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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투 원 - 스탠퍼드 대학교 스타트업 최고 명강의
피터 틸 & 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이지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스타트업, 창조적독점만이 왕도다
나는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매년 초여름 발표하는 ‘CEO가 휴가 때 읽을 책’이 영 탐탁치 않다. 스스로 비즈니스북 칼럼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내가, 일 년 중 경제경영, 자기계발서가 유일하게 반짝 팔리게 만드는 이 반가운 기획에 불만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왜 CEO가 읽을 책만 추천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불만이다. 'SERI 추천도서’가 CEO의 관점에서 조직경영과 미래, 자기계발 등을 위해 경제경영·인문교양 분야의 도서를 선정하고 있다면, ’직장인의 관점‘에서 필요한 책들을 추천하는 기획 역시 필요하다.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수많은 신간 중에서 올해 안에는 꼭 읽을만한 책들을 신뢰할만한 사람들이 추천해 준다면 좋은 책들이 ’아까운 책‘으로 남지 않고 더 많은 독자를 오랫동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출판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책은 단연 ‘미생’이다. 만화 미생은 어느 케이블 채널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원작이 주목되는 이른바 ‘미디어셀러’가 되면서 지금까지 200만부(올해 100만부를 넘은 책은 미생뿐이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재작년에 진즉 나왔던 책, 꽤 많은 화제를 낳은 책이지만 그 해 ‘CEO 추천도서’에 들지 못했다. 만약 ‘미생‘이 드라마로 제작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사랑을 받기는 불가능했다. 지난 해 자기계발서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자기계발 분야에서 큰 화제를 낳아 인문서로는 드물게 단기간에 수만 부가 팔린 이원석의 <거대한 사기극> 역시 올해 CEO 추천도서에서 누락되었다. CEO들이 반길만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 하반기 국내에 출간되어 현대자본주의의 폐해와 계층간 불평등문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부자들에게 글로벌 부유세를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한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과 한국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밝힌 장하성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등이 내년 CEO 추천도서에 선정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직장인 추천도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개하는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 역시 ‘직장인 추천도서‘가 생긴다면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전자결제시스템회사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이 스탠퍼드대에서 펼친 스타트업 강의를 엮은 것으로 세계의 기업 창업자와 최고경영자(CEO)들이 격찬한 바 있고, 아마존은 ‘2014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그 누구도 컴퓨터 운영체제를 만들어 제2의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될 순 없다. 검색엔진을 만들어서 제2의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창업자)이 될 수도 없으며 또다시 소셜네트워크를 만들어 제2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가 될 수도 없다.”(8쪽)
‘스탠퍼드대 스타트업 최고 명강의’라는 부제의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단 하나, 0(無, ZERO)에서 1(有, onE)이 되려면 무엇인가 창조되어야 하는데, 그 무엇(ONE)은 유니크(unique) 즉,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좋은 예다. 삼성전자의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애플의 배를 넘는다. 2014년 3분기 삼성전자는 90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한 반면, 애플은 3900만대에 그쳤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제조·판매 규모만 커질 뿐, 수익성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과 삼성 모두 스마트폰 평균판매단가(ASP)가 지난해 이후 줄곧 하락해온 것은 같지만, 갤럭시 스마트폰을 2대 이상 팔아야 아이폰 1대 매출이 나올 만큼 차이가 난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애플이 지난해에 이어 현재까지 매 분기마다 20%대 후반에서 30% 대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20% 대로 올라섰다가 올 3분기 8%(추정치) 대로 하락했다. 이유는 뭘까?
애플의 아이폰은 제로 투 원의 전형적이 사례다. 스크린 터치 기술로 디지털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의 신기원을 이룩한 아이폰은 대만 폭스콘 등으로부터 전량 외주 생산하기 때문에 제조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또한 애플은 단말기 매출 외에도 아이튠즈 등 서비스 매출, 소프트웨어 매출 등이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한다. 반면 스마트폰 후발주자인 갤럭시폰은 스마트폰의 설계부터 부품 소싱, 생산까지 모두 수직 계열화한 구조여서 제조비 부담이 아이폰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어, 시장 공략 실패시 돌아오는 실적악화 폭이 더 크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보다 모방은 훨씬 더 쉽고 덜 위험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의 아류(亞流)는 익숙한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저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어려운 과제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지금 아무리 이익을 내고 있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문을 닫게 될 것이라 저자는 경고한다. 최근 아이폰 6와 6플러스 출시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이 기대되는 애플과 갤럭시폰의 계속된 실적 악화로 고전중인 삼성전자의 현실은 저자인 피터 틸의 경고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이 특히 주목되는 점은 단순한 창업 지침서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로서 기업 경영과 경제학 원리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기본개념인 ‘완전경쟁’과 ‘독점’에 대한 설명은 특히 인상적인데, 저자는 ‘독점은 시장경제에 해롭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제학 원론에서 ‘완전경쟁’은 생산자의 공급이 소비자의 수요와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점으로 이상적이면서도 기본적인 상태로 간주하지만, 현실은 엇비슷한 회사들이 시장에 맣이 진입하면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하락해 애초에 그들이 이끌렸던 수익이 없어지게 되어 손해를 입어 사업을 접거나 장기적으로 탁월한 경제적 수익을 내는 회사는 없게 된다.
그렇다면 완전경쟁의 반대는 뭘까? 독점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독점은 교활하게 경쟁사를 없애거나, 정부의 편애를 받아 독점인 경우는 제외한 다른 회사들은 비슷한 제품을 내놓지 못할 만큼 자기 분야에서 탁월해 경쟁자가 없는 ‘창조적 독점’을 의미한다. 독점기업은 혼자만의 시장을 가졌기 때문에 가격을 맘대로 조정할 수 있다. 경쟁이 없으므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생산량과 가격의 조합으로 제품생산이 가능하다. 구글은 독점의 대표적인 회사다. 구글은 2000년대 초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야후를 크게 따돌렸고, 이후 검색 분야에서 경쟁자가 없었다.
구글 같은 독점기업은 수익 창출 이외의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다. 즉 다른 기업과 경쟁할 걱정이 없기 때문에 직원, 제품,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더욱 신경 쓸 여유가 있다. 완전경쟁시장하의 경쟁기업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완전경쟁에서 기업은 오늘의 이익률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업이 매일 매일의 치열한 생존 투쟁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바로 독점이윤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편 중세시대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독점기업은 지대(地代) 수금원밖에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세상, 즉 언제든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을 발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구글을 뛰어넘는 또 다른 창조적 독점기업이 언제든 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창조적 독점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영원(永遠)은 없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다음과 같은 예리한 통찰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이와는 정반대다. “행복한 기업들은 다들 서로 다르다. 다들 독특한 문제를 해결해 독점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반면 실패한 기업들은 한결같다. 경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49쪽)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저자 피터 틸의 주장은 혁신적인 회사들을 창업했던 자의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창조적 독점’을 먼저 이해하는 일이 행복한 기업을 만드는 시작이다.
이 리뷰는 격주간으로 발행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82호)에 소개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