아이처럼 변한 아버지를 어르고 달래 결국 설득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은 피할 수 없었다. 일상생활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 필요한 시기가 왔고, 그 누군가는 결국 가족일 수밖에 없으며, 장애 진단은 곧 가족과 일상을 나누기 힘든 상황을 의미하게 되었다. 더욱 슬픈 일은 자신이 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조차도 잊고 한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꾸려갈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나마 국민 복지 차원에서 주어지는 도움이 없었더라면,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노인들만의 공간이던 양로원 혹은 요양원에 신생아 돌봄을 함께 운영하는 시설이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갓난아기들이야 아직 인지 발달이 더뎌서 모르겠지만, 노인들의 경우 아이들을 키우던 당시의 추억과 방법은 물론 돌봄을 통해 아기들과 연결됨으로써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고 인지능력도 향상되는 효과를 거둔다고 한다. 인간은 본래 여러 연령층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집단생활을 해왔으나 특히 산업화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그 체계가 무너졌다. 장애가 있든 없는 우리는 언제나 함께 살아왔던 자연의 섭리에 귀를 기울이고 인간성을 돌아보고 회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 집의 50대 부부가 안방에서 드라마를 시청하는데 두 사람에게 주인공들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서로 주인공이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는 통에 드라마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다. 청각 장애는 없지만 지금 추세라면 장차 그 경계선에 다가갈 것이 확실하니 자막을 달아주어도 나쁘지 않겠다며 투덜거린다. 공중파나 종편은 몰라도 요즘 웬만한 인터넷 방송에는 다 자막이 달려 나온다. 이 역시 고맙게도 안희제 님이 자막을 요구해서 받아들여진 결과다. 기술의 발전이란 이렇게 장애 정의와 접근성 원칙에 근거하여 기술의 핵심 가치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김초엽 작가의 생각이 공감된다.

 

우리의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떤 것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복잡함 때문에 무언가를 무작정 보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서 배웠다. (358)

 

우리의 현실 속에서 함께 해오던 누군가의 시공간 그리고 그 존재와 의미를 까맣게 잊고 지내오다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듯 갑자기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나 혼자 살기에도 바쁘고 복잡한 세상이라며 오로지 나의 입장만 살피며 살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그렇게도 또렷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며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그 영역으로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음 또한 알게 되었다. 현재를 사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해드린다.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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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 역사를 뒤흔든 지리의 힘, 기후를 뒤바꾼 인류의 미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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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 마마(천연두), 전쟁보다 무서운 가뭄과 역병이 돌아 많은 백성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거나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농민이 산적되어 약탈을 일삼으니 임금이 이를 불쌍히 여겨 무료 급식소를 열어 주린 배를 채우도록 하고 곡식을 빌려주어 이듬해에 갚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를 역사 시간에 귀가 닳도록 들어보았을 것이다. 농민의 난이나 정권 찬탈, 이웃 나라의 침략(호란, 왜란)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일어났던 배경을 살펴보면 거의 반드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기후 재앙이 있었다. 가뭄이나 물난리, 역병 또는 냉해 등 기후 용어로는 소빙하기 현상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특이하게도 지리학자이면서 세계사에도 정통한 저자는 세계 역사의 변곡점에 작용했던, 그리고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지렛대 역할을 기후에서 찾는다.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을 포기하고 농경과 더불어 목축을 선택한 데에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라는 커다란 이점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구의 환경이 그에 적합하도록 변화된 배경도 있다. 이렇게 식량 공급이 원활해지고 잉여 곡물이 늘어나면서 재산을 비롯한 경제 개념도 생겨났고 늘어난 인구수로 인해 문명이 발전되었다. 기후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인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일례로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한 메소포타미아 일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 불리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농경이 시작되었던 곳이었으나 오랜 관개농업으로 인해 토양에 염분이 쌓여 지금은 황량한 사막일 뿐이다. 기후가 문명의 운명과 세계 지도를 바꾼 것이다.

