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는 답이 아니라 과정에 존재한다!

  지난 해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결정의 기술과 실행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고 포인트』(한경BP)라는 책이 있다. 와튼 스쿨의 마이클 유심 교수가 쓴 이 책은 ‘고 포인트Go Point'를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 예스 아니면 노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 특히 다른 사람의 운명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어느 방향으로 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불렀다. 아울러 저자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성격이 아니라 오랜 기간 부단한 노력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어서 그 결정의 기술과 실행방법을 배우면 능숙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고 포인트’ 사례는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비행기 속에서 45명 중 29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이야기였다. 1993년 ‘얼라이브Alive'라는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던 로베르토 카네사의 생존기는 거의 생존불능의 악조건 속에서 많은 사람이 살아남아 결과적으로는 무척 감동적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겪은 과정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해발 3,500미터의 안데스산 눈밭에 고립된 생존자들은 음식도 없이 힘겹게 버텼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모두가 굶어죽기 직전의 상태로 악화되었다. 열흘째 되던 날, 주인공 카네사는 첫 번째 고 포인트가 왔음을 알았다. 의대생인 그는 생존자들이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먹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최대한 객관적인 주장을 펼치며 설득했다. 그리고 식인행위를 할 것인가 여부의 ‘고 포인트’는 생존자 전체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책의 내용에서는 ‘고 포인트’의 순간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남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는 사적인 이익은 완벽히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포인트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이 사리추구를 뛰어넘는 의사결정자가 경영할 때 최선의 결과를 낸다는 증거가 많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아울러 ‘더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자기이익은 최소화하는 결정을 내려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만약 내가 카네사라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생각에 고정되었다. 과연 나는 카네사와 같은 용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식인행위를 해서 살아남은 것이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을까? 반대로 나만은 절대로 ‘식인행위’를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행동을 했다면 그 결정은 과연 현명한 결정이었을까?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수긍은 했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드는 의문은 ‘카네사와 일행의 판단이 과연 옳은 판단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살아남았으므로 잘된 일은 확실하다. 하지만 난 다른 한 편 즉, 생존자들의 식량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이 신경에 거슬렸다. 내가 만약 그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감동적이고, 영웅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할까? 혼란함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 한 명의 테러범이 있다. '스티븐 아더 영거' 라는 이 청년은 미국 맨해튼에 핵폭탄을 몰래 설치했지만 곧 체포된다. 미국 정보기관이 투입되어 핵폭탄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테러범은 핵폭탄을 숨긴 곳을 밝히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맨해튼에 곧 핵폭발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선다. 미 정보기관은 고문 전문가 H 와 테러전담반인 여형사를 투입한다. 두 전문가의 노력에도 테러범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테러범이 언젠가는 맨해튼을 폭파시킬 핵무기 정보를 갖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이미 폭탄을 설치했다고 의심할 근거도 있다.

  시계는 째깍거리는데, 용의자는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며 폭탄의 위치를 실토하지 않는다. 그러자 고문전문가 H는 고문을 시작한다. 고문 전문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고문의 강도를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테러범의 부인과 딸을 데려와 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과연 테러범은 사실을 고백할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명배우 사뮤엘 잭슨이 출연한 영화 <언씽커블Unthinkabe>의 줄거리다. 사각의 작은 방 안에서 펼치는 테러범과 고문전문가의 갈등만으로 충당되는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테러범과 고문전문가의 절박한 심정이 되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박감에 손에 땀이 쥐어졌지만 이와 함께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질문은 ‘테러범이 폭탄이 설치된 장소를 말하고 그것을 제거할 방법을 자벽할 때까지 고문을 하는 것은 옳은가?’ 였다.

  왜냐하면 테러범(테러범이 아닐 수도 있다)의 말대로 실제로 핵폭탄 같은 것은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택해야 할 길은 하나인데, 둘 중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 딜레마. 인육을 먹어야 하거나, 남을 죽여야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는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딜레마의 상황을 매일 만난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결정한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인가?  

   ‘인문서는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다’는 말이 있는 국내 출판시장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치철학 책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What's the Right Thing to Do>(김영사)는 지난 해 이례적으로 6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정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게다가 지난 연말부터 방송되고 있는 샌델 교수의 TV 강좌인 EBS '하버드 특강 - 정의'는 자정시간대임에도 시청률 1%를 넘기며 화제를 모으는 등 새해에도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연말 거의 모든 언론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경이로운 판매고도 작용했지만 그와 함께 한국 사회 전체에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과 천안함, 4대강 개발, 최근에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까지 우리 사회에는 논란들이 끊일 날이 없다. 민주사회와 다원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이러한 논란의 대두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담론들에 대해 옳고 그름,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 정의와 부정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토론되어 하나의 대안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반대의견을 배척하는데 있다. 또한 한편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견을 펼치는 듯해서 해답을 도출하기는커녕 논란 자체가 부정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 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답답한 현실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독자들은 다양한 정치철학자들의 주장들을 통해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의를 도출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찾았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칸트,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롤스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권리를 규정하는 개인의 자유, 좋은 삶, 정의의 원칙은 미덕과 최선의 삶에 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아쉽게도 필자가 원했던 정의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설명은 샌델 교수에게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딜레마에 빠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행복의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데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되는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공리주의가 정의인가, 아니면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주의가 정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되묻는다. 정의란 무엇인지 대답해야 할 사람은 결국 독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전개 방식은 마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실제 강의를 지면으로 옮겨놓은 듯하다(궁금하다면 TV 강좌인 EBS '하버드 특강 - 정의'를 보시길). 1000여 석의 하버드대 극장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샌델교수는 논란이 될 만한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학생들이 손을 들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 샌델 교수는 학생의 이름을 묻고 그 의견을 정리 요약하고 어느 정치철학자의 의견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질문으로 되묻는다. 답변했던 학생이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다. 구체적인 대답을 구하지 못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이에 대한 답을 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아마도 우리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저자의 다양한 질문들일 것이다. 정신적인 피해를 보상받고자 하는 이라크전 상의군인의 소송,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으로 인센티브를 받은 고위임원들에 대한 분노, 철로를 달리는 전차를 막기 위해 치러야 하는 타자의 희생 등을 비롯해 제시하는 독자들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해야 할 질문들은 다양하다. 이 사례들을 통해 독자들은 오늘날의 시장 중심 사회에서 생기게 마련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공동체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정의인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는 과연 공정하고 자유로운가? 고민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다분히 상식적이고 친숙한 질문들 같지만 ‘이것이다’라고 단언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격폭리, 소수집단우대정책, 병역, 동성혼 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은 정치철학과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신념을 피력하는 중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답변은 개인을 넘어 정부와 국민, 야당과 여당, 미디어와 언론들이 펼치는 갑론을박이 된다. 어떤 답을 채택하고 의견을 더하느냐에 따라 편을 가르게 되고, 정치적 행보를 달리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덕적 이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상호 존중의 토대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질문을 공개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 종교적 견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도덕적, 종교적 교리를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더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370-371쪽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알려준다. 아울러 모든 논란에 있어 다양한 의견이 도출될 수 있고, 또한 상대방의 의견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일리가 있는 의견임을 수긍하고 경청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정의正義, 곧 옳은 것은 스스로가 옳은 것이지, 내가 옳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그것을 말한 내가 옳은 것도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점을 말하고 있다. 

이 리뷰는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스마트 월드](2011년 1.2월호)에 소개될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