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음모론서가 아닌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작전계획서!  



  항상 누군가로부터 뒤를 쫓긴다는 눈빛을 지닌 사내 제리 플레쳐는 뉴욕시에서 택시 운전사다.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살고 있는 그는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승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은 거의 엄청난 음모에 관한 것들, 예를 들어 식수에 비금속원소가 섞여있어 곧 한꺼번에 죽을지도 모른다거나, 현행 국제 금융정책 등의 숨겨진 비밀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 이야기는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 <컨스피러시>의 줄거리인데, 이 책<화폐전쟁Currency Wars>을 펴면서 계속 두려운 눈의 사내 제리 플레쳐가 떠올랐다.

  방대한 역사적 자료와 증거들을 보면서 저자가 이 책을 쓴 방 역시 영화속의 제리처럼 자료들로 뒤죽박죽이 된 음습하고 어두운 방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전반부는 국제금융과 세계를 뒤흔드는 핫머니를 주무르는 어두운 손(이키유바라최는 이를 그림자 정부’라 불렀다)의 정체를 밝힌 음모론적 성격이 짙다. 

"우리 주변엔 음모 과대편집증이 도사리고 있다. 이 편집증에 빠진 사람은 이들 음모가 자신의 숨통을 조여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황당한 음모는 신문 등의 인쇄매체는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도 유포되며, 음모설(conspiracism)은 일종의 사종교 같은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음모 편집증에 걸린 사람들 중엔 O.J 심슨이 일본의 마피아의 농간에 놀아났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찰스 황태자가 신세계 질서의 꼭두각시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1997년 6월 1일자 '뉴스위크'지

  음모는 진실과 오해의 중간, ‘아직 알 수 없음’의 단계다. 음모론의 당사자가 터무니없는 오해라며 진실을 밝힌다면 확인될 내용들을 굳이 밝히지 않기에 ‘음모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세간의 음모들이 ‘대꾸할 여지조차도 없기에’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음모가 진실의 전모에 일부 관여되어있거나, 그것이 진실로 밝혀질 경우 향후 치명적인 결과를 낳거나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어떨까? 특히 그것이 우리의 삶과 직결된 경제에 관련된 음모라면 그저 흔한 음모로 남겨둬도 괜찮은 것인가? 이 책이 2007년 7월 중국에서 출간된 이후 24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1년 만에 100만권 이상이 팔려나간 사실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자인 쑹훙빙(宋鴻兵ㆍ40)이라는 중국인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저자는 9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정보공학과 교육학을 전공하며 오랫동안 미국 역사와 세계 금융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최근까지 미국정부보증기관인 페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컨설턴트 고문을 맡았다. 는 이때 미국의 금융파생산업에 깊이 접촉하고 최종적인 시스템 회계와 고객을 겨냥한 제품을 설계했다. 쑹홍빙은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존 고든의 말을 빌리면 ‘상혼만 넘칠 뿐 청지기 정신은 부족한 월가의 금융인’이었던 셈이다. 그는 금융파생상품을 설계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귀국하기 전 4년 동안 미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일했다. 이번 금융위기가 처음 터진 곳들이다. 당시 금융상품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고, 파생상품이 아무런 제재 없이 팔리는 것은 거대한 힘이 작용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2008년, 11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

  그 후 금융의 ‘배후세력’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이 책을 완성하게 된다.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화폐의 메커니즘을 통해 화폐를 지배하려는 상업은행의 권모와 술수가 곧 중세 이후의 역사라는 것을 밝히고 그 배후에는 로스차일드가를 비롯한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세계 제일의 갑부는 빌 게이츠가 아닌 로스차일드 일가이고, 달러를 만들어내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사실 민간 중앙은행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 대통령의 피살 비율은 미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선부대의 사망률보다 높은데 대통령들이 피살된 이유는 달러의 발행권을 되찾으려는 이들의 시도가 세계 금융세력에게 들통나 축출되었다고 말했다.  

