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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펀드매니저와 거래하라 - 냉혹한 투자 게임에서 내 돈을 지키려면
찰스 D. 엘리스 지음, 이건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시장 수익률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인덱스 투자 뿐이다!
“부자가 되고 싶거든 버는 것보다 덜 쓰면 된다”고 부자들은 말한다. 명쾌하고 당연한 말,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말이다. 보통사람들은 돈을 벌기도 어렵지만 지키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벌어들인 족족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놓으면 되지 뭐가 어렵냐고 묻는다면 필경 재테크의 초짜의 답변일 것이다. ‘번 돈을 지킨다’는 말은 곧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돈의 가치로부터 지킨다’는 뜻이다.
‘돌고 돌아야 한다는 뜻으로 ‘돈’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돈은 오래 지니고 있으면 있을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저축을 하든, 남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주든, 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매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떨어지는 돈의 가치로부터 내 돈을 지킬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투자다. 하지만 이 투자란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자칫 잘못 판단해서 투자했다가는 피땀 흘려 모은 금쪽같은 내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송두리째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나는 증권사에 근무하는 친구의 솔깃한 말에 혹해 3년 동안 모았던 종잣돈으로 난생 처음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 책 몇 권 읽고 나니 조금은 알 것도 같고,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자문도 얻어 재고 또 재서 몇 종목을 골라 매수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살 때만 해도 전도유망하던 주식은 연일 하한가를 치더니 멀쩡했던 가가멜(사람)이 스머프(키작은 요정)가 되어버린 것처럼 이내 투자금이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상승장에는 내가 투자한 종목만 빼고 다 올라가는 듯해서 매일매일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했다. 말 그대로 장차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위해 현재 자금資 을 던지는投 행위인 투자投資가 수익은커녕 손실만 계속되고 있으니 더 이상 ‘투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무안할 지경이었다.
다소 급한 성격인 데다, 한곳에 몰입하면 세상을 잊을 정도로 덤벼드는 편이어서 그 후 주식투자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몇 해 전 저금리시대가 되자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또 다시 주식시장에 발을 담가버렸다. 투자의 시작 때 먹은 마음은 주식을 매입한 사실조차 잊을 만큼 오랜 기간 동안 가지고 있기로 한 ‘가치투자’였지만, 날로 흉흉해지는 주식시장의 경색장을 잊고 지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장이 마감되는 오후 세 시만 되면 종가를 따져보고, 퇴근 후에는 집에 돌아와 내일 시장분위기를 점치며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갔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투자내역을 몇 번을 들여다봐도 수익은 없고, 손해만 보이니 답답함도 더해갔다. ‘나도 별 수 없는 허리 끊어진 개미가 된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더해졌다. 결국 투자금은 반토막이 되어버렸고, 약 8개월 동안 맘고생에 건강도 생활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지난 해 말 선배로부터 ‘행복한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 널뛰듯 등락하는 주가지수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투자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고, 바람직한 투자라 볼 수 없다는 것이 '불행한 투자'에 대한 선배의 지론이다. 선배의 말인즉 투자를 해서 ‘얼마나 많은 수익률을 올리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수익을 얻는가’ 하는 문제는 더욱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투자는 ‘투자를 하는 순간 잊어버릴 수 있는 투자’이며, 이 때 비로소 ‘가치투자와 장기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자한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현재 5-6 년째 꾸준히 ‘행복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선배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선배가 이렇다 할 큰 부자가 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젠 틈만 나면 그 선배를 만나 귀를 기울여야겠다. 세계적인 경영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투자전략과 운용에 대한 역대 최고의 책”이라 평하는 이 책에서도 ‘행복한 투자’야말로 가장 현명한 투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 엘리스Charles D. Ellis의 <나쁜 펀드매니저와 거래하라>(중앙북스)를 읽었다. 원제목은 패자의 게임에서의 승리Winning the Loser's Game이다.
저자인 찰스 엘리스는 전 세계 주요 기관들이 투자스승으로 모실 만큼 뛰어난 투자 컨설팅 전문가이다. 그는 주식투자를 아마추어들이 벌이는 테니스 게임, 즉 실수를 더 적게 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으로 보았다.
“투자 게임은 아마추어 테니스 게임과 같다. 나의 실력이 아니라, 상대의 실수 때문에 점수를 얻는다. 그래서 투자는 이기는 선수를 뽑는 게임이 아니라 지는 선수를 걸러내는 냉혹한 ‘패자 게임’이다. 높은 수익을 얻고 싶은가? 시장을 이기고 싶은가? 당장 성과를 확인하고 싶은가? 당신의 이러한 요구사항에 펀드매니저가 흔쾌히 Yes라 답한다면, 절대 그를 믿지 마라. 패자 게임에서 살아남는 건 아무 보장도 하지 않고 무리해서 수익률을 높이려 들지도 않는 ‘나쁜 펀드매니저’들이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에게는 두 가지 투자원칙이 있다. 첫째는 투자한 돈을 절대로 잃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첫 번 째 원칙을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다. 잃을 것을 생각하고 투자하겠냐마는 투자직전까지 망설이다가도 매수를 하기만 하면 나는 꼭 이길 수 있을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투자를 망치게 한다. 워런 버핏의 투자원칙은 ‘투자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체계를 구축하라’는 가르침이다.