 

기후가 어떻게 분포하고 변화해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인류사와 인류 문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다.” (53)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문명의 흥망성쇠 뒤에는 항상 기후의 변화와 이에 대처하느라 분투하는 인간의 역사가 투영된다. 에게해의 작은 섬 크레타에서 일어난 찬란한 고대 해양 미노스문명은 강력한 엘니뇨 남방 진동 현상으로 인해 가뭄과 식수 부족으로 힘을 잃었고 북쪽에서 내려온 메케네인들에게 정복당했다. 남미의 강력한 제국이었던 잉카와 아스테카는 흔히 에스파냐인들의 정복으로 무너졌다고 알려졌지만, 16세기 콩키스타도르가 발을 디뎠던 시점이 사실은 열대수렴대의 영향으로 지속된 긴 가뭄 끝에 쇠약해졌을 때였다. 그 이전에 번성했던 마야 문명은 이미 15세기에 가뭄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반드시 원정대가 아니더라도 기후의 영향으로 사라져갈 운명이었다.

 

기후는 역사 속 국가들의 흥망성쇠와도 운명을 같이한다. 중국에서 한나라가 대륙의 패권을 쥐고 통일 왕조를 만들어 갈 무렵, 유럽에서는 로마가 통일을 이루었다. 한나라의 뒤를 이었던 후한이나 동서로 갈라진 이후 서로마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한랭화로 쇠퇴하고 만다. 7~8세기 이후 500년에 걸쳐 지속된 유럽의 온난화로 발흥을 맞이한 중세 봉건제도는 그러나 14세기 중반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인구의 30~60%를 잃는 대재앙을 맞는다. 인구 밀도가 높고 비위생적이었던 중세 도시는 오래도록 흑사병이 창궐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흑사병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여 농경 인구와 경작이 줄어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내려갈 정도였다. 항생제가 개발된 20세기에 와서야 인류는 흑사병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7세기에 있었던 소빙기의 여파로 명나라는 무너지고 조선은 경신대기근을 맞아 멸망의 위험에 처했으나 인근 국가들 역시 가뭄의 피해가 극심하여 영토확장의 꿈을 갖지 못한다. 그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기후의 위력이다. 소빙기의 영향은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원인이기도 하다. 100만 명이 사망하고 또 다른 100만 명을 미국 이주민으로 만들었다. 감자의 품종이 단일하지만 않았어도 고국을 등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산업화 이후 이루어진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과 이에 따른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은 자연의 통제 범위를 넘어선 인류의 산업 활동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인위적인 기후변화라고 불린다. , 산업화로 인해 인류는 자연에 의한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기만 하던 존재에서,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기후를 바꾸는 주체로 변모한 셈이다.” (204)


이 책의 1, 2부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받은 영향을 설명했다면, 3부에서는 산업화와 화석 연료 사용이 초래한 기후 위기를 말한다. 과도한 이산화탄소 발생으로 야기된 지구온난화와 이로 인한 폐해를 지적한다.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소빙하기인 셈이라 자책하는 한편, 기후 위기의 시대에서 살아나갈 방법 또한 찾고 있다. 동시에 극지방의 영구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이로 인한 경작지 감소와 각종 유행병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들춰본다. 하나뿐인 지구를 잘 건사하면서 우리는 과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저자는 유일한 해답은 인류 사회의 공조와 협력을 통한 지구 살리기 노력뿐이라 제시한다. 아울러 지금까지 인류에게 기후가 위기였다면 이제부터는 기회로 삼아볼 때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기후로 바라본 인류 역사의 통찰을 얻으시리라. 일독을 권해드린다. (2023-04-18)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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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결국은 말입니다
강원국 지음 / 더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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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비서관으로 두 대통령을 모셨던 저자는 글쓰기와 말하기의 달인으로, 말 같지 않은 말과 어른답지 않은 말을 매일 반복하는 나에게 당신의 말은 안녕하시냐며 안부를 묻는다. 늘 사람됨의 취약점으로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이 우매한 독자는 이 책의 제목에서 한 줄기 빛을 본다. 저자가 나도 말을 잘해보고 싶다, ‘말 좀 잘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소리 없는 외침을 들었던 걸까?

