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문화사회적 측면에서 대한민국 아파트의 현실을 파헤친 건강하고 재미있는 책!

 

  책 제목 한번 거칠다. '아파트에 미치다'. 하지만 그런 거친 표현의 내면에는  한국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국민 전체의 70% 정도가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한다는 현실이 있다면 '아파트에 미쳤다'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이젠 초등학교 시험문제에서 한국 국민의 생활의 3대 기본요소에 대한 답을 의,식,주가 아니라 의,식,아파트라고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한국 국민의 보유재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파트에 대해 보다 더 잘 알고 싶어서다. 그리고 국민들이 왜 그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전상인 교수가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아파트를 살펴본 책, <아파트에 미치다>를 읽었다. 저자는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시설이나 주거공간의 의미를 넘어 아파트만으로도 한국사회의 특성과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주거문화에 관련된 한국인의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한국사회의 총체적이고도 구조적인 측면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창구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한국 국민이 왜 그렇게 아파트에 열광하는가(왜 아파트인가?)를 개략적으로 조망하고 국내 아파트의 보급과 확산의 역사를 조명했다. 국내 아파트의 역사를 조망하는 부분은 아파트 전문가이면서 닥터아파트의 창업주인 닥터봉이라는 필명의 봉준호씨가 쓴 책 <닥터봉의 부동산Show>에서도 자세히 언급되었는데, 함께 보완해가면서 읽었더니 한결 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부의 원천이자, 신분의 차별적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파트와 함께 하는 미래한국에 대해서도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젊은 연구가인 발레리 줄레조가 지난 2007년에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써 국내 아파트의 문제점에 대해 제기한 바 있고, 민주노총 대변인이었던 손낙구씨가 쓴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도 한국의 부동산문제를 다루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학자에 의해 본격적으로 한국 아파트에 메스를 들이댄 책은 이 책이 처음인 듯 하다. 게다가 문화사회학적 관점이라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았다는 점은 더욱 흥미로웠다. 아파트는 그만큼 우리 생활에 뗄레야 뗄 수 없을 만큼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공감한 부분은 앞서 말한 <아파트 공화국>을 쓴 발레리 줄레조이 책의 저자가 관심을 둔 부분과 일치한 '서양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중산층은 물론 상류층까지도 아파트 거주를 선호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을 잘 설명해주는 듯한 부분은 제 4장 아파트 -부의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 예금, 주식, 부동산 이렇게 투자의 대표적인 3대 포트폴리오 중에서 '환금성'(화폐로 전환시키는 성격)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부분은 부동산이다. 부동산 중에서도 투자자들에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넛 평균적인 수단은 바로 주택이 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투자수단 중에서 '집'이 가장 비싼 만큼 이를 사고 팔기가 가장 까다롭다. 그 이유는 매도자와 매수자간의 시공간적, 심리적 불합의가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고, 주택선호도와 내용연수와 감가상각등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전세와 같은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임차방식이 있어 그 '환금성'은 다른 투자 수단 그리고 같은 부동산이라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아파트'다.

 

  주택가격이라고 하는 것이 매도자와 매입자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절대적인 가격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 아파트 특히 500세대 이상의 단지에 있는 아파트의 경우는 최근에 거래된 가격이 단지내 같은 크기의 아파트 가격으로 잠정적으로 합의된 터라 가격결정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을 이용해 부녀회가 아파트 매도가를 결정하는 등의 일종의 카르텔도 이뤄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거나 팔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 자가 가격싸움에서 불리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부동산의 가격형성인데, 옆집의 최근 거래가가 자신의 거래가된다는 것은 가격의 고하를 떠나 다른 주택(모양도 크기도 다른)보다 그만큼 '환금성'에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자산보유 수준으로도 거래에 있어 장점을 가진 상류층들이 아파트에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둘째로 상류층들은 일종의 트렌드세터trend setter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개념과 보다 나은 시설의 아파트를 지어 인기를 구가하고자 하는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그들만을 위한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은 브랜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 2000년 아파트가 저마다 이름을 갖게 되면서  점점 더 고급화되고 브랜드화하는 경향은 이를 보여주는 방증이 된다. 

 

  세째로 핵가족화를 들 수 있겠다. 먼저 아파트라는 독특한 거주문화가 생겨나면서 핵가족화가 이루어졌는지, 핵가족화하는 경향때문에 아파트가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산층은 물론 상류층까지 핵가족화되면서 고래등같은 집을 보유하며 집을 돌보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은 낭비로 여겨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상류층의 아파트 생활은 가장 편하고 첨단화 되었음에도 '가사 도우미'를 둔다고 하니 일반주택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만, 옛날 상류층의 본거지가 대를 이은 '터'를 중시했다면, 지금은 아파트의 '브랜드'를 중시하는 경향은 전통을 중시하는 예전과는 많은 차이를 둔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구조, 그리고 재산에 대한 이야기라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것도 많고, 트집잡고 싶은 부분도 많다. 이 땅에 아파트가 생긴지 벌써 두 세대가 지났기에 일반주택보다는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아파트를 보며 자란 세대들이 많아진 지금, 이처럼 예전부터 있어왔던 '자연스러운 집'이 되어버린 아파트에 대해 우리는 그 역사와 문제점 그리고 아파트로 인한 사회적 문화적 영향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내가 살고 보는 아파트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느낌들이 많이 들었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의 전환점'을 제시해 준 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초고가화되어가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미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아파트가 한국의 독특한 주택구조라는 특징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라면 날로 고가화되어 가구의 재산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그래프적인 외형만을 나타낸다면 앞으로 이땅에서 집을 소유해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마천루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을 보여주는 '높디 높은 벽'이 될 것이고, 이러한 아파트 사회로의 행군이 이 땅의 평범한 시민과 미래세대로 하여금 처음부터 좌절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의 진짜 후진성이라고 강조했다. 깊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이 아파트가 너무 좋아 그에 미쳐가는 게(열광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가 스스로 미쳐가며 성장하는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던져준 책, 이렇게 건강한 책이 우리나라에서 나온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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