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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서재 - 독재자의 책읽기와 혁명 ㅣ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6
제프리 로버츠 지음, 김남섭 옮김 / 너머북스 / 2024년 3월
평점 :
- 스탈린을 히틀러와 견줘 이야기하는 것이 상식인 듯한 요즘이지만, 사실 ‘스탈린=히틀러’라는 공식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에 의해 발명된(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냉전의 논리다(<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이는 소련 해체 이후 30년 동안 미국 일극 패권과 함께 ‘신화’가 되었지만, 패권의 흥망성쇠와 함께 얼마든지 가변적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논리라는 의미를 유추케 한다. 2010년대 이후 러시아에서 역사적 인물로서의 스탈린의 인기가 급격히 상승(회복)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 <스탈린의 서재>는 문제적 인물 ‘스탈린’에 대한 ‘사상’ 약전(略傳)이다. 종합적으로 저자(아일랜드 코크대학 역사학 명예교수 제프리 로버츠)의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일종의 공칠과삼(“매우 큰 업적을 성취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악행을 저지름으로써…”)이다. “스탈린을 권력만큼이나 사상을 중히 여기고 독학을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은 헌신적인 이상주의자이자 행동주의적 지식인으로,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혁명을 위해 글을 읽은 쉼 없는 정신의 소유자로 간주한다.”
- 저자가 스탈린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책’을 제시한 이유는, 그는 “사상이 정서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야말로 진리고 미래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적들의 사상을 가장 혐오”했던 신념 체계의 활력은, 그 무엇보다도 책으로부터 비롯했다는 것이다. 최소 2만 권의 개인 장서를 소유했던 스탈린은 무수한 정치 활동과 업무들(책 이외의 무수한 인쇄물을 읽고 쓰는 것을 포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이를 통해 그는 “단순화된 주장의 대가”가 되었고 “사상가의 비판적 이성과 인간 행동의 비약, 즉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양자택일”을 조화하는 능력으로 당대의 수많은 이들을 매혹하고 “압도”했다. 이를 통해 사상 최초로 출현한 사회주의국가가 제국주의, 자본주의, 군국주의 국가 들과의 대결 속에서도 온전하게 성립하여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현실에서 입증하려고 했다. “스탈린은 지식인이기보다는 볼셰비키였고,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맹렬하게 추구하지 않도록 누그러뜨려 줄 회의적인 태도가 없었다.” “신념에 대한 정서적 애착의 힘”은 원동력이었고, 그 바탕에 책이 있었다(1장).
- 포멧키: 스탈린이 근거했던 최고의 책들은 레닌의 저작,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였다(인명별 1~3순위). 그와 함께 그는 정적들의 논리 역시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동시에 필요한 것들은 거침없이 가져다 자신의 논리에 혼합했다(4~9순위). 레닌의 수제자를 자처했던 그는 중요 회의 와중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며 레닌 전집을 살펴봤다. 그는 장서에 무수히 많은 포멧키(메모)를 남겼다. 밑줄, 느낌표, NB(주의), m-da(정말?), HA-HA(야유) 등의 다양하고 짧고 ‘실무적으로 유용한’ 반응들을 적어놓았다. 이는 대개 정보를 담고 매우 짜임새 있게 잘 통제되었고, 3가지 이상의 색을 이용하여 표시되었다(4, 5장).
- 혁명, 사상, 방어: 레닌 저작을 제외하고, 스탈린이 가장 관심을 두고 독서에 파고들었던 분야들은 (주제별 분류 순서와는 별개로) 외교, 과학, 언어, 군사, 문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였다. ⓵ 신생 국가가 근거할 전통 및 뿌리의 확보 ⓶ 당면 과제의 해결을 위한 논리 및 지식 확보를 위한 것으로, 특히 소련의 역사를 러시아 제국(차르)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 연방 내 타민족의 역사와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해 씨름했다. 소련 정체성이 명확하다면, 그 안에서의 자율성은 인정하고 권장하는 것이 일단의 방향이었는데(“민족들의 우애”), 이것을 요약한 것이 ‘소비에트 애국주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스탈린의 접근 역시 의외로 비슷했다. 어쨌든 문학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지만, 스탈린은 “문학은 인간 영혼의 기사”라는 자신의 표현을 좋아하진 않았다(5, 6장).
- 사회주의 편집장: 일기와 회고록을 쓰지 않았지만, 스탈린은 수많은 연설문과 문건과 논설과 팸플릿과 책 들을 편집하고 ‘썼다’. 그는 “소련의 편집장”이었다. 그는 “만인”을 독자로 상정한 자신의 편집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단기강좌 소련공산당사>, <외교사>, <약전>, <역사의 날조자들>, <정치경제학 교과서> 출간은 당대 소련과 이후 사회주의국가들에 큰 영향을 끼친 거대한 출판 프로젝트였다. 스탈린은 “삭제”와 ‘추가’라는 무기로 덜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도, 더욱 쉽게 다가가 지식을 전하고, 마음에 호소하기를 원했다. 그의 포멧키는 결정적으로 유용했다. ‘스탈린은 진심으로 말과 글의 힘을 믿었다’(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