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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잉태한 악당 경제학, 그 실체를 파헤치다
로레타 나폴레오니 지음, 황숙혜 옮김 / 웅진윙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아직도 노예제도가 존재한다고?
'악한 사람들의 무리, 혹은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일러 우리는 '악당惡黨'이라 한다. 스스로 악당이라 부르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명사는 주로 남에게 불리는 이름으로 다시 말해 악당이 존재한다는 말은 곧 상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악당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최소한 나의 뜻에 반反하는 사람은 때로 악당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이 불명예스러운 이름은 자신의 뜻은 상관없이 남에게 불리기 때문에 되도록 선하게 살려고 하는 나 역시도 혹시 누군가에게는 악당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상 사람 모두 누군가의 악당일지 모른다.
아주 특별한 경제학 책을 만났다. 세계 경제의 어두운 페르소나, 이른바 악당경제학을 이야기 한 책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데도 우리가 애써 모른 채 하고 있는 어두운 세상에 대해 시선을 고정한 여성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이다. 30여 년 동안 세상에 숨겨진 어두운 세력들을 파헤친 용감한 저널리스트 로레타 나폴레오니Loretta Napoleoni의 촌철살인적 시선이 돋보이는 책, 제목은 <적과의 동침> 원제는 Rogue Economics 이다.
저자는 악당 경제학에서의 '악당'을 '경제활동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온 이면에 숨어 있는 부정적인 그림자이며, 진보의 기저에 늘 도사리고 있는 그릇된 세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아직도 세계에 존재하고 날로 늘어가는 현대판 노예들, 세계인들의 늘어가는 빚, 광고나 정책에 교란되어 휘둘리는 소비자, 수많은 착취 노동자들의 피가 스며든 신제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악당들과 묵인하에 살고 있는 셈인데,이런 현실을 '적과의 동침'이라고 불렀다. 즉, 현재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악당들이 일으킨 경제 시스템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값싼 임금으로 착취당하는 제3세계 아동, 성 매춘, 짝퉁 산업 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이를 감시해야 할 정치세력들은 오히려 이들과 이익을 나누고 있다.
이 책은 관념적인 경제학적 이론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또한 현재 미국발 금융위기로 재부상한 케인즈 학파와 하이에크 학파간의 대립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는 경제학자라기 보다는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세계경제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악당경제학'에 주목하고 있다. 전통경제학파의 편에 서느냐 신자유주의경제학파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 더 나아가 미래 자본주의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저자는 '악당 경제학'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의 안정성은 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처음에 저자는 공산주의 체제가 세계화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부조리한 경제 세력이 어떻게 확산되는가를 조사하려 했지만, 악당 경제학은 비단 공산주의 체제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양지와 음지를 이루는 하나의 축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즉 악당경제학은 승자와 패자, 부유층과 빈곤층의 구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천박한 생활양식으로 확산시켜 우리의 삶와 사상을 천박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저자가 찾아낸 사례들은 무척이나 방대하다. 그리고 그녀가 지적한 악당들은 러시아 마피아를 비롯해 미국의 금융기관, 유럽과 중국, 제약업체와 인기 그룹U2,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단체, 국가를 막론하고 하나하나 거명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엄청난 액수의 돈과 정치 그리고 권력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었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노예제도'. 우리는 미국의 남북전쟁과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노예제도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일자리를 잃은 서유럽의 여성들은 '거리의 여인'이 되어 신종 매춘노예의 희생양이 되었고, 서부 아프리카의 코코아 농장에서 캘리포니아의 과수원까지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하는 노예무역의 재물들이 존재하고 있고, 불법어획에서 '짝퉁산업'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한 축을 형성할 만큼 현대판 '노예'들은 확산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시대에 민주주의와 노예제도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지며 공존한다는 것은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실제로 해외 비즈니스를 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끔찍한 것은 책 속에 수록된 읽기에도 악당들의 사례가 '남의 집 불보듯 할 만한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었다. 밤거리 유흥가에 출현하는 '러시아 미녀'들은 러시아 마피아를 총책으로 하고 우리나라의 '어깨'들이 판매책으로한 '매춘노예'의 현실이었고, 손님이 없는 오후 시간에는 유니폼을 벗고 거리를 배회하게 해 '알바비'를 줄이는 '88만원 세대'를 노예로 삼는 허가받은 악덕업주들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피땀 흘려 한 두푼 모은 국민들의 소중한 돈을 늘려주지는 못할 망정 수수료를 따먹기 위해 펀드가입을 권유하는 최소한의 윤리적 직업의식도 없는 '은행'들, 최고의 법률가 집단인 로펌을 등에 업고 온갖 로비로 저희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률을 바꾸는 대기업들, 향응과 비자금에 놀아나는 국회의원들이 우리에게 펼쳐진 악당 경제학의 사례들이었다.
이렇듯 버젓이 악당들이 세상을 활개치는 동안 선량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일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지금 '환각의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 쏟아지는 신제품과 점점 나아지는 생활로 우리는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제 스스로 악당 경제학에 엮여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저 세상은 좀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제 스스로가 어떤 정체일 지 모르는 악당 경제학에 발을 담구고 있어 애써 함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사실일까?'하고 의문을 던지기 보다는 '어이쿠, 정말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하고 탄식하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의식주는 풍족해졌는데 왜 살림살이는 점점 힘들어질까? 세계인의 행복지수왜 점점 낮아지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저하되는 이유도 자식을 키울 경제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내 아이가 팍팍한 세상에서 고생하는게 두렵기 때문이라 하는데 과연 우리는 행복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미래는 점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이 모든 미래의 해답은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도구인 현재를 조망하는데 이 책은 큰 도움을 주었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경제학 책이었다. 지금 세상을 주무르고 있는 지하경제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특히 오늘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당들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