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도시 - 21세기 차이나 신세대의 방황과 질주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오쿠다 히데오는 저리 가라! 올해 만난 가장 재미있는 소설.

  20대엔 세상이 우스웠다. 뜻만 두고 손을 뻗으면 그 무엇이든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새털같이 많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만 같아서였다. 내 안의 변화를 추구하기엔 뜻이 모호하고,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기엔 촉觸이 너무나 둔감했었기에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는 것을 안 건 한참 후다. 늘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만큼 범위에서 뒹굴거렸기에 세상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변화없는 뜻뜨미지근함이 세상을 우습게 여긴 무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밖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나 알 뿐 벌려진 판 속에서 뛰어다니는 놈이 어찌 알겠는가. 설령 그런 느낌이 들거나 훈수를 두는 바깥사람이 있다 손 치더라도 온전히 제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 속에서 뛰어다니는 것만도 하루하루가 한 편의 소설이었고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연꽃도시An ideal city>의 세 청년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중국의 신세대를 뜻하는 ‘80後 세대‘의 소설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붉은 공산주의자의 부모에게 밥을 얻어먹고 집밖을 나오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이후 빠르게 유입되는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서핑을 해야하는 모순의 세대가 80後 세대다. 젊은 모순 세대의 눈에 보이는 제 나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꺼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혈액 속에는 과장과 풍자라는 아드레날린이 넘치지 않던가. 사상의 혼잡과 과장된 풍자가 한데 어우러진 중국을 파릇한 젊은이가 ’허구의 장르‘인 소설로 엮었으니 그 자체로 흥밋거리다. 

  이 소설은 ‘80後 세대’의 대표주자 한한韓寒이 쓴 소설이다.

수려한 외모와 파란만장한 학창시절, 그리고 중국고전을 방불케하는 필력으로 중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그는 지난 2006년 2억 6천만 위한의 인세수입을 올려 <포브스>지가 주목하는 유명인에도 든 바 있다. 나는 그의 전작 <삼중문三重門>을 읽은 바 있다. 중국 문단과 교육문제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이를 겪고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애환을 담은 청춘소설인데, 중국고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특유의 해학적 요소를 가미한 줄거리는 국내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함을 느꼈다. 책을 읽은 후 저자가 15세에 발표한 소설이란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었다. 이번에는 <연꽃도시>를 통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현실을 잘 표현했다. 

  <연꽃도시>를 읽으면서 ‘주성치의 영화’가 떠올랐다.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형식을 걷어내고 우스개 만담 같은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희한한 것은 싱겁지도 지겹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한이 표현한 짧고 엉뚱한 대화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에 걸맞고 가독성을 더해 책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게 한다.

 두세 줄로 설명되는 근본 없는 태생의 주인공들은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그것을 피해 낯선 도시로 들어섰다. 이 낯선 땅에서 그들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돈이 필요할 뿐이다. 주인공들을 보자면 서울에서 지방으로 대학을 간 새내기의 여름방학을 생각나게 한다.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고, 둘 셋만 모이면 여유롭진 않아도 굶진 않는다. 풍족한 것은 오직 시간 뿐이다. 그래도 시간의 흐름은 감지하고 산다.

“내 시간은 젠수의 다리와 손이 회복되는 속도만큼이나 매우 천천히 흘렀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있다 보니 시간이 흐지부지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시간은 천천히 와도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어제 일은 이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유야 어제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이긴 하지만.” 45쪽 

  소설가는 세상의 풍경과 사람의 말 그리고 행동을 훔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절묘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한한 역시 또래의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기억했을 것이다. 개연성 없는 사건과 에피소드는 이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주인공들이 이야기가 억지가 없고, 꾸밈이 없다. 삶에 대한 생각이 없어 대화의 깊이가 얇고, 앎과 경험이 부족해 수준이 낮다. 그래서 웃기고 재미있다. 독자로서 한한의 소설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특별한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슬프지도 않고 기쁠 것도 없는 날이 태반인 우리의 삶이 그렇듯 그들의 삶은 평범했다.

 이것은 내가 보냈던 젊었던 날의 뜻뜨미지근함을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한다. 그 시절 내 삶은 이끈 것은 친구와 함께 하는 나날이었다. 부족하고 멍청한 사고뭉치 젠수는 내 친구 ‘대구빡’을 닮았고, 있는 집 자식 반항아 왕차오는 선배 ‘조까치’를 빼다 박았다. 행동하기보다 지켜보면서 즐거웠고, 느끼기보다 보여주는 것으로 보람을 느꼈던 그때의 이야기가 가감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건사고의 끝에 스치는 생각은 고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깊은 성찰들이다. 이것이 중국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어느 날 주인공들은 대형마트를 찾은 중년의 남자를 인터뷰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게 된다. 

 “물건을 사러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뭡니까?”

중년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지난달 우리 회사에서 미국으로 견학을 갔습니다. 그때 가서 보니까 미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살더군요. 우리도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면 바로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는게 되잖소.”

 “그러면 여기까지 집에서 차로 얼마나 걸리나요?”

 “한 이십 분 정도요. 미국 사람들은 ‘워즈더마’인가, ‘워마더’인가 하여든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는데 차로 한 시간씩 걸린다고 하더군요. 우린 그래도 가까운 편이죠. 겨우 이십 분 밖에 안 걸리니까요. 만약 차가 막히지 않고 시속 백이십 킬로미터로 달리면 십 분이면 도착합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하시죠.”

 “어쨌든 나라가 잘 살아야 됩니다! 미국 가서 보고 느낀 게 아주 많습니다. 알고 보니 미국 사람들은 소매점에서 절대 물건을 사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주말마다 차를 몰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대형 마트로 쇼핑을 갑니다. 지금 우리는 이십분이면 되니까 어떤 면에서 볼 때 드디어 미국을 앞지른 겁니다.”

(중략)

 우리 셋은 그 방송을 보고 나서 삶의 재미를 만끽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함께 그 마트를 찾아갔다. 209-210 쪽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태어난 청춘은 ‘당연히’ 있는 사상적 기반에 대해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십여 년 동안 사상적 괴리만큼이나 뒤틀어진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보여지는 화려한 외형을 따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숭상하면서. 주인공인 나는 여자친구가 들고 있는 자수를 놓은 펜디 핸드백이 오만 칠팔천 위안(우리돈 약 처이백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건강이 안 좋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만일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 뒤, 그 핸드백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보여주며 가방 값을 알려드린다면 아마 그 분들은 피를 토하고 숨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저자인 한한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보는 중국이라는 정신없는 세상은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일치하기에 그의 표현력에 중국의 젊은이들이 그토록 그에게 열광하는지 모른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고 비웃을망정 그 속에 살고 있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피하지도 않는다. 눈도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빠른 변화를 제 깜량만큼 소화하며 허허실실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중국소설이 갖는 매력이다. 관념적인 우리 소설과 허무주의로 도배된 일본 소설과 또 다른 느낌이다. 오쿠다 히데오와는 또 다른 해학을 던져줄 새로운 작가, 한한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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