 

직장에서 말을 잘하려면 실행 과제, 문제점, 원인, 해법, 주장, 이유, 근거, 실행 계획, 기대 효과, 소요 예산 등과 같은 단어를 머릿속에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114)

 

혹시 누군가는 절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한 집에서 세 여자와 함께 사는 처지라 속옷 차림으로 아무렇게 나뒹굴기도 어렵다. 코끼리 우는 소리 같다는 내적 갈등의 외적 폭발을 아무 때나 발산하기도 힘들다. 나는 저들의 말을 못 알아먹을지언정 저들에게 못 알아먹게 말했다가는 당장 날카로운 쇳소리를 각오해야 하는 성 소수자다. 그 이름만 들어도 자동으로 혀를 차게 되는 내 이름은 남편, 아빠, 아들이다. 쉽게 말해 말 더럽게 못 하는 남자다. 말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를 못 가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마구 끼얹는 신묘한 재주를 지녔을 뿐이다. 저 멀리 라오스에서는 복을 준다며 모르는 행인에게도 물을 끼얹는다던데, 이제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머리와 가슴으로 말하는 건 차등이 있을 수 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감수성과 감성이 풍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말이다. 경험에는 높낮이가 없다. 오히려 맵고 짜고 쓴 경험이 더 대접받는다.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 실패와 좌절의 경험에 더 귀를 쫑긋 세운다.” (124)

 

딸아이들이 고3이던 시절 학원으로 과외로 차로 실어 나르며 뒷바라지하던 때가 생각난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부녀간의 대화라며 즐거운 착각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공부할 동기부여와 멋진 아빠의 소싯적 직장 생활의 무용담(?)을 들려주느라 자주 침을 튀기고는 했는데, 대화의 주도권이 약해 주로 말하기보다 듣기를 많이 하던 딸아이들은 나중에야 지나가듯 말했다. 실패담은 거의 없고 맨 아빠 잘난 얘기만 해서 그리 달갑지 않았다고.

 

말하기가 힘든 이유도 관계 때문이다. 말은 내 말을 듣는 상대가 있다. 말하는 이유 역시 내 말을 듣는 누군가와 친해지거나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좋은 관계를 위해서다.” (13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게 생각한다. 아니, 자기 생을 이어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리 생각하게끔 되어 있다. 본능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임을 너무나 쉽게 망각한다. 더욱 솔직해지자면 우리로 바꾸어야 한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자의든 타의든 자신을 점점 더 객관적으로 관망하는 자세가 몸에 익어간다는 것이다.

 

배려하는 사람은 말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 조크와 재치로 사람들을 웃긴다. 덕담에 인색하지도 않다. 축하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풍부한 대화 소재와 다양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도 한다.” (185)

 

말하기의 안부를 묻는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에서는 듣기와 말하기는 한 쌍이라며 상대를 받아들이고 내 생각을 확장하는 경청의 태도를, 2장에서는 어디서든 통하는 말에는 구성이 있음을 지적하며 정확하고 적절하게 전달하는 말하기 기술을 알려준다. 3장에서는 사람 사이엔 대화가 필요하다는 명제로 관계를 다루는 말하기 연습을, 4장에서는 세상은 내가 하는 말만큼의 깊이로 이루어져 있다며 고쳐 쓴 글처럼 견고하기 말하기를 다룬다. 길게 잡아빼는 문장이 거의 없고 간결 명료한 화법이라 쉽게 금방 읽힌다. 재미있고 알찬 말하기 요령 실용서랄까.

 

지금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비판이 필요하다. 배제와 타도와 공격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비판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게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아니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다. 다른 게 섞이기 위해서는 상호 비판이 불가피하다.” (233)

 

주로 생활하는 환경이 학교이다 보니, 그저 줄 세우기나 성적 내기를 위한 목적 말고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고 도움을 주는 실질적인 글쓰기와 말하기 교육이 절실함을 느낀다. 쓰기와 말하기를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하여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남학교라면 더더욱 그렇다. 계속 방치하면 나처럼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미래의 남편이자 아빠들을 양산하게 된다. 정신과 육체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뭇 남성들의 사회생활 생존율을 높이는 데에는 국··수보다 쓰고 말하기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면 아들에게 꼭 선물해야 할 책이다. 결국은 말이다.

