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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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빌리아의 자식인 브루투스가 학교를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세르빌리아가 가장 흡족해하는 급우인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유니우스 브루투스만큼이나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다. (p22)


율리아는 천성적으로 평화주의자였고 다툼을 싫어했다.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짓고 브루투스의 팔에 한 손을 얹더니 애정을 담아 한 번 꽉 움켜쥐었다. 브루투스는 정말이지 버릇없는 응석받이였고, 너무 고리타분하고 자부심이 강했다. (p24)


카이사르의 야망은 자신이 직접 만든 파벌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로마의 일인자라는 위치에 오르기를 원했다.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Primus inter pares) ,비슷한 동료들 사시에서의 일인자, 가장 큰 권위의 존엄을 가진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존재 , 로마의 일인장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p52)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큰 똬리를 틀고 있는 뒷목 아래를 만졌다. 매끈하고 나른한 움직임으로 보아 그녀는 그것이 그의 손가락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녀의 머리 바로 뒤에 붙어 있었고, 그의 양손은 그녀의 양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숨결은 젖은 피부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그녀의 목을 식혀주었고, 그제야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녀가 그리도 싫어하는 잔털을 그녀의 어머니가 죽는 날까지 경멸하고 조롱했던 그 잔털을 혀로 핥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한쪽 방향으로, 다음에는 반대쪽 방향으로 하지만 계속 척추의 산등성이를 향해 움직이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세르빌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제껏 존재한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 폭풍 속에서 불타고 흠뻑 젖는 듯한 그 감각의 노예가 되어 가만히 있는 것분이었다. (p90)


세르빌리아는 9월 초에 셋째 딸을 낳았다. 커서도 파란 눈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금발 아이였다. 유니아와 유닐라는 꽤 자라서 지금 이름에 익숙해졌으므로, 이번에 태어난 유니우스 집안의 셋째 딸은 테르티아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이름은 세번째를 의미했고 어감도 좋았다. 5월 중순에 카이사르가 세르빌리아와 만나는 것을 중단한 이후로, 임신부의 시간은 끔찍이도 느릿느릿 흘러갔다. (p198)


"아빠가 말씀하시는 그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그분은 1월에 아이노스에서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이제 새로운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가 있어요. 유언장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인데, 독 입양절차를 거칠 거에요.." 카이사르의 입이 벌어졌다. "브루투스 말이니?" "네 브루투스요.그는 이제 카이필오 유니아누스가 아니라 퀸투스 세르빌리루스 카이피오 브루투스로 알려질 거에요. 유니우스부잔 브루투스란 이름이 더 중요하니까요."(p224)


클로디우스는 포박당하고 눈가리개를 하고 재갈이 물린 채 창문 없는 방으로 끌려갔다. 벽화나 장식품도 없고, 겓가 클로디우스는 제갈과 눈가리개가 제거된 순간부터 머리에 자루가 씌워져 목 부분이 묶이기 전까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주변을 볼 수 있었다. 눈가리개를 했을 떄보단 덜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 전까지 그가 확인한 것은 텅 빈 벽과 갈색 손 여럿뿐이었다. 그는 자루의 성긴 올 사이로 희미한 형체를 알아봤지만, 그 이상은 안 보였다. (p294)


아틸리아가 카이사르를 자기 침대와 가랑이 안으로 들였을지는 몰라도, 그 일이 있은 날 후로 카토를 들인 적은 없었다. 카이피오의 죽음으로 시작된 일은 아틸리아의 배신으로 끝났다. 신경쓰지 말자! 절대, 절대 신경쓰지 말자. 신경쓴다는 건 끝없는 고통일 뿐이니까.(p352)


그래서 카이사르, 자네가 해줬으면 하는 건 나와 내 사람들을 지켜주는 일이네. 자네는 장차 크게 될 사람이네. 비록 내가 앞으로 자네가 정복할 땅을 많이 남겨주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부도덕한 필리푸스 영감이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을 때 집정관이 되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자네였다는 걸 결코 잊은 적이 없네. 자네의 미틸레네 친구인 아울루스 가비니우스가 안부 인사를 전하는군. (p390)


