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력 - 고수가 알려주는 협상의 기술 46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고은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핵심문제 46 개로 풀어보는 협상의 법칙!

  서점에는 '협상'에 관한 좋은 책들이 많이 있다. 우선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은 참 훌륭한 책이다. 협상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바이블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데, 한 가지 단점은 ‘협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읽어봤거나, 많이 소개가 되어 마치 입문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책 속의 비법은 이미 일반화된 상식이 되었다. 또 다른 책으로는 로버트 치알디니라는 심리학 교수의 『설득의 심리학』을 들 수 있다. 이 책 역시 많이 읽히긴 했지만 협상의 법칙보다는 경쟁력이 있는 책이다. 직접적으로 협상의 기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협상에서 이뤄지는 설득과정에서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빠져들고 마는 설득 불변의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어 협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더욱이 ‘설득 불변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자기 방어 전략’을 알려준다는 점이 유익하다. 상대가 제 아무리 묘수를 쓴다 하더라도 나에게 읽히면 더 이상 ‘묘수’가 아니라, 역공할 수 있는 찬스를 줄 수 있다는 방법론을 제시 했다.

  그 밖에도 트럼프의 협상력에 대해 이야기 한 『협상: 트럼프처럼 협상하라(조지 로스, 에버리치홀딩스)』도 유익하고 올해 출간된 『유쾌한 승부(박승주, 교보문고)』역시 우화적 성격을 띤 한국형 협상책이라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협상이란 원래 맞고와 같이 상대를 두고 하는 게임이다. 제아무리 책을 읽고 달달 외운다 하더라도 어디 ‘실전’만 하겠는가? 협상책 한 권 읽지 않았어도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은 ‘필드형 협상가’를 능가하기는 어렵다. 

휴대폰을 살 때, 쇼핑상가에서 옷을 살 때, 차를 구입할 때, 전월세 집을 구할 때 등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필드형 협상가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이 단순히 ‘장사치’를 넘어 협상가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제품을 살 때 우리로 하여금 ‘가치 있는 제품을 무척이나 싼 값에 샀다’고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며칠 후 싸게 산 것이 아니라 제 값에 샀더라는 것, 혹은 더 비싼 값에 샀더라는 것을 알게 될 때(세상에는 이것마저도 깨닫지 못하는 소비자는 넘치도록 많지만) 마치 속은 것 같아 분하지만, 종종 그들의 협상력에 탄복하기도 한다. ‘실전 노하우’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도 있지만, 실전이 갖는 ‘디테일의 힘’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 『교섭력, 고수가 알려주는 협상의 기술 46』은 협상관련서 중에서 ‘디테일의 힘’을 가진 책이다. 이 책은 재미있고 특별하다. 자기계발서이면서 문제집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심리학자인 나이토 요시히토가 썼는데, 그의 책은 주로 심리학의 여러 법칙을 비즈니스에 응용하여 실천적이고도 즉효성(효력이 곧 나타나는 성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이 갖는 차별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학을 공부할 때 교과서에 나온 공식을 외운다고 해서 응용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문제집을 가지고 지겨울 정도로 많은 문제를 풀어야 비로소 실력이 는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교과서를 읽는 것으로는 기초 능력은 갖출 수 있겠지만 응용력은 붙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책 소개글 중에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일문일답 형식으로 꾸며졌는데, 총 46 가지 질문이 수록되었다. 뛰어난 협상가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에서부터 협상 자리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실전 협상에서 필요한 잊지 말아야 할 요점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내용에 해당하는 질문을 살펴본다면 이렇다.   

다음과 같은 경우 어떤 마음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할까?

현재 당신의 A사의 담당자와 가격을 놓고 협상 중인데 쉽게 타결되지 않고 있다.
해진 협상기한이 다가오고 있어 이대로 가면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

이렇다 할 대안이 없으므로 상대방의 조건을 받아들인다.

협상 기한을 염두에 두며 협상을 빨리 진행시킨다.

협상 기한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여유 있게 진행한다.

정답은 몇 번 일까?

