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란 무엇인가 -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집단학살의 본질
오카 마리 지음, 김상운 옮김 / 두번째테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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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1세계 지식인이 3세계에 제대로 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책. 저자의 두 차례 긴급 강연을 묶어낸 책으로, 제국주의적 변태 사상인 시오니즘에 입각한 이스라엘의 행보를 뿌리에서부터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민족해방투쟁을 긍정하는 관점에서 ‘불타는 얼음’ 같은 이야기를 토해냈다. 특히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하마스를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 세력들)을 인정하고, 이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을 바탕으로 ‘세계’(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심적이다. 또한 일본인으로써, 팔레스타인에 대한 입장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1900년대 초중반 일제의 국가범죄를 시인하고 이 문제 역시 해결하기 위한 자기 사회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도 훌륭하다.
시민의 ‘실천적‘ 교양 차원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기 위한 이들에게 ‘무기’가 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출판사가 <두번째테제>라는 자신의 이름에 어울리는 양서들을 요즘 많이 펴내는 것 같다. 가자 지도에 지금의 폭격 참상과 집단학살 지역을 표시한 표지, 본문 중간중간 적절하게 위치한 사진 자료를 보면 출판사가 들인 사회과학적 편집 성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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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비야디 - 테슬라의 왕관을 위협하는 자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106
고성호 지음 / 스리체어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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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비야디BYD가 아는 사람만 아는 회사이던 시절은 확실히 지난 듯하다. 중국의 전기자동차 제조업체로 2022년부터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승용차(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포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라는 비야디. 올해 4분기에 한국에서 첫 브랜드가 론칭한다는 이야기도 들려 온다.
_ 이 책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중국 주재원 10년차인 저자 고성호가 쓴 책이다. 책이라기에는 소략하고 언론보도라기에는 숨가쁜 호흡의 글을 담아 펴내는 스리체어스의 ‘북저널리즘’ 시리즈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용으로는 <오토OOO>이나 <이코노미OOO> 같은 잡지의 잘 쓴 기획기사 연재물을 모아 출간한 책 같다. 여기에 경제경영 도서 특유의 ‘삼국지’ 같은 느낌이 있다.
_ 저자의 일터인 선전深圳시에서부터 글을 풀어낸다. 이른바 중국 특색 초급 사회주의의 ‘실험적인 개방 도시’인 이곳은 IT, 하이테크제조업, 금융업 등의 산실이자 도시 평균 연령 33세의 젊고 역동적인 경제 공간이다. 중국에서 이곳을 표현하며 요즘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선전 블루”인데, 그만큼 중국 도시 중 압도적으로 공기의 질이 깨끗하다는 말이다(초미세먼지 기준 서울보다 깨끗하다). 거기에는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집중하는 사업, ‘전기차’가 있고 여기에 가장 앞장서 있는 기업이 바로 비야디다(물론 비야디 본사도 선전에 있다).
_ 비야디는 1990년대 배터리 산업 진출을 통해 성장했다. 이때의 창업자 왕촨푸가 현재까지도 수장인데, 그는 ‘중국적 특성’에 주목해 서방식 ‘최첨단 설비 및 기계화’가 아니라 ‘반자동 개인 제조 설비’ 확충과 ‘인적 교육 및 훈련’을 통해 중국 및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파고 속에서 일본 배터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되자, 비야디는 그 자리를 채우게 되고 2000년대 초반에는 양질 측면에서 세계 유수의 배터리 기업으로 인정받는다(비야디의 주력 배터리는 리튬인산철LFP 방식이다).
