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EBS 다큐프라임
정지은.고희정 지음, EBS 자본주의 제작팀 엮음, EBS MEDIA / 가나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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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생존법을 담은 경제교과서

 

 

 

   몇 해 전 <대국굴기>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중국의 CCTV가 3년의 노력 끝에 제작한 12부작 프로그램으로 세계 100여 명 석학들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견해가 들어 있는 걸작이었다. <대국굴기>가 성공하자 CCTV는 중국의 발전 과정을 되짚어본 다큐멘터리 <부흥의 길>, 중국의 개혁개방 30주년 기념하여 ‘차이나드림의 10가지 표본’을 보여준 <중국이야기> 등을 제작했고, 지난 2010년에는 세계 역사 속에서 기업이 어떻게 진화해왔고 또 어떻게 세상을 바꿔왔는지 되짚어보는 10부작 다큐멘터리 <기업의 힘>을 제작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2012년 EBS를 통해 방영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큐멘터리의 왕국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가 아닌, 중국의 CCTV가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이고 수 년 동안 공을 들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까 하는 점이다. 당장 10부작으로 제작된 <기업의 힘>만 하더라도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위해 제작팀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인도 등 8개국을 돌며 귀중한 역사 자료들과 유적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유수 대학과 경영대학원, 연구기관을 취재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과 100명이 넘는 역사ㆍ경제ㆍ정치ㆍ사회 등 각 분야의 석학들을 만나 인터뷰 했을 것이다. 이 방대한 작업을 CCTV가 직접 한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교과서가 없어서였다.

 

 

   공산주의 죽의 장막 속에서 꽁꽁 숨어 살다가 하루아침에 미국에 이은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세상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중국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나선 것이다. 세계 선진국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그래서 발로 뛰며 <대국굴기>를 제작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자니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단어가 기업(企業)이었다. 그래서 <기업의 힘>을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제작한 콘텐츠는 다시 책으로 만들어졌고, 중국 전역에 전파되었다.

 

 

   대륙의 성공에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우리나라가 덕을 봤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딱히 국민을 위한 경제교과서 없었던 대한민국은 대륙의 다큐멘터리를 제작되는 대로 공유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 않은거지?”

 

 

 

EBS 다큐프라임의 <자본주의>는 그래서 태어난 작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재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크고 오래 갈 거라는 어두운 전망 속에서 문득 약 250년에 걸쳐 우리 사회를 지배했으며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과 자본주의를 꽃피운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주의 역사 그 자체인 영국과 미국의 석학들을 인터뷰하여 현재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5부작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지난 2012년 말부터 2013년 까지 방송관련 상은 거의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리고 예의 CCTV의 다큐멘터리처럼 동명의 제목으로 <자본주의>라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우리가 좋든 싫든 사회와 경제가 복잡해지면 금융 부문이 성장합니다. 단순한 사실이죠. 사회가 더 부유해질수록 보험, 모기지, 신용카드, 다양한 저축, 연금 등과 같은 상품에 대한 욕구가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부유해질수록 금융 부문이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0년 뒤에 지금보다 더 금융이 중요한 세상에 살게 되리란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10년 전보다 지금 금융이 훨씬 중요하듯이 말이죠.”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의 말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21세기 현대인에게 금융공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제이자 운명이다. 죽어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해도 늘리기는커녕 지키지 조차 못한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기존에 출간된 수십 권의 경제관련서의 엑기스를 합해 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 주제에 대해 유명저자이자 세계적인 석학들을 인터뷰한 내용들로 엮었기 때문이다. 살펴본다면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대체 무엇이고 왜 문제가 생겼는지, 최근 저축은행 사태는 왜 일어났는지, 마트에 가면 왜 나도 모르게 많이 사게 되는지 등 요즘 꼭 알아야 할 자본주의 사회의 숨은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실체를 다룬 개론서라면, 후속작인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는 자본주의의 숨겨진 진실을 알고 난 후 독자들이 현실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현대인이라면 그 누구도 금융과 소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 아래 금융, 소비, 돈, 금융교육의 각 장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을 등장시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자본주의의 유혹과 위협을 구체적이고 실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밀려오는 청구서를 처리하기 위해 왜 투잡을 뛰어야 하는지, 더 깊은 만족감을 위해 잠시의 쾌락을 접어두지 못하고 왜 쇼핑중독에 빠지는지, 금융 시장의 구성 요소를 모른 채 금융 열기에 뛰어들면 왜 안 되는지, 슬프거나 우울할 때 우리는 왜 뭔가 사려고 하는지 등 현실적인 내용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며 궁금해 했던 것들이다.

 

 

   특히 ‘원 플러스 원 상품의 구입이 과연 합리적 소비일까’에서 합리적인 소비란 그 소비의 현재가치를 고려하고 이 소비를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라는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그래야 기업의 의지가 아닌 내 의지에 의해 돈을 지출하는 소비가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껴 쓰고 싶어도 아껴 쓸 수 없는 사회’에서 프린터가 고장 나는 것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프린터 안에 내장된 마이크로 칩에 의해 ‘1만 페이지’를 인쇄한 후엔 기계 작동이 멈추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 만들 때부터 짧은 수명으로 프로그램 되어 나오는 물건들에 대해 소비자는 계속 쓸 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은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에 ‘소비 부추기는’ 제조사에 대해 괴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 밖에도 ‘은행에 빚을 갚는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속박과 굴레를 벗어남을 뜻하지만 국가 경제로 보면 경제 규모의 축소를 의미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마트에 가기만 하면 계산된 영수증을 보고 왜 나도 모르게 많이 산건지 후회하게 되는지도 속시원히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에 있는 금융교육이다. 2007년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오바마 정부는 아이들을 위한 금융교육에 힘썼다. 그 중 시카고 웨스트리지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머니 세이비 프로그램은 인상적이다. 소비, 저축, 투자, 기부로 칸이 나뉜 저금통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돈이 생기면 저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투자, 그리고 기부도 함께 하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돈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이나 금융교육은 학교에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아이들에게 욕구를 참고 저축하며 경제 형편에 맞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는 재테크 책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경제교과서 정도 된다. 읽어본다면 떼돈 버는 방법은 들어있지 않지만, 내가 과연 현명한 소비자인가, 슬기로운 투자자인가는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런 경제교과서가 많이 출간되기를, 그리고 많은 독자가 읽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 (374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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