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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투혼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양준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6월
평점 :
일본 경영의 신이 말하는 불황탈출법
주가 1엔. 파산 후 일본항공(이후 JAL) 주가다.
2010년 1월 도쿄지방법원에 회사갱생법(기업회생절차) 적용을 신청했을 때 당시 JAL은 부채가 2조3221억
엔(약 24조3820억 원). 일본의 일반기업으로는 최대의 파산이었다. 회사갱생법 적용을 신청한 기업이 주식시장에 재상장한 경우는 138개사 중
9개 회사에 불과했다. 생환율 7%의 확률, JAL의 재건을 위해 뛰어든 사람은 80세를 눈앞에 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재건
실패시 노년에 불명예가 될 수 있다’며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그가 JAL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삼킨 세 가지 명분은 20,000 명 가까운
인원감축을 시행한 후 남은 32,000명의 직원을 지켜내는 것, 일본 항공업계가 ANA의 독점시장이 되는 것을 막는 것, JAL의 파산이 미칠
일본경제의 악영향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가 무보수로 JAL 재건을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JAL이
부패한 기업이라는 것은 일본 국민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부패한 JAL'을 다시 바꿀 수만 있다면,
곤경에 빠진 모든 일본 기업이 ’JAL도 해냈는데, 우리는 당연히 할 수 있다‘라고 분발해줄 것입니다. 그런 영향력이 일본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155일간의 투쟁, 한빛비즈, 15~16)
이나모리
가즈오는 2010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JAL의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영업손실 규모(2009년 기준)도 1337억 엔(약 1조4000억
원)의 JAL을, 2010년에는 1884억 엔, 2011년엔 2049억 엔의 영업이익을 내며 2012년 9월엔 2년 8개월 만에 도쿄증시에
재상장시켰다. 공교롭게도 JAL의 ‘V’자 회생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맞물렸다. 같은 달 일본 정부는 경기
침체가 사실상 끝났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일본 경영의 신(神)다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불타는 투혼>은 JAL의 재건
이후 ‘일본 경제를 되살릴 방법은 없는가?’ 하는 일본 재건의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뤄 순식간에 일본을
추월하고 G2의 자리를 꿰찬 경제 대국 중국,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민관협력으로 필사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삼성, 현대 등으로 대표되는
기업들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에 비해 지난날 융성했던 일본 경제와 산업이 점점 뒤처지는 이유는 바로 ‘마음’에 있다고 진단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써 산업기반은 물론 사회기반시설 대부분이 초토화된 일본은 폐허에서 몸을 일으킨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던 적도 있었다. 현재 일본 경제와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불요불굴(不要不急)의 의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떠한 장해가 있어도 그것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용기다. 이것이 부족했기에 현재
우리 사회에 절망감이 만연하게 된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대로 질 수 없다’는 강한 마음, 즉 ‘불타는 투혼’이다. 전후 경영자들 모두 ‘절대 지지 않겠다’는 투혼으로 스스로를 단련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긴 침체를 지나 이제 점차 경기 회복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기업이 다시 성장,
발전을 이룰 절호의 기회다. 옛날과 달리 지금 우리에게는 충분한 자금과 뛰어난 기술이 있으면 성실한 인재도 있다. 부족한 것은 불타는 투혼,
다시 말해 ‘이까짓 것에 질 수 없다’는 강한 마음뿐이다. 본문 20~21쪽
이나모리
회장이 JAL의 재건을 맡았을 때 처음 시작한 일은 ‘정신개조’였다. 파산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JAL 직원들은 정부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즉,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사를 설마 어찌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JAL의 직원이 스스로를 ‘준공무원’ 정도로
여기는 한 재건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전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회의실에 불러 ‘거짓말을 하지 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중히 여겨라’ 노승의 선문답 같은 연설을
계속했다. JAL의 직원들은 아연질색했지만, 이나모리 회장은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도입해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50여년의 경영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아울러
‘아메바 경영(부문별 채산제도)’을 도입해 3만여 직원을 노선별 세부조직으로 쪼갠 뒤 조종사, 승무원, 탑승권 판매원, 정비사 등이 현장에서
매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채산성과 본인의 기여도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파산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새로운 방침에 처음 JAL 직원들은 동요했고, 불만도 많았지만 회사 경영의 가장 큰 목적을 이익을 남기고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전 직원의 물심양면에 걸친 행복추구에 있다는 이나모리 회장의 주장에 노조가 먼저 움직였다. 그러자
JAL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종이컵 대신 자기 컵을 갖고 비행기에 올랐고, 권위적이었던 스튜어디스들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굽히기 시작했다. JAL은 결국 파산한 지 1,155일만에 ‘V’자로 회생하며 도쿄증시에 재상장 했다. 7%의 생환율을 이겨낸
것이다.
한편
이나모리 회장은 현대 자본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며 CEO들에게 올바른 윤리관 회복을 강하게 요구했다. 즉 불타는 투혼을 가지고 비즈니스에 임하되,
그 전제로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라는 초기 자본주의의 고귀한 윤리규범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익이란, 모든 사원의 협력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경영진의 힘만으로 이익을 달성했다는 착각에 빠져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중략) 경영자의 탐욕이 계속되는 한, 법적 규제와 제도만으로는 성과주의에 근거한 격차 사회의 불공평과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욕망을 제한하지 못하고 더욱 높은 이익을 요구하는 투자자와 투자기관이 있는 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은 분명히 개발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금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일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본문
115~117)
그렇다면
욕망으로 물든 현대 자본주의의 궤도를 수정해갈 때 필요한 사고방식은 뭘까? 이나모리 회장은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노자의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자고 실행에 힘쓰는 사람은 뜻이 있는 이다.“는 사상을 빌려 만족을 아는 것이라 설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 격인 월가를 향해
"Be Enough!"라고 일갈한 월가의 현인(賢人) 존 보글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올해부터 상장 기업들은 5억원 이상 연봉의 구체적 규모와 수령자를 공시했다. 공개된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기업인들은 재벌가로 산하 계열사 중 적게는 하나, 많게는 4~5개 기업의 등기 이사로 등록해 30억 원대에서 300억 원대까지
연봉을 수령했다. 같은 나이 또래 직장인들이 수백 년을 일해도 받을 수 없는 거액이다.
구멍가게
담배 파는 아저씨처럼 제 혼자 벌어 이익을 가진다면 누가 뭐라겠는가? 하지만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회사를 구멍가게 운영하듯 하니,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선택의 순간마다 ‘동기가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를 스스로 물은 뒤 경영을 한 이나모리 회장이 세운 경영학교
‘세이와주쿠’에라도 다녀오라 권하고 싶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72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된 리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