_ 비야디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색다른 선택을 하는데(폭스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당시에는 완전히 신산업이었던 자동차, 그중에서도 전기차 분야로 진출한 것이다. 자신들의 ‘배터리’ 기술을 염두에 두고, 일단 이른바 “철면피 작전”으로 카피캣을 통해 첫 자동차 양산에 들어간다(도요타 자동차를 의도적으로 베꼈다). 가성비와 ‘애국심’에 대한 호소가 성공해 시장에 안착한 후(2005년), 바로 전기차 분야로 진출해 첫 전기차를 내놓는다(2008년). 이후 8년여는 ‘인고’의 시간인데, 이때 초기 워런 버핏이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겪지 않는다(이때 워런 버핏에게 비야디를 추천한 것으로 유명한 히말라야캐피털 회장 리루의 투자 철학 책이 9월에 출간되기도 했다. <문명, 현대화 그리고 가치투자와 중국>). 이후 2016년부터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_ VS 테슬라: 비야디와 테슬라의 차이는 어쩌면 ‘중국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사고방식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비야디는 중저가 차량 생산으로 시작하여 점차 상층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으며 다품종 중량 생산에 매진하는 반면, 테슬라는 최고급 차량 생산으로 시작하여 이를 확산하거나 더욱 고급화하는 방식으로 소품종 대량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생산에 있어서 ‘반자동 설비’를 통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도모하고 회사 또는 국가 체계 내에 자립적 제품 제조 및 공급 시스템을 구축한 비야디와 오토 팩토리를 통해 완전한 기계화와 AI 자동 설비를 추구하고 여러 해외 외주 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테슬라의 차이는, 두 회사 그리고 두 체제에 대한 평가를 떠나, 아주 분명하다.
_ 비야디의 강점: 저자는 매우 간명하게 4가지로 비야디의 강점을 짚고 있다. 핵심 부품의 제조 능력과 공급망 관리가 기업 또는 국가 차원에서 자립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배터리, 반도체, 파워트레인), 다양한 라인업(제조 플랫폼의 유연성), 해외 진출 가능성(아직 매출 대부분이 중국 내에서 발생), 중국 정부와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바로 그것이다. 아직 초고급 차량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고급에는 근접했다. 배터리 안전성, 충전성에 관해서는 (전기차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 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가격 경쟁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_ 중국 내에서 ‘왕조’ 계열 라인업으로(진, 한, 당, 송 등) 사랑받고, 해외에서 ‘해양’ 계열 라인업으로(하이바오海豹, 하이어우海鷗, 하이툰海豚 등) 어필하려는 비야디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확실한 건 이것이 단순히 한 기업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까지도 포함한 중국의 국가 정책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 관한 이야기이고, 글로벌사우스의 생활환경 개선과 환경오염의 관계 함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결코 비야디와 현대차의 경쟁 결과나, ‘신냉전적’ 중국 경제 이해 같은 흔한 틀에 갇혀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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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키드 - 관타나모 수용소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 실화 오디세이
제롬 투비아나 지음, 알렉상드르 프랑 그림, 이나현 옮김 / 돌베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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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도전한 용감무쌍한 이의 삶에는 울림이 있다. 흑백 그래픽노블은 묵직한 내용에 잘 어울린다. 미국의 국가 테러 실상을 상세히 고발한 사회물이자 한 인간의 투쟁적 삶과 상처와 희망이 교차하는 내면을 담아낸 자서전으로 수작이다. 엘-고라니는 강하고 존엄한 인간이다. 그에게 축복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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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음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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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업과 산업도시, 한국 노동자 중산층의 실현 가능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 양승훈의 책. 자연스레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오월의봄)을 떠올리게 한다. <중공업 가족…>이 거제 조선소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제조업과 노동계급의 형성과 위기의 한 전형을 사회학‧인류학적 르포르타주 형식을 배합해 그려냈다면, <울산 디스토피아…>는 더욱 학술 보고서적인 접근을 통해 울산을 중심으로 산업도시, 노동계급의 한 전형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미래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기획이다.
- 생산성 동맹: 저자는 기본적으로 ‘코포라티즘’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책에서는 ‘생산성 동맹’이라고 자주 표현된다. 자본, 노동, 국가의 산업 발전을 위한 동맹을 뜻한다. ‘코포라티즘’의 장점은 계급투쟁의 시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산업자본주의 국가의 세부적이고 정책적인 발전 동학을 파악하는 동시에 노동대중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 관점을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 단점은 (보기에 따라) 자본의 이익을 ‘너무 존중’하는 관점을 견지(또는 자본주의 산업 국가의 발전을 사회의 ‘유일한 대안’으로 확정하고 있다는 점)한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생산성 동맹’ 성립을 충실하게 지향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어찌 되었든 ‘생산’과 ‘제조업’에 천착하는 이 저자의 저술에는 항상 큰 관심이 간다.
