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만난 즐겁고 기분좋아지는 책!
 

  새벽 다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여명이 밝아오는 줄 이틀 전에 알았습니다. 밤 여덟 시가 넘도록 낮이 가시지 않는 줄은 어제 알았죠. 유월 하늘이 이토록 파란 줄은 오늘 알았고, 한낮에 따가운 햇살은 이미 여름이라 외치고, 아침 저녁엔 아직 떠날 채비를 마치지 못한 봄 바람이 당황해하고 있는 줄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살면서도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의 흐름을 살피지 못했네요. 아니 안했나 봅니다. 딱히 바쁠 일도 없으면서 불평할 꺼리가 없어 부러 ‘바쁘다 바쁘다’ 인상쓰며 살았나 봅니다. 그나마 그제, 어제, 오늘 알게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어느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그것마저 몰랐을 겁니다. ‘이제 인생은 자신이 찾는 것만 보이고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만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정도로 나이가 든’ 덥수룩한 흰수염의 아저씨 덕분에 오늘을 알고, 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겨진 인상을 조금은 펼 수 있게 되었죠. 아저씨는 “우리의 삶이 허락한 작은 웃음을 즐기라”고 야릇한 미소로 이야기 합니다. 로버트 풀검 아저씨가 책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을 통해 이야기 했습니다. 원래 제목은 What on earth have I done?입니다. 아저씨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 우리에게 친숙한 분입니다. 이 책은 이미 70 세를 훌쩍 넘긴 아저씨(할아버지라 해야겠네요?)의 이야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젊고 재미있습니다. 아저씨가 오늘 보낸 하루 중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들을 적었는데요, 이야기 마다 유머러스한 단편소설 같습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늦게 즈음 아저씨는 혼자 그네타기를 즐깁니다. 오늘 저녁도 마찬가지로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오늘 따라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서는 놀이터가 만원이 되었죠. 어느 작은 남자아이가 그네를 타는 풀검아저씨 앞에 걸음을 멈추고 묻습니다.

“그네 타고 싶어요 아저씨는 아이가 아니잖아요.”

“나도 애야.”내가 말했다.

“아니잖아요.”

“아이라니까.”

 

서로 실갱이를 하고 있는데, 노인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자기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버지가 달려왔습니다.

 “왜 그러니, 빌리?”

“이 아저씨가 그네에서 안 내려 줘요. 자기가 아이래요.”

아이의 아빠는 풀검아저씨와 눈을 맞췄습니다. 미소를 짓고 웃더니 빌리에게 말합니다.

 

“이 아저씨 아이 맞네. 좀 크고 나이가 들었을 뿐이야.”

“고마워요.” 풀검아저씨가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흔들흔들 그네를 타고 내게 말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나이 먹은 커다란 아이가 되었을 때, 그 역시 9월의 부드러운 황혼 속에서 그네에 앉아 있는 작은 기쁨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라고요. (61 쪽- 어른의 그네)

  아저씨는 밤하늘에 뜬 달을 쳐다보면서 달에서 본 지구의 풍경을 상상하며 웃습니다. 고등학교 여학생의 웃기고 요란한 옷차림을 보면서 흉보는 것이 아니라 백인, 흑인, 동양인이 한데 섞여서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보고 50년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보기 좋다’ 웃습니다. 교수가 내준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일을 하고 나서 그 경험을 글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수행하고자 나무의자를 통째로 먹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웃고, 있지도 않은 미래의 남편이 차사고로 다칠까봐 우는 손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래의 손주 사위를 위해 ‘트럭을 조심하라’고 웃으면서 충고합니다.

  풀검아저씨는 ‘놀 줄 아는 사람’은 민첩하고 재치 있어서 누군가 갑작스럽게 상상력의 놀이에 초대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 여유있게 장난하는 사람이고, 놀 줄 아는 사람은 또 잘 웃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1년을 있다가 간 마사오군이 생각나는군요. 이 친구는 술만 취하면 지나는 택시마다 따블(두 배를 낸다는 V표시)모양의 손을 흔들며 “태~액씨, 토오쿄~, 따블이요~을 외치는 웃기는 친구입니다. 누나만 넷이 있는 집의 막내로 자라온 터라 제 집이 그리워서 그런다네요. 아무튼 때로는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욕을 먹고, 따귀를 맞는 등 곤혹을 당하지만, 술에 취하기만 하면 늘 따블을 불러서 동료들을 골치 아프게 했답니다. 95년 대동제 전야제 밤에도 그랬습니다. 학교 앞 고갈비 집에서 거나하게 술에 취해 나왔는데, 채 1 분도 걸리지 않는 제 자취방을 놔두고 이 친구는 비틀비틀 도로로 향해서는 어김없이 따블을 외쳤습니다. 택시 한 대가 스르르 섰습니다. 마사오의 이야기를 듣고는 초로의 멋진 흰수염을 단 택시기사 아저씨가 너털 웃음을 짓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친구가 술이 많이 취했군 그래. 어이, 친구. 도쿄는 말이야, 길 건너서 타야 해. 그리고 거기는 굳이 따블 안불러도 돼. 허허허“ 택시기사 아저씨는 놀 줄 아는 사람인가 봅니다. 

  풀검 아저씨는 수입농산물이 그득한 아침상을 차리며 세계여행을 하며 음식을 먹는다고 웃었고, 세탁기에만 들어가면 사라지는 양말 한 짝을 두고는, 오히려 양말 한 짝이 생겼다고 웃었습니다. 풀검아저씨는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웃음을 아는 사람인거죠. 혼자 사는 풀검아저씨는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웃음을 주는 세상이 있기 때문이죠. 그는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독은 사람들로 가득 찬 바다에 떠다니는 배 한 척과 같다. 서로의 고독을 존중해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다. 소로가 [월든]을 출판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고독을 초월하기 위해서,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내서 다른 사람들이 읽게 했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18 쪽 - 고독에 대하여)

  보여주는 글(책의 원고, 블로깅)을 쓰는 사람은 외롭지 않은 사람들인가 봅니다. 누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로 말을 거는 때문입니다. 변화되는 세상은 사람들에게 바쁘기를 재촉하고 홀로되기를 강요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나’만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은 잠시 나를 잊고 내 주위와 내가 사는 세상을 살필 여유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란 고독한 것이고, 고독하니까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다만 외로움은 나의 선택 여부에 달렸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내 삶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어울린다면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고 그래서 외롭지 않다고 말해 줍니다. 외롭다 느끼는 당신께 풀검아저씨는 좋은 말벗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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