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옳음은 좋음에 우선한다. 옳음을 좇아라!

 

 국내는 지금 '마이클 샌델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정의', '공정' 논쟁을 촉발시킨 책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10월말 현재 50만 권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샌델 교수가 이 책에서 던진 정치철학의 중대한 질문들(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자유시장은 공정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인 때도 있는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가? 도덕을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개인의 권리와 공익은 상충하는가?) 등은 현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론’과 몇 차례의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거짓말 논란과 낙마' 등 오늘날의 골치 아픈 다양한 문제들과 결합하여 독자로 하여금 과연 '옳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이제는 '도덕'이다!

  최근 그의 이름으로 국내에 세 번째로 <왜 도덕인가? Public Philosophy: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한국경제신문)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사실 앞서 말한 놀라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2007년)와 누구나 한번쯤은 빠져들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문제들을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과 연결해 풀어낸 책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The Case against Perfection>(2009년)보다 먼저(2006년) 출간되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지고,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 역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지만(주제가 불명확한 것은 '뉴욕타임즈', '뉴퍼블릭', '애틀랜틱먼슬리' 등 일반인을 독자로 하는 간행물 등에 실렸던 에세이들을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을 살펴봐야 할 이유를 들자면 어쩌면 '정의'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인 ‘도덕’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보다 근본적인 도덕적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가 화두인 시대, 경제적 풍요가 최고의 선이 돼버린 상황에서 여타의 가치들은 쉽게 무시되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장 기초적인 가치, 도덕의 목마름을 호소한다.

 

 

경제중심의 사회가 낳은 폐해는 심각하다. 도덕적 해이와 거짓말, 각종 로비와 공직자의 부패, 경제인의 각종 특혜와 비윤리적인 이권개입, 일반 시민의 도덕 불감증 등 경제 논리에 가려 어느 정도의 비도덕은 묵인할 수 있다는, 근거가 빈약한 관용이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샌델 교수는 이 책에서 민주사회에서 도덕성의 의미와 본질을 살펴보고, 그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을 들여다본다. 나아가 공공생활을 움직이는 도덕적 딜레마와 정치적 딜레마 도 함께 살피고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 전통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분야가 도덕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그리고 공동체주의를 통해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의 정의와 그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설명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현재 도덕이 회자되고 있는 이유와 그 필요성, 그리고 과연 ‘도덕적 가치’는 무엇인가에 주목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둬야 할 포커스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우선 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해 필요한 '도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5개의 주제로 나눠 복권과 도박, 광고와 상업주의, 존엄사, 정치인의 거짓말, 낙태, 동성애자의 권리,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의 도덕적 한계, 등 논쟁의 대상이었던 도덕적 현안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도덕적 가치의 기반을 이루는 다양한 자유주의 정치이론들을 검토하고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고, 미국 정치의 전통을 전반적으로 되짚어보고 토머스 제퍼슨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사의 주요 논쟁을 통해 잃어버렸던 도덕적, 시민적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복권과 도박 - 공공의 책임을 외면하는 공적인 타락

 

  복권 찬성론자들은 어느 누구도 강제로 복권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반대하면 그저 하지 않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는 적극적으로 복권을 홍보하면서 복권광고판에는 ‘인생역전’이라는 말로 당신도 엄청난 대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며 구매를 부추긴다(이 사실만으로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다). 복권구매자들의 분포가 부유층보다 저소득층에 집중된 것을 볼 때 시민들에게 노동윤리와 희생정신, 민주주의적 삶을 지탱하는 도덕적 책임을 강조해야 할 정부가 비뚤어진 시민교육을 제공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샌델 교수는 복권 사업자인 정부에게 그것이 합당한 사업이라면 왜 민간기업이 그것을 판매하고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만일 매춘처럼 비도덕적 사업이이라면 왜 정부가 그 사업을 운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복권옹호론자들의 딜레마인 셈이다. 

온실가스배출권 거래 - 환경오염 방지가 아닌 면죄부?

  샌델 교수는 1997년 교토 기후변화협의회에서 클린턴 정부가 주장한 내용 중에 ‘온실가스 거래제도’는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에 반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배출권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되면 선진들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태만할 거라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반대 했다.

  첫째, 배출권 거래제는 선진국들이 의무 감축량을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준다. 둘째,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면 지구를 오염시키는 행위에 수반되어야 마땅한 도덕적 죄책감을 덜 느낀다. 즉 벌금이 아닌 요금으로 여기는 도덕적 헤이를 야기할 수 있다. 셋째, 배출권 거래제는 갈수록 국제사회 공조가 늘어나는 오늘날 더욱 필요한 인류 공동의 책임감을 약화시킨다. ‘돈으로 글로벌 책무를 비껴가도록 허용한다’는 식의 풍조가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성 - 정당한 차별이란 존재하는가?

  뇌성마비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캘리는 치어리더였다가 1년 만에 응원단에서 쫓겨났다. 치어리더 단장의 아버지인 로버트가 캘리의 활동에 특히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캘 리가 자격도 없으면서 영광을 누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영광과 분노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도덕감정이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응원용 술을 흔들 수 있기에 캘리는 치어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샌델 교수는 수많은 땀방울과 노력을 기울였던 다른 치어들이 누리는 영광은 분명히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미국의 대학 입학 시의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살펴보자. 이 정책의 찬성론자들은 차별이라는 악행을 고치기 위해 그런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역차별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샌델 교수는 이 사안에 대해 생각해야 할 질문은 ‘대학이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농어촌 특별전형’이란 것이 있다. 1996년부터 실시된 농어촌 특별전형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정원 대비 농어촌 특별전형의 비율을 기존의 3%에서 4%로 확대하기로 한 제도인데, 수도권의 명문대학에서 정부 정책에 의해 농어촌특별전형으로 선발하는 학생수를 늘린 것과 함께 중ㆍ하위권 대학에서 농어촌특별전형 대상 학교의 범위를 일반 도시지역까지 확대함에 따라 최근 농어촌특별전형에 대한 관심이 급증되었다. 

  그러나 종종 도시학생들이 위장전입을 통해 농촌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격이 종전에는 ‘중고교 6년을 농어촌지역에서 다닌 자’였지만, 지금은 상당수의 대학이 ‘고교 3년’으로 제한하고 있어 중학교 3학년 때, 농어촌의 고등학교에 전학을 하는 것이다. 공정성을 위해 마련한 제도가 제대로 규제하지 않아 오히려 농어촌의 많은 인재들이 대학을 입학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제도로 전락되었다. 한편 이러한 편법이 동원해서 대학을 입학하는 가정은 경제적 능력이 충분해야 가능하므로 빈부에 의해 또 한 번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 되고 있다. 

  책 전반에 걸친 샌델 교수의 주장은 한마디로 ‘옳음은 좋음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즉 옳음을 우선한다는 것은 개인의 권리가 전체의 이익에 의해 희생될 수 없고, 이러한 권리에 대한 정의 원칙은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전제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공공생활은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가 살아날 뿐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떠나 무너진 원칙을 공정하게 다시 세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도덕적 딜레마를 피하지 말고 맞닥뜨려 고민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에 있어 도덕적 가치가 풀어야 할 숙제를 만남으로써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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