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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
가와시마 고타로 지음, 양영철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불황을 딛고 일어선 유니클로의 성장 비밀
세계적인 의류기업중에 베네통BENETTON이라는 그룹이 있다. 이탈리아 베네토주 트레비소에서 태어난 루치아노 베네통(Luciano Benetton)가 막내 동생의 자전거와 자신의 아코디언을 판 돈으로 구입한 낡은 편물기계로 여동생 줄리아나가 짠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스웨터를 도매상에 팔면서부터 시작된 이 기업은 1980년대부터는 의류 뿐 아니라 선글라스, 시계, 보석, 향수, 화장품, 스키용품 등 다양한 분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기업으로 성장했다.
베네통의 성장에는 세계패션계를 뒤바꿀 중요한 사건이 숨어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모든 의류 회사는 선염가공한 실로 직물을 짰으나, 베네통은 획기적인 후염가공공정 기술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 기술은 원하는 색이면 무엇이든 뽑아낼 수 있게 되었고,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의 스웨터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마치 흑백사진과도 같던 세계 패션계를 컬러사진으로 바꿔놓는 신기원을 이뤄냈다. 게다가 기계설비에 의한 스웨터 제작기술로 제조비용을 낮춰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따뜻하고 질 좋은 스웨터를 입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베네통이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의류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1984년부터 패션 사진 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를 광고 책임자로 발탁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파격적인 광고 때문이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환자, 가라앉는 배 속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 흑인 엄마의 젖을 먹는 백인 신생아 등 사회적 이슈를 파격적으로 다룬 광고로 전 세계에 베네통의 독특한 기업 이미지를 인식시켰다. 일부 국가로부터 광고가 금지되고 판매를 불허하겠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베네통은 이러한 광고를 그치지 않았다.
그 이유 중에는 의류홍보에 버금가는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고급의류로 평가되는 스웨터를 전 세계인이 입을 수 있게 변화된 것처럼 모든 사람은 사상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근원적 휴머니즘’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기업정신은 글로벌 기업으로써 성장할 자질이 충분한 기업이라는 세계의 평가를 얻어내며 성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 베네통의 성장에 비견되는 의류기업이 있다. 바로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장기불황 기간 동안 일본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국민기업’이다. 왜냐하면 얇아진 지갑에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일본 국민을 따뜻하게 지켜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 비밀에는 바로 ‘플리스’가 있었다. 방한복의 내피로 주로 사용되던 ‘플리스’를 유통구조혁신으로 비용으로 낮추고 내피가 아닌 활동복으로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몇 년 전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수입되어 같은 이유로 이제 한국 국민들을 따뜻하게 해주며 점차 사랑을 얻으며 성장하고 있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비즈니스북스)는 '유니클로’의 성장비밀과 이를 가능케 한 창업주 야냐이 다다시를 파헤친 책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니클로와 야나이 다다시에 관련된 책이 100여 권이 출간되어 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책이라 유난히 반가웠다. 원제목은 ‘ユニクロ・柳井正 ― 仕掛けて売り切るヒット力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 걸기만 하면 매진되는 히트력‘이다.
독자로서 ‘기업의 성공스토리’를 읽는 이유 중에는 ‘알면 백 배 더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할 때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소비하는 제품들에는 제 나름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스토리를 알고 나면 단지 필요에 의해 구입할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마치 우리가 세계적인 피켜 스케이팅 선수로 유명한 김연아 선수의 성장과정을 지켜봐 왔기에 경기중 조금의 실수에 안타까워하고 분발할 것을 응원하는 것처럼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 역시 탄생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면 소비자는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세계적인 치킨 프랜차이즈인 KFC의 원래 이름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었다. 그리고 매장 앞에 사람 크기 모양으로 크게 진열된 인형은 바로 창업자인 ‘커넬 샌더슨’이다. KFC는 미국에서 ‘창업은 나이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진리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로 통한다. 왜냐하면 KFC는 창업자인 커넬 샌더슨이 64세에 창업을 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라면 벌써 은퇴를 하고 손자들의 재롱을 살펴야 할 나이에 흰 양복의 할아버지는 특별한 양념과 닭튀김 기계를 차에 싣고, 차 속에서 생활하며 미국의 전역을 돌면서 ‘로열티계약’을 따내며 체인점을 늘려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시켰다. 그럼 왜 KFC로 이름을 바꿨을까?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름이 바뀐 즈음은 튀겨내는 음식은 비만을 부른다는 의학발표가 있고 난 다음이다.
