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미쳐야 미친다>가 과거라면, <한국의 책쟁이들>은 현재의 독서광들이다!

  무슨 책의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움켜쥐었나보다. 책갈피로 머리카락 하나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손으로 치우려고 하다가 ‘아서라, 그냥 둬도 괜찮지 않겠나’ 싶어 그냥 두었다. 나중에 온통 백발(외가 식구들이 모두 백발인데, 난 외탁이란다. 서른이 막 넘어서자 귀 옆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이 되어 다시 볼까 싶다만 이 책을 다시 본다면 젊은 시절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만나면 새롭겠다 싶었다. 알 수 없다. 있지도 않은 자식이 발견한다면 ‘뉘 머리카락’일지 궁금해 할 것도 같았다. 

  흔적. 내가 읽은 책에는 흔적이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 집어들었다 끼적거리고, 다 읽고 나면 언제 읽었노라 표시를 한다. 완完 자도 넣고, 주제넘게 서명도 한다. 어떤 책은 이러기를 네 다섯 번을 하고, 어느 책은 시작만 하고 아직 맺음을 못한 책도 있다. 온라인에 책읽은 소감을 적은 리뷰를 하기 전에는 색지가 들어간 앞장에 독후감을 적었더랬다. 어린 동생들이 봐도 좋고, 훗날 생길지도 모를 자식이 읽어봐도 좋겠다 싶었다. 책에서 건진 생각들, 느낌들을 적었다. 그 날의 日記도 조금 넣었다. 흔적. 눈으로 쫓아 표식이 나질 않아 굳이 읽었노라 표시했다. 접고, 줄을 치고, 괄호를 넣고, 행간에 비평 아닌 비평도 함께. 모두 읽고 나면 무게는 그대로일진대 두께는 늘었다. 읽었구나 싶어 흐믓해진다. 세상을 헤엄치는 나라는 물고기의 비늘이 한 개 더 생겨난 것처럼. 책에 흔적을 남기고 나면 내가 책이 되고, 책이 내가 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해 생기는 흔적도 적지 않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는 눈물 흔적이 그득하다. 고등학생 시절 할머니의 장례를 보러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읽은 최인호의 <천국의 계단>보다 눈물 흔적이 더 많은 것 같다. 재채기를 할 때는 내 침이 뭍었을테고, 마른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길 때도 침이 묻었을테다. 라면 국물이 튄 적도 있을테고, 한 여름엔 과일즙도 떨어졌을 게다. 커피가 엎어져 테두리가 염색된 책들도 꽤 많다. 모든 흔적에는 시간이 뭍었고, 사연이 뭍었다. 그리고 그 속에 나도 함께 뭍혀 있다.

  그래서 방안에 그득히 있는 책 중에 흔적이 있는 책은 내 책이요, 아직 흔적이 없는 책은 내 책이 아니다. 잃어버려도 모르고, 누구에게 준다 해도 딱히 상관이 없다. 새 책은 아직 값을 치루지 않은 서점의 쌓인 그것들과 다름 아니다. 책을 펴보지 않아서 그 책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아직 내 비늘도 아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꽂힌 책장을 살피기는 그래서 괴롭다. 이 책을 들자니 저 책이 울 것 같고, 저 책을 뽑으려 하니 바로 옆 책이 함께 달려 나온다. 더 괴로운 것은 모두 읽어내지 못하면서도 계속 해서 새 책을 들인다는 것이다.

 책장에 무사히 분양이라도 받으면 좋으련만 세로로 꼽히지 못한 채 가로 누워 제 배 위에 동지를 맞아들이는 책들이 백 수십 권이 넘는 형편이니 또 괴롭다. 이것이 병病일까, 벽癖일까 고민했다. 그런데 책 한 권을 읽고 고민하기를 관두기로 했다. 광狂이라 표현해도 부족할 사람들이 그득했기 때문이다. 책고수라 불려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사람들이 책 한 권에 모였다. 임종업의 <한국의 책쟁이들>이다.



