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의 진정한 자유는 스트라이크 삼진아웃으로부터! 

 

  낄낄깔깔.. 내 웃음소리에 ‘누가 왔수?’ 동생 녀석이 문을 열었다. 내가 모를 손님이 올 리가 없다. 동생은 금방이라도 피가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 잡고 다른 손으론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포개어진 다리 사이엔 예의 책이 펼쳐 있었고... “만화책도 아닌데...” 심드렁한 녀석에게 ‘이거 한 번 읽어봐라’ 책표지를 보여줬다. “그거, 지금에야 읽는 거에요?” 더 심드렁해져서는 문을 닫았다.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다. 나만 빼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읽은 것 같은 소설, 권하지 않는 책은 절대로 스스로 읽지 않는 동생 녀석도 4 년 전 군대에서 두 번이나 읽은 소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차라리 밥은 굶어도 책은 안 굶는다 생각하는 내가 이 소설을 모를 리가 없다. 신문에서 서평도 본 적이 있고, 이외수의 젊은 시절을 방불케하는 히피와 힙합을 섞은 듯한 스타일의 저자 역시 사진으로 여러 번 봤었다. 만년 조연의 이범수가 첫 주연을 맡았던 ‘슈퍼스타 감사용’의 모티브도 이 소설이란 것도 알고, ‘처녀작 같지 않은 수준급 소설, 하지만 파격이다’는 아헤들의 말은 두 번 더 들으면 백 번이다. 그래도 애써 읽지 않은 건 처음 소설이 나왔을 때는 ‘소설을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어숩잖은 짓들에 심취해 있었고,

  작은 이유는 ‘장명부’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나’만큼 나 역시 대한민국 프로창단의 원년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를 할 정도로 였으니까. 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OB맥주를 신봉하는 아버지의 권유(게다가 물주가 아니던가)에 의해 단 돈 오천 원으로 OB에 몸을 맡겨 회원이란 이름으로 모자와 점퍼를 주워입고 주말이면 학교 운동장, 삼청공원, 장충공원을 전전하며 시합을 뛰었었다, 나도. 

  아, 장명부.

장명부도 싫고 삼미슈퍼스타즈도 싫었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어숩지 않은 로고그림으로 나의 우상 첫 우상인 ‘슈퍼맨’을 욕먹였고, 투수 장명부는 조금 덜 무섭게 생겼다 뿐이지 봉준호의 ‘괴물’ 못지 않은 타자 잡아먹는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난 장명부가 프로야구의 마운드를 점령한 83년을 끝으로 내 사랑, 야구를 버렸다. 그러니 듣도 보도 못한 박민규가 쓴 젠장 맞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을 이유는 하등 없었다. 하지만 운명이란게 어떻게든 맞닥뜨리는 거라면, 그 운명은 어떤 책 때문이었다. 출간된 지 정확히 오 개월 늦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어 박민규와 그의 글맛을 알았고, 단골독자가 될 요량으로 전작前作을 뒤지던 중 원수같은 ‘삼미‘를 제목으로한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 옛날의 트라우마로 잠시 망설였지만, 기어이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긴 건 여기에서도 죽은 왕녀.. 속의 ‘요한’이 여기에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조성훈을 찾아냈다. 요한과 조성훈. 이들은 ‘똑똑한 꼴통’이다. 주인공은 아니면서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핵심적인 꼴통, 머리에 든 것, 말빨, 그리고 시선이 닮았다. 박민규와도 닮았다(외모는 제발 닮지 말기를). 그리고 요한을 만났을 때처럼 단숨에 읽어버렸다.

  박민규는 기발한 기억력과 기막힌 탐구심을 갖췄다(노트북에 글을 칠 때 원고 말고 대 여섯의 창을 켜고 검색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그보다 기발하고 기막힌 기억력과 탐구심이 없는 나를 매료시킨다. ‘정말 그 시절 그랬던가?’ 더듬게 되고, ‘그랬구나’ 싶어 탄복을 한다. 운 좋게도 박민규는 비슷한 또래여서 그가 ‘아~’하고 말하면 ‘어~’할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척~ 하면 삼천리요, 툭~ 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니 쉬이 읽히지 않을 리 없고, 재미없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세상의 시각에선 삼미슈퍼스타즈는 시쳇말로 ‘루저’다.