"폼페이아에게 새로운 규칙을 알려주는 자리에 그애 어머니도 동석하게 하는 게 좋겠구나.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훌륭한 사람이야. 그리고 폼페이아가 얼마나 바보인지도 잘 알지. 그애 어머니가 가진 권한으로 네 권한을 더 강화하려무나.나는 끌어들여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자기를 폴릭세네에게 묶어놨다고 나를 몹시 싫어하니까."(p472)


카이사르의 아내 킨닐라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카이사르는 홀아비가 되었다. 하지만 로마는 카이사르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의 매력과 지적인 능력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이었고, 유부녀 세르빌리아는 카이사르와 밀회를 즐기게 되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테르티아는 명목상 카이사르의 딸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세르빌리아의 남편 실라누스의 의 딸이 되어야 했다. 테르티아가 세르빌리아의 아들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였는지 짐잘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의 관계로 인하여 카이사르의 운명이 불확실해졌다는 사실 정도는 추정해 볼 수 있다. 남편이 아닌 카이사르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을 브루투스의 눈으로 보자면 마땅치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한편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브루투스는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의 유언장에 따라서 막대한 자산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고, 카이사르의 기준으로 율리아와 브루투스의 결합은 예기치 않은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거라는 것 정도는 예측가능한 부분이다.


한 편 카이사르의 무용담은 로마 전역에 퍼지게 된다. 카이사르의 해적소탕작전은 클로디우스에게 있어서 위기의 탈출구가 될 뻔 했다.하지만 뛰는 놈보다 나는 놈이 있다 하던가. 아라비아인은 클로디우스의 꼼수를 눈치채고 있었고, 클로디우스에게 할례의식을 치뤄서 내쫒아버렸다. 카이사르가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건 착각에 불과했으며, 그로 인해 클로디우스는 예기치 않은 운명과 목도하게 된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고, 기회가 다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건, 클로디우스의 삶 속에 답이 보여진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만남 . 여전히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를 가볍게 생각하였고, 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만하게도 자신이 카이사르보다 높다는 걸 그의 편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카이사르와 다른 폼페이우스, 카이사르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요소들을 가지게 되었고, 딸 율리아와 브루투스가 정략결혼함으로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압도할 막대한 자산을 얻게 되었다.폼페이우스가 로마의 일인자가 되어 재산을 끌어 모은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이 카이사르 앞에 놓여지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재능에 예견하였지만, 그의 운명이 어디까지 향할 것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또한 로마의 최고 신관이 되었던 카이사르는 로마의 재정관, 법무관,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인 집정관으로 가는 길을 확보해 나가고 있으며, 꼼수를 부리며, 남들보다 앞서 나가려는 허세 가득한 폼페이우스와는 다른 횡보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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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3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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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툴루스의 오만과 악의는 절대 잊지 않으리라. 하지만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사람을 증오할 때에도 인내심을 발휘할 줄 알았다. 때가 되면 카툴루스의 차례가 올 터였다. 카이사르는 그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p17)


"나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요!" 인질이 거만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나는 파트리키 귀족인데다, 율리우스 집안 출신이오. 율리우스 집안 출신이란 게 무슨 묻겠지, 안 그렇소? 그건 내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을 통해 그 여신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뜻이오. 나는 집정관을 배출한 가문 출신이며, 나 역시 때가 되면 집정관을 지낼 거요.나는 그저 평범한 원로원 의원이 아니라고! 시민권을 수여받았고..원로원에서 발언권도 있고..원로원의 가운뎃줄에 앉고..내가 원로원 의사당에 들어가면 모든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준단 말이지. 심지어 전직 집정관과 감찰관까지도! 그런데 고작 은화 20탈렌툼? 내 몸값은 은화 50탈렌툼이오!"(p78)


