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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존 보글 지음, 이건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인덱스펀드>를 만든 월스트리트의 양심 '존 보글', 주식시장에 일갈하다!
존 보글John C. Bogle은 말했다. “충분함을 알아라.” 우연한 성공에 도취되어 너무 규모를 키웠다가 말 그대로 ‘거지’가 된 사업가, 상자 하나에 가득 담긴 현금뭉치에 현혹되어 평생을 일궈놓은 명성을 날리고 쇠고랑을 찬 정치인, 선무당 즉, ‘초심자의 행운‘인 것을 모르고 마치 행운의 여신 운운하며 가산을 도박으로 탕진한 사람들. 이들에게 닥친 모든 화禍의 근원은 ’충분함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 보글을 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금융인들이 엮어낸 금융 시스템과 기업세계에 대해 일갈을 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충분함을 모르는 민주자본주의를 살고 있기 때문에 작금과 같은 슬픈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훌륭한 화두를 던진 존 보글John C. Bogle이 누굴까?
존 보글은 뱅가드그룹을 설립하여 1975년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개발한 세계 투자계의 거장이다. 그는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철학으로 투자를 해오면서 ‘월스트리트의 성인St. John’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07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지켜보면서 금융인과 투자자에게 돈과 비즈니스 그리고 인생에 있어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올해 책을 폈다. 원제목은 Enough: True Measures of Money, Business, and Life. 한국판 제목은 <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지침서>이다.
그의 목소리를 빌려 ‘충분함’에 대해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충분한 줄 모르면 직업적 가치가 타락한다. 투자를 위임받은 수탁자들이 세일즈맨으로 전락하고 만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이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된다. 더욱 나쁜 일은, 충분한 줄 모르면 우리는 인생 전반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점이다.” 12쪽
존 보글은 이 책에서 충분함enough을 모르면 부에 대한 숭배와 직업윤리의 타락, 나아가 인격과 가치의 파괴까지 경고했다. 그의 이러한 경고는 금융 산업에 종사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이봐, 금융인으로서 이건 아니잖아?”라고 반문하고, 투자자에게는 “당신은 돈을 벌려고 투자하는지 모르지만 투자회사에 돈을 맡기는 순간부터 돈을 잃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 전반에 걸친 내용들은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금융시스템의 문제점과 주식시장은 급속하게 팽창되었음에도 정작 큰 이익을 본 투자자가 없는 이유(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월스트리트의 산증인이자 원로로서 금융계에 던지는 경고이자 은퇴자의 양심선언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펀드매니저들이 어떤 분야의 귀재라고 굳이 표현하자면, 이들은 투자자의 돈을 빼내는 데 귀재라고 할 수 있다. 2007년에 뮤추얼펀드 시스템에서 발생한 직접 비용(주로 운용보수와 마케팅 비용)이 모두 1천억 달러가 넘었다. 여기 더해서 펀드는 증권회사에 거래수수료 수백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으며, 변호사와 기타 관련 회사들에도 간접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펀드 투자자들은 투자상담사에게도 매년 약 100억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략)
이런 비용이 매년 거듭해서 발생한다는 점을 잊지 마라. 현재 수준이 유지된다면(내 생각에는 증가할 것 같지만), 전체 중개비용이 10년 뒤에는 무려 6조 달러에 이를 것이다. 이 금액을 현재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15조 달러이고, 채권시장의 시가총액이 30조 달러인 점과 비교해보라.” (53-54 쪽)
현재 우리나라의 펀드상품 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수신고가 많은 펀드상품을 제외한 나머지 상품에는 펀드매니저들이 수시로 바뀌고 있고, 자기자본으로 투자해 본 경험도 없을 것 같은 나이의 펀드매니저들도 참여해 투자자의 돈을 굴리고 있다. 투자자에게 좋은 펀드상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먼저 필요하다는 말은 차라리 그런 안목으로 ‘직접투자에 나서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더 빠르다. 평생 동안 모은 투자자의 종자돈은 투자수익은커녕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명목의 높은 수수료 때문에 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펀드주식투자 시스템의 실상이다. 높은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투자자들이 보상을 받는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존 보글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융 시스템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문제는 이런 가치를 얻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 가치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답은 명백하다. 금융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부문일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스스로 지불한 비용 수준과 비슷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유일한 산업이다. 실제로 간단한 산수의 잔인한 법칙에 따르면, 투자자들 전체로 보면 이들은 자신이 지불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역설적으로 말해서, 투자자들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보상을 모두 받을 것이다!).” 55쪽
그는 또한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직업적 윤리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류 펀드매니저들은 수억 원의 연봉을 챙기고, 실패해서 쫓겨나는 CEO들을 포함한 상장회사의 CEO들은 외설적인(존 보글의 표현에 의하자면) 수준의 보상을 받고 있다. 상품취급에 앞서 자세하게 이해도 하지 못한 채 투자자를 유치해 키코와 파생상품의 투자에 따른 손해를 입히고, 대마불사 운운하며 아직도 ‘투자자의 자금을 소중하게 키우겠다’고 연일 선전하고 있다. 존 보글은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모럴 헤저드 즉, 도덕적 해이를 꼬집었다. 쉬운 예로 매년 금융산업으로 몰려드는 구직자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의 동기가 업業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려는 쪽일까, 아니면 사회로부터 얻어가려는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을까? 땅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정리해보자. 존 보글의 충고를 따르자면 투자자는 우선 ‘충분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위의 잭팟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충고일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의 금융 투자시스템으로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조언이다. 번듯한 회사와 다양한 상품, 친절한 서비스와 혜택 운운하는 매체의 광고들은 투자자들을 수익원으로 보는 투자회사들의 상술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어디에 투자해야 한단 말인가?
