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한다는 착각 - 멸종에서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반격
프랑크 베스테르만 지음, 정신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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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이라는 안일한 착각.

네덜란드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와, 이거 정말 물건이네요.
프랑크 베스테르만의 《공존한다는 착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자연 다큐멘터리나 환경 서적이 아닙니다.
책의 흐름이 시간 순서대로 얌전하게 흘러가지 않아요. 굉장히 편집적이고 입체적입니다.
마치 잘 짜인 장르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16세기 네덜란드 탐험대의 거친 항해일지 속 극지방 동물들을 나침반 삼아 출발했다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훅 들어오고, 어느새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기록을 파헤치더니, 이내 차갑고 냉정한 현실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습니다. 지루할 틈 없이 몰아치는 교차 편집이 아주 매력적이에요.

가장 좋았던 건, 책을 읽는 내내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감상적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책 안에서 인간과 동물은 철저하게 동등합니다. 작가는 인간의 입장만 고수하지 않고, 동물들이 가진 온전한 ‘동물권‘의 무게를 묵직하게 다룹니다. 인간이 지구에 남긴 균열을 따라, 동물들이 인간의 시스템을 교란하며 보여주는 ‘반격‘은 흥미롭습니다.

요즘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정말 뜨겁습니다. 알래스카 베링해협을 지나 북극 실크로드를 거치고, 트럼프가 미국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던 그린란드를 지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같은 북극항로의 종착지까지 이어지는 ‘북동항로‘. 미지의 세계였던 이 길이 열리면 화물선 운항 기간이 무려 10일 넘게 단축된다고 하죠.
숫자만 보면 엄청난 경제적 도약 같지만, 문득 복잡한 생각이 스칩니다. 이 항로를 둘러싼 러시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국가들은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 거대한 세계관의 갭을 어떻게 조율하고 우회하며 나아가야 할지, 진짜 숙제는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책의 북극곰 파트를 읽으면서 상상을 해봤습니다.
만약 머나먼 시베리아의 호랑이들이 수만 마리로 늘어나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옛 기억을 따라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우리가 사는 영남 알프스까지 진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내 집 앞마당에 맹수가 출몰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호랑이의 동물권을 보장하자˝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자연과의 공존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이론‘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위협하는 ‘현실‘로 마주했을 때, 우리 사회는 과면 그런 논의를 품어낼 수 있을 만큼 문화적으로 성숙해 있을까요?

《공존한다는 착각》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인간이 울타리를 치고 관리하는 자연은 진짜 자연이 아니며, 우리가 말하는 공존은 어쩌면 철저히 인간 편의적인 오만일지도 모른다고요.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문명의 길목 앞에서, 진짜 ‘공존‘의 무게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꼭 한번 일독해보시길 권합니다.

자연은 결코 우리가 길들일 수 있는 순종적인 파트너가 아니니까요.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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