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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영단어 타이틀매치
이미도 지음 / NEWRUN(뉴런)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인기 영화번역가 이미도가 제안하는 쉬운 영어단어 공부법!
저는 고등학교를 열심히 페달을 밟아 삼십 분이면 푸른 바다가 나타나는 강릉에서 다녔습니다. 강원도 내에서 꽤나 공부를 한다는 친구들이 모인 학교라서(전 항상 꼴찌에서 맴돌았지만) 성적에 연연하느라 풍경 좋은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시내 한복판에서도 갈매기를 보거나, 바다내음을 맡을 수 있는 풍광좋은 강릉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본가인 서울에 집을 두고도 강릉에서 학교를 다닌 데에는 이런저런 사연이 있지만, 자취와 하숙을 하며 가족을 떠나 일찍 독립생활을 했던 것은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경험이었죠.
일가친척없는 타향에서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큰 이유중 하나는 근방 오분 거리에 극장이 세 군네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형편도 어려웠지만, 행여나 나쁜 길에 빠지지나 않을까 딱 굶어죽지 않을 만큼 생활비를 집에서 보내왔는데 차비를 아끼고, 군것질을 참아서 주말마다 극장을 찾았습니다. 주로 미리 몇 개월 전에 했던 영화 두 편를 동시에, 그것도 싼 값에 보여주는 극장을 찾았는데, 스펙터클하거나, 훌륭한 감독과 배우가 만든 영화가 나오거나 하면 큰 맘먹고 개봉관을 찾기도 했었죠. 주말에 극장에 간다는 기대에 한 주를 버티고, 영화를 본 후엔 그 흥에 젖어 한 주를 참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가장 행복한 때 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저 였지만 저보다 더한 친구 녀석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개봉영화를 보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을 찾는 녀석이었죠. 토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터미널로 달려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로 가 대학생인 사촌누나와 함께 찜해 둔 영화를 만끽하고 큰 집에서 하루 잔 뒤에 오후에 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주말을 마무리 하는 게 녀석의 주말 일정이었습니다. 녀석은 영화에 대한 열정 만큼이나 성적도 대단했습니다. 반에서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았으니까요. 언젠가 녀석에게 '넌 영화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세상을 사는 세가지 이유 중에 세 번째는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야." 영화에 대한 사랑이 이정도 인데 앞에 두 가지는 뭘까요? 아무튼 녀석은 영화를, 영화속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남의 이야기 듣기 좋아하면 평생 빌어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낮에 옛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우리나라의 민속 금기담이 와전된 말인데, '말하고 듣기'를 삼가했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경향을 엿보는 대목입니다. 소란보다는 침묵을 높이 샀던 우리가 세상이 변하면서 함께 변해 갑니다. 21세기에 들어 '이야기'가 돈이 되는 세상을 만난 겁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이나 제품도 기능과 품질도 좋아야 하지만, '사연'이 있으면 더 잘 팔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auce-Multi use 라고 하는 이야기산업은 지금 가장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책과 영화 그리고 게임등으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납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하나의 컨텐츠가 되고, 확장되어 이야기산업으로 발전하는 세상이 오늘날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책과 영화가 되어 이 세상에 알려지고 보여져서 수만 대의 자동차를 파는 것과 맞먹는 이익을 만들어 낸다고 하니 가히 '이야기가 주도하는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은 '이야기 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것이 '영화'인데요, 오늘 이야기 할 책은 세상에 나와 있는 영화 뒤에서 '완성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쓴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영화의 엔딩이 사라지면서 극장이 밝아질 때면 항상 나타나는 이름의 주인공입니다. 이.미.도. 네, 바로 영화를 번역하시는 분이 쓴 책입니다.
그 분은 주로 월트디즈니, 월트디즈니, 워너브라더스,20세기 폭스,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픽쳐스의 작품들을 번역하셨는데, [쿵푸팬더],[눈먼 자들의 도시],[반지의 제왕 3부작],[슈렉 시리즈],[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글래디에이터],[제리 맥과이어] 등 460여 편의 명작들을 번역하셨습니다. 저처럼 영어에 둔한 영화광에게는 정말 가장 고마운 사람이죠. 이미 영화와 영어에 관련해 7 권의 책을 쓴 바 있는 이미도씨가 이번에 또 책을 냈습니다. 영화랑 영어랑 맞장 뜨는 공부법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 <이미도의 영단아 타이틀 매치> 입니다. 그는 네이버에 블로그 이웃 베스트 5에 꼽히는 이미도의 메이드 인 할리우드 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인 파워블로거이기도 합니다.