 

  그 밖에 부동산 대출이 빠르게 증가할수록 당신 손에 든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채무의 화폐화와 부분 준비금 제도가 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가? 누가 황금을 ‘요괴시‘하는가? 왜 황금이 진정한 ‘화폐의 제왕’인가? 등의 의문에 대해서 답을 제시했다. 주목할 점은 누가 금융 파생상품 시장에서 매점매석을 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답을 하면서 곧 현실로 들어날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예측을 했다고 볼 수 없다. ‘내부인’으로서 그 내용을 미리 본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단순히 위와 같은 세계금융경제의 음모론을 폭로하는 데 있지 않았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미래를 염려해서 썼다. 그가 전문가적 관점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세계의 기축통화로 통용되는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2009년 6월말 현재 외환보유고가 2조 1,32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지난 1978년 흑묘백묘론과 선부론이 있기 이전의 책이었다면 이 책은 이만큼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혁개방 이래 30년 동안 중국은 풍부한 노동력으로 값싼 중국제품을 만들어 세계를 중독시켜 왔다. 그래서 이젠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가져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달러를 보유하게 되었다. 한편 이번 미국에서 시작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은 미국이 신용창출을 통해 자신의 지불능력을 초월하는 소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마음껏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구조를 들여다보면 달러에는 소수가 다수의 부와 자원을 쥐고 흔드는 구조적 모순이 그득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 1997년에 일어난 아시아 외환위기는 물론 현재의 금융위기 역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일명 ‘양털깎기’ 수법에 의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즉, 국제금융자본이 아시아 금융위기 때 버블을 일으킨 뒤 한꺼번에 유동성을 회수해 자산가치를 폭락시키고 큰 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파생금융상품의 본질은 달러와 같다고 보았다. 즉 채무라는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은 채무를 포장한 상품이며, 채무의 컨테이너다, 채무의 창고, 채무의 히말라야 산이다.” 나아가 저자는 서브프라임과 알트A 모기지 대출은 자산쓰레기이고, 서브프라임 CDO는 농축성 쓰레기 자산이며, 합성 CDO는 순도 높은 농축성 쓰레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생금융상품으로 빚어진 이번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는 전형적인 채무의 내부 폭발형 위기라고 보았다. 이는 달러의 미래를 말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채무화폐가 구동하는 경제 발전의 규칙이다. 즉 채무로 화폐를 창조하고, 화폐는 탐욕을 가즉하며, 탐욕은 채무를 가중시킨다. 채무는 내부 폭발을 유발하고 그 결과로 긴축이 발생하며, 곧이어 경기 쇠퇴로 이어진다.” (480 쪽) 

  저자는 이 책을 쓴 후 2008년 중국으로 귀국해 베이징 홍위안증권에서 파생상품부 총경리로 근무중이다. 월가에서 파생상품을 만들었던 그가 이젠 중국으로 돌아와 현장에서 뛰면서 미국경제와 달러의 진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이 음모론이고, ‘삼국지’와 같은 팩션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저자는 기축통화 생산국이라는 이유로 흥청망청 소비하며 순채무국이 되어버린 미국과 달러에 이젠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채무화폐의 전형적인 사례인 달러는 채무가 발생함과 동시에 발행되고 채무상환과 동시에 폐기되는 일종의 차용 증서이다. 채무와 화폐가 연동되어 있으므로 채무는 늘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이 같은 악순환은 무거운 이자 부담으로 말미암아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결국 모든 체제가 붕괴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채무화폐야말로 현대 경제에 도사린 심각한 잠재적 불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뭘까? 저자는 금은화폐로 대표되는 비채무화폐라고 보았다. 금은화폐는 ‘실질적인 소유’를 나타내고 법정불환지폐는 ‘차용증+약속’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금본위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채무화폐의 종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채무화폐의 본질이 차용증서에 약속을 더한 종이에 지나지 않으며 이른바 달러 재산이 ‘지나치게 과장된 영수증’과 ‘재산에 대한 무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는 순간, 이 채무 영수증은 영원히 평가절하되고, 그 속도는 달러를 찍어내는 사람들의 욕심 크기에 비례할 것이다. 금융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대중은 직감과 상식에 기대어 자신들이 피땀 흘려 창조한 재산의 ‘노아의 방주’ 금과 은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금융파생 도구로 무장한 국제 금융재벌들은 이런 대중을 대상으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 ( 399~400 쪽)