"술라의 법에 따르면 법무관이나 집정관이 되기 전에 반드시 재무관을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재무관이 되기 전에 열 번의 전투를 마칠 생각입니다."(p142)


대신관이 된다는 것은 로마의 정계에서 가장 독점적인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조점관도 거의 대등한 지위였고, 귀한 대신관 직을 다른 가문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일부 가문에서는 조점관 직도 귀히 여기며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조점관보다는 대신관이 늘 조금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대신관단의 일원이 되었을 때 자신의 최종 목표, 다시 말해 집정관 직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p202)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폼페이우스가 가진 자기 회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네. 원로원이 그에게 집정관 자리를 허락할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면, 그는 행동에 나서기 전에 날 찾아 오지도 않았을 걸세. 그에게 있어 나는 원로원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네.카이사르, 그가 휘어잡아야 하는 대상은 원로원이야. 나는 그의 도구일 뿐이고, 그러니 내가 충격을 받든 말든 뭔 상관이겠나? 그는 내 불알을 잡아버렸어. 이제 내 병사들에게 땅을 마련해주려면 원로원에 내 입장을 밝혀야만 하네. 나와 내 병사들에게 폼페이우스와 맞서는 일을 맡길 수는 없을 거라고 말이지."크라수스는 군화를 신은 두 발의 위치를 마꿨다. (p290)


응접실을 확인한 카이사르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본인의 선택을 단번에 후회했다. 그의 어머니, 아내, 유유누나, 율리아 고모, 폼페이우스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 한 여성은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육촌누이 율리아였다. 그녀는 해적 소탕 임무를 맡았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혼인한 사이라서 '율리아 안토니아'라고 불렸다. 모든 사람의 관심은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의자 끄트머리에 안자 다리를 쭉 뻗고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p312)


폼페이우스의 의도는 모든 로마인들에게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에게 안 좋은 시절이 이제 끝났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축제와 휴가를 즐기도록 해 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p370)


고모는 열여덟 살 나이에 여기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고, 또 일부는 살아 생전의 모습까지 기억하고 계시는 그분과 혼인하셨습니다. 고모의 혼인 상대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였습니다. 그는 유례없이 일곱 번이나 집정관을 역임했고 로마 제 3의 건국자라 불렸습니다. 누미디아의 유구스타 왕을 물리쳤고, 게르만족을 정복했으며, 이탈리아 전쟁 초반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논란의 여지 없이 위대한 인물이 권력의 정점에서 목숨을 잃을 때까지 ,율리아 고모는 그의 충실하고 믿음직한 아내로 남아있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외아들 가이우스 마르쿠스 2세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물 여섯 살 나이로 로마의 수석 집정관 자리에 올랐습니다. (p412)


포르투나의 선택은 로마의 일인자 폼페이우스에게 있었다. 권력을 쥐고 있었고,로마의 외침에서 스스로 방비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폼페이우스는 재력도 가지게 된다. 포르투나의 선택은 폼페이우스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의 원칙과 법률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고, 기존의 집정관이 되는 순서와 원칙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원로원이라는 로마의 주축을 이룬 조직들을 자신이 묶어 놓을 수 있고, 자신이 원로원 출신이 아닌 최초의 수석 집정관이 되고자 하였으며,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를 가로막을 장벽이 폼페이우스의 전성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비교하자면 애송이나 다름 없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 열 여덟이며, 권력의 전면에 나서기엔 리스크가 있었으며,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 위한 성장 단계였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뒷 배경은 폼페이우스에 못지 않았고, 카이사르가 분명한 목적와 원칙에 따라서 집정관이 될 수 있는 발판은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질 수 있다. 가이우스 마르쿠스는 카이사르의 고모부였고, 그의 율리우스 집안도 로마에서 무시못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건 그가 열 여덟되는 해 율리우스의 여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