  인간은 다급하면 허둥대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기한에 다가가면 초조해져서 판단이 흐려질 수 있는데, 이렇듯 협상에서는 서두르는 쪽이 불이익을 당한다. 이 문제는 일반인의 협상보다는 국제 외교에서 많이 등장하는 문제이다. 라이퍼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인과 미국인의 모의협상에서 거의 이스라엘인이 이겼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인이 여유 있게 협상에 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인이나 일본인은 협상기한이 다가오면 초조해져 허둥대거나 감정적이 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곧 기한이 다가오니까’라는 말을 해 상대방아게 심리적인 부담을 주는 것은 괜찮지만, 자기도 덩달아 부담을 느끼면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만약 협상이 결렬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는 식으로 배짱 좋게 느긋한 태도를 보인다면 상대방이 오히려 급해진다는 것이다. 정답은 ③번이다. (72-73 쪽 요약)

그렇다면 이 밖에도 실전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협상상황은 어떨까?  

협상 테이블에 나온 상대편 두 사람 중 한 명은 당신에게 적대적이고, 한 명은 당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당신은 둘 중 누구를 중점적으로 설득해야 할까?

경쟁업체를 이기기 위해서는 경쟁업체의 베팅보다 어느 정도 상향 베팅하는 것이 좋을까?

  십인십색의 사람들이 만나 문제를 풀어나가는 협상을 주제로 한 질문들이라 답이 수학문제와 같이 한 개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선 질문을 잘 읽어야 하고, 애매모호한 보기 역시 잘 읽어보아야 한다. 질문에 답을 풀어 봤을 때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정답을 만나기도 한다. 저자가 한 두 페이지를 할애해 설명을 했어도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맞춘 답은 거의 절반 밖에 미치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협상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실생활이나 업무에서 꽤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답 수가 너무 적어 적잖이 실망이 컸다. 하지만 ‘교섭력(협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질문들은 일상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 ‘난처한 실제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론적으로 협상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는 것, 또한 실전에서 교섭력(협상력)은 이렇게 활용되는구나 하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협상은 상대적이라 정답도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교과서적인 대답을 했다 하더라도 상대가 나의 의도를 안다면 더 이상 ‘테크닉‘이 될 수 없고, 또한 상대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협상에 대해서는 100여 권의 책을 쓴 저자가 말하는 정답 역시 온전한 정답은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나와는 다른 답이 나올 경우 저자의 정답에 대한 해설이 과연 합당한지 우선 나름대로 비판을 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동시폭로법, 퇴장법, 샷건법, 루어법, 과일 바구니법, 스탈린 법, 3초 침묵,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방법 등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협상 전략과 룰이 소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설명하자면, 동시폭로법은 서로 의견이 상충할 경우 서로가 원하는 해답을 동시에 대답을 하게 하는 것이고, 샷건법은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가라고 협박하는 국제외교에서 ‘북한’이 잘 쓰는 방법이다.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서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방법은 과일바구니 법이고, 어떻게든 No를 연발하는 협상방법은 스탈린 법이다. 

  앞서 말한 바 대로 이 책은 질문과 정답으로 꾸며진 협상기술 문제집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독자를 위해서도 옳지 못하다. 다만 조언할 수 있는 것은 업무가 협상에 관련된 일을 하거나, 협상에 대해 많은 이론을 살펴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협상이라는 흐름에 맥을 짚어주는 반가운 책일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를 풀고 정답과 해설을 비교해 보면서 협상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핵심’들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게 될 것이다. 

  수사학修辭學이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학문의 분야라면 협상協商은 서로가 이기는 비즈니스를 펼치기 위한 ‘공생을 위한 테크닉’이다. 다시 말해 협상에서 승리는 테이블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비즈니스가 가능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협상이란 것이 상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른지라 문답식으로 구성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집 형식의 협상책을 만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160여 페이지의 얇고 작은 책이지만 어설픈 협상책보다 무게감이 더하다. 나의 협상력은 얼마나 될지 직접 풀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협상 공부의 마지막은 이 책을 만나기를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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