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진주 지음 / 북극곰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 그 따위로 트레킹 하려면 떠나지 마슈! 


  지난 초여름에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지겨운 밥벌이와 지친 일상을 등지고 네팔 외국인 노동자의 유골을 전달해주기 위해 떠나는 ‘최’의 여정은 영화라기보다는 히말라야 기행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도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고, 고산병에 시달리는 최민식의 리얼한 연기는 ‘진짜 고산병이 아니었을까’하는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계속 보였던 네팔의 산, 산, 산은 잊을 수가 없었다. 산 중턱의 황량한 불모지대不毛地帶를 터벅거리고 걸어가는 최의 등에서 ‘중년의 외로움’이 느껴졌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산은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살 날日’로 보였다. 흩뿌리는 돌바람에 피우는 담배 맛은 어떨까? 고생을 사서 떠난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아마도 그 답은 평생 풀리지 않을 것이다. 지인 중에는 외국인노동자도 없거니와 유골을 들고 갈 용기는 더더욱 없으니까... 하지만 꽤나 많이 그곳으로 떠난다고 한다. 유골 대신 배낭 메고 지팡이를 짚으며 ‘트래킹’을 떠난다고 한다. 이런 부류 역시 궁금하다. 그들은 그곳으로 왜 떠날까?

  책 <안나푸르나, 그만가자!>는 그 의문 때문에 집어든 책이다. 아무리 계산을 해보고 머리를 굴려 봐도 내가 내 생애에 그곳을 갈 일은 없을 것 같아서다. 너나 할 것 없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터라 ‘여행기’는 차고 넘치지만 ‘히말라야 트래킹’을 이야기한 책은 처음 본 듯 하다(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죽기 전엔 꼭 한 번 해보자고 다짐한 ‘산티아고 순례‘와도 비슷하지 싶었다.

  이 책은 자체가 흥미롭다. 우선 신생 출판사의 첫 책이라는 점, 그리고 ‘북극곰’이라는 출판사의 이름에 걸맞게 ‘생태환경 분야 전문 출판사’를 표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책의 맨 뒤편에는 “이 책은 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으로서 재생지를 사용했으며,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저마다 그린 경영을 주창하면서 비닐봉투에 포장해주는 대기업보다 낫다 싶다. 



사진출처 :  영화 - 희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 트레킹 사진을 보고 싶다면 클릭! : 야크존 ABC 트레킹 포토 앨범 



   이 책 속의 글은 9 년 전에 써진 글이다. 글맛을 보니 20대 초중반에 쓴 듯, 출판을 고려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트래킹을 하던 그 날 그 날을 적은 듯 체험이 생생히 배어 있었다. 그리고 매일처럼 죽도록 고생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그득했다.

모두 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는데, 책 제목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는 깊은 속뜻이 담겨져 있었다. 제목을 풀어서 말하자면 “여보슈, 그따위로 크래킹하려면 안나푸르나에 가지 마슈!”라고 해야 할 듯. 태고의 자연이 숨 쉬는 그곳을 찾아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5년 한 해에만 약 20만 개 이상의 빈 생수 병들이 안나푸르나에 버려지거나 땅에 묻혔다고 한다.

  이 책에 주목해야 할 부분은 후반부에 있는 ‘환경 친화적인 모범 트레커‘다. 나와 자연 단 둘이 남겨져 철저하게 자연 속의 나를 경험하고 싶다면 가급적 배낭을 비우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트레커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평생의 한 번이지만 네팔 GDP의 40%를 관광업으로부터 충당하고 있는 히말라야는 산림 훼손과 쓰레기, 매연, 생활 오수 등 서구 문명의 부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죽하면 파탄이나 무스탕 제국은 외국인의 출입까지 금지하는 조치를 내릴 정도라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모범 트레커의 기본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식사를 주문할 때, 조리하는 데 연료가 덜 소모되는 달바트를 주문하라. 현지의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적선하지 말라. 통과하는 마을의 생산품을 구매하라. 쓰레기 봉투를 항상 휴대하라. 네팔 사람들의 초상권을 존중해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라. 트레킹 중에 똥을 싸거들랑 똥을 닦은 휴지는 모두 태워 버려라. 볼 일도 성스러운 곳은 피해서 보라.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는 환경 처리된 비누도 사용하지 말라. 트레킹 도중에 생수를 사 먹지 말고, 물통에 아이오다인을 넣어 정화된 물을 마셔라. 토양의 침식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한 트레킹 길을 벗어나지 말라.



 

   외국의 자연을 볼 만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화석연료를 태워가며 떠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가항력은 둘째 치고라도 가능한 부분은 노력할 수 있겠다. ‘나는 곧 죽어 없어지지만 지구는 남는다’는 누구의 말처럼 내가 보는 오늘의 지구와 자연은 잠시 빌린 것 뿐이다. 후세에도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트레킹에 생각이 없던 터라 그곳에서 지켜야 할 자연보호 에티켓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신선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어디 자연 뿐이랴? 문화재는 어떤가? 어림없다. 문 밖을 나가면 되도록 쓰레기일랑 만들지 않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식도락가들에게 있어 맛집은 자기만의 '헤게모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잘 이야기해 주질 않는다. 지금이야 디카에 노트북을 들고 '맛집순례'하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순례기'를 세상에 뿌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그런 일 일랑 어림없었다. 어디 좋은 곳 추천해달라고 하려면 최소한 그곳에 가서 '식사값'을 치뤄야 하는 조건이 따랐다. 그들은 왜 자신만 알고 있는 맛집을 함부로 소개하지 않았던 걸까? 훼손되기 때문이다. 온전한 맛집은 단순히 음식맛이 아닌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음식맛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알려져서 손님이 많아지면 자신이 예전에 느꼈던 그 풍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게가 유명해져서 주인이 돈 버는 것이야 손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히려 돈 벌어 가게를 넓히고 화려하게 치장해서는 주인장이 '기둥서방'처럼 꾸미고 카운터에 앉게 되면 더 이상 맛을 찾는 단골은 가질 않는다. 더 이상 그 맛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 또한 맛집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문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불리는 중국의 '샹그리라'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야! 너희들 동원훈련 가거들랑 깨끗이 좀 써라. 매주 새로운 애들이 와서 사흘 동안 더럽히고 떠나면, 남은 현역 군바리들이 나흘 동안 치워야 해. 알았어?” 대학 친구 중에 예비군 중대에서 조교로 근무했던 녀석의 말이 생각났다. 네팔 정부가 여행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우연히 뽑아든 여행 책에서 ‘자연환경’을 배웠다.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여행을 말리는 여행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인상 깊은 책이었다. 

P.S.: 그나저나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 최민수는 담배를 꾀나 많이 피웠는데...담배꽁초들, 주머니에 따로 넣어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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