 

    책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책을 모으는 재미다. 휑하던 방 한켠에 커다란 책장을 들여놓고 ‘이 너른 곳에 언제 책을 모두 채울꼬’ 걱정을 한다만 세월이 세월을 먹을 무렵이 되면 또 책장 걱정을 해야 한다. 이를 몇 번 하다 보면 책장 값이 책 백여 권은 살 수 있는 정도가 되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만나게 된다. 한 권 한 권이 모여 한 칸을 채우는 재미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실제로 머리로 가슴으로 그만큼을 소화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그랬기를 바라지만) 흔적이 뭍은 책들이 그득함은 절로 뿌듯해진다. 정도가 심해지면 독서를 위한 책을 넘어 책을 위한 책으로 번지게 된다. 어떤 책이든 초판 1쇄 권을 손에 넣고 싶고, 추앙하는 작가가 생긴다면 그의 모든 책을 손에 넣고 싶어진다. 신간을 파는 서점을 넘어서면 헌책방을 찾게 된다. 값이 헐어서 좋고,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어 귀해져서 좋다. 혹여 저자의 서명이 있다면 더 좋을테고, 항상 생각에 있던 책을 만난다면 산삼을 캔 심마니의 기분이 든다. 이 정도 되고 나면 ‘독서인’이 아닌 수집가, ‘책사냥꾼’이 된다. <한국의 책쟁이들>은 책사냥꾼들의 이야기다. 그것도 한 분야에 대해 궤를 뚫어볼 만큼 탁월한 지식과 독서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가 헌책방을 순례하면서 이들을 발굴하고, 인터뷰를 했으니 르뽀요 다큐멘터리다. 좀처럼 보기 드문 작업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책에 담긴 스물 여덟의 책사냥꾼들은 실로 대단하다. 이들을 논하기는 입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북카페를 차리기 위해 이십수 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 둔 사장도 있고, 결혼도 하지 않고 노년을 책과 함께 보내는 전직 비즈니스맨도 있다. 책을 사느라 재산을 탕진한 사람은 손으로 꼽기도 어렵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장르도 다양하다. 책장이 있는 서재 대신 온라인에 서가를 꾸민 이가 있는가 하면, 낮엔 북카페였다가 밤엔 개인 서재로 바뀌는 전천후 서재도 만나게 된다. 



 

   이 즈음에서 책 수집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이 뭔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 과시하기 위한다기 보다는 스스로가 만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편 심리학적으로는 ‘손실 기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손실을 싫어한다.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그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처참함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손실 기피loss aversion이다. 예를 들어 딱히 필요 없던 물건을 손에 넣는다면 ‘무엇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면 내가 필요가 없음에도 주기는 영 마득찮다. 이렇듯 사람들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대, 동일한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두 배로 큰 상실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손실기피는 타성, 즉 현재 갖고 있는 것을 고수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만약 10년 동안 애용하던 만년필을 경매에 내놓는다면 나는 소비자가보다 더 높은 값에 내놓을 것이다. 소비자가 이상의 가치는 내가 그 만년필과 함께한 세월의 가치가 뭍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그들이 소장한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헌책방을 뒤져 찾아낸 보물을 어떻게 남에게 넘길 수 있을까? 소중한 책을 찾아낸 기쁨은 계속 추구하고 그것들을 잃어버릴 슬픔을 마다하니 책이 모일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도 책은 자신이라는 물고기의 비늘인 셈이다. 

  이 책을 통해 ‘미쳐야 미친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전문가 뺨치는 식견으로 무장하 이들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진 인간의 열정’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1800년대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가장 고귀한 질병, 바로 애서광증(愛書狂症)에 일찌감치 푹 젖어버린 분'이라며 젠틀 매드니스Geltle Madness라 표현했다. 책에 빠져버린 점잖은 미치광이, 책에 빠진 점잖은 사람들이 이들이 아닐까. 무엇인가 미치도록 좋아하고 싶거든 이들처럼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미쳐 있기에 행복한 사람들이다. 책을 덮고 난 소감은 그저 미칠 것을 찾지 못해 아쉽고, 혹은 아직 덜 미쳐서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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