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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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요리계 스타 쉐프 박찬일의 좌충우돌 본토 체험기!

 

  이딸리아 씨칠리아의 어느 시골식당에서 로베르또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청년이 콩 튀듯 팥 튀듯 이리저리 좁은 주방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지중해의 태양이 말 그대로 ‘내리꽂혀서’ 지열이 50도를 넘는 이곳에서 수백 번 ‘로베르또, 로베르또, 로베르또!’ 불러대는 소리에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옷은 땀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해 서걱거리고,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와 신발도 벗지 못하고 침대에 엎어진다. 귓가엔 여전히 이명이 들린다. “로베르또, 로베르또, 로베르또. 젠장, 로베르또!” 죽을 똥 싸는 오늘은 내일도 계속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요리사 박찬일이 이딸리아 삐에몬떼Piemonte의 요리학교 ICIF에서 공부한 후 시칠리아의 레스또랑에서 1 년간 죽도록 일하면서 겪었던 고군분투기를 적은 것이다. 국내에 돌아와 청담동의 ‘뚜또베네’와 가로수길 ‘논나’를 거쳐 현재 논현동의 이딸리아 레스또랑 ‘누이누이’에서 셰프로 일하는 그는 원래 중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잡지기자를 하던 그가 요리에 흥미를 느껴 1999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3 년간 이딸리아로 인생의 2막을 위해 떠난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을 방불케하는 현지에서의 생생한 체험과 잡지사 기자를 했던 문학도의 유려한 문체를 만났으니 글맛은 어림짐작해도 알만하다.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단순한 듯 복잡다난한 이딸리아 요리의 맛을 읽어서 느꼈다고 하면 부족한 설명일까? 더 이상의 표현은 불가하다.

 

  이 책은 특별한 요리 이야기다. 휘황찬란한 화보와 듣도 보도 못한 재료가 레시피가 더해진 요리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급호텔의 스타쉐프가 미사여구로 버무린 요리사의 자서전도 아니다. 유쾌하고 생생한 말잔치로 엉성하고 부족한 듯 풍미가 깊은 이딸리아 요리의 참맛을 전하는 소설처럼 읽히는 ‘이딸리안 아나토미Italian Anatomy'다.

그가 일한 시칠리아의 레스또랑 ’파또리아 델레 또리‘는 중소도시의 일등 맛집 정도 되고, 로베르또를 가르치고 함께 일한 주방장 쥬제뻬 바로네Giuseppe Barone는 평생을 시칠리아풍 이딸리아 요리를 해온 토박이 요리사다. 우리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주 한정식 집에 한식 요리사 자격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푸른 눈의 이딸리아인이 주방에 들어섰으니, 이들이 함께 일하는 자체가 시트콤인지도 모른다. 비좁고 무더운 주방 안에서의 로베르또의 좌충우돌 요리수련기에 책의 두세 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미소가 번졌다.

 

 



 

 

  글을 읽으면 난 섹시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했던 영화<말레나>의 바다가 걸쳐진 해안가 마을이 보이고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낮풍경 속에 들어가 있다(로베르또가 씨칠리아까지 찾아간 이유는 <지중해>, <씨네마 천국>, <일 포스티노>와 같은 영화의 고즈넉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로베르또가 입을 떼면 비릿하고 짭쪼름한 봉골레(바지락) 스파게티와 크림 향 가득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의 풍미가 읽히고, 후덥지근한 주방의 열기와 주방장 쥬제뻬의 욕섞인 고함과 제스쳐가 오감으로 느껴진다.

 

  로베르또를 통해 이딸리아 요리가 프랑스 요리와는 다르게 투박한지를 알 것 같았고, 유럽인 중에 이딸리아인이 한국인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세중世中의 말도 이해할 것 같았다. 프랑스 요리가 예술이면 이딸리아 요리는 생활이었다. 프랑스 요리가 빌딩숲이면 이딸리아 요리는 원시림의 자연이었다. 이딸리아 요리가 세 계단 정도 내게 가까워진 느낌은 이 책을 읽은 큰 소득이었다. 아무런 격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써내려간 로베르또의 글맛은 잘된 소설 못지 않게 뛰어나다. 그가 만들어낸 요리도 이런 맛일지 궁금해진다. 선선한 저녁 스파게티와 화이트와인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PS : 저자인 로베르또, 아니 박찬일이 직접 출연해서 10가지의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DVD가 초판에 한정되어 선물로 들어있다. 글처럼 맛깔나게 말하지도 않고, 올리버처럼 투박하고 거칠게 요리를 하지만 정말 먹고 싶을 만큼 맛있어 보였다. 이딸리아 요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급 쉐프의 요리 솜씨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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