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잘 만들어진 연극을 방불케 하는 황당 코믹스릴러 소설

 

  “난 지금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옷장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요.”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뭍어났지만, 난 못들은 척 큰소리로 웃으며서 말했다.“뭐야~ 만화영화 ‘몬스터’ 이야기도 아니고...나이가 몇 갠데...하하하” 그리고 그날 밤 난 베개속에 잠겨 한참동안 옷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캄캄했던 방안이 흐릿하게 형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동공이 커질 때까지...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도 벽장이 무서워서, 천정이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잤던 사실을...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공포감은 어린이의 몫 만은 아니다.

 

  한 남자가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낯선 세 사람과 함께. 잠에 깬 듯 일어나 보니 엘리베이터 안이고, 엘리베이터가 급하강하는 바람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을 했단다. 휴대폰은 사라지고, 시계도 잃어버렸다. 낯선 세 사람도 이런저런 이유로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무서워서 울 것이야 없겠지만(아파트의 엘리베이터라 언젠가는 구조될 테니까), 기절했던 사내 오가와에게는 당장 나가야 할 이유가 있다. 임신 9개월의 아내가 진통을 느낀다는 전화를 막 받은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빨리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또 나를 위해서라도...소설 <악몽의 엘리베이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제목은 悪夢のエレベーター―Nightmare after a Secret.

 

 



 

 

  엘리베이터를 장소로 추리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베이스인 ‘밀실살인’을 소재한 이 소설은 전혀 추리소설 같지 않다. 연극무대에서 몇 명의 배우가 두 시간 여를 활약할 수 있는 희곡적인 요소가 오히려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긴장감과 코믹함을 겸비하고 있다. 수상한 작품, 빙고! 작가는 코믹 스릴러 극단 '니콜슨즈'를 이끄는 배우, 각본가, 연출가로 알려진 기노시타 한타이고, 이미 연극과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는 작품이란다. 2009년 가을엔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과연 읽고 보니 그러고도 남을 만한 비주얼 강한 스토리였다.

 

  난 10층 이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는 편이다. 하루에 ‘만보’는 걸어야 건강에 좋다는 말로 이유를 대충 얼버무리지만,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질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일이 좀처럼 없고, 실내등도 그리 밝지 않은 비상계단을 오르는 기분도 썩 좋진 않지만, 엘리베이터보다는 낫다. 그렇다고 ‘폐쇄공포’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대학 때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실외에 부착된 공사용 엘리베이터에서 인부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을 목격한 바 있고, 실제로 엘리베이터가 서는 바람에 혼자서 30분 여를 공중에 떠 있었던 적이 있어 꺼릴 뿐(한참을 적고 보니 보통 경험은 아닌 듯 느껴지긴 하지만)이다. 일종의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다시 말해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공중에 떠 있는 듯 내내 발이 저렸다. 상황 자체가 꺼름직하니 읽기도 꺼름직 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주인공은 내가 아닌 그들이 아니던가. 철저하게 제 삼자로 그들을 지켜보려 노력했다. 그래도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아내의 진통을 알면서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는 오가와는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동승하고 있는 낯선 인물들은 모두 기분나쁘지만(오가와의 말대로 밖에서라면 스쳐지나가기도 싫을 만큼) 묘한 매력의 사람들이어서 오가와에 대한 안타까움은 급반감되었다.

 

  정장 차림의 몽키스패너를 든 빈집털이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니트족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사내, 그리고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자살을 하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은둔형 외톨이 아가씨등 낯선 이들의 정체는 재미를 더했다. 설정은 알프레드 히치콕인데, 최근에 만나는 최근에 만나는 오쿠다 히데오 소설 속의 주인공들 같았으니 주인공의 시선이 옮겨질 때마다 안쓰럽다가 재미있고, 불쌍했다가도 웃겼다.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누가 본다면 딱 미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심리도 변덕스럽게 움직였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출산진통을 겪을 아내를 두고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상황의 청년 오가와 준에게 무한한 연민에 동일시되는가 싶더니 낯선 이들의 면면에 빠져서는 그들과 어울린다. 함께 갇혀 있으면서도 그 상황을 마치 운명처럼 여기는 듯 자신들의 처지는 잊고 오가와를 조롱하는 그들에게 동조하는 나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주인공들의 심리와 희극적 대사들은 불안함 속에서 느끼는 헛웃음까지 짓게 했다. 거듭되는 반전에 기함을 하고, 막판에 펼쳐지는 역전극의 반전이란... 직접 읽으란 소리 밖에는 차마 설명을 다할 수가 없겠다.

 

  책의 말미에 <해설>을 쓴 나가에 아키라는 주인공 오가와의 상황, 그리고 나머지 주인공들이 겪는 마지막 상황을 장이 좋지 않은 자신의 배탈에 비유했다. 배탈난 사람에게 주위에 화장실이 없는 것은 식은땀나게 하는 ‘악몽’이듯, 등장인물 모두가 겪는 엘리베이터는 제목처럼 <악몽의 엘리베이터>였다. 잘된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재미있고, 웃기는 작품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총평하기도 곤란한 묘한 작품, 등장인물의 소개 자체가 어쩌면 스포일러로 욕먹을 수 있는 묘한 작품이다. 이런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쓸 때가 가장 난감하다. 더 난감한 건 여전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서다. 연극같은 소설, 영화같은 소설이다. 읽는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소설을 읽은 후 앞으로 엘리베이터를 편하게 탈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탈 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날 테니까. 난 이제 10층 이상도 걸어가려고 마음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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