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지너 - 다음 세대를 지배하는 자
김영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공상을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으로 키우는 힘, 이매지닝에 있다!  



한 사내가 커피숍의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 곳을 응시하던 그는 다급히 펜을 들고 쓸 곳을 찾았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잔과 냅킨 뿐이었다. 사내는 쫓기든 냅킨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냅킨에 그려진 그림은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리버의 MP3의 초기디자인이었고, 그 디자인에 대한 가치는 12억 원에 달했다. 이 짤막한 이야기는 책 제목 <12억 짜리 냅킨 한 장>의 제목에 얽힌 스토리다. 떠오르는 상상을 주체할 수 없어 냅킨에 디자인을 그려낸 사내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다. 그는 두 번째 책 <이노베이터>에 이어 얼마전 <이매지너>라는 책을 펴 냈다.

 

  사람들은 하루에 약 24,000번 정도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하루 종일 횡경막이 움직이는 숫자와 거의 비슷한데, 그렇다고 보면 한 번 호흡할 때(약 3초) 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는 셈이다. 심지어 우리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뇌는 깨어 무수히 많은 생각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뇌의 메카니즘은 정말 놀랍고 위대하다. 

  우리가 하루 종일 만들어내는 생각의 대부분은 대부분 ‘쓸 데 없는 생각’ 즉, 공상空想, fancy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미지心像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런 생각들은 거의 ‘바라는 것’ 다시 말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대한 그림들이다. 공상空想,이 헛것이라면 상상想像은 날(born, raw)것이다. 수많은 공상 속에서 ‘쓸 만 한 생각’을 걸러내고 ‘쓸 데 있는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상상想像이다. 우리는 이처럼 ‘쓸 만 한 생각’을 아이디어idea라고 부른다면 떠도는 공상에서 아이디어로 도출되는 모든 과정의 총합을 상상imagine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인류를 먹여살리고 지켜내고 있다. 토머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이론의 말대로라면 인구폭발로 인해 인류가 종말을 맞아야 했겠지만, 60억 인구가 넘어서는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의 ‘쓸 만 한 생각’, 아이디어idea가 있어 유한한 토지와 환경에서도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의 역사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아이디어의 발전사’라고도 볼 수 있겠다. 김영세는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해 새롭게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이매지너imaginer'라고 불렀다. 책<이매지너>를 읽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몇 시간째 혼자서 골똘히 빠져 있는 행위, 즉 소위 ‘멍~때리는 상황’을 김영세는 이매지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을 그려내기 위해 마음껏 상상하는 일련의 과정인 이매지닝imagining은 공상이 아닌, ‘전략적 상상’이라고 보았다.  


 “이매지닝의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일종의 ‘전략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한 공상이나 잡념이 아닌,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가공할 힘을 지닌 두뇌 작용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이 ‘이매지닝’을 통해 이노(INNO)의 수많은 디자인들을 탄생시켰고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변화를 주도해 왔다. 1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에서, 혹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씩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 나는 어김없이 이매지닝에 빠져든다.” 프롤로그 13쪽

  이 책은 저자가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이매지너imaginer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 책이다. 그래서 절반 이상이 지금껏 그가 창조해낸 소산물들의 스토리가 상세한 그림과 함께 마치 도록圖錄를 펼치듯 그려내고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솔하다. 하지만 거기서 그 맛에 취한다면 책맛을 절반도 채 즐기지 못한 셈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그가 생각하는 이매지너의 개념과 이매지너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과정과 실천방법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온전히 체득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의 결과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

  조그마한 소리상자인 MP3에서부터 각종 가전제품, 나아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로고와 네이밍까지 그가 만들어내는 무궁  무진한 디자인제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디자인 정신이다. 그렇다. 김영세의 디자인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조그마한 수저통의 둥근 안쪽 테두리를 열 십자(十) 모양으로 파내어 서로 뭉쳐다니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그의 디자인에는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꿔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딸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MP3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바비라인‘ MP3플레이어를 만든 것처럼 직접 꺼내어 보여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랑이 담겨 있다. 김영세에게 있어 디자인의 시작은 사랑이다. 그래서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의 대상(소비자)이 만족하고 즐거워했고, 높은 호응도는 제품의 매출을 급상승시켰다. 그에게 디자인은 다른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한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디자인인 것이다.

  “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그의 디자인에 대한 마인드의 예는 비단 프로토 타입(눈에 보이는 실제상태의 물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이베이E-bay'였고, 교내 동료들과 24시간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페이스북Facebook'이었다. 그들이 단순히 세상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즉 ‘돈을 위해’ 만들어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영세에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INNO's-Way라고 불러야할 ‘Design First'라는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 방식에 있다. 그는 제품의 디자인을 수주하기 위해 기업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넘치는 아이디어를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A라는 제품에서 불편함을 감지하거나,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면 그는 먼저 디자인을 서두른다. 그리고 그 디자인을 가장 잘 소화해 낼 기업을 찾아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업주의 통제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한한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반면 ‘과연 기업이 채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채택할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이고 유니크한 디자인이 좌우되겠지만, 미래의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라고 판단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그의 설득력이 한 몫을 할 것이라 짐작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생각하는 'Design'이라는 말에 담긴 뜻, 즉 디자인의 정의였다. 그 속에는 우리가 이매지너imaginer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버리고, 추구해야 할 마음가짐이 담겨 있었다.  

  “디자인(design)을 풀어 보면 ‘de+sign'이다. 즉, 기호sign의 구조를 파괴한다destruct는 뜻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변화를 추구한다making a change는 뜻이 될 것이다. 다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본문 120 쪽

  21세기를 디자인의 시대라고 부른다. 미술가들이 순수예술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 그들의 미술을 심어나가는 시대, 첨단 디자인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아이팟과 맥북을 만들어낸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대표적인 디자인 CEO라 여기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디자인의 시대라 해서 우리 모두가 펜을 들고 디자인 제품을 그려내라는 말이 아니다. CEO도 디자인경영을 해야 한다고 해서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공부하고, 자신의 집무실을 최첨단의 디자인 제품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 또한 아니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 경영이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을 ‘디자인’에 두고, 모든 기업 활동을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디자이너는 비즈니스 감각에 맞는 디자인을 할 줄 알고, 경영자는 디자인 감각에 맞는 비즈니스를 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 경영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불편함을 참지 마라’는 것이다. 자신이 이노디자인INNO-Design과 함께 걸어온 여정을 모두 보여준 것은 자화자찬의 자랑이 아니라, 우선 주변에 있는 사물과 사람을 흘러가듯 보지seeing 말고, 주의 깊에 보라는looking 것이었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게 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해주려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불편함과 개선점을 발견했거든 누군가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생각하고 상상해서imagining ‘내가 그린 그림이 나오도록 움직여 개선하라’는 것이다.

  김영세는 이 책에서 ‘나 혼자만 이매지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처럼 생각하고 움직여라. 그러면 당신도 이매지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노베이터>이후 4년 만에 제시한 <이매지너>는 미래의 성공은 ‘디자이너적인 창의력’에 달려 있고, 이런 창의력은 우리 모두가 지닐 수 있는 능력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상상력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거장巨匠의 또 다른 사랑의 디자인으로 비춰졌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늘 반갑다. 만날 때 마다 생각의 크기가 조금 더 커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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