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평등의 대가 -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평점 :
불평등 심화, 자본주의 파국 부른다
2011년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 인파가 거리를 점거하며 자신이 몸담은 억압적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몸으로 저항했다. 아프리카 북부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뭔가가 잘못됐다’는 막연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이 시위는 확산되어 결국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는 정부가 전복되었고, 예맨, 바레인, 시리아에서는 온 나라가 장기간의 시위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미국 콜럼비아 대학 교수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시위대의 생각은 ‘옳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세계화의 실패’를 보여준 대표적인 결과라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시스템과 정치시스템이 마땅히 이루어야 할 성과와 현실적인 성과 사이의 간극이 크게 벌어져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세계 각지의 정부들이 지속적인 실업 등의 중요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정성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소수의 탐욕을 위해 짓밟히는 것을 목격하면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이윽고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불평등의 대가> 역시 지금처럼 소수의 부자와 엘리트 계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나라가 되어 불평등이 심화된다면 미국도 머지않아 2011년의 불행한 나라들에 속하게 될 거라는 경고로 가득하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 ‘지금 하위 99% 소득층은 상위 1%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과 ‘1%에게 이로운 것 역시 사실은 전혀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자한 불평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의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한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물이다. 이 불평등은 결국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켜 결국 오늘날의 힘없는 99%의 약자들은 이러한 불평등의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불평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실물경제 체제와 ‘파생상품 시장의 발전’이라는 금융산업 체제의 출발에 있다고 보았다. 시장은 엄청난 힘을 가진 반면, 도덕성은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힘만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시장 경제는 시장 분배기능의 왜곡, 시장 불균형 악화, 양극화와 사회계층간 갈등 심화라는 도덕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어떠한 경제학적 이론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낳았다.
요즘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부유층과 지도층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다 덜미가 잡히는 뉴스가 대부분이다.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고 아직 1672억 원이나 더 내야 하는 전두환 전(前)대통령은 십수년 동안 예금통장에 29만원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버티다가 최근 법이 개정되고 3남1녀 자녀에게 최소한 수백억 원대 재산이 있어 이를 추징하려하자 ‘나는 원래 부자였다’며 생떼를 쓰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17조 9253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887억 원밖에 내지 않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호주머니를 털며 빈털터리라고 우기지만 아들은 베트남에서 600억 원대 고급 골프장을 인수했다고 한다.
국가로부터 추징금을 맞았다는 의미는 국가와 국민에게 큰 죄와 빚을 졌다는 뜻일진대 그들에게 부끄러움, 즉 염치(廉恥)는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빼돌렸는지 여부는 수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자식들 역시 아버지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역시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우리 판단으로는 불효자지만 그들은 부모의 말 잘 듣는 효자 일게다, 틀림없이). 한편 SK, 한화, CJ, 태광산업 등 재벌 그룹 총수들의 횡령, 배임, 탈세 소식이 거의 매일 쏟아지고 있다.
그들의 작태를 지켜보노라면 과연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사람들이 정말 맞나 의심스럽고 그들을 믿은 내가 슬퍼진다. 더욱 서글픈 것은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욕하며 ‘너희 물건 절대 않사겠어’ 다짐하면서도 대체물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어 사고 있는 내 모습이다. 이럴 땐 정말 내가 싫고 자본주의가 싫어진다.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얼마 전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자본주의 국가들은 민주사회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제)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명히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도 경쟁에서 뒤처지고 배제된 자들의 시위와 집회가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하에서 생겨난 새로운 종류의 차별, 배제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자본주의는 파국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는 어렴풋하나마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불평등한 오늘날의 현실은 미래에는 불평등의 수준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긴 하지만 ‘심각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대안으로 크게 경제개혁과 정치개혁, 그리고 중하위층에 대한 지원 강화를 들었는데, 경제개혁만을 살펴보자. 우선 경제개혁은 크게 상위계층의 탐욕에 대한 억제책과 조세개혁으로 나누었는데, 상위 계층의 탐욕에 대한 억제책은 첫째, 은행들의 경영 투명성과, 약탈적인 대출과 신용카드 관행을 필두로 한 금융 부문의 규제다. 두 번째는 기업들의 독점금지법 강화와 집행의 효율성 강화, 세 번째는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이다. 최고 경영자들의 권력을 제한해서 기업 자원의 상당 부분이 그들의 개인적 수익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네 번째는 파생 상품의 취급에서 깡통 주택 및 학자금 대출에 이르는 파산법의 총체적인 개혁이고, 다섯 번째는 공공 자산의 배분 및 정부조달사업 관리강화를 통한 정부의 무산공여를 중단이다. 여섯 번째는 기업 지원금의 폐지, 마지막으로 사법 접근법을 민주화하고 군비 경쟁을 줄이는 사법 개혁을 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일곱 가지 개혁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와 형평성 개선이라는 이중 효과를 얻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한편 조세개혁에 있어서는 조세회피 통로의 차단과 소득세 및 법인세 분야의 누진성을 강화를 역설했다. 투기업자들에게 근로소득세보다 높은 세율의 조세를 강화하고, 상위 계층의 담세율을 하위 계층의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산세(상속세)제도의 효율성 강화와 집행의 효율성을 확보하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우리 경제에 별다른 역효과를 미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시행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말미에 저자는 “이런 정책들이 채택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물으며 기운을 뺀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다수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는 ‘경제민주화’가 대선공약으로 그친 것도 높디높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때문이 아니던가.
미국경제의 어제와 오늘을 통사적으로 살펴본 이 책을 마치 우리 이야기인양 실감하면서 읽는 방법이 있다. 바로 미국이라는 단어 대신 한국을 넣으면 된다. 미국 자리에 한국이란 단어를 넣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오늘날의 미국과 한국 사회의 현실이 닮아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IMF 외환위기 때 외환원조의 조건은 ‘모든 경제 시스템을 선진국 미국처럼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꾸느라 10여년을 개고생을 했더니 이젠 그 선진국 경제 시스템이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싶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발간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500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