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뚜벅뚜벅 - 익숙한 일상에서의 성찰을 담은 포토힐링에세이
최남수 지음 / 에이원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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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이 담긴 디지털 산수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사전에서 말하는 풍류風流의 의미다. 성인 특히, 남성들의 로망이 풍류를 즐기며 사는 삶이다. 고래로 우리 민족을 일컬어 풍류를 아는 민족이라 불렀다. 온 겨레가 춤과 노래를 즐겨서다. 그렇다고 오늘날 밤거리에 횡횡하는 음주가무飮酒歌舞처럼 배 띄우고 기생을 옆에 두고 농짓거리 하는 일을 풍류라 아는데, 큰 착각이다. 언행에 제약이 많은 대부분의 양반들은 글로 그림으로 풍류를 즐겼다. 자연이 선사하는 풍광을 벗 삼아 글과 그림으로 고단한 몸과 어지러운 심경을 털어냈다.

 

   불혹을 넘기면서 인생의 맛은, 진정 사는 재미는 풍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행복은 요란뻑쩍지근하고 화려한 이벤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서 소회(所懷)를 나눔에 있더란 말이다. 하루 중 어느 순간 풍류를 느낀다면 그게 행복한 하루이고, 행복한 삶인 셈이다. <그래도 뚜벅뚜벅>을 읽으면서 줄곧 떠오른 단어가 바로 풍류(風流)였다. 내가 오늘을 살며 바라본 이 세상을 닮은 자연과 우리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고 여백에는 렌즈 속에 풍광을 담은 순간의 생각이, 소회가 기록되었다. 페이지마다 멋진 그림과 생각이 그득한 그런 풍류스러운 책이다.

 

 

 

 

   저자 최남수는 전문 사진작가도 글쟁이도 아니다. 24시간 경제이야기에 유독 귀가 밝은 방송, ‘머니투데이의 보도본부장’이 그의 일이다. 직장인이 구두와 넥타이를 맸다면, 뭔가를 배우는 학생은 운동화를 신는다. 저자의 출퇴근 길은 운동화를 신은 학생이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중에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렸다. 문득 바라 본 풍경에 생각이 뜨면, 렌즈에 담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낯설고 멋들어진 풍경이 페이지마다 그득하다. 그런 그에게 주말은 마음껏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온전한 하루이다. 운동화와 구두 사이를 오가는 직장인, 그런 점에서 그는 슈퍼맨의 다른 모습 ‘클락 켄트’를 닮았다(그에겐 하늘을 나는 망토 대신 쌩쌩 자전거가 있다).

 

   만추(晩秋)에 흩뿌려진 낙엽에서 ‘버림의 미학’이 담겼고, 안개가 자욱한 어느 한 날 속에서 ‘보이지 않을 때 마음의 눈이 열린다’는 글을 남겼다. 선유도를 가로지르는 보트 두 대를 보면서 그는 과도한 경쟁의식 탓으로 타인을 의식하고 남을 따라하기가 지나치게 심한 편인 우리사회를 생각했고, 하늘에 매달린 감 하나를 보고 생의 유효기간을 고민했다.

 

 

   “우리 말 중 ‘뚜벅뚜벅’ 이란 말을 제일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발자국 소리를 뚜렷이 내며 잇따라 걸어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이다. ‘허겁지겁’, ‘비실비실’, ‘비틀비틀’ 같은 허약한 말보다 멋지지 않은가. 상황이 어찌되더라도 기도하며 우직하게 자신의 삶을 완주해내는 모습. ‘태어날 때는 자신은 울고 주변은 웃는다. 세상을 떠날 때는 주변은 울고 자신은 웃자’는 말이 있다. 병마와 시달리며 웃는 것까지는 힘들더라도 뒤돌아볼 때, ‘잘 살 것 같다’는 마음으로 삶을 종료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삶 아니겠는가.”

 

 

   글쓰기를 강의 때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는 학생을 보면 열에 아홉은 아직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제사보다 젯밥이‘라고 글쓰기를 빌미로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어 하는 말인데 여행작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했던 말처럼 진정한 여행의 맛은 행장을 꾸린 여행 출발의 전날 밤일지도 모른다. 여정동안 겪어야 하는 숱한 고생을 만나다 보면 ’내가 이 짓을 왜 하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들어 여행온 것을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 ’마음껏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온전한 내 시간‘인지도 모른다. 다음에 ‘여행작가’ 운운하는 학생을 또 다시 만난다면 이 책을 건내줘야겠다. 이 책이야말로 삶이라는 여정의 순간을 눈과 마음으로 담은 ‘진짜’ 여행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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