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의 미래 - 디지털 기억 혁명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고든 벨.짐 겜멜 지음, 홍성준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2020년, 기억을 통제하는 ‘기억혁명’의 시대를 대비하라!



  한 사내가 2006년 9월 어느 날, 런던 도심의 한 광장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제품을 모두 불태우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 사내의 이름은 닐 부어맨으로 이른바 브랜드홀릭Brand-holic, 명품중독자다. 기업이 그를 알아보고 브랜드 론칭 행사를 의뢰할 만큼 브랜드에 빠져있던 그는 어느 날 ‘나를 가져봐, 그럼 행복해 질꺼야’라고 말하는 듯한 브랜드들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져서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브랜드와 ‘안녕’을 고했다. 런던의 광장에서 ‘브랜드 화형식’이라는 퍼포먼스를 펼칠 정도고 보면 상당히 극단적인 성격인가보다. 그 후 그는 ‘브랜드 없이 살아가기’라는 행동에 감행한다. 그 과정을 수기처럼 쓴 책이 바로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미래의 창)이다.

 

  몇 해 전 TV에서 방송된 ‘Made in Chana 없이 살아보기’비슷한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본 독자들이라면 익히 짐작하겠지만, 브랜드 없이 살기는 그리 녹녹하지 많은 않다. 브랜드 없이 살기는 쉽게 말해 ‘네떼루(라벨)가 붙은 제품’은 안 보이는 듯 살기다. 그래서 샴푸와 비누는 아예 쓰지를 못하고, 치약도 직접 만들어서 써야 했다(나한테 말했다면 왕소금 한주먹을 줬을 게다).

  심지어 팬티와 양말마저도 브랜드가 있으니...알몸 족이겠다 싶겠지만 다행히 군수품과 재활용센터를 이용해 근근이 거지처럼 버티고 살았다. 단 예외는 있었다. 부어맨은 자신의 생활상을 매일처럼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는데, 컴퓨터는 써야겠기에 애플 컴퓨터의 로고를 칼로 없애고 쓰는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를 읽으면서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며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최소한의 간소한 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살다 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의 소극적 저항이 생각났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앞서 ‘뭔가를 사기買 위해’ 사는 듯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물욕物慾’에 대한 경종을 울린 책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 욕심을 버리면 더 풍요롭고 넉넉한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매일을 내가 뜻하는 생활을 온전히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 부어맨 덕분에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 누그러졌음을 느꼈다. 

  원인이야 어쨓든 부어맨의 브랜드 탈출에 대한 노력은 거의 광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정이 떨어져도 그렇지 난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편집광적 맥락에서 보면 <디지털 혁명의 미래Total Recall- How the e-memory revolution will change everything>(청림출판)저자 고든 벨Gordon Bell과 짐 게멜Jim Gemmel도 이에 못지 않을 것이다. 70세가 넘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있는 것을 익히 느끼고 있는 벨은 특별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사라질 수 있는 인간의 기억들을 컴퓨터에 있는 상세한 e-memory 로써 보충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름하여 ‘마이라이프비츠MyLifeBits‘ 프로젝트다. 



 

   그는 자신의 집과 사무실에 있는 약 13피트 높이의 모든 문서를 하나하나씩 스캔해서 컴퓨터에 저장 시켰다. 사진, 상패, 기념품등의 유형물은 사진을 찍거나 스캔하여 컴퓨터에 보관하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서 보는 모든 것을, 일상생활 속에 잘 배치하고 설치 시켜 놓은 카메라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고, 그 아이의 모든 주변환경을 녹음, 녹화해서 저장하는 작업까지도 포함시켰다.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사람의 기억을 이른바 전자기억으로 만들어 ‘완전한 기억Tatal Recall'화 한다는 이 생각은 결코 뚱딴지같은 생각은 아니다. 저자들(고든 벨과 짐 겜멜)은 이러한 전자기억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궁무진해서 새로운 디지털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 구체적인 혜택에 대해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직장에서 얻는 혜택, 건강상의 혜택, 학습 능력 향상 등이 그것이다. 높은 효과와 활동성, 기어진 수명, 세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들은 기술혁신으로 인해 얻게 된 놀랍고도 실용적인 산물이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자아통찰 능력과 자신의 일상생활을 다시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고, 기억을 하기 위해 애쓰는 수고로움 대신 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 사이버 상태로 짧게나마 영원불멸의 사애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잠재적인 혜택이다.” 본문 24-25쪽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한 근거는 바로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있다. 즉 실리콘 웨이퍼의를 마이크로칩으로 변환하는 비율인 트랜지스터 밀도가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하고 하여 가격은 점점 저렴해지고, 컴퓨터 메모리 기술은 이미 충분히 실현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2020년이 되면 100달러만 있으면 250테라바이트의 저장고를 구입해서 수만 시간의 영상과 수천만 장의 사진을 저장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 적어도 100년 이상의 자료를 저장할 수 있게 되어 대부분의 라이프로거(개인적 일상을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가 가진 녹화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저자들의 근원적인 생각은 ‘전자기억이 활성화되면 완전한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되어 나의 모든 것을 발견 혹은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기억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기억을 원한다. 그러나 완전한 기억은 쉽게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다. 나는 기록, 저장, 정교한 회상기술의 발전 등으로 미루어 현재 우리가 이미 완전한 기억의 시대 초기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다. 2020년까지는 분명 이러한 기술들이 완전한 기억의 시대를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본문 47쪽