 

#북유럽 #강원국의결국은말입니다 #강원국 #더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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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스라엘 -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최용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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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레바논과의 국경에서 가자 지구까지 지중해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 평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형으로 토질이 비옥하여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몰려 산다. 해안 평야에서 동쪽 내륙으로 가면 북부 갈릴리 지역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 등 산지와 구릉으로 구성된 고지대가 있다. 평균 고도 600m 정도의 고지대 사이사이마다 비옥한 계곡 지형이 존재하며 수도 예루살렘 역시 이곳에 존재한다. 다시 고지대에서 동쪽 요르단과의 국경 쪽으로 가면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수원인 요르단강 계곡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쪽의 네게브 사막은 극히 건조한 지형으로 내륙의 베르셰바나 이스라엘의 유일한 홍해안 항구도시 에일라트 등을 제외하면 거주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네게브 사막 지역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넘겨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훨씬 더 비옥한 골란고원을 빼앗자마자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곳에 몰려갔다. 현재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돌려달라는 시리아 측의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이미 이 일대에 1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국민이 이주,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골란고원에 살고 있던 시리아 국민도 2만여 명이나 된다.

지중해에 접해 있고 남쪽으로 홍해와도 약간 접하는데 이스라엘의 홍해 해안선은 고작 11km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약간 걸친 수준. 홍해의 유일한 이스라엘 항구도시 에일라트가 있다. 바로 옆에 요르단의 도시 아카바가 있는데, 여기도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다. 그래도 가상의 적 아랍 국가들에 포위되어 지정학적 운신의 폭이 좁은 이스라엘에는 이 작은 홍해 연안이 엄청나게 중요한 요충지로, 3차 중동전쟁 때도 해상 봉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스라엘은 위치상으로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중동의 전통적인 육로는 이집트에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를 거쳐 시리아로 빠져나간 다음 메소포타미아나 소아시아로 향하며, 인구 분포 역시도 예나 지금이나 이런 양상이다. 여기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에 이스라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포인트.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물질적 의미에서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 전체 넓이와 맞먹는 수준이다. 2020년대의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이스라엘 본토 인구는 약 900만 명, 팔레스타인 인구는 약 500만 명이다. 이스라엘 본토에 속한 골란고원과 팔레스타인이 다스리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언제든 여행과 방문을 할 수 있지만, 과격 무장단체 하마스가 다스리는 가자 지구는 매우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 겨우 방문할 수 있다.

 

1장 시오니즘과 분쟁

시오니즘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민족주의 운동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시온(Zion)이란 원래 예루살렘 구시가지 내의 언덕 이름으로 예루살렘, 또는 이스라엘인의 땅을 의미한다. 시온주의라고도 하며 이 용어 자체는 1893년 빈의 유대인 대학생 지도자 나탄 비른바움이 만들었다.

기원후 1세기에 망국민으로 전락한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를 주창한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을 중심으로 1890년대부터 유대인 독립국가 재건이라는 목표를 구체화해 나갔다. 1948514일에 분리독립을 최종 확정한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서부 방면에서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곧이어 발발한 제1차 중동전쟁에서 겨우 승전한 이스라엘 진영이 지중해와 홍해의 바닷가를 점령함으로써 현대 이스라엘국이 비로소 성립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서 팔레스타인을 아주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관청들이 제공하는 시청각 자료들은 오늘날의 이스라엘국, 레바논 공화국, 요르단 왕국이 속한 지중해 바닷가에서부터 요르단강 유역까지의 범위에 대하여 주로 가나안 또는 에레츠 이스라엘로 표기한다.