허용치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버림받은 사람들. 하지만 조성훈이 보기엔 그건 안反삼미슈퍼스타즈의 판단의 오류일 뿐이다. 진정한 슈퍼맨인 그들은 소위 위너들이 만든 기준에 애써 들지 않으려 한 것 뿐이다.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할 뿐 일본에서 홈리스(노숙자)로 지내면서 사회가 부여한 의무로부터의 자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한 그에게 삼미슈퍼스타즈는 진정 ‘사람답게 사는 방식’으로 보였다.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 구조조정을 당하고 아내에게까지 버림받은 ‘나’는 그들의 판단대로 스스로를 루저형 삼미슈퍼스타즈로 여겼다가 조성훈의 교화로 다시 깨어난다. 사회로 버림을 받음으로써 그가 얻은 것은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을 나게 하는 자신의 시간을 얻었다.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5 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본문 264-265 쪽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노이즈 심한 흑백 영상으로 영화를 보여주듯 내 삶의 기억을 건들 때마다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 딸려나와 그에 취해 책을 덮기가 일쑤다. 박민규의 소설은 만화만큼이나 웃기고, 재미있다. 하지만 저 깊숙한 곳엔 페이소스가 진하게 뭍어있다. 그의 맛깔난 글 속엔 뼈가 들어있고, 칼이 숨어 있다. 케케묵은 옛날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이야기하고, 야구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 시선은 세상과 사람을 향하고 있다.

당장의 해결책은 없는 문제제기일지 모르지만 그 속엔 국회에서는 절대로 발의되지 못하는 삶 속 저 깊숙한 우리의 고민과 고통들이 짙게 배어져 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제기만으로 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들의 믿음은 용케도 맞아들어 가는 듯 보인다. 이 소설을 통해 장명부의 대기록을 보면서 그를 다시 알게 되고, 슈퍼맨을 욕보인 삼미슈퍼스타즈를 용서(?)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꺼이 나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기를 바라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마.”

조성훈이 그렇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신경이 쓰였다.

“뭘?”

“회사 잘린 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약간의 분노와 패배감, 불안간은 것들이 재구성된 지구의 표면 위로 떠올라왔다.

“처음 널 봤을 때...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볼?”

“투 스트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본문 235 쪽

  이 글은 새해벽두 ‘정리해고’를 앞둔 수 천의 샐러리맨들에게 던지는 박민규의 격려로 들렸다. 컴퍼니라는 기계 속의 톱니바퀴는 다른 것과 맞물렸기에 안정적이었다. 컴퍼니를 위해 ‘나’라는 톱니바퀴를 들어냈다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오래 맞물려 돌았다면 곧 마모되어 정말 쓸모가 없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혼자가 된 바퀴는 더 이상 컴퍼니를 위해 1분 마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제 혼자 마음껏 구를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1분에 열 바퀴, 백 바퀴도 돌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마지막으로 세상 끝까지 깨춤을 추며 구를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스트라이크였냐, 볼이었냐?’ 하는 과거를 놓고 심판에게 항변하고, 컴퍼니를 원망할 것이 아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면 메두사의 저주로 돌이 되어버린다. 단 둘만 남을망정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며 캐치볼을 하며 오늘을 보내는 두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오늘 ‘지금’을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하는 듯 했다.

  지난 해 박민규를 만난 건 개인적인 행운이요, 기쁨이었다. 늦었지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읽은 것 역시 장명부의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되고자 한 노력이 얻은 소득이었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축구라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야구다. 박현욱이 ‘젠장 맞게도 어쩔수 없는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박민규는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얻고 싶은 남자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축구와 야구가 일상의 기쁨이라면, 두 명의 소설짓는 남자들은 삶의 위안이 된다. 난 이제부터 박민규의 가장 늙은 팬클럽 회원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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