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의 통찰 - 국제질서에서 시대의 해답을 찾다
정세현 지음 / 푸른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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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성질 사나운 어느 이웃이 있다. 성품이 고약한데다 자력으로 인간다운 삶을 꾸려가지 못해 종종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마저 받는다. 그 이웃의 바로 옆집은 무슨 생각에선지 자신도 어려운 주제에 물심양면으로 이웃을 돕는다. 사람들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몇십 년을 내리 도와주고 있다. 이때만 해도 그럭저럭 함께 어울려 지낼 만한 이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착한 옆집이 안 좋은 일을 겪으며 가세가 기운다. 도움의 손길이 멈추자 어려운 이웃은 오래 안 가 동네 골칫거리가 된다. 그 집 아이들은 동네 꼬마들과 툭하면 싸우고 어른들은 술에 취해 유부녀를 희롱하고 동네 사람들과 시비를 가리며 행패를 일삼는다. 동네 모든 안 좋은 일의 근원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어떻게 달래도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다



결국은 오밤중에 칼을 들고 이웃집 담을 넘어가 도둑질하다 제지하던 사람을 해치기까지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얘기 같지 않은가? 우리도 어려운데 누가 누굴 돕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겠지만, 이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하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십시일반 조금씩만 도왔더라면 동네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지만 실제 국가 간의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동네 관계가 커져서 국제 관계가 되었을 뿐이다.



저자는 어릴 적 기차역 앞에서 동네 형들의 패싸움을 보고 힘이 지배하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깨닫는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며, 이러한 폭력 장치의 근사한 이름이 바로 정치이다. 정장 차림에 예의를 갖춰 좋은 말로 외국 정상과 회담하는 이면에는 국제 정치라는 또 다른 폭력 장치가 숨어있다. 그는 힘없는 꼬맹이가 동네 깡패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방법뿐임을 알았다. 자력으로 자신을 돌볼 수 없어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거나 빚을 얻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 하므로 아쉬운 소리에도 요구에 응하는 것이 역학관계이며, 국제 관계라고 해서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더욱이 우리나라 주변에는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같은 열강들이 옛날부터 진을 치고 호시탐탐 자국의 이익만을 좇아왔으며, 최근의 정권과 일부 국민은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종종 잊어버리는 듯하여 매우 걱정스럽다. 지극히 상식적인 정권이라면 부국강병과 국태민안을 기본적으로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 정치에 옳고 그름은 없으며 다만 유불리만 있을 뿐이라는 입장은 모든 국가가 똑같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는가. 조선시대의 명나라(돼지), 구한말의 일본(원숭이)과 러시아(불곰), 해방 이후 미국(독수리)으로 이어지는 대외 의존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친일 역사를 청산하지 못해 토착 왜구가 여전히 살아서 힘쓰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해방 이후 친일파 숙청에 성공하고 그들 나름대로 주체 정권을 수립한 북한에서는 남한을 미제의 앞잡이, 혹은 괴뢰정권으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미국의 도움으로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은 되었을지언정 여전히 독립하지 못했으며 6.25 동란 당시 도주하다 못해 자국의 독자적인 전시 군사작전권을 자의에 의해 미군정에 이양한 지도자의 원죄는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저자는 독립국도 아니고 작전권도 없으며 남북협상의 당사자도 못 되는 우리의 처지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강 자립을 꿈꾸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새기고, 현시점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시대적 환경에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교역 면에서 미국과는 밑지고 일본과는 약간 이득을 보며 중국에서 많은 이득을 보던 전통적인 국가 수입의 흐름을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에 역전 지속시키는 어리석은 판단 따위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 정치의 질서 판도에서는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중간보스인 일본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는 동시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에게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이웃이 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혼란한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외교의 자국 중심성을 유지 발전시킬 국가 지도자의 혜안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가 곧 세계 경제라는 결론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평생을 통일문제와 국제 정세에 통달한 저자의 고언을 새겨들어야 할 때이다. (2023-02-25)



 

#사회정치 #정세현의통찰 #남북관계 #국제정치 #국제정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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