이 밖에도 ‘마시는 소화제’로 통하는 활명수가 독립자금을 대는 기업이었고, 배탈, 설사에 먹는 특효약으로 알려진 ‘특이한 냄새’의 정로환(征露丸)의 이름은 러일전쟁때 일본병사의 물갈이에 의한 설사를 막아준다 해서 러시아(露: 일본식 표기)를 정벌(征)한 환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를 두고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백 배 더 즐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입은 유니클로의 의류가 왜 그렇게 싼 지’를 알게 된다. 또한 입을수록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유니클로의 의류에는 어떤 ‘과학’이 숨어 있는지도 알게 된다. 또한 ‘10년 불황’에 허덕이며 맥을 맥추던 일본의 기업들 속에서 ‘독야청청’할 수 있었던 ‘유니클로의 성장 비밀’도 알게 된다. 우선 기업의 창업주인 야나이 다다시 기업가 정신부터 주목해 보자.
야나이 다다시는 합리적인 사고로 ‘벤처경영’을 실현함으로써 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 ‘혁신’를 이끌었다. 유니클로의 원래 이름은 UNIQUE독자적인 CLOTHING의류 WAREHOUSE창고다. 그는 이름의 뜻 그대로 유니클로를 ‘소비자가 가까운 곳에서 조금씩 자주 사는 옷’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야나이 다다시가 유니클로에서 중점을 둔 것은 바로 패션, 사이즈, 색상, 그리고 TPO(Time, Place, Occasion)였다.
아버지의 소매 의류점을 넘겨받은 야나이 다다시는 제일 먼저 기존의 의류매장이 추구하던 직원들의 접객태도를 바꿨다. 와세다 정경학부를 졸업한 ‘경제통’인 그에게 의류제품은 마땅이 ‘고객이 돌아다니면서 살펴보고 구입하는 물건’이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사라는 게 온통 ‘파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비즈니스는 고객이 ‘사주어야’ 이뤄지는 것인데, 파는 것에만 집중하는 상업주의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업가의 입장에서 ‘매장 안에 들어온 손님이 옷을 사지 않으면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태도로 접객해야 한다는 기존의 판매방법을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마음껏 고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매장을 만들어냈다.
두 번 째는 바로 시간이다. 그는 개장시간을 오전 6시로 바꿨다. 모두가 출근하거나 등교한 이후인 10시에 문을 여는 업계의 관행은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니클로의 고객을 특정 연령대로 지정하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가 애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는 의류기업으로 전환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색상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어느 옷에나 어울릴 수 있는 베이직한 디자인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도입된 방식이 바로 SPA 방식이다.
SPA 방식은 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srel의 약자로 제조직매전문업체를 뜻한다. 즉 자사상표 의류 전문점으로 종전의 납품을 받아 판매하는 일종의 소매방식에서 직접 디자인과 제조 그리고 판매를 동시에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것은 생산단가와 유통비용을 줄여 제품의 생산가를 낮출 수 있었다. 게다가 노동임금이 싼 중국업체에 하청을 두되 ‘완전구매 방식’을 택해 더욱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얻어냈다. 이런 그의 파격적인 경영을 두고 이 책의 저자는 ‘벤처 경영’이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생각은 자주 ‘상식’이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외부에서 야나이 다다시 사장의 결론만 보면 매우 놀라워한다. 하지만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그의 사고 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납득하게 된다. 유니클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원동력에는 그의 합리적인 발상과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큰 몫을 했다. 이는 유니클로와 야나이 사장이 고속성장할 수 있었던 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본문 28쪽
이처럼 다양한 혁신으로 저렴한 가격과 공급력을 확보한 유니클로가 비약적인 성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플리스라는 의류소재였다. 가볍고 얇으면서 보온성이 좋은 플리스는 비교적 두꺼운 옷 보다는 얇은 옷을 겹쳐입는 레이어드룩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플리스는 상품력을 가능케 해서 1999년 2600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를 이룩하며 일본내 최고의 의류기업으로 급성장하게 했다.
