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3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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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툴루스의 오만과 악의는 절대 잊지 않으리라. 하지만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사람을 증오할 때에도 인내심을 발휘할 줄 알았다. 때가 되면 카툴루스의 차례가 올 터였다. 카이사르는 그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p17)


"나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요!" 인질이 거만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나는 파트리키 귀족인데다, 율리우스 집안 출신이오. 율리우스 집안 출신이란 게 무슨 묻겠지, 안 그렇소? 그건 내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을 통해 그 여신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뜻이오. 나는 집정관을 배출한 가문 출신이며, 나 역시 때가 되면 집정관을 지낼 거요.나는 그저 평범한 원로원 의원이 아니라고! 시민권을 수여받았고..원로원에서 발언권도 있고..원로원의 가운뎃줄에 앉고..내가 원로원 의사당에 들어가면 모든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준단 말이지. 심지어 전직 집정관과 감찰관까지도! 그런데 고작 은화 20탈렌툼? 내 몸값은 은화 50탈렌툼이오!"(p78)


"술라의 법에 따르면 법무관이나 집정관이 되기 전에 반드시 재무관을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재무관이 되기 전에 열 번의 전투를 마칠 생각입니다."(p142)


대신관이 된다는 것은 로마의 정계에서 가장 독점적인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조점관도 거의 대등한 지위였고, 귀한 대신관 직을 다른 가문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일부 가문에서는 조점관 직도 귀히 여기며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조점관보다는 대신관이 늘 조금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대신관단의 일원이 되었을 때 자신의 최종 목표, 다시 말해 집정관 직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p202)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폼페이우스가 가진 자기 회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네. 원로원이 그에게 집정관 자리를 허락할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면, 그는 행동에 나서기 전에 날 찾아 오지도 않았을 걸세. 그에게 있어 나는 원로원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네.카이사르, 그가 휘어잡아야 하는 대상은 원로원이야. 나는 그의 도구일 뿐이고, 그러니 내가 충격을 받든 말든 뭔 상관이겠나? 그는 내 불알을 잡아버렸어. 이제 내 병사들에게 땅을 마련해주려면 원로원에 내 입장을 밝혀야만 하네. 나와 내 병사들에게 폼페이우스와 맞서는 일을 맡길 수는 없을 거라고 말이지."크라수스는 군화를 신은 두 발의 위치를 마꿨다. (p290)


응접실을 확인한 카이사르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본인의 선택을 단번에 후회했다. 그의 어머니, 아내, 유유누나, 율리아 고모, 폼페이우스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 한 여성은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육촌누이 율리아였다. 그녀는 해적 소탕 임무를 맡았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혼인한 사이라서 '율리아 안토니아'라고 불렸다. 모든 사람의 관심은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의자 끄트머리에 안자 다리를 쭉 뻗고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p312)


폼페이우스의 의도는 모든 로마인들에게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에게 안 좋은 시절이 이제 끝났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축제와 휴가를 즐기도록 해 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p370)


고모는 열여덟 살 나이에 여기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고, 또 일부는 살아 생전의 모습까지 기억하고 계시는 그분과 혼인하셨습니다. 고모의 혼인 상대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였습니다. 그는 유례없이 일곱 번이나 집정관을 역임했고 로마 제 3의 건국자라 불렸습니다. 누미디아의 유구스타 왕을 물리쳤고, 게르만족을 정복했으며, 이탈리아 전쟁 초반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논란의 여지 없이 위대한 인물이 권력의 정점에서 목숨을 잃을 때까지 ,율리아 고모는 그의 충실하고 믿음직한 아내로 남아있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외아들 가이우스 마르쿠스 2세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물 여섯 살 나이로 로마의 수석 집정관 자리에 올랐습니다. (p412)


포르투나의 선택은 로마의 일인자 폼페이우스에게 있었다. 권력을 쥐고 있었고,로마의 외침에서 스스로 방비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폼페이우스는 재력도 가지게 된다. 포르투나의 선택은 폼페이우스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의 원칙과 법률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고, 기존의 집정관이 되는 순서와 원칙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원로원이라는 로마의 주축을 이룬 조직들을 자신이 묶어 놓을 수 있고, 자신이 원로원 출신이 아닌 최초의 수석 집정관이 되고자 하였으며,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를 가로막을 장벽이 폼페이우스의 전성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비교하자면 애송이나 다름 없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 열 여덟이며, 권력의 전면에 나서기엔 리스크가 있었으며,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 위한 성장 단계였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뒷 배경은 폼페이우스에 못지 않았고, 카이사르가 분명한 목적와 원칙에 따라서 집정관이 될 수 있는 발판은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질 수 있다. 가이우스 마르쿠스는 카이사르의 고모부였고, 그의 율리우스 집안도 로마에서 무시못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건 그가 열 여덟되는 해 율리우스의 여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


로마의 일인자가 될 카이사르는 어쩌면 허풍쟁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모했다. 해적에게 붙잡혔지만, 스스로 몸값을 올려서 살아남을 궁리를 하게 된다. 자신의 몸값을 20 탈렌툼에서 50 탈렌툼으로 올리고, 그는 해적 대장 폴리고노스에게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로도스 섬 남자 500명을 모아서 해적 대장 폴리고노스에게 대항하였으며, 해적 소굴 잔당들을 싹쓸이 하게 된다.해적 들 중에서 남자들은 십자가형을 지웠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의 이러한 사람을 모으게 만드는 힘은 어리지만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에는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카이사르 주변에는 여자들이 많았다.어머니 아우렐리아,아이우스 마르쿠스의 아내 율리아 고모, 카툴루스의 아내 호르텐시아, 호르텐시우스의 아내 루타티아, 나중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내연녀가 될 실라누스의 아내 세르빌리아, 리키니아, 마르키아,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 유니아, 유닐라 등등, 그가 가지고 있는 인물로서의 매력적인 조건이나 지적인 능력은 주변 여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카이사르가 보여준 모습들과 미담들은 여성들에게 유희꺼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해적에게 구출된 사건들은 또다른 이가 모방할 구실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이제 <포르투나의 선택 >시리즈가 끝나고 <카이사르의 여자들> 시리즈로 넘어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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