일부 비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중동에 주둔한 '최후의 십자군 국가' 또는 '최후의 유럽인 식민지'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들은 현대 유대인을 고대 유대인과 같은 혈통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늬만 유대인인 유럽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 각지의 종교적 소수자였던 미국과 유배된 범죄자 집단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 개척민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유럽이 내부의 종교적 소수파나 불온 분자들을 식민지로 이주시킨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공통점을 갖지 않더라도 유대교 회당을 통해 대대로 전승한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민족 종교를 갖는다는 점에서는 독자적인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하여 각국이 통합해 새로운 정권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도 분쟁의 해결은 요원하다.

이스라엘은 세속국가이나 유대인들의 나라인 만큼 유대인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의 영향력이 굉장히 강하다. 사실상 국교의 위치에 있다. 유대교 때문에 이런저런 금기 사항이 많으나, 이스라엘은 세속국가라서 사우디처럼 심하게 강요하지는 않고 오히려 강요하면 처벌받는다. 다수의 유대인은 건국 직후부터 세속주의 성향을 보였으며, 한국인들이 유교를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게 유대교를 전통으로써 존중하고 있다. 그동안의 조사에서 절반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세속주의자라고 답했고, 30%는 전통주의자, 나머지 20%만이 (하레디 포함) 종교적이라고 답했다. 좌파 정당인 노동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당인 리쿠드당도 세속주의 정당으로 설립되었고, 집권을 위해 유대교 정당과 연정하는 정도다. 게다가 중동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세속주의 유대인들이 다수라고는 하지만 이스라엘 정치 특성상 유대교의 영향력이 굉장히 높으며 타 종교를 아주 싫어해 탄압하는 판국이다. 유대교인이 아니면 징집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2016년 미국 퓨리서치의 조사에서도 이스라엘은 타 종교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로 뽑혔을 정도이며 다른 종교들의 선교도 철저하게 금지한다. 무신론자도 은근히 차별이 있는데 이스라엘에선 무신론자는 징집하지 않는다. 좋을 것 같아도 이스라엘에서 병역을 마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국가에서 간접적으로 무신론을 탄압하며 유대교를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다만 무신론이 아닌 종교에 관심이 없는 무종교인에 대한 탄압은 없는 편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선교를 교회와 모스크 내에서만 하게 하고 밖에서만 하면 무조건 징역 5년이다. 심지어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가 유대인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 또한 선교 행위로 간주하여 징역 5년이다. 이스라엘 정계를 휘어잡는 극우 정치인들이 유대교를 신봉하다 보니 유대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대교 신자들이 타 종교인들한테 저지르는 폭력과 테러도 제대로 된 처벌을 안 하며 해봤자 가볍게 넘어가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하레츠에서 나라가 광기로 치닫는 것도 모자라 광신이 판치기 시작한다며 한탄할 정도였다. 특히 종교 정당인 유대교 정당들은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유대교, 유대인만의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한다. 당연히 세속주의 정당들은 반발하며 제동을 걸어 유대교 정당들의 계획을 막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세속주의 정당들과 종교 정당 간의 갈등이 굉장히 깊어 틈만 나면 정책 결정을 두고 서로 욕하고 싸운다. 단적으로 이스라엘을 영 좋게 보지 않는 유대교인들도 많다. 유대교 정통파(하레디)의 인구수는 교세가 커지면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외부에서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커다란 암이 자라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뒷배경이 도움도 주고 자기들끼리도 싸우느라 정신없으니 그나마 낫지만, 내부의 위험 요소는 아예 대책이 없다.

 

