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그리고 유신 - 야수의 연대기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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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박정희가 주도했던 5.16 군사 반란은 당시 제3세계에 흔했던 여느 쿠데타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의 유신은 메이지유신 전후의 사무라이들과 황도파 젊은 장교들이 주도했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던 쇼와 유신의 한국판 재탕이었다. 일본의 유신이 폭주해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병영으로 만들고 일본 국민을 인질로 삼아 위기에 이르렀듯, 박정희의 유신도 똑같이 국민 살해의 임계점에 도달했었다. 부마항쟁 당시 몇백만을 죽여도 괜찮다는 박정희의 뜻을 가까스로 막아낸 것은 의사가 아닌 최후의 유신 지사(志士) 김재규였다.


10월 유신은 19721017일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헌정 중단 사태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위헌적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제3공화국 헌법을 정지하며 일본 천황처럼 초법적 존재가 된 것을 말한다. 그는 유신 체제를 '한국식 민주주의'라며 포장했으나 5·16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명분처럼 정권을 민간에 이양할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YH 무역 사건과 김영삼 제명 파동이 터지고, 부마 민주항쟁도 일어나면서 유신 체제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사실 탄생과 몰락의 궤를 함께 하는 유신의 특성상 박정희 정권의 종말은 거의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유신 정권이 지속되기 어려웠던 원인으로 당시 매우 좋지 않았던 경제 사정과 박정희의 무한한 권력욕을 들 수 있다. 박정희는 조카사위 김종필을 극히 견제하여 세 차례나 가택을 수색하였고, 김종필에 의하면 박정희 본인이 심지가 약해 주변을 너무 의심했다고 한다.


더구나 말년으로 갈수록 분별력이나 판단력이 무뎌졌고, 조금씩 민주주의를 맛본 국민은 병영국가가 되어가던 대한민국을 거부했다. 게다가 차지철을 비롯한 측근이 횡포를 일삼았고, 중앙정보부장을 열 차례나 갈아 치울 만큼 부하를 믿지 못하였다. 결국 19791026(속칭 탕탕절)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인 박정희를 총으로 쏘면서 끝났다. 공교롭게도 유신은 태어난 달에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자기 파괴를 완성한 것이다. 2018년 대법원에서 19721017일 비상계엄에 따라 발령된 계엄포고령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위법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혹시라도 새마을운동과 경제부흥의 큰 틀로 박정희를 옹호하는 독자라면, 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는커녕 핍박하고 위험에 빠뜨렸던 위헌사범이었다는 점만큼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서거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필자는 대통령의 피격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한쪽에서는 세상이 무너진 듯 울부짖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꽹과리를 치며 떡을 돌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린 동생은 부모님께 다음 박정희는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가 애꿎은 꿀밤만 맞았다. 그날 이후로 오후 6시마다 사이렌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동사무소에 게양된 국기가 내려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로부터 8년 뒤 대학 신입생이던 1987년에는 반란수괴의 후계자가 세운 군부에 맞서 동기들과 함께 돌을 던지기도 했다. 대학 선배들로부터 빌린 소위 금지 서적을 돌려보며 유신이라는 존재가 일본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우리 역사에 미치고 있던 친일 잔재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유신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암울하다.


필독이라는 필명의 딴지일보 필진이었으며 육십갑자 악마의 필력을 자랑하는 저자는 유신을 역사적 사건이 아닌, 생성 소멸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독특한 접근법을 전개한다. 속칭 주류 사학자의 학술적 저술이 아닌 역사적 사건의 유기체적 해설이라니, 듣느니 참신하다. 그는 유신을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해 남을 파괴해도 된다는 기괴한 신앙적 믿음이라 정의한다. 유신의 역사, 즉 일본에서 탄생 성장하고 한국에서 완성 소멸하는 150년간의 낭만 비극적 서사를 씨앗-잉태-탄생-팽창-폭주-광기-임종-부활-절정-완성의 10단계로 나누어 톺아본다.


그는 비록 유신의 제단에 바치는 글로 삼가 망자를 위로하는 후기를 삼고 있지만, 현재의 국내 정세를 돌아보면 우리가 체감하는 유신은 여전히 진행형인 듯하다. 유신은 죽었지만, 유신의 화신인 박정희를 사모하고 그 후계자 전두환을 존경한다는 통수권자가 친일을 옹호하며 자기 파괴적 언행을 눈에 일삼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도 일본 정당을 따라 지은 어느 정치집단은 유신 지사도 아니면서 정명가도와 탈아입구를 외치며 동아시아의 맹주를 염원하던 군국주의 일본의 망령에 세뇌당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의 제목, <유신 그리고 유신>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한국의 10월 유신까지를 암시한다. 학계에서는 1868년을 메이지 유신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으나, 저자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1274년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공을 지목한다. 유신이라는 독특한 관념은 일본의 지정학적 특징에 기인한다. 일본 열도는 천 년이 넘도록 외부로부터 침공받은 역사가 없어 스스로 신의 영토(神土)라 칭했고 임금을 천황으로 승격시켜 신성불가침의 절대자로 만들었다. 탐라국이었던 인근 제주도의 경우 임금을 별들과 대화하는 자(星主)라 칭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러한 신화적 지위를 천황과 후지산에 부여했다. 단 한 번도 혈통이 끊긴 적 없는 자연물에 가까운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은 계속해서 일본이었으며 다른 존재였던 적이 없다는 만세일계(萬世一系) 개념을 내재화한다.


