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by 북
마이클 더다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30년 내공의 베테랑 서평가가 버무린 名文들의 비빔밥!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리뷰Review'란 걸 몰랐다. 존재를 몰랐으니 당연히 리뷰를 쓰지도 않았다. 5년 전부터 블로그를 했던 터라 책 속에서 만나는 황금보다 소중한 구절들을 베껴서 옮겨놓은 적은 종종 있었다. 4년 전인가...는 공책에 필사한 글귀들을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었다(너무나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몇 번하다가 말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들었던 소감이야 왜 없었겠냐마는 ’내 주제에‘ 감히 책에 대해 논論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만행이라고 여긴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짧게라도 적으려고 해도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잘 썼건, 못썼건 간에 지금은 500여 편에 이르고 있으니 스스로가 신퉁방퉁하다. 그것참...

  우연히 책에 대한 소감을 쓰게 된 것은 온라인 서점 덕분이다. 줄곧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었는데, 업무로 출장이 잦아지자 단골로 가던 서점에 직접 가질 못해 온라인에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하다가 독자들의 ‘리뷰’를 읽게 되었다. 딱히 책을 사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갈 만큼, 혹은 이 책은 절대로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독자들의 리뷰에 빠져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 그 후로 나도 책을 읽은 후엔 리뷰를 쓰게 되었다. 지금도 리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리뷰를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난 ‘서평’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주로 문학이 아닌 경제경영서와 같은 실용서를 읽는 편이라, 평론을 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아직도 ‘감히 내 주제에’ 책을 평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읽었는데 참 좋더라, 그저 그렇더라고 말할 정도일 뿐, 반박하거나 논쟁을 걸을 깜량은 못된다. 그래서 말 그대로 다시 보기, ‘리뷰Review’를 하고 있다. 온라인엔(오프라인엔 수를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수많은 강호의 책리뷰 고수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에서 만큼은 여느 평론가 못지 않을 만큼 내공과 필력을 갖춘 고수들이 즐비하다(그런 고수들의 블로그에서 리뷰를 살펴본 후 책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 책을 고르는 한 방법이 된다). 고수들의 리뷰는 ‘서평’이라 할 만하다. 가끔 그들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찾아가 놀기도 하는데, 돌아올 땐 항상 부러움과 질투에 뒤범벅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 읽은 책은 ‘서평쓰기 30년 내공의 고수’가 쓴 책이다. 서문에서부터 “지난 오십 년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로 시작해 나를 기죽이게 하는 책, 마이클 더다Michael Diarda의 <북 BY 북>이다. 원제목은 Book by Book - Notes on Reading And Life, 2005년에 쓰여졌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책이다. 지금껏 저자가 책을 읽을 때마다 눈에 띄는 구절과 인용구를 노트에 적어놓았던 것을 한데 모은 일종의 사화집(詞華集,anthology;아름다운 글들을 모은 책)이다. 배움, 일, 여가, 사랑, 집, 인생, 감각, 종교, 죽음 등 인생에서 만나는 중요한 삶의 화두에 관련된 책들의 구절을 한데 모아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계절감이 듬뿍 담긴 채소들을 한데 모은 ‘비빔밥’이라고 할까? 그런데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런 ‘금가루가 잔뜩 뿌려진 고급의 비빔밥’이었다. 저자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표현을 빌려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해서 천천히 읽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읽으며, 되돌아서 또 읽는 책’이길 바란다고 했는데, 유익했을지 모르지만, 재미는 없었다. 오히려 겁만 잔뜩 집어먹기만 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 모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책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더다가 분야별로 생각하는 고전(난 고전엔 정말 문외한이다)을 소개한 책이고, 우리나라에서 변역된 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책이 태반이라지만 “이 세상엔 내가 매일 책을 읽는다 해도 평생 다 읽을 수 없을 만큼의 좋은 책이 있다”는 그 누구의 말이 떠올랐다. 괴테가 자신이 죽을 때 즈음 채 읽지 못한 책들을 아까워 했던 이유를 알 듯 했다. 

  이 책을 읽으려면 펜을 들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저자의 서문 때문이다.

“당신은 연필을 옆에 두고 마음에 드는 구절에 표시를 하거나, 여백에 뭐라고 끼적대고 싶을지도 모른다. 당신만의 사색으로 ‘개인화’하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가치를 더해 당신만의 특별한 책으로 꾸며가야 할 책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도 독자를 위한 독서 안내서를 서보겠다는 의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15 쪽)

  그렇다.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은 좋은 글을 만나면 여한없이 밑줄을 치거나, 책장 끝을 작거나 큰 삼각모양으로 접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 놓치기가 아까워 한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지난 해 초에도 한 적이 있는데 정혜윤의 관능적 책읽기로 알려진 <침대와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노트에 필사를 할까, 블로그에 옮겨 적을까’ 책 진도는 나아가야 할텐데 ‘놓쳐버리면 다시는 못만날 것 같은 글들’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기억,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 서평가의 책인 만큼 좋은 서평의 조건을 말한 H. L. 맹켄의 글을 보자(이글 또한 절대로 서평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독자서평란에 퍼담을 것이 아닌가?).

“서평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서평은 깔끔하게 쓰여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안에 담긴 비평의 정당성은 차후의 문제이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 나쁜 책이냐를 명확히 결정하기는 대체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불완전한 지성인의 착각이다. 그런 섣부른 판단에는 언제나 도덕적 열정이 개입된다. 그러나 평론가는 독자에게 세련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 박식하고 품위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평론가라면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글을 쓰더라도 독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185 쪽)

  그 무슨 책을 말하든 독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선명하다. 나의 리뷰가 한낱 두서없는 개인적 푸념의 덩어리는 아닐지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지금껏 써온 리뷰들이 잘못 기술되어 나의 리뷰가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독자가 읽었을 수도 있는 기회를 빼앗지는 않았던가 고민하게 만들었다. 좋은 글은 읽고, 읽고 또 읽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명문名文들이 가득했다.

  “심판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한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로 끝을 맺었다. 서평가의 독서안내서의 마지막으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문장이다. 독서는 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굴려 종이 위의 활자를 읽어내려가는 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활자가 그려낸 글을 눈으로 읽고, 마음과 머리에 새겨 오늘보다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밑거름으로 마련하고자 함이다. 아는 만큼 보이듯, 아는 만큼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달랑 세 권을 읽고 책을 읽고 내 삶에 변화가 없다고 말하지 말자. 몇 권을 읽었는지 아련할 만큼 책 읽기를 습관으로 만들었다면, 책을 읽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각을 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읽었거든 움직여서 삶에 변화를 주어라” 50년 독서내공을 지닌 30년 서평가의 충고였다. 책벌레들을 위한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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