로마의 일인자가 될 카이사르는 어쩌면 허풍쟁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모했다. 해적에게 붙잡혔지만, 스스로 몸값을 올려서 살아남을 궁리를 하게 된다. 자신의 몸값을 20 탈렌툼에서 50 탈렌툼으로 올리고, 그는 해적 대장 폴리고노스에게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로도스 섬 남자 500명을 모아서 해적 대장 폴리고노스에게 대항하였으며, 해적 소굴 잔당들을 싹쓸이 하게 된다.해적 들 중에서 남자들은 십자가형을 지웠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의 이러한 사람을 모으게 만드는 힘은 어리지만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에는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카이사르 주변에는 여자들이 많았다.어머니 아우렐리아,아이우스 마르쿠스의 아내 율리아 고모, 카툴루스의 아내 호르텐시아, 호르텐시우스의 아내 루타티아, 나중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내연녀가 될 실라누스의 아내 세르빌리아, 리키니아, 마르키아,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 유니아, 유닐라 등등, 그가 가지고 있는 인물로서의 매력적인 조건이나 지적인 능력은 주변 여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카이사르가 보여준 모습들과 미담들은 여성들에게 유희꺼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해적에게 구출된 사건들은 또다른 이가 모방할 구실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이제 <포르투나의 선택 >시리즈가 끝나고 <카이사르의 여자들> 시리즈로 넘어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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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 Tandoori (Paperback)
Ernest van der Kwast / Scribe Us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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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먼 과거는 어둠의 장막이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 수치심의 자물쇠가 어머니 입을 꼭꼭 걸어 잠가버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거지나 다름없었던 생활, 그러니까 아주 까마득한 오래전의 삶에 대한 악몽 때문에 아직도 한밤중에 잠을 깨곤 한다. 비명 소리 끝에 입을 벌린 채 깨어난 어머니는 심야의 어둠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머니의 기억 속 깜깜한 절벽보다는 몇 백 배 더 밝으니까. (p20)


동굴 안에서는 사람들이 동굴 벽면을 매만졌다.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입맞춤을 했다. 병든 할머니의 사진을, 또는 보육기 안에 든 미숙아의 사진을 벽면에 대고 비비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어머니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다. 넘실대는 바다, 비애의 파도, 여행지갑에서 보호자 통행증을 끄집어내서 동굴의 회색 바위에 대고 눌렀다. 아주 가냘픈 소리로 기도문을 읊고 성가를 불렀다. 다락의 기도방에서 하는 식으로.그때 형이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궁금하기도 하고 자기도 벽면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주위에서 갑자기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늘어선 줄을 타고 탄성이 넘쳤다. 어떤 일본인 부인은 그만 기절을 해버렸다. 후끈하고 열이 오른 어머니가 형에게 어서 가 앉으라고 손짓발짓을 했다. 힌디어로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어머니는 성스러운 동굴에서 밀고 나왔다. (p96)


에른스트 환 데르 크봐스트의 소설 <마마 탄두리>의 주인공은 마마 탄두리이다.네덜란드인 크봐스트 가문의 의사 남편과 결혼한 인도인 마마 탄두리는 세 아들을 둔 엄마였다. 첫째 아들 아쉬르바트와 둘째 요한 그리고 막내 에른스트 클로흐 아랜트 환 데르 크봐스트까지 세 식구를 거느리면서 남편이 의사로 일하는 동안 집안 일은 온전히 엄마인 마마 탄두리 몫이었다. 


소설 속에서 마마 탄두리는 억척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밀방망이를 끼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밀방망이를 무기로 삼아 버린다. 언제 어디서나 밀방망이를 던질 기세이다, 그것은 탄두리가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며, 그 원인은 첫째인 아쉬르바트 때문이다. 지적 장애를 간직하고 태어난 아쉬르바트는 20년 동안 엄마 품에서 성장해왔으며, 지적 수준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마마 탄두리의 삶의 굴레였으며, 또다른 주홍글씨였다. 마마 탄두리의 눈에 애틋한 첫째인 아쉬르바트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아쉬르바트를 정상인으로 바라봐주길 원하는 엄마의 깊은 비애가 아닐까 싶다. 다락방에서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간절하면 소원 하나를 빌어준다는 동굴에 가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결정적일 때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첫째 형으로 인하여 상황은 뒤바뀌게 된다.