2장 디아스포라와 이민

선진국 중 출산율이 대단히 높은 나라로 유명하다. 흔히 하레디 때문이라는 인식도 많으나 비종교적인 유대인조차 합계출산율 2.0을 기록하여 서구 최고다. 서양에서 출산율이 높은 영미권조차 1.6~1.7 정도다. 출산해도 아기를 가정에서만 돌보지 않고 사회가 도와주는 체계가 잡혀있고, 자립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 그 능력을 인정하는 풍토로 육아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다. 한편 해외 유대인의 경우 대부분 이스라엘보다 출산율이 낮은 거주국의 풍토를 따르기에 이런 경향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많은 인구로 인한 환경 영향 같은 사회 문제가 있어도 이런 풍토 때문에 쉽게 자녀 수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3장 유대국가와 유대 정체성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극한으로 치닫는 민족주의다. 극우 유대 민족주의 정당이 의회 의석의 12%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와 국민은 이를 당연시한다. 집권당인 리쿠드당부터가 현실적,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반대하며 군사력을 동원한 폭력진압과 정착촌 확대를 주장한다. 특히 같이 연정을 구성하는 유대교 초정통파들이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 때문인지 날이 갈수록 초강경책으로만 치닫고 있다. 반면에 노동당은 1994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 주도 아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 체결까지 간 적도 있지만, 이쪽도 리쿠드당과 다를 게 없는 유대 민족주의를 보이며 날이 갈수록 강경책과 군사력 우선주의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 최대의 야당인 카디마당조차 하마스를 무력으로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니 정치계는 정당들이 이름만 다르지 하나같이 유대 민족주의 성향임은 변함없다. 이러다 보니 평화와 안정, 유대 민족주의 철폐를 추구하는 좌파는 항상 밀리거나 불이익받고 탄압받아 정치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고, 메레츠나 공산당, 무슬림계 정당들이 추가적인 평화협정을 주창하고 있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 이스라엘인이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특히 아슈케나짐계 출신)들에게는 평화주의가 완전히 비현실적이라고 보면 된다. 사법부 역시 정치판처럼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심해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아랍인들에게 불공정하게 판결한다는 논란이 있다. 일례로 2020년 이스라엘 의회가 유대인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유대인만이 민족자결권을 가질 수 있으며 히브리어와 함께 국가 공식 언어였던 아랍어를 특수 언어로 격하시키는 내용을 담은 유대민족 법안을 통과시켜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국민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장 작은 나라 강한 군대의 비밀

이스라엘군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예 강군이며 수차례에 걸친 전쟁에서의 다양한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다. 빛나는 무용담에 가려져 있지만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 비견되는 리버티호 공격 사건, 민간인 탄압 및 전쟁 범죄 혐의 같은 어두운 면도 있어서 여러모로 말이 많은 군대이기도 하다. 나라가 생길 때부터 전쟁을 여러 번 치른 탓에 일찍이 병영 국가(Garrison State)화되어 남녀가 병역의 의무를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실 진짜 이유는 인구 부족 때문이다. 정작 현역으로 입대해서 복무하는 이스라엘 여성은 전체 인구 중에서 절반밖에 안 되는 데다가 다방면으로 편법이 만연한 실정이다. 전역자를 대상으로 학비를 지원해주니까 불만의 목소리가 적은 것뿐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쟁이 끝난 직후 이스라엘 방위군의 수뇌부는 여군이 제1선의 전투 부대 참여를 제한하였고, 의무병과 행정병처럼 비전투병 임무만을 수행하게 했다. 이는 이스라엘 여군이 적군에게 포로가 되는 경우 적군이 심리전(이스라엘군의 사기 저하)을 목적으로 포로로 잡힌 여군에게 심각한 학대를 가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여성계 일각에서는 여성에게도 공평하게 제1선에서도 군 복무를 수행할 의무와 권리를 부여해달라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기부터 대규모의 상비군과 거대한 예비군을 지탱하기 위해서 수많은 여군이 헌병대와 경비단 및 통신병과 정비병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군인들은 휴가와 외박을 다녀올 때도 테러에 대비하여 총을 들고 나갈 정도라, 여차하면 남자 군인들과 함께 총을 쏴야 하는 것은 그대로다. 그러다 결국 미국과 영국처럼 다시 전투병과에 여군을 배치하려는 모양이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총기 사고가 틈만 나면 일어나 골칫거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핵무기 보유가 거의 확실하나, 국제적으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NCND, Neither Confirm Nor Deny)을 유지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 NPT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전에는 음모론으로 치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핵무기 보유 여부를 폭로한 모르데카이 바누누가 당했던 고문과 투옥을 고려하면 사실로 보인다. 현재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이스라엘 당국에서도 누가 뭐라 해도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디모나 핵 시설 등에 핵무기 약 2백 기를 보유했다고 추정된다. 적성국에 둘러싸였고 인구도 얼마 안 되니 소모전을 할 수 없어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당연히 이 과정에서 미국이 적당히 눈감아 준 듯하다. 선제공격용으로 핵을 쓰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이고 우방인 미국도 핵무기 사용을 가만 놔둘 리가 없어서 핵은 보관만 하지 함부로 쓰지 못한다.

