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경제학 (양장)
누리엘 루비니 & 스티븐 미흠 지음, 허익준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U자형의 회복곡선, 몇 년간 평균이하의 성장세 감내해야 할 것

  “나는 금융위기가 '화이트 스완white swan', 즉 예측 가능한 사건이라고 본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2막 격인 지금 벌어지는 일들 역시 예측할 수 있다.” 닥터 둠Dr. Doom 이라 불리는 비관주의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는 이번 뉴욕발 금융위기의 원인이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블랙 스완black swan‘의 돌발상황이었다는 세상의 생각에 반대했다. 게다가 최근의 재앙은 돌발상황이 아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위기는 거품경제에서 시작된다. 거품이란 자산가치가 원래의 가치보다 부풀어오른 상태를 말한다. 투자자가 호황기에 한 몫을 보기 위해 돈을 빌리면서 과다하게 채무를 쌓아가다 보면, 거품이 이리저리 퍼져나가게 된다. 자산에 거품이 끼는 현상은 당연히 과다한 신용거래를 동반한다. 이는 금융시스템의 느슨한 관리감독이나 중앙은행의 허술한 통화정책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습관의 산물, 34-35쪽)

   루비니 박사는 최근 인기 칼럼니스트인 스티븐 미흠과 함께 발간한 책 <위기 경제학Crisis Economics>(청림출판)에서 위기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금융위기는 경제와 금융상의 취약점이 쌓여서 폭발하는 습관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이성적 낙관주의, 다단계 금융시스템, 금융혁신, 자산거품, 공황상태, 은행이나 기타 금융회사의 경영문제 등 이번 경제위기를 있게 한 요인들은 수십 년 전 발생한 경제적 대재앙들의 원인과 유사점이 많은데 이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오늘 재채기를 하면, 다음날 아침 한국 경제는 독감에 걸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니던가? 요즈음 세계경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아마도 ‘미국 경제가 또 다시 경기침체를 맞을 것인가?’하는 우려일 것이다. 

  최근 마이클 보스킨 美스탠퍼드대 교수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칼럼에서 현재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주가, 채권 수익률 등 올라야만 하는 지표는 떨어진 반면 실업률과 실업수당, 청구건수 등 내려야만 하는 지표는 올랐다며 미국 경제는 이제 더블딥double deep을 넘어 일본식 장기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루비니 박사 역시 지난 3일 이탈리아 코모 호(湖)에서 열린 연례 ‘암브로세티 경제포럼’에 참석해 미국과 일본은 물론 상당수 유럽국가 등 선진국들에서 더블딥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의 중소형 은행 400여 개가 도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지금인 때문일까? <위기 경제학>은 더욱 실감나게 읽힌다.

저자들은 163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사건부터 1929년 대공황까지의 역사적인 경제위기 사례들을 통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던 위기였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왜곡된 보수시스템에서부터 AAA 등급을 남발한 부패한 신용평가기관에 이르는 금융시스템 전체에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즉 느슨한 통화정책과 무모한 금융혁신, 도덕적 해이의 문제와 통일된 정책의 부재, 그림자 은행 시스템 등이 전대미문의 재앙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뉴욕발 금융위기 직후 포털사이트 Daum의 아고라 경방을 뒤덮으며 뜨겁게 달궜던 내용들이기도 하다. 특히 경방 고수 세일러가 쓴 <흐름을 꿰뚫어보는 경제독해>(위즈덤하우스)과 <불편한 경제학>(위즈덤하우스), 그리고 나선과 상승미소가 쓴 <똑똑한 돈>(한빛비즈)을 통해 이미 들은 바 있는 달러의 추악한 실체와 미국이 경제공황을 피할 수 없는 이유 등을 1-2년이 지난 후 루비니 교수에게서 거듭 듣는 기분은 새삼스럽고 묘하다. 순서와 토씨만 다를 뿐 주장들 대부분이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원인에 대한 해결방안 역시 루비니답게 과격하다. 그는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금융기업 직원들은 제한된 주식으로 보수를 받아야 하며, 처분은 퇴직할 때까지 불가능하게 하거나, 최소 10년 이상 소유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월스트리트의 보너스문제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면서 보너스시스템을 단기이익이 아닌 최소 3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고, 파생증권 상품을 만들어내는 연구소에는 보너스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파생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해결책들은 채택 가능성여부를 떠나 은행주주, 대리인 그리고 금융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병폐와 심각성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 세계경제는 다시 고성장 시대로 접어들 것인가 아니면 장기간의 불황을 겪을 것인가? 

  저자들은 세계경제가 다시 반등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위험과 취약성이 앞으로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고, 만약 디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 불황이 발생한다면 국가부채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한편 현재 가장 현실성 있는 경제회복 곡선 시나리오는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U자형 곡선 회복이지만, 몇 년간 평균이하의 성장세를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들이 한국을 정교한 첨단기술로 무장한 경제대국이면서, 혁신적이며 역동적이고 숙련된 노동력을 보유한 국가로 평가하며 BRIC은 한국을 포함해 BRICK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문제점 또한 없잖다. 유일한 한국의 문제는 남과 북으로 대치중인 북한의 문제로, 북한이 붕괴된다면 한국은 굶주린 난민들로 넘쳐나게 될 거라고 지적했다. 

  루비니 교수가 보는 세계 경제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이번 사태의 여파가 최소한 수년간 지속된다고 내다봤다. 지난 3일 그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 전망과 관련해서는 재정 부양 정책이나 재고 조정 같은 순풍이 역풍이 됐다며 더블 딥을 모면한다 해도 하반기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와 유사한 하강기로 흐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전망이 또 다시 들어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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