이후 폴란드제 다운 솜털을 사용한 다운재킷, 고급 캐시미어 스웨터, GIZA 45라는 이집트면을 사용한 셔츠 등 다양한 섬유소재들을 시도하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고 마침내 2008년에는 신체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소재가 흡수하고 제체적으로 발열과 보온을 하는 상품인 히트텍Heattech을 개발해 또 한 번의 중흥기를 맞이했다. 2008년 가을과 겨울 시즌 상품으로 2,800만 장을 준비했지만, 가을이 끝나기 전에 모두 동이 나버린 것이다.
야나이 다다시는 지난 2008년도 경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올해의 경영자’에서 2위인 소프트방크의 손정의와 3위인 파나소닉의 오쓰보 후미오를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그는 2008년 말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일본 자산가 랭킹 1위에도 올랐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야나이 다다시의 ‘벤처 정신’ 때문이었다.
그가 쓴 책 <1승 9패>라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성공스토리가 그렇듯 실패는 어느 곳이나 찾아온다. 하지만 대기업이 되어버린 유니클로에게 실패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손실을 의미한다. 그는 실패를 감지하면 아무리 큰 손실을 입는다 해도 사업을 접었다. 작게는 재고관리등 시스템 상의 실패에서부터 크게는 외국진출에서부터 중소기업을 능가하는 브랜드까지 판단이 서기만 하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 저자는 실패에 굴하지 않는 그의 ‘벤처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통의 경영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쉽게 궤도를 수정하지 못한다. 하물며 자신의 지시로 시작한 비즈니스가 실패할 때는 그 사업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록 실패에 대한 대응이 늦어져 결국은 큰 치명상을 입게 마련이다.
그러나 야나이 회장은 실패할 경우에는 그것을 단칼에 도려낸다. 실패라는 판단이 서면 단번에 손을 빼고 방향을 전환한다. 이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경쟁이 심한 의류소매업계에서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 103쪽
‘실패는 곧 수치’라는 정서가 짙게 깔린 일본, 그래서 실패할 것 같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일본 사회풍토에서 이러한 야나이 회장의 행동은 거의 미친짓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불황의 일본’에는 가장 주효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야나이 다다시는 그의 책 <1승 9패>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실패할거라면 빨리 실패를 경험하는 편이 낫습니다. 비즈니스는 이론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제 성공 비결입니다.” 본문 105 쪽
머리에서 발끝까지 철저하게 ‘벤처정신’으로 무장된 야나이 회장이지만 그에게도 문제는 있다. 이제 나이 60에 다가선 그에게 유니클로를 맡길 ‘최적의 후임자’가 없는 것이다. 능력있는 CEO를 고용해 봤지만, 야나이 다다시처럼 뼛속까지 ‘벤처정신’으로 무장된 적임자는 아니었다. 나이 50을 넘기면 경영자는 떠나야 한다고 늘 말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평생을 경영해야할 판’이라고 말하는 슬픈 경영자다. 또한 유니클로는 규모의 경제가 불러오는 어쩌면 당연한 ‘대기업병’에 들어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대기업병 일소, 본업 강화, 업종의 다각화를 추진해 ‘매출 1조 엔 달성’을 이룩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경영을 이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오늘도 유니클로를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유니클로의 이야기가 물고기의 비늘이었다면, 이 책은 내게 유니클로라는 물고기를 온전하게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공스토리란 것이 미화되고, 기업친화적인 성격이 있어 책을 읽는 독자는 어느 정도 접어주고 읽어야 하는데,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비교적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기업과 경영인을 대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책의 내용 전부가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유통업계에 몸담고 있는 경영컨설턴트이자 저널리스트인 가와시마 고타로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름대로 경영분석을 기록했다. 원래 유니클로에 대한 책으로는 자서전으로 통하는 <1승9패>가 먼저 출간되었고, 훨씬 더 유명한 책이다. 유니클로에 대한 책이 국내에 출간된다면 <1승 9패>가 출간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텐데, 마치 영화의 속편을 보는 듯해 아쉬웠다. 수소문을 해보니 국내의 어느 출판사가 판권을 소유하고 있을 뿐 아직 출간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루빨리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