 

  저자들은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을 발달로 빅브라더의 탄생을 우려한다면 라이프로그를 통한 전자기억은 나만이 통제할 수 있는 ‘리틀브라더’를 탄생시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제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노쇠로 인한 ‘기억력 저하’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피할 수가 없는데, 마이라이프비츠 프로젝트를 통해 전자기억을 실행시킬 수 있다면 잊은 기억쯤은 10 초 안에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24시간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저장해놓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불이익이나 위협으로부터도 지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이 생각한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바는 바로 ‘기억혁명’인 것이다. 

  책 전반에 걸친 마이라이프비츠가 만들어내는 세상은 인상적이다. 그들이 그린 세상에서 기억이란 잃어버릴 수는 있어도 잊어버릴 수는 없다. 또한 학습에 있어서도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난다. 모든 정보와 지식이 휴대폰만한 단말기 안에 저장되어 있기에 따로 공부하고 외울 필요가 없다. 교육 분야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바로 ‘전자교과서’였다. 이는 얼마 전 애플이 ‘아이패드i-pad'이 출시된 바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아이패드가 전자교과서의 전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지금의 종이로 된 교과서는 완전한 기억Total Recall 시대엔 전자교과서로 전환될 것이라며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째, 그것은 학생들이 녹화하는 기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전자교과서 기기는 필기를 하고, 강조를 하고, 사진을 찍고, 오디오 및 비디오 녹화가 가능해야 한다. 태블릿PC처럼 많은 기기들이 필기, 스케치, 도표 그리기를 보조할 것이다. 기기는 학생들이 과제하는 모습을 녹화할 수 있고,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자세히 기록할 수 있다. 기기를 이용해서 학생이 교과서의 어떤 부분을 얼마나 보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있다.

  둘째, 전자교과서를 탑재한 기기는 전자기억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의견을 줄 수 있다. 전자교과서는 수업시간의 토론 장면을 재생할 수 있고, 필기를 회상하고, 마지막으로 읽었던 부분에 되돌아갈 수도 있다.“ 본문 174 쪽

  심지어 저자들은 비록 초기단계이지만 지금이라도 전자기억을 만들 수 있다며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제 9장. 전자기억 만들기, 이렇게 시작하라). 이 부분을 살펴보면서 나는 전자기억을 만드는데 관심을 두기 보다는 ‘정보저장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컴퓨터와는 상관없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정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오늘날, 내가 만들고 내가 관여된 자료는 잘 관리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보다 쉽게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 점에서 저자들은 일종의 ‘디지털 사서’가 되어 자료와 파일을 검색하기 쉽게 만드는 요령, 안전하게 백업하고 복제하는 요령,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법, 그리고 마음껏 즐기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점점 디지털화로 진화되는 요즘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는 저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실시한 곳이 다름 아닌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이고, 빌 게이츠가 서문에 저자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는 점을 차지도 두고라도, 쏟아지는 정보들이 모두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이를 적절하고 수용하고, 나로 비롯된 정보를 스스로 지켜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이 시간에도 중요한 숙제로 남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 특히 무선통신 사업자, 검색 소프트웨어, 광학기기 사업자, 정보보호 업체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려는 이들에게 유익한 책이다.

 

  한편 나같이 시대에 흐름에 발맞추기도 가랑이가 찢어질 만큼 숨 가픈 ‘어설픈 네티즌’에게는 ‘내가 꿈꾸던 유토피아적인 미래’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어두운 전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10년 후에는 개개인이 자신을 보호하는 카메라를 장착하고 온갖 첨단의 단말기와 장비를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하는 ‘로보캅’같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겼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별 다르겠는가? 한 손엔 2킬로그램의 노트북을 들고, 주머니엔 휴대전화를 넣고, MP3를 귀에 꽂고, 가슴팍에는 T-money 카드를 달고 다니지 않던가? 

  이러한 변화가 필연적이라면 독자인 내가 고민해야 할 바는 이러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이런 시대에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하느냐 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고민해야 할 바도 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득찮은 것은 인간의 망각에 대한 저자들의 부정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망각을 두려워 말라면서 ‘인간은 세세한 것에 대한 기억력이 감퇴할수록 추상화와 통찰의 능력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직관과 지혜는 논리적 판단과 합리적 설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워준다’고 그의 책에서 말한 바 있다.   저자들은 망각을 두려워한 나머지 인간의 합리성과 판단력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자들은 마치 ‘기억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같다는 느낌이었다. 인간에게는 직관과 느낌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람답게 살려면 망각이란 게 필요하단 걸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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