소설 은 세째인 에른스트의 시점에서 마마 탄두리의 삶을 관찰하고 있으며, 전체 스토리를 구성해 나가고 있다. 매 순간 발작을 하고 있으며,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소리 지르는게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불안한 현실, 위기의 한 가정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두운 그림자가 보여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마마 탄두리는 여전히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소설<마마 탄두리>는 우리 사회에 작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다. 우리의 관점으로 보자면 조현병에 가까운 지적 장애를 가진 형 아쉬르바트에게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원하는 마마 탄두리의 작은 소원, 내 아이가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고 싶은 희생과 비애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그것은 딸로 태어나길 바랬던 막내 에른스트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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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 Tandoori (Hardcover) - Roman
Kwast, Ernest van der / Btb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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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먼 과거는 어둠의 장막이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 수치심의 자물쇠가 어머니 입을 꼭꼭 걸어 잠가버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거지나 다름없었던 생활, 그러니까 아주 까마득한 오래전의 삶에 대한 악몽 때문에 아직도 한밤중에 잠을 깨곤 한다. 비명 소리 끝에 입을 벌린 채 깨어난 어머니는 심야의 어둠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머니의 기억 속 깜깜한 절벽보다는 몇 백 배 더 밝으니까. (p20)


동굴 안에서는 사람들이 동굴 벽면을 매만졌다.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입맞춤을 했다. 병든 할머니의 사진을, 또는 보육기 안에 든 미숙아의 사진을 벽면에 대고 비비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어머니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다. 넘실대는 바다, 비애의 파도, 여행지갑에서 보호자 통행증을 끄집어내서 동굴의 회색 바위에 대고 눌렀다. 아주 가냘픈 소리로 기도문을 읊고 성가를 불렀다. 다락의 기도방에서 하는 식으로.그때 형이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궁금하기도 하고 자기도 벽면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주위에서 갑자기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늘어선 줄을 타고 탄성이 넘쳤다. 어떤 일본인 부인은 그만 기절을 해버렸다. 후끈하고 열이 오른 어머니가 형에게 어서 가 앉으라고 손짓발짓을 했다. 힌디어로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어머니는 성스러운 동굴에서 밀고 나왔다. (p96)


에른스트 환 데르 크봐스트의 소설 <마마 탄두리>의 주인공은 마마 탄두리이다.네덜란드인 크봐스트 가문의 의사 남편과 결혼한 인도인 마마 탄두리는 세 아들을 둔 엄마였다. 첫째 아들 아쉬르바트와 둘째 요한 그리고 막내 에른스트 클로흐 아랜트 환 데르 크봐스트까지 세 식구를 거느리면서 남편이 의사로 일하는 동안 집안 일은 온전히 엄마인 마마 탄두리 몫이었다. 


소설 속에서 마마 탄두리는 억척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밀방망이를 끼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밀방망이를 무기로 삼아 버린다. 언제 어디서나 밀방망이를 던질 기세이다, 그것은 탄두리가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며, 그 원인은 첫째인 아쉬르바트 때문이다. 지적 장애를 간직하고 태어난 아쉬르바트는 20년 동안 엄마 품에서 성장해왔으며, 지적 수준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마마 탄두리의 삶의 굴레였으며, 또다른 주홍글씨였다. 마마 탄두리의 눈에 애틋한 첫째인 아쉬르바트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아쉬르바트를 정상인으로 바라봐주길 원하는 엄마의 깊은 비애가 아닐까 싶다. 다락방에서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간절하면 소원 하나를 빌어준다는 동굴에 가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결정적일 때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첫째 형으로 인하여 상황은 뒤바뀌게 된다.


