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소재로 한 북한 소설이라고 흔히 소개되지만,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묻어 있다. 북한 사회의 연애, 직장생활, 노동과 예술, 세대 등 다양한 면모를 짧은 소설 안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 판사의 사상은 인격적으로 너르면서도 날카롭고 진보적인데, 법조계의 한심한 작태가 청산되지 않은 적폐로 이야기되는 요즘 읽다보니 더 비교가 되기도 했다. 또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도 꽤 깨어 있다고 할 만한 이 소설이 쓰인 1980년대, 한국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점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시대의 여전한 고전 고 신영복 선생님의 책 30주년 양장 특별판. 대학 시절 처음 접했지만, 십여 년이 지난 오늘 나의 삶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색 속 행간과 여백에서 깊은 불꽃을 읽어내는 것이 현재적 의미의 서삼독이 아닐까 생각된다. 처음 신영복 선생님을 접하는 독자라면 보다 쉽게 쓰인 출옥 후 여행 산문 <나무야 나무야>나 감옥 생활을 더 직접 드러내 보여주신 <담론>(12장부터 19장이 감옥 이야기)을 먼저 읽고 보면 더 많은 것을 깊게 배울 수 있을 듯싶다.
한국 문학사 최고의 반미 소설 <분지>의 작가 남정현 선생의 산문집. 20년 전 글 4편과 13년 전 글 1편, 머리말로 구성된 얇은 책이지만 저자 특유의 독특하고 발랄한 문체로 쓰인 민족 자주 의식이 충만한 재밌는 글들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이런 작가를 야만적인 폭력과 고문으로 억압한 박정희 군부 독재가 미워진다. 산문집을 봤다면, 요즘의 한반도 정세에 꼭맞는 작가의 단편 <편지 한 통>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연초 비트코인/블록체인 관련 토론에서 나는 유시민보다 정재승의 말이 더 좋다고(굳이 둘 중 고르자면) 봤는데, 책을 보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탐구하는 인간과 사회에서는 현재의 자본주의와 세계 체제를 지켜져야 하거나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기존 질서 속에서 크게 성공했고 그에 반감도 별로 없는 사람인데 묘하게 도전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2부가 더 재미있었다. 알아 두면 쓸데가 종종 있는 이야기들이고, 읽고 나서 집단으로서의 인간에 더 긍정적인 마음이 생겼다.
쟁쟁한 통일 지성들과의 대담집.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 전문가 답게 준비가 잘 되어 진행된 만큼, 각 인물의 특성에 맞게 귀 기울일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분량도 잘 조정하여 긴장감 있게 읽힌다. 단, 박명림 교수 인터뷰는 내용과 진행 모두 공감되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