지구인이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듯 일본인에게는 일본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이다. 이런 일본에 처음으로 닥쳤던 여몽 연합군의 침공은 사활을 걸고 물리쳐야 할 고질라 같은 괴수, 즉 무쿠리고쿠리 이다. 아마 그다음으로 충격적인 침공은 2차대전 당시 미군 폭격기의 본토 폭격과 원폭 투하일 테고, 그래서 유독 미국에는 저자세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일본 침공 당시 몽골의 부마국 지위를 간신히 유지하던 고려는 일본 정벌을 극구 만류하였으나,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하겠다는 몽골의 관념에 밀려 정벌에 참여하게 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일본 침공에 참여한 고려의 곤란한 입장은 일본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독히도 운이 좋게 가미카제의 도움으로 멸망할 운명을 모면한 일본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는 신성하며 그 세계를 위해 낭만적인 죽음을 감수할 수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공유함으로써 훗날 유신의 정신적 토대로 삼는다. 무쿠리고쿠리의 원한을 갚기 위한 시도는 고려 연안에 출몰하던 왜구에서부터 20세기 대동아공영의 명목하에 아시아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기다 걸핏하면 일본의 입장을 알아서 거들고 있는 대한민국 현직 통치자의 정체성 불분명한 언행은 뼈에 사무치도록 고마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신 이후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도 저자의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이 정치·경제·군사 전 분야에 걸쳐 근대화를 성공시키는 과정과 일련의 대사건을 말하며 그 시기는 메이지(明治) 원년인 1868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불과 150년쯤 전이다. 당시 일본은 270년 이상 사무라이가 봉건 영주들을 다스리는 봉건제 사회였고, 조선 원정 실패 후 어수선했던 일본을 안정시키고 문화 발전을 이룬 계기가 되었다. 요시다 쇼인을 중심으로 정한론을 비롯한 팽창정책으로 주변 국가 특히 우리나라에 잊을 수 없는 잘못을 범하고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지만, 메이지유신은 사실상 오늘날의 일본을 있게 한 원동력이자 대변혁으로 근대 일본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의 변곡점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막부에 의해 처형당한 유신과 정한론의 선구자인 요시다 쇼인은 역사적 비중에 비해 평가절상된 추앙을 받는다. 일본을 일으켜 세운 유신의 중심에는 훗날 일본 육군의 전신인 조슈 번이 있었고 이들이 보였던 사상과 패기의 바탕에는 스승인 요시다 쇼인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신은 조슈와 사쓰마의 순혈이 아닌 일반 군인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황도파(皇道波)는 오직 천황이 제국의 모든 것을 친정(親政)해야 한다고 믿었던 육군 내 파벌로, 순혈보다 우월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보다 더 순수한 정신성을 추구하였다.”

 

유신을 이해하려면 뜻있는 사무라이를 가리키는 지사(志士)의 개념을 잘 살펴야 한다. 지향하는 뜻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나 자신의 뜻이 있고 그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다면 지사로 인정해준다는 관습은 오늘날 <바람의 검심>이나 <나루토>, <원피스> 같은 검객 애니메이션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에서는 법을 어기고 사회에 해를 끼쳐도 큰 뜻을 위한 각자의 투쟁방식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멋쟁이로 존중해주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그런데 멋있는 건 이해하겠지만, 그 뒤가 이어지는 법이 없다. 애석하게도 폭발하는 멋짐(또는 멋진 의지)과 광기와 실행으로 그치고 만다. 유신이 자기 파괴적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오로지 미학적 가치만 중요할 뿐, 이렇다 할 윤리적 가치, 즉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윤리적 가치가 없는 행동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으므로 결국 광기와 폭력 그리고 자멸로 이어진다. 이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유신의 관념이 국가 단위의 에너지로 뭉쳐진 결과가 바로 일본 제국이다.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밤새 내린 비에 단 하루 만에 모조리 지고 말면 그뿐이라는 일본인들의 미학적 정서를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벚꽃이 눈발처럼 휘날리는 장관을 보노라면 마치 현실 세계를 벗어난 꿈속의 한 장면 같은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한다. 꽃이 짐으로써 피어났던 소명을 다한 것으로, 그러니까 꽃이 져버리는 그 모습에만 심취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들의 진정성 넘치는 광기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는 최익현, 안중근, 김옥균, 김재규 등을 의인으로 추앙받게 한다.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인제 그만 가보겠다, 즉 목숨을 버리겠다는 결연한 모습에서 멋짐을 인정받은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해본다. 대통령 시해 이후 재판정에서 김재규가 그토록 의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정확히 들어맞는다. 비록 미학적 관점일 뿐이지만 어쨌든 이들은 가치를 위해 선뜻 자신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던지는 이를 지사로 여겨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다.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하듯, 모든 수익 활동도 마다하고 유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한 해를 오롯이 저작 활동으로 보낸 저자의 노고가 빛을 발하는 책이며, 그가 한국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밝혀보기로 작정했던 차기작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저자가 유신 지사는 아니지만 어디, 멋짐이 폭발하는 것 같지 않으신가? 아무래도 당분간 대선진리교의 교세가 약진할 것 같은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차와 포를 떼고 오로지 졸()의 힘으로 자칭 졸저(拙著)를 졸고(拙稿)한 저자에게 딴지일보식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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