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원점
스즈키 도시후미 지음, 이석우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세븐일레븐 회장이 말하는 편의점 대박성공 비법!

 

  어린 시절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름은 ‘비원상회’였다. 엄마한테 구걸하다시피 백 원짜리 동전 하나 얻으면 달음박질로 달려가는 그곳은 먹거리 천국이었다. 가게로 들어서는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매쾌한 내음을 풍기는 안쪽에 늘 주인 할아버지는 세상에 있는 걱정은 다 가지고 계신 듯 잔뜩 찌푸린 표정 담배를 피우고 의자에 앉아 계셨다. 한없이 인자한 웃음을 지니신 할머니가 계실 때는 내 마음껏 아이쇼핑을 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가 계실 때엔 뭐든 되도록 ‘빨리’ 사야 했다. 어림잡아 1분을 넘기면 사지도 않으면서 두리번거린다고 알밤을 맞거나 ‘뭘 훔쳤냐?’고 주머니 수색을 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스께끼를 살 때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할아버지는 위로 올리는 냉장고 문을 항상 큰 자물통으로 잠궈 두셨다. 함부로 문을 열고 물건을 고르면 냉기가 다 빠져나간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리창 너머로 먹고 싶은 것을 고르면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걸어나오셔서 자물통을 열고 빼꼼이 문을 열고 아이스께끼를 꺼내서는 냉장고에서 혼이라도 빠져 나갈까 ‘쾅’ 하고 얼른 닫으셨다. 유치원 이전부터 거의 초등학교를 마칠 때 까지 그곳을 들락거렸는데, 그곳은 늘 그랬다. 

  ‘비원상회’보다 더 큰 구멍가게는 없을 뿐 더러 제일 가까운 곳이라 난 그곳을 단골 삼아 다녔는데, 부모님은 다른 이유가 있더라. 아부지는 집근처에서 담배와 수제 막걸리를 파는 유일한 곳이어서, 엄마는 한두 푼 남겨두었던 외상값이 솔찮게 모인 빚쟁이의 가게여서였다. 게다가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동네 유지인데다 ‘반장’까지 맡고 계셔서 밉보이면 좋을 게 없었다. 가끔 엄마가 막 만들어 온기가 남은 손두부나 도토리묵을 건너 동네 가게에서 사오는 날에는 몰래 숨겨 오거나, 빙 둘러 한참을 걸어오시곤 했다. 내 돈 주면서도 얻어먹듯 물건을 샀던 시절, 그 때는 그랬다. 세상은 변해 구멍가게의 몇 배 크기에 10%정도 값도 싼 슈퍼마켓이 생기더니, 1990년 초부터는 하루 종일 물건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 생겼다. 편의점이 생긴 즈음 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정문 앞에 L편의점이 처음 생겼을 때 ‘한밤중까지 불을 밝힌 구멍가게’가 신기한 듯 편의점 바로 앞에서 신문을 깔고 삼삼오오씩 수십 명이 둘러앉아 술을 먹었던 웃지 못할 광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렇게 에둘러 ‘가게 이야기’를 한 이유는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편의점, 그 중에서도 전 세계 편의접 업계를 정복한 ‘세븐일레븐’의 신화를 일으킨 스즈키 도시후미가 자신만의 장사철학을 털어놓은 책을 읽었다. 비록 편의점에 속한 이야기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변화된 판매 패러다임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제목은 <장사의 원점>, 원제목은 商賣の原点 이다.

  세븐일레븐Seven Eleven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전형적인 미국사회에서 비롯된 말이다. Nine to Five 즉, 아침 아홉 시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 근무하던 미국의 직장환경에 걸맞게 Seven Eleven 다시 말해 오전 일곱 시 부터 밤 열한 시까지 문을 여는 가게를 만들어 굳이 슈퍼마켓을 가지 않아도 근처에서 식품과 일용품을 살 수 있도록 만든 새로운 개념의 편의점 사업Convenience Store business 개념을 두면서 만든 이름이었다. 이 편의점 사업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자 일본의 이토요카도라는 대형유통그룹이 이를 수입해 아예 ‘24시간 풀타임으로 가동하는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만나게 된 편의점이다.

