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이종한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머지 않아 미국 국채와 달러는 상대해서는 안될 기피 품목이 될 것이다!
지난 2008년 10월 9일 기준 미국 부채시계의 자리수가 모자라는 역사적인 기록 순간이 있었다. 자리수가 모자라는 것을 억지로 수리해서 $가 들어갈 sign 옆에 1자를 끼워 넣어 $10 Trillion을 만들었다. 미국 정부의 현재 빚은 10.2 Trillion Dollar 이상이다. trillion은 1조, 즉 10.2조 달러. 우리돈으로 대략 1경 6300조원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빚을 지고 있다. (사진출처는 데일리 헤럴드 지) 세계는 지금 미국 달러로 인해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아메리카 대마불사大馬不死'를 믿는다?"
지난 달 25일 미국 재무부는 320억 달러 규모의 만기 5년 짜리 국채를 발행했다. 이는 2006년 이후 최대 물량이었는데, 이 국채는 시장에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사들여 나오자마자 동이 났다. 사실상 '제로 금리' 상태인 미국 국채가 이처럼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은 그만큼 국제 금융 시장이 불안하다는 방증이고, 손실을 보느니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안전자산에 일단 묻어 놓겠다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발동했다. 역설적이게도 마구 찍어대도 '몸값'이 치솟는 달러의 이유는 대안이 없는 현 경제상황에서 미국이 국채를 다량으로 발행해 달러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도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돈이 갈 곳은 달러 외에는 금밖에 없다는 전문가의 지적이다(2009. 3.3 일자 중앙일보 기사 요약). 세계금융위기의 진앙지 미국은 과연 대마불사일까?
그에 대해 응답하는 글을 만나 보자. "이쯤에서 일단 한번 정리를 해두자. 전 세계 은행들의 보유 자산 총액인 4테라 달러에 대해서, 현재 국제통화기금은 1.4테라 달러, 루비니 교수는 2테라 달러 정도의 손실이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미국 내의 손실에만 국한된 수치이다. 여기에다 불투명한 미국 소비 관련 신용 액수인 4.5 테라 달러를 더해야 한다. S&P는 국내총생산의 10포인트, 즉 1 테라 달러를 납세자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까지 공금된 자금은 0.8 테라 달러이다. 주식시장의 폭락과 부동산 하락으로 액면가 37 테라 달러가 증발했다. 신용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돈은 어디에서 마련할 수 있을까? 납세자들의 주머니에서? 그럴 경우, 그나마 유지되는 거의 명목뿐인 성장마저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다면 적자 재정을 통해서? 이경우, 미국 국채와 달러는 머지않아 더 이상 상대해서는 안 될 기피 품목으로 전락할 것이다."(P 106)
이처럼 미국 국채와 달러에 대해 무시무시한 발언을 한 사람은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자크 아탈리가 한 말이다. 그에 대해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세계금융위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의 책 <위기 그리고 그 이후>를 통해서다. 세계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유럽 지식인의 책이라 더욱 주목되었다. 원제는 La crise, et après 이다. 자크 아탈리는 이 책에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적절한 시기에 세계 정부가 창립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고, 이렇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1세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전쟁의 위협도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무시무시한 전망의 이유를 추적해 봤다.
이 책은 프랑스의 최고 지성 자크 아탈리가 이번 세계금융위기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해 본 책이다. 지금껏 지구상에 있었던 경제 위기들을 살펴보고, 이번 세계금융위기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를 재검토함으로써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위협과 그 대책, 무엇보다 당장 세계가 강구해야 할 긴급대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닥쳐올 금융 위기에 대한 경고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170여 쪽의 짧은 글은 세계금융위기를 다룬 그 어느 장서보다 자세하고 솔직하게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위기를 유럽의 시각으로 바라봤다는데 그의 해석은 더욱 냉철하고 대담했다.