  그러면서 그는 금은을 기축으로 하는 안정된 중국 화폐 도량형 체계를 세워 채무를 화폐 유통 영역에서 단계적으로 축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제시장에서 금융의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상품의 가격 결정권도 갖지 못하고 경제 발전 전략의 주도권도 빼앗기게 된다면서 이것이 바로 중국 화폐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라며 오늘의 중국은 금은 보유고를 늘리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중국 화폐개혁의 최종 방향은 중국의 국가 실정에 맞는 금과 은을 기축으로 하는 ‘이중 병행제 화폐 체계’를 세워 세계 주요 기축화폐로 향하는 전략적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만약 중국 정부와 국민이 매년 2,000억 달러 규모로 금을 모은다면 온스당 650 달러로 계산할 때 9,500톤의 황금을 구매할 수 있어 미국의 금 보유고 총액 8,136톤과 맞먹는다. (중략) 전 세계에서 6,000년 동안 캐 모은 황금의 총량은 14만 톤에 불과하며, 유럽과 미국 중앙은행의 황금 보유고는 2만 1,000톤이다.

 1990년대에 유럽 중앙은행이 행한 금 대출 광풍을 고려하면 합계가 20,000톤도 안 될 수 있다. 온스당 650달러라는 현재의 금 가격으로 계산하면 4,000억 달러밖에 안 된다. 중국이 거대한 무역 수지 흑자로 4,000억 달러의 금 보유고를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3년이 될 것이다. 구미 중앙은행의 총알은 얼마 안 가 다 떨어져버릴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왕성한 식욕으로 5년 동안 황금을 먹어치운다면 국제 금값의 상승으로 국제 금융재벌들이 설치한 달러 장기 금리의 상한선을 자극할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달러 화폐체계가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게 될 것이다.“  (429~430 쪽)

  물론 현재 달러가 기축화폐로서의 지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 파운드화의 퇴출은 영국의 경제쇠퇴 때문이었지만 경제가 쇠퇴한 후에도 상당기간 파운드화는 굳건했지 않은가? 하지만 현재 볼 때, 향후 달러는 계속 절하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외환 보유고를 가지고 있는 중국은 어쩌면 쑹홍빙에게서 점점 종이로 되어가고 있는 달러를 해소할 수 있는 답을 구했는지 모른다.

 중국은 지난 5월 현재 금 보유량이 10년 전 395 톤에서 지금은 1054 톤으로 배 이상 늘어나 세계 5위의 금 보유국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중국 당국은 금 매집 의향을 숨기지 않고 서서히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또한 중국은 오해 주요 20개국의 모임인 G20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금보유를 늘려 이를 기반으로 한 새 통화를 만들어 기축통화로 삼자고 브라질 등과 함께 주장하고 있다. 쑹홍빙의 말처럼 중국화폐를 현재의 위안화가 아닌 ‘금은화폐 체계‘로 전환을 추진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달러를 넘어 금보유고 역시 최고로 늘리려는 시도는 중국에서 책이 출간된 2년 동안 계속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다시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은 중국이 <화폐전쟁>을 과연 음모론에 관한 책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당장 저자인 쑹홍빙을 지난 5월에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9'에 초대해 특별강연을 요청하지 않았던가? 쑹홍빙의 발언에 무게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중국과 위안화에 계속 주목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을 일러 ‘만만디 정신’의 민족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결코 ‘당장’을 생각하지 않는 민족이다. 최소 5~10년의 기간을 두고 달러를 쌓아두고, 금을 사들이면서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고양이 발걸음처럼 조용히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걸음걸이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변화를 감지할 때 민첩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한 걸음을 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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