  업무시간의 확장이라는 ‘역발상’은 유통업에서는 실로 혁명 같은 일이었다. 깔아놓은 자리에 불만 켜고 점포를 지키는 사람만 두면 되니 큰 비용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매출 진작을 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다시 말해 24시간 물류를 제공할 수 있는 유통체계가 이 혁명의 주요관건이었다. 처음에서 미국에서 수입한 일본의 세븐일레븐이 30년 만에 10,000개의 가맹점을 돌파하면서 역으로 미국 본사를 사들이는 결과를 낳았으니 ‘24시간 풀타임 시스템’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셈이다. 

  하지만 세븐일레븐은 곧 긴장하게 되었다. 상표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시스템의 편의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쟁자의 출현은 매출감소로 이어졌다. 다른 점포와 차별화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21세기에 들어 판매의 새로운 패러다임, 즉 과거가 판매자 논리에 입각한 판매자 시장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구입자 시장의 시대가 된 것이다. 경쟁자는 점점 늘어나고, 깐깐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는 점점 힘들어지는 편의점 시장. 이는 비단 편의점 업계의 현실이 아니라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모든 제품의 시장이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비록 편의점 사업을 하지는 않지만 세븐일레븐은 편의점 업계의 정상에 우뚝 섰고, 그 중심에 있는 저자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장사철학에 귀를 기울였다. 그에게서 ‘오늘을 이기는 해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세븐일레븐 재팬의 창업자로서 지난 30년 간 총 1,300회에 걸쳐 매주 열었던 전체 회의에서 해 왔던 원리와 원칙을 담아놓았다. 이를테면 가맹점주와 직원들을 모아놓고 장사의 원리원칙을 내세우며 잔소리를 한 내용들이다. 그는 세븐일레븐이 10,000개의 가맹점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직하고 꾸준하게 이 사업을 꾸려나가면서 이러한 ‘원리와 원칙’을 철저하게 실천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사업의 기본이란 ‘시시각각 변화에 대응하며 원리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스즈키 도시후미의 원리와 원칙은 무엇일까?

  지금은 완전히 구입자 위주의 시장 시대에 돌입했고, 고객의 마음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제 소비는 경제학의 영역을 넘어 심리학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왔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고객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업체에게는 큰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제품 구입에 있어서 싼 값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가치가 포함되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의 소비욕구에는 효용을 초월한 심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그러므로 고객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가맹점은 가격을 내리기만 하는 할인점보다 훨씬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값싼 제품 뿐 아니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제품, 타 가맹점에는 없는 새로운 가치가 있는 상품을 진열하라. 매니지먼트Management 라고 하는 거은 가맹점 체제를 구축하고, 발주 분담을 진행하고, 청결, 친절, 서비스 등의 기본 원칙을 철저히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확립되어서 매출이 오르면, 이미 차별화 된 가맹점이라고 하겠다. 새로운 가맹점이 나타났다고 해서 금세 발목을 잡히는 일은 절대 없다.  