저자는 이번 위기는 인류에게 닥친 여러 위기중 하나라면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12세기경 벨기에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부터 더듬으며 과거의 위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는 미래에서 보면 방향의 선회라기보다는 진행의 가속화로 기록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2002년 미국이 수요가 둔화되자 미국 정부가 소득 증가 정책을 쓰는 대신 주택금융업기관을 비롯, 여타 부동산 관련기관을 통해 지불 능력이 낮은 고객들에게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최상의 금리로 대출해줄 것을 부추겼는데,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헤지펀드 운영자들의 총아였던 하이먼 민스키는 이때 심각한 금융 위기가 몰려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익성 높은 혁신(또는 경제 정책의 변화), 경제 호황, 낙관주의 팽배, 이익의 유출, 그리고 '민스키 모멘트'라고 하는 패닉상태가 닥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시기를 2009년쯤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는 그의 말에 귀기울인 경제학자들은 극소수였다는 것이다.
전반부의 내용에 해당하는 인류 역사상 이번 위기보다 먼저 닥쳤던 위기들과 세계금융위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짧게 조망한 부분은 한 편의 프리젠테이션처럼 컴펙트했다. 미국의 현실과 함께 동조하여 변화했던 유럽의 상황도 함께 볼 수 있어 전체를 이해하기가 더욱 용이했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 [앞으로 닥칠 위협]부터였다. 이번 금융위기는 실물 경제 위기로 번져 대부분의 기업과 소비자, 근로자, 예금자, 대출자, 국가들을 모조리 곤경에 빠뜨리게 될 것이고 몇몇 나라는 사회불안과 정치불안의 요인으로도 작용될 것이며,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도마위에 올라 어쩌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주의의 경제주의로 알려진 '신자유주의 경제주의'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컸는데, 이번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존립위기'에 놓였다고 봐야 할텐데, 아직 그 대안이 없어 세계의 입장에서 미국은 '무너져서는 안되는 나라' 격이다. 다시 말해 한 줄을 선 도미노의 첫 블록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경기침체, 불황,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경제위기의 진행으로 전세계적으로 외환 위기까지 겪게 되고, 이는 사회적, 이념적, 정치적 위기로까지 번지게 될 것으로 저자는 내다보았다. 그 해결책으로 저자는 법치를 통한 시장의 균형 되찾기 즉, 정보가 공평하게 그리고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기제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반 규칙을 어기는 자들을 감독하고 제재를 가할 수 잇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 세계적인 경찰과 사법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해결책이 한편으로 유토피아적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은 이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작 [미래의 물결]에서 처럼 '하이퍼 민주주의'실현을 주장했던 자크 아탈리다운 의견이다.
하지만 소수의 선점자만이 시장의 정보를 공유했던 작금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이번 금융위기를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제 2, 제 3의 세계금융위기가 올 것은 자명하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만드는 미국에서 비롯된 이번 위기인 만큼 세계 또한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도 사실이기에 그 대안의 필요성은 불가피하다. 분명한 것은 자크 아탈리 역시 1929년에 내 놓은 뉴딜정책을 지금 다시 사용한다면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앨빈 토플러의 [불황을 넘어서]에서 뉴딜 정책은 더이상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경고와 일치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오늘날은 그만큼 경제의 간섭 현상이 광범위해졌으며, 분업도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 재화와 노동력의 시장까지도 빈틈없이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에 본 외국 석학들의 세계금융위기를 보는 전망은 무척이나 어둡다. 해결책에 대한 논의는 차치로 두고라도 이번 위기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데는 입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위기의 폭과 넓이를 아직까지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책을 덮으면서 우리의 소비국들이 이럴진대 수출주도국가인 우리나라는 그 파장은 얼마나 될 지 심란해서 생각조차 하기 두려웠다. 우리가 이번 위기를 넘어설 대안은 무엇일까? '그린 뉴딜'정책일까? 외국과의 끊임없는 FTA 체결일까? 한국이라는 배는 제대로 항로를 잡고 나아가고 있는 지 고민하게 했다. 금융위기 이후에 다가올 최후의 시나리오는 무섭기 그지 없고, 그 해결책은 막연하다. 하지만 오늘까지의 전모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가늠하고 싶다면 꼭 넘겨봐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