지난 해 초,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미도씨가 번역을 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와 영화가 맺어준 인연,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다양한 지식에 관하여 가감없이 풀어낸 책이었는데, 독특한 형식의 영화이야기, 영어이야기란 생각이 들게 한 멋진 수필집이었습니다. 오병곤, 홍승완씨가 쓴 책, <내 인생의 첫 책쓰기>에 의하면 일하면서 글을 쓰는 이른바 '샐러라이터salawriter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최근 일본에서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직장인들이 책을 출간하는 경향이 있어 그것을 표현한 말이라는데, 프리랜서인 이미도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이야기하고, 독자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원론적인 지식보다는 경험에서 나온 지식을 통해 충족시켜주는 데에는 같은 맥락일 겁니다.
이번 책은 조금은 원론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원작영화의 타이틀에 있는 단어들을 서로 매치시켜 동의어와 다의어, 그리고 반의어를 설명하는 일종의 단어공부책입니다. 전체적인 기반을 '영화'에 두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일 겁니다. 제가 관심을 둔 것도 영화의 타이틀입니다. 다시 말해 이미도씨가 소개하는 영화들에 더 깊은 관심이 갔습니다. 하나의 컬럼에 두 개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컬럼이 모두 50개이니 모두 100편의 영화가 소개됩니다. 영화제목에 사용된 단어의 뜻을 설명하자니 자연히 영화를 소개하게 되는데, 영화인이 소개하는 영화이야기는 웬만한 영화광도 따라할 수 없는 만큼 멋진 스토리를 갖습니다. 영화의 전부를 알려주면 혹시나 '스포일러'가 될까 요리조리 잘 피해서 영화를 설명했는데, 한결같이 보고 싶은 영화 투성이였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도 꽤 많이 있더군요. 하지만 영화 속에 그렇게 훌륭한 장면과 대사들이 숨어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읽다 보니 본 것은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들도 있어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소개하는 영화들의 뒷이야기들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입니다. 최고의 로맨틱 영화로 손꼽히는 <잉글리쉬 페이션트English Patient>의 여배우가 처음에는 '데미 무어'로 낙점되었던 사실을 아시나요?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이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Atonement>에 출현했었다는 사실도 아시나요? 이건 어떤가요? 명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출연한 명작 <레인맨Rain Man>에서 Rain Man의 뜻이 '어린 시절의 든든한 상상속 친구'라고 한다네요.
이 책에서 저자인 이미도씨는 그가 사랑하는 영화와 영어, 그리고 문학에 대해 장르를 넘나들며 실력을 유감없이 자랑합니다. 영어를 읽다 보면 영화이야기를 만나고, 그러다 보면 또 명대사를 외우게 됩니다. 재미있냐고요? 오히려 정신을 놓을까 걱정일 정도입니다. 챕터의 마지막에 소개된 단어들을 한데 모아 수록한 '통째로 끝내기 펀치' 코너는 재미있는 영화책 같지만, 결국은 이 책은 영어단어를 위한 공부책'임을 자리매김합니다. 교육과 오락을 겸비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책의 첫부분에서 "원어민용 초등학생 영영사전을 외울 수 있다면 영어 실력은 급성장할 것이다" 는 독특한 영어학습법을 소개합니다. 초등학생을 위한 사전이라 단어마다 '한평생용 필수어휘'이고, 단어의 뜻을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해 뒀기 때문에 그것으로 공부한다면 외운다면 사전 속 단어와 뜻풀이를 활용하여 영작하고, 에세이를 쓰고, 의사소통까지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단어의 뜻풀이는 초등학교 영영사전식 눈높이에서 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마치 나만을 위한 영영사전을 만든다는 기분'으로 공책에 따로 적어 자신만의 '영영사전 공책'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펄떡펄떡 살아있는 영어를 손질하는 어부 이미도씨의 조언을 따라 활어영어活語英語를 공부해봐야 겠습니다. 영화이야기를 들으면서 영어를 공부하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