 

5장 창업정신과 후츠파

영토가 매우 척박하고 땅도 비좁고 인구도 적지만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 IT분야와 스타트업을 통해 경제가 발전했다. 대부분 군사 기술에 기반해 성장한 굵직한 기업들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기업이 여럿 있는데 삼성전자가 2019년 첫 M&A1700억 원에 인수해 화제가 되었던 모바일용 광학줌 카메라 모듈 제조 스타트업이었던 코어포토닉스가 이스라엘 기업이었으며, 작곡 업계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운드 플러그인 ‘Mercury Bundle’을 개발한 업체 웨입스 오디오(Waves)’도 대표적인 이스라엘 기업이다.

이스라엘이 사회주의적 기반에서 건국된 탓에, 공산주의 국가에 주로 존재하는 집단 농장이 아직도 있어서 유명하다. 이를 키부츠라고 하는데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노동량에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받으며, 식사도 공동, 빨래도 공동, 모든 걸 공동으로 소유한다. 한때 국내 교련 교과서나 여러 유대인 관련 책자에서 유대인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긍정적으로 다룬 탓에 한국 사람들이 견학차 이스라엘까지 갔는데, 키부츠에서 일해 보고는 너무 힘들고 짜증이 나서 오래 일하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유대인들도 키부츠를 외면해서 많은 수가 떠나버려 인력이 부족한 나머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력을 땜질하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에서도 2010년 가스와 여러 자원이 개발되었으나, 양이 많지 않은데다 수출도 극히 어렵다. 가스전 개발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에너지 자원을 적국들로부터 수입해 와야 하는 위험성을 극복하고 주변국들에 대해 경제적 균형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레비아탄 가스전의 가스는 이집트로 수출하며 키프로스를 거쳐 그리스까지 가스관을 건설할 예정이다. 다른 천연자원이 없다 보니 여전히 수입 자원에 많이 의존한다. 특히 인구 증가와 사막화로 인한 수자원의 부족은 심각한 문제로 손꼽히고 있다.

 

6장 조약 없는 영혼의 동맹 미국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아랍 세계에 널리 퍼진 반미(反美) 국가관에 대항한 양국 간의 공조라는 점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1967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을 묶어주었던 이해관계는 분명하고도 실질적이었으나 1991년 구소련의 해체 이래로 양국 관계의 기초가 상당히 불확실해졌다.

