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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폴 크루그먼, "정부는 지금 당장 금융기관과 국제 자본흐름을 규제하라!"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그의 이름에 따르는 평가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에서 지난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라는 점이 가장 큰 평가일테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이래 글을 가장 잘 쓰는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고(그는 현재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특히 공화당 정부 시절 ‘부시의 저격수’로 불린 바 있다. 그는 최근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을 쏟아부어 <뉴스위크>는 그를 두고 “오바마의 노벨상급 골칫거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4월 27일, 오바마 대통령은 크루그먼을 백악관에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만찬 대화내용에 대해서는 비보도를 전제로), 대통령마저 무시할 수 없는 그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그가 명저 <대폭로>와 <미래를 말하다>에 이어 <불황의 경제학>를 냈다. 사실 이 책은 1990년대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분석했던 초판(1999년)의 개정판인데,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금융위기의 내용을 덧붙였다. 저자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현재 위기의 ‘리허설’로 판단하고 있어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원제는 (The)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 그는 책에서 ‘세계경제가 공황으로는 빠지지 않겠지만, 불황은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Flickr
이미지 출처: www.zocalopublicsquare.org/.../10/paul-krugman/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우선 1990년대의 아시아와 남미의 경제위기를 분석하며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미국)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책이 정확히 10년 후에는 ‘그것 봐라. 내가 뭐라했냐’고 내다본 듯 큰 소리치는 책으로 변했다는 점이 우선 놀랍다. 마치 앨빈 토플러가 신자유주의경제의 문제점을 밝히며 1975년 이후 다가올 경제위기를 우려하며 쓴 책 <불황을 넘어서 The Eco-Spasm Report, 청림출판,2009>이 오늘날의 세계경제위기와 절묘하게 맞물려있어 자신의 책을 읽고 스스로 놀랐다며 개정판을 낸 점이 통찰력적 면에서 닮아서였다.
두 번째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수식이나 이론을 배제하고 쉽고 평이한 문체로 일반인도 읽기 쉽도록 의도적으로 풀어서 쓴 책이라는 점이다. 저자의 의도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더 많은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는데, 그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라고 한다면 자신의 높아진 권위에 맞게 ‘그들만(경제학도)의 리그’에 어울리는 어려운 경제용어와 해석을 늘어놨을 법 한데, 독자의 눈높이를 일반인으로 낮추었다는 점이 ‘달라진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자이면서 유명한 칼럼니스트이지 않은가? 다중多衆을 인식한 경제학자라... 시골의사 박경철의 말을 빌리자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고고한 ‘강단’에서 번잡한 ‘저잣거리’로 제대로 내려온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황전도사’답게 시공을 넘어 ‘불황의 역사’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부는 1990년대 일본을 대표로 하는 아시아와 남미의 금융위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그후 10년 동안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들, 즉 부적절한 경제정책들, 헤지펀드의 득세, 그린스펀의 판단착오, 그림자 금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공포의 총합인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지게 된 상황과 불황의 경제인 오늘과 미래의 대처법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불황의 원인은 금융기관의 모럴헤저드와 그림자 금융, 그리고 사람들의 심리에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란 돈을 맡긴 예금자들에게 언제든 맡긴 돈을 적절한 이자와 함께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한 단체다. 다시 말해 금융인이란 최소한 투자자의 원금을 온전히 관리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진 사람들인 셈이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 은행은 대마불사의 모럴 헤저드에 빠져 거침없이 ‘신용창조’를 통해 부채를 늘렸고, ‘은행인 척 하는’ 투자은행, 신탁회사등의 그림자 금융은 금융관리감독기관의 감독을 벗어난 채 고리스크, 고수익의 투자에만 열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상품을 만들어 모기지를 얻어 주택을 구입한 대출자나 모기지 상품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금융기관의 윤리성과 투명성을 믿은 죄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한마디로 금융회사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금융기관을 믿은 투자자에게 누가 또 다시 투자를 권유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유를 들어 그는 이같은 금융위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규제해야 하고, 국제 자본흐름에 대해서도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공급중시 경제학’의 경제시스템에서 경제의 능력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요를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공급이 넘쳐나는 지금 경기후퇴를 계속하고 있다면 수요중심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저자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용경색 완화와 소비지원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시적으로 사실상 금융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완전한 국유화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신용경색이 풀어질 때까지 통제하고, 위기로부터 벗어나면 금융은 다시 민영화되어야 하고, 현재의 구제대상 기업은 위기가 사라지면 규제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핵심적 진리에 대해 불황경제학은 공짜 점심이 있는 상황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며, 사용할 수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자원을 찾아내다면 “공짜 점심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불황경제학의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경제학자인 케인즈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대세는 ‘케인즈의 시대’라며 ‘큰 정부’를 지향하고자 해야 지금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를 깨달아야(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폴 크루그먼은 지난 5월 19일 서울 하이야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TV 창사 10주년 세계경제금융 컨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즉 ‘공짜점심’에 대해 답은 찾지 못했지만, 환경정책에 희망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환경정책이 그린 기술을 가지고, 미국이 기후변화 체제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 때 기업에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한다. 거시경제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게 경제회복을 추동할지는 알 수 없다.” (참고:세계경제금융 컨퍼런스의 기조연설 전문)
그리고 지금의 금융위기 상황은 빨리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이제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나오긴 했지만 회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조금도 케어를 하고 리스크를 회피하고 합리적으로 투자하는 세대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상황이 또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장담할 순 있지만 당분간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정부의 보이는 손’이 대신할 때일 것이다. 불황의 경제를 꾸려나가야 할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에게 읽혀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