소설 은 세째인 에른스트의 시점에서 마마 탄두리의 삶을 관찰하고 있으며, 전체 스토리를 구성해 나가고 있다. 매 순간 발작을 하고 있으며,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소리 지르는게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불안한 현실, 위기의 한 가정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두운 그림자가 보여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마마 탄두리는 여전히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소설<마마 탄두리>는 우리 사회에 작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다. 우리의 관점으로 보자면 조현병에 가까운 지적 장애를 가진 형 아쉬르바트에게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원하는 마마 탄두리의 작은 소원, 내 아이가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고 싶은 희생과 비애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그것은 딸로 태어나길 바랬던 막내 에른스트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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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탄두리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지명숙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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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먼 과거는 어둠의 장막이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 수치심의 자물쇠가 어머니 입을 꼭꼭 걸어 잠가버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거지나 다름없었던 생활, 그러니까 아주 까마득한 오래전의 삶에 대한 악몽 때문에 아직도 한밤중에 잠을 깨곤 한다. 비명 소리 끝에 입을 벌린 채 깨어난 어머니는 심야의 어둠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머니의 기억 속 깜깜한 절벽보다는 몇 백 배 더 밝으니까. (p20)


동굴 안에서는 사람들이 동굴 벽면을 매만졌다.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입맞춤을 했다. 병든 할머니의 사진을, 또는 보육기 안에 든 미숙아의 사진을 벽면에 대고 비비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어머니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다. 넘실대는 바다, 비애의 파도, 여행지갑에서 보호자 통행증을 끄집어내서 동굴의 회색 바위에 대고 눌렀다. 아주 가냘픈 소리로 기도문을 읊고 성가를 불렀다. 다락의 기도방에서 하는 식으로.그때 형이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궁금하기도 하고 자기도 벽면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주위에서 갑자기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늘어선 줄을 타고 탄성이 넘쳤다. 어떤 일본인 부인은 그만 기절을 해버렸다. 후끈하고 열이 오른 어머니가 형에게 어서 가 앉으라고 손짓발짓을 했다. 힌디어로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어머니는 성스러운 동굴에서 밀고 나왔다. (p96)


에른스트 환 데르 크봐스트의 소설 <마마 탄두리>의 주인공은 마마 탄두리이다.네덜란드인 크봐스트 가문의 의사 남편과 결혼한 인도인 마마 탄두리는 세 아들을 둔 엄마였다. 첫째 아들 아쉬르바트와 둘째 요한 그리고 막내 에른스트 클로흐 아랜트 환 데르 크봐스트까지 세 식구를 거느리면서 남편이 의사로 일하는 동안 집안 일은 온전히 엄마인 마마 탄두리 몫이었다. 


소설 속에서 마마 탄두리는 억척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밀방망이를 끼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밀방망이를 무기로 삼아 버린다. 언제 어디서나 밀방망이를 던질 기세이다, 그것은 탄두리가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며, 그 원인은 첫째인 아쉬르바트 때문이다. 지적 장애를 간직하고 태어난 아쉬르바트는 20년 동안 엄마 품에서 성장해왔으며, 지적 수준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마마 탄두리의 삶의 굴레였으며, 또다른 주홍글씨였다. 마마 탄두리의 눈에 애틋한 첫째인 아쉬르바트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아쉬르바트를 정상인으로 바라봐주길 원하는 엄마의 깊은 비애가 아닐까 싶다. 다락방에서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간절하면 소원 하나를 빌어준다는 동굴에 가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결정적일 때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첫째 형으로 인하여 상황은 뒤바뀌게 된다.


소설 은 세째인 에른스트의 시점에서 마마 탄두리의 삶을 관찰하고 있으며, 전체 스토리를 구성해 나가고 있다. 매 순간 발작을 하고 있으며,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소리 지르는게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불안한 현실, 위기의 한 가정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두운 그림자가 보여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마마 탄두리는 여전히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소설<마마 탄두리>는 우리 사회에 작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다. 우리의 관점으로 보자면 조현병에 가까운 지적 장애를 가진 형 아쉬르바트에게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원하는 마마 탄두리의 작은 소원, 내 아이가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고 싶은 희생과 비애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그것은 딸로 태어나길 바랬던 막내 에른스트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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