저자는 투자자로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건전한 정책을 수립하고, 자제력과 인내심, 그리고 투지를 동원해서 끈기있게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로서 저자의 조언을 따르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역자의 말대로 인간은 투자분야에 있어서는 ‘아주 드물게 합리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나쁜 펀드매니저‘다. 저자가 말하는 나쁜 펀드매니저란 먼 미래의 큰 이익을 위해 당장의 손해는 감수하라고 말하고, 고객의 충동적 결정에 반대를 하며, 수익률만 보고 펀드를 결정하지 않는 지금 당장 고객에게는 불편한 펀드매니저다. 하지만 나중에는 좋은 선택을 해준 현명한 펀드매니저를 말한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 ’나쁜 펀드매니저‘가 있을까? 찾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찰스 엘리스는 독자들에게 나쁜 펀드매니저 대신 ’투자 드림팀‘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워런 버핏, 찰리 멍거, 피터 린치, 조지 소로스 등 세계적인 투자자와 부자들 그리고 세계 일류 분석가와 펀드 매니저들의 생각이 모인 것이 바로 인덱스 펀드index fund다. 저자는 나쁜 펀드매니저 대신 ’인덱스 투자'를 하라고 권한다.
“인덱스펀드는 시장을 복제하는 것이므로 오늘 날의 주식시장에 최선을 다해 투자하는 부지런한 전문가들의 결집된 역량이 모두 담겨 있다. 지식이 늘어남에 따라 전문가들은 시시각각 자유롭게 투자판단을 바꾸고, 시장에는 항상 최근에 형성된 전문가들의 합의가 반영된다. 인덱스투자를 하면 우리는 투자의 드림팀을 거느리는 혜택뿐 아니라 다른 중요한 혜택도 자동적으로 얻게 된다. 마음의 평화가 바로 그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대부분 투자를 하는 순간부터 후회와 근심에 시달린다. 둘 다 불필요하다.” 본문 57쪽
인덱스 투자는 수수료와 세금, 운영비용 등이 적게 들어 다른 투자수단보다 강력한 경쟁우위를 확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드매니저들과 대부분의 고객들에게는 ‘평균에 안주하는 새가슴들이나 하는 투자’로 불리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은 수수료와 운영비용이 적고, 무엇보다 자주 갈아탈 수 없기 때문에 인덱스 투자에 무관심하고, 개인투자자들은 수익률도 낮고, 너무 장기적이어서 ‘스릴’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찾지 않는다.
하지만 워런 버핏조차 기관과 개인을 통틀어 대다수 투자자에게 가장 좋은 주식투자 방법은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덱스펀드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저자의 말을 마저 들어보자.
“인덱스펀드는 놀랄만한 선택의 자유를 선사한다. 인덱스펀드를 선택하면 투자자는 사실상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항상 시장을 따라갈 수 있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시점, 장소, 기간을 선택해 투자하면 그만이다. 언제든 폭넓은 투자범위에서 한 부분을 신중하게 선택해 길든 짧든 원하는 기간만큼 투자할 수 있다.” 본문 59-60 쪽
저자는 장기투자 프로그램은 적어도 10년쯤의 시간지평을 고려해야 최적화된다고 보았다. 또한 인덱스 투자는 높은 수익, 낮은 보수, 낮은 운용비용, 낮은 세금, 낮은 실수 위험의 장점 이외에도 중목군 위험과 개별종목 위험을 분산해서 없어주고 궁극적으로 전체 시장을 복제하는 포트폴리오여서 시장수익률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게임에서 내 돈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지식하고 소심해서, 결국은 ‘나쁜 펀드매니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쁜 펀드매니저는 곧 인내심이 강하고, 꿋꿋한 펀드매니저인 ‘인덱스 펀드’임을 더불어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덱스 투자는 ‘적은 고뇌’로 투자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투자 이외의 인생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한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저자 역시 이 책을 통해 투자실적을 최대한 올리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재정적인 안정과 자유를 확보하고 안락한 인생을 즐기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만의 투자법을 스스로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1985년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수학 교재로 치자면 ‘정석 수학’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시중에 쌓여있는 ‘얕은 지식으로 무장된 방법론’들은 제 아무리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듣기 좋다고 한들 한 달 지나면 쓸모없는 정보가 되는 ‘선데이 서울’을 가지고 공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