- “한국에서 평범한 노동자 가족 3대를 꿈꿀 수 있을까?”, “노동자가 성실히 일해서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꿈”, “시험 경쟁을 통과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집을 사고 살림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며 제 나름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며 중산층이 될 수 있다”(10장). 저자는 한국에서 1960년대 후반에 시작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200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현실에 근접했던 곳의 대표 도시로 ‘울산’을 지목한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이라는 한국의 수출형 제조산업 핵심들이 모여 조성된 이 도시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쇠락하는 현재의 상황은, 울산이라는 한 도시의 쇠락이 아닌 한국형 모델의 붕괴를 뜻한다는 것. 그러한 측면에서 ‘울산 디스토피아’는 곧 ‘한국 산업도시’의 자멸 과정을 뜻한다. 한국형 모델의 여러 한계지점들(특히 “산업 가부장제”적 양상)을 고려하더라도, 어쨌든 제조업이라는 실물을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고 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이 그 기여도를 인정받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경험 모델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 구상과 실행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산업도시에서 말단 생산기지로 변모하는 울산의 현재에는 노, 사, 정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자본은 사회적 의의와 지속 가능성을 무시한 채 구상 기능의 분리와 노동의 생산 비중 저하(자본을 위한 기계화)에 매진하고, 노동계급은 생산성 향상과 발전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기보다는 일부(노조가 확보된 대기업 원청 소속)의 ‘안정성’만을 추구했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장기적 발전 계획에 대해 숙고하지 않거나 각 지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양질의 일자리’는 소멸하고 있으며, N차 밴더와 사내하청의 이익은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생산과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새 정규직 일자리는 희소하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많지만 청년과 여성은 대학 또는 취업을 계기로 지역을 떠나고, 이주노동자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만 고민되는 현 상황은 심각한 위기다. 울산의 인구는 줄고 있으며, 거주 인구 100만 명이라는 이른바 광역시 유지 기준을 6년쯤 후에는 충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노사정이 함께하는 경남권의 제조업 중심 메가시티를 주장한다. 서울-경기로 대표되는 (실행과 분리된) 구상, (실물과 유리된) 금융, (지역 전반을 하청화하는) 원청 ‘메가시티’의 대안으로 경남 권역(부울경+)을 묶어 내자는 주장인데, 맥락에 일부 수긍되면서도 일종의 ‘지역주의’ 느낌으로도 읽히긴 했다. 산업도시의 위기 극복이 지역의 문제를 넘어선 국가 전체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서울과 울산의 관계뿐만 아니라, 울산이 광주, 강원, 제주 등 ‘전국’과 맺는 관계도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자립적 경제 구조 형성과 이 과정에서의 수많은 사회적 노동의 호혜적 창출이 이 점에 있어서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소멸하는 대한민국’의 대안 출발점이 제조업인 것은 적절하지만, 그것이 소수 수출 산업에만 얽매일 수는 없고, 노동은 더욱 그렇게만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저자가 지향하는 ‘전 노동자의 중산층화’와 ‘산업 가부장제 극복’이라는 “꿈”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분야 연구자들이 실현 방안을 찾아내야 할 중요한 목표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희소하고 중요한 문제의식을 지닌 저자의 차기 연구 과제와 저술 방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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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문명기행 - 오아시스로 편
정수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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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배출한 또 하나의 국제 여행가, 세계인, 문명교류학 대가 정수일의 2000년대 초반 도서.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이전 도서와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실크로드 육로(북로)를 민족적이면서도 국제적인 시야로, 역사적이면서도 현재적인 관점에서 여행했다. 서방 중심의 세계인식이 과도하게 퍼진 한국 사회의 상황에 젖어 있다가, 이러한 세계 곳곳의 이야기들(특히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일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을 접하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역사, 광활한 자연, 그 속에서 열정적으로 생애를 던졌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 그리고 현재를 묵묵히 강인하게 살아가는 세계의 대중들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유와 통찰을 깊게 전해준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의 여행기가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사진 자료들의 가치 역시 매우 높다.
목차만 보면 방문한 국가들을 일별하기 어려운데, 중국(1~15)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16~19)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20~32) 이란(33~41) 시리아(42~45) 튀르키예(46~52)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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