  구입자 시장의 시대에는 원가가 얼마든지 간에 고객이 정정하다고 인정하는 가격이 아니면 고객은 구입해주지 않는다. 이 상황을 잘 머리에 새겨 넣지 않으면 고객을 불러 모을 수 없다. 그리고 마케팅이란 소비자 한 사람이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이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즉,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소매업자가 포착하여 제작자에게 만들어달라고 하는 새로운 마케팅 방법이 필요하다. 장사에서는 어떻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고객이 되어보면 어떤 상태로 하면 팔리는 것인지 이 상품이 이 가맹점에서는 왜 팔리지 않는지가 명확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말만큼 간단하지 않고, 쉽지도 않다. 하지만 자기가 몇 번이고 가고 싶은 곳은 좋은 상품이 제대로 있고 적정한 가격으로 팔리는 곳이다. 또한 상품의 신선도가 좋으며, 청결한 가맹점에서 친절한 서비스의 수준 높은 가맹점이 아닐까? 장사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철저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불황이 지속되면 먼저 외치는 것이 ‘경비 절감’이고 그에 대한 행동은 ‘인원축소’다. 하지만 아무리 경비 절감이라도 해도 장사의 경우, 그저 무턱대고 절감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경비를 조절하는 것이다. 역으로 인건비를 늘려도 이것으로 경비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으면 이는 유효하다. 경비라는 것은 이것이 낳은 결과에 대해서 너무 많이 소요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유효하게 사용된 것인지를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종업원의 양과 질을 항상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것 없이는 경비는 조절할 수 없다. 

  우리들은 노렌暖簾(옛날 일본 상점이나 음식점의 처마 끝에 다는 헝겊으로 만든 막에 상호를 써놓은 것. 이는 상징적인 뜻으로 그 상점의 ‘신용’과 ‘명성’을 의미한다)을 지켜나갈 의무가 있다. 노렌은 기업의 머천다이징과 이미지 그 자체다. 편의점사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상품화 정책, 구체적으로는 상품의 구색(맛, 신선도, 가격)을 의미한다. 이미지는 가맹점의 청결과 친절한 서비스다. 노렌을 지키는 것은 고객들이 안심하고 구입하고, 다시 찾아오도록 만들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랜차이즈 체인에서 가맹점과 본부, 거래처의 관계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존공영이 아니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상품의 신선도에 대해서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체내에 들어가는 음식을 취급하는 것은 항상 사람의 생명에 관계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중대성을 갖고 일한다는 자각을 모든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식품의 신선도에 대해서도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에서 정당한 것은 상하가 없다. 기존 가맹점의 매출이 하락한 것은 세븐일레븐에 대한 고객의 신용도가 저하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고객의 신용도가 저하된다는 것은 우리들이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원점은 절대로 타협될 수 없으면, 엄격한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한 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다. 소비자의 기호에서부터 날씨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과 시장의 변화를 체득하라고 주문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체인점이라고 하면 체인본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일정액을 지불하고 그들의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받아 차리고 앉아서 계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안일한 사고로 사업(장사)를 한다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책 속에 실린 다양한 판매전략과 이벤트 등의 사례는 변화에 대한 대응책들이었고,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흡수하는가에 따라 가맹점의 성패가 달려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둘째, 편의점의 주인은 가맹점주가 아닌 손님이다. 생산자가 만드는 제품을 줄서서 사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오늘날은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제품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물건이 잘 팔릴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를 하기 보다는 손님을 위한 제품들이 디스플레이 되어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한 번 왔다 간 손님이 만족하고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해 단골로 만들 수 있는 편의점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편의점의 생명은 손님과의 신용이다. 신용을 잃지 말아라.

셋째, 장사를 잘하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 가치있는 제품, 적절한 가격, 친절한 서비스, 청결한 매장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차별화된 편의점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라. 그리고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시선을 두고 경영하라. ‘과연 내가 우리 점포에 손님으로 온다면 이 제품을 고를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경영한다면 제 아무리 불황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 편의점 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 편의점 점포수는 13,045개 라고 한다. 정년퇴직 등으로 안정된 사업을 찾기 위해 무턱대고 편의점을 창업하지만, 이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해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점포를 차리고 물건만 팔면 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맹점주가 영업에 신경을 쓰지 않아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실패 요인의 상당수가 가맹점주가 직원(아르바이트생)에게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지정해주고 관리해야 하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업 부진과 실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사’를 하는 주인이 장사꾼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구멍가게인 ‘편의점’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장사꾼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비단 편의점 사업 뿐 아니라 제품 판매를 위해 디스플레이를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비스 정신과 디스플레이 테크닉을 위해 읽어봐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