1948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이 발표된 이후 불과 11분 만에 공식 승인하지만 두 나라는 어떤 면에서든 결코 동맹이라고 할 수 없었다. 비록 미국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어도 미국의 정책이 실제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었으며, 주로 터키와 그리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또한 그리스와 터키 모두 외부적으로 소련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국이 볼 때 이 지역의 요충지는 터키였다. 소련의 흑해 함대가 지중해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방법은 이스탄불의 좁은 해협, 즉 보스포루스 해협 뿐이었다. 만약 소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얻게 된다면, 소련은 미국의 힘에 도전하며 남유럽까지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중동에서 미국의 봉쇄 전략에 대한 주요 장애물은 영국과 프랑스가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 지역에서 누렸던 영향력을 재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실제 미국-이스라엘 동맹의 배경에는 유대계 자본가들의 로비가 있었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현재 650만 정도로 전체의 2% 수준이지만 유대인들이 창업했거나 경영하는 세계적인 대기업은 부지기수다. 페이스북, 구글, 제너럴 일렉트릭, 엑손모빌,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스타벅스 등등, 인물은 스티븐 스필버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 오바마 정권의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등이 유명한 유대인이며 보통 상원에서 10(정원 100), 하원에서 30(정원 435) 정도의 유대계 의원을 배출한다. 세계 4대 통신사인 AP, AFP, 로이터, UPI와 신문사인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방송사인 NBC, ABC, CBS 등이 모두 유대인들이 세웠거나 유대인들과 유대 자본이 소유한 언론사다. 여기에 할리우드의 6대 메이저 영화사 모두 유대계 자본이 세웠으며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전 세계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 매체의 상당수가 유대계 자본과 연관돼있다. 물론 이들이 무작정 이스라엘만을 편든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과거 오랜 세월 유대계가 당해왔던 박해를 계속 강조하면서 현재 이스라엘의 어두운 면에 침묵하는 방식으로 친이스라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교육, 의료, 금융, 그리고 문화계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의 영향을 끼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즉 미국의 핵심 동력에 유대인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스라엘을 조건 없이 지원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것들을 나열해보면 미국이 이스라엘의 하수인 내지는 식민지가 아닌가 의문이 드는 수준이다. 무기 거래만 봐도 절대적인 액수 자체도 크지만 똑같은 무기라도 이스라엘에는 더 빨리, 더 싸게 인도한다. 다른 나라들은 돈이 있어도 미국이 판매를 거부할 때 이스라엘은 미국이 준 돈으로, 그것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싼 값에 사서 이미 운용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미국은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UN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이나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 행위에 대한 제재안에 대해 언제나 반대표만 던져서 '미국이야말로 현재 세계 평화의 적'이라는 비난, 비아냥, 욕까지 듣고 있는 판국이다. 실제로 미국이 중동문제와 관련해 UN 안보리 회의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행사한 거부권은 20123월까지 무려 32회에 달한다. 특히 이스라엘이 UN을 공격한 것도 항상 감싸준다. 이렇다 보니 양국 관계를 두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위성국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안이면 거의 이스라엘 편만 들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려 드니 국제사회가 미국의 공정성을 불신하게 되어 미국의 위상마저 크게 흔들고 있다. 곤충에 비유하자면 이스라엘은 뇌를 조종하는 연가시이고 미국은 연가시의 조종을 받는 숙주 같은 모양새다.

 

7장 젊은 나라 속의 오랜 율법

우리에게는 하브루타 교육이 널리 알려졌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국가로 유명하면 유대인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철저히 관여하여 명문대로 진학시키려는 교육열, 학구열이 대단하다. 그러나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무조건적인 부모의 금전적 지원을 좋게 여기기보다는 창의성과 실용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국가와 달리 어떤 자녀가 태어나든 그 자녀에게 맞는 자질을 길러 자립하기 쉽도록 교육이 이루어지므로 교육열이 저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 상대의 표면적인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주눅 들지 않는 문화도 있다. 이스라엘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와 테크니온-이스라엘 공과대학교가 있다. 이스라엘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치르는 표준화된 대입 시험으로 대입능력 계량시험(Psychometric Entrance Test, PET)이 있다. 이 시험은 히브리어, 아랍어로 일 년에 네 번 치러져 응시 기회가 매년 1회뿐인 한국 수능보다는 SAT 등에 가깝다.

 

맺는말

이스라엘 현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저자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중동의 평화 수호자, 작지만 강한 나라, 여성 군 복무가 의무인 나라 등 긍정적인 면을 비롯하여 2천 년 동안 영토 없이 떠돌다 팔레스타인의 배려로 더부살이를 시작하더니 도리어 이제는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을 박대한다는 부정적인 면 역시 정확하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정학적 위치나 국제 관계에서 한국과 많이 닮았다는 저자의 시각을 포함하여 그동안 낯설고 잘 알지 못했던 국가의 이모저모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시중에 찾아보기 힘든 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어 그만큼 희소가치를 지녔으며 현대 이스라엘에 관한 fact book으로 손색이 없다. 일반교양뿐 아니라 중동 지역과 국제 정세 및 세계 평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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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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