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미정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뭐? <벤자민 버튼...>이 스물 다섯살 때 쓴 작품이라고?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생각이다. 좋은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과 사귀는 일이 그렇게 좋은 지 몰랐던 사람은 다시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을테고, 집과 일로 쳇바퀴를 도는 어느 직장인은 베낭 하나 달랑 메고 젊다는 것 하나만 믿고 세계를 다니고 싶을게다. 반토막난 주식에 매일 시름을 앓는 투자자나 부동산 투기꾼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블루칩 투자종목과 노른자위 땅들을 사놓고 싶다 할테고, 얼굴도 보지 못하고 시집간 할머니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 할게다. 
 

  하지만 역시 인간인지라 이런 꿈조차도 욕심이 뭍어 있다. 운좋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기억은 두고가야지, 살아본 인생의 경험을 가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니 '칼안든 도둑놈 심뽀'가 따로 없다. 원래 남녀한몸이었던 인간의 능력은 '신의 그것'에 준해서 감히 신의 자리에 가고자 바벨탑을 쌓았다가, 신의 노여움으로 탑은 무너지고, 남녀는 반으로 쪼개졌으며, 서로 다른 언어와 생각을 갖게 하는 벌을 내리지 않았던가? 오늘까지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마음은 바벨탑을 쌓았던 남여한몸의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아예 그런 꿈일랑 꾸지 않는 편이 좋을게다. 용케 과거로 돌아가는 기술을 발견한다면, 발견자가 사라지던지 아니면 기억은 놓고 가도록 만들것 같다. 신화속 신들은 인간을 꽤나 질투했으니까.
 

  또 한 명의 어리석은(?) 인간이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려진다면...어떨까?' 백세주를 마셨나? 나이들면서 점점 회춘하시겠다? 발칙하고 당돌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상상은 이야기가 되어 지난 겨울 우리에게 영상으로 나타나 현실화 되었다. 세계적인 명배우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벤자민과 데이지로 나와 안타까운 한 편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었으니, 영화제목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T. S. 엘리엇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세기 최고 거장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썼다. 영화가 기괴하지만 슬프고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원작은 로맨스와는 상관없이 고독한 인간의 원형을 그리고 있다. 원작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글쎄,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팀 버튼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 좋겠다. 
  

  책장 처음을 넘기자 마자 좋지 않은 병원 분위기가 나타나더니 태어나면서부터 지팡이가 필요할 정도의 늙은 노인의 모습을 한 괴물 벤자민이 등장한다. 엄마의 모습은 언급조자 하지 않고, 아이는 말을 한다. 아마도 쉰 목소리의 할아버지 음성이겠지? 배가 고프다하니 우유를 주더라 역정을 내는...어떻게 태어났을까 상상만 해도 걱정된다. 제대로 순산은 아닐 듯, 에일리언의 탄생을 닮지 않았을까? 아서라, 생각만도 끔찍하다. 

  출생부터 냉대를 받더니 한참을 클 동안 무관심 속에서 자란다. 아, 할아버지와는 친구를 먹더구만. 할아버지가 '~씨'라고 붙일 정도의 외모였다니, 짐작하고 남는다. 머리는 영young 하지만 몸은 올드old 한 50줄 모습의 벤자민은 성숙한 중년을 이상형으로 갖고 있는 처자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눈뜬다. 사업엔 '딱'좋은 풍채의 벤자민이었으니 비즈니스는 성했고, 결혼 또한 축복을 받았다. 그런 기쁨의 순간도 잠시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 상대적으로 제대로 늙어가는 데이지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급기야 아들이 '날 삼촌이라고 불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어진다. 그리고 결국...
  



  영화를 봤던 독자라면 원작을 통해 각본의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물 넷의 젊은 나이에 대법원 판사의 딸과 결혼 했지만,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리고 많은 빚을 지게 되는 F. 스콧 피츠제럴드, 경제적 압박과 아내 젤다의 신경쇠약 발작등 노년의 그의 삶은 그가 남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데, 이 작품은 제대로, 아주 제대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젊은 시절 소설가로 유명해질 만큼 똑똑했던 피츠제럴드는 70 노인의 머리를 가졌고, 술에 의지해 하루 하루를 연명했던 말년은 우유가 필요한 아기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1921년 콜리어Colliers 잡지에 실렸다는 점이다. 그의 미래를 내다봤다는 것일까? 아니면 결혼 후(1920년) 1년 만에 평생동안 암울할 것 같은 자신의 결혼생활을 짐작했단 소릴까? 아무튼 25세의 청년이 정신연령과 신체연령간의 심오한 의미를 알았다는 점은 그가 위대한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영화를 먼저 봤던 터라 원작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비슷한 스토리지만 전혀 다른 관점이었던 원작이라 특별하게 느껴졌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가 나와도 괜찮을 법하다(물론 메가톤은 팀 버튼 감독이 잡아야겠지만...). 책 속에 또 다른 책 한 권이 부록으로 있으니 놓치지 말자.
 

P.S: 친절하게도 한국어판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영어 원작을 만날 수 있다. 원작은 39 페이지 였지만, 이 책은 읽기 쉽게 65 페이지로 늘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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