존 보글은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인덱스 펀드가 무엇일까? 인덱스 펀드는 증권시장의 장기적 성장 추세를 전제로 하여 주가지표의 움직임에 연동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운용함으로써 시장의 평균 수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포트폴리오 운용기법을 말한다. 인덱스 펀드는 최소의 인원과 비용으로 투자위험을 효율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한 적은 종목으로도 주가지표의 움직임을 근접하게 추적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자산운용의 핵심이다.
인덱스 펀드의 장점은 효율적인 분산화 실현, 증권매매에 따르는 비용 절감, 저렴한 운용비용, 투자자 스스로에 의한 운용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단점으로는 목표 인덱스보다 낮은 투자성과, 구성종목 교체의 곤란성, 비편입종목에의 악영향, 증권업계의 침체 등이 지적되고 있다. 국내에서 발표되고 있는 주요 인덱스에는 코스피지수(KOSPI:Korea Composite Stock Price Index)와 코스피200지수, 한경지수, 매경지수 등이 있다.
주식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익히 아는 운영기법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좀처럼 들은 바가 없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해서 은행의 예금 등으로 투자금이 빠져나가려고 하면 그때서야 매체에 등장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덱스펀드는 장기투자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과 증권매매에 따르는 비용이 절감되고, 운용비용이 절감되는 점, 마지막으로 투자자 스스로에 의한 운용한다는 점들은 투자회사의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 않은 운영기법이기 때문에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전한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있어서는 인플레이션을 보전하는 효과가 있는 이 상품이 제격이다. 개미투자자들의 친구인 ‘시골의사’ 박경철도 지난 해 낸 책 <주식투자란 무엇인가>에서“주식시장에 대해 충분한 공부를 하지 않고는 주식투자를 하지 마라. 그래도 해야겠다면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자기가 만든 인덱스펀드에 투자를 종용하기 위해 일부러 책까지 쓰며 금융시스템을 폄하하는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금융시스템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존 보글은 실제 시장과 기대 시장을 비교해 투자와 투기를 구분 지었다. 그리고 숫자에 근거한 투자(인덱스펀드)와 기대치가 부여된 투자(일반펀드)중 무엇이 투기인지를 독자 스스로 알 수 있도록 이렇게 물었다.
“어느 쪽이 이기는 게임이고 어느 족이 지는 게임인가? 실제 숫자와 실제 수익에 돈을 걸고, 주식을 매입하여 장기 보유하는 쪽인가?(이것이 투자다). 아니면 예상하는 숫자와 만들어낸 수익률에 돈을 걸고,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대신 잠시 빌리는 쪽인가?(이것이 투기다). 복권에서든, 라스베이거스에서든, 경마장에서든, 월스트리트에서든, 도박은 하면 할수록 승산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투기를 할지 투자를 할지 결정하는 일은 고민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63-64 쪽
결정적으로 존 보글은 시점선택의 동기가 탐욕이든 공포든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든, 필연적인 사실은 투자자 전체를 놓고 보면 시점선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워런 버핏의 내기를 예로 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2008년 중반, 워런 버핏은 헤지펀드를 선택해서 투자하는 히사인 프로테제 파트너스Protege Partners와의 내기에 21만 달러를 걸었다. 2017년까지 10년 동안 뱅가드의 대표상품인 S&P 500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이, 프로테제의 자칭 전문가들이 선정한 5대 헤지펀드(필연적으로 투기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마구 거래를 일으키고, 시점선택을 시도한다)의 수익률보다 높다는 쪽에 돈을 걸었다.”
또한 그는 상장지수 펀드ETF 나 펀더멘털 인덱스투자, 상품펀드, 브릭스 펀드와 국제펀드 등을 대부분 쓸모없는 혁신상품이라며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까지 강조한 상품은 가장 기본적인 투자수단인 인덱스펀드였다. 그 이유는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철학으로 월스트리트에서 평생을 몸바쳐온 그가 만든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이 상품에 투자해 차고도 넘치는 많은 부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책을 일독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인덱스펀드를 만들어낸 장본인에게서 2009년 현재의 시점에 인덱스펀드를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와 함께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투자금융시스템이 누구를 위한 혁신을 이루고 있으며, 누구의 수익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지 현주소를 알게 될 것이다.
지난달에 읽은 워런 버핏의 <스노볼>이 “직접투자하려면 어느 정도는 공부하고 덤벼야 해. 그리고 복리효과를 잊지 말라고!”라고 조언했다면, 이 책에서 존 보글은 “넉넉한 생활과 행복한 투자를 원한다면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미 죽어서 삼 대에게 물려줘도 남을 만큼 부를 축적한 이들이 굳이 ‘책을 낸 이유’는 죽기 전에 투자자들에게 ‘현명하게 투자하는 법’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아니면 찌라시나 유언비어에 번번이 속고 있는 개미투자자들이 답답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존 보글이 투자자들에게 던진 화두는 ‘충분함을 알라’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는 물론 사업과 인생에서도 행복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그릇을 알고, 제 깜량을 안다면 대박이나 잭팟이 삶의 유일한 해답이 아님도 알게 될 것이다. 투자자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