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스키가 간다 -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한재호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세기 잉여인간의 수상한 발걸음  

  한 남자가 남자를 쫓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정확히 아침 9시에 '슈퍼' 문을 닫고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쫓아 그(부코스키)를 몰래 미행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섬뜩한' 이야기는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의 중심 사건. 부코스키를 쫓는 이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백수 '나'와 그에게 우연히 얹혀 살고 있는 애인 비슷한 여성 '거북이'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 평범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첫장부터 시큰퉁했지만 눈은 의지와 달리 활자를 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활자를 따라 미행에 참여하고 있었다. 신예 작가 한재호의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이다.  

  특별한 날이 생기면 오히려 이상한 백수의 하루에 우연히 끼어든 소문은 '비가 오는 날이면 가게 문을 닫고 나가는 남자' 였다. 누가 시킨 것도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런 이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를 추적하게 된다. '나'의 집에 얹혀서 기생생활을 하는 애인 비슷한 여자 '거북이'는 추임새를 놓듯 호기심만 북돋으며 '오랜만에 얻은 나의 일'에 동참한다. '별 희안한 놈도 다 있다'며 비웃었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 백수라면 나도 그럴껄? 하는 동조감도 교차했다. 눈은 여전히 작가 한재호의 글을 미행하고 있었고...왜냐고? 궁금하니까. 

  '나'는 부코스키를 왜 쫓고 있을까? 그는 백수이기 때문이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했던가? '할 일'이 없는 그는 스스로 할 일을 만들었다. 늘 변함없이 구직생활을 하고 있는 '나'지만 늘 그렇듯 '합격소식'은 없다. 그에게 구직활동은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희망도 긴장감도 없다. 무료함이 일상이 된 백수인 '나'에게 '부코스키'라는 인물의 이력은 귀에 감기는 이름이요, 다른 별나라 사람의 행동이다. 이제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의 당면과제가 되었고, 누가 시키지도 돈도 주지 않지만 그를 쫓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가 가게 문을 닫는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나'와 함께 부코스키를 쫓으면서 일하는 인간, 호모 에르가스터Homo ergaster 가 되고 싶은 백수'의 욕망을 엿본다. 그가 부코스키의 정체를 추적함은 이력서를 기업에 던지고 채용소식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 즐겁고, 스스로의 힘으로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스스로' 답을 구하려고 하는 의지는 청년백수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익히 알고 있는 서울의 번화가를 걷는 그들을 쫓음은 눈에 보이는 듯한 사실감도 있었고, '나'를 쫓아가는 또 다른 한 사내는 독자인 나 같아서 약간의 스릴이 따랐다.  

  이 소설은 백수소설이다. 2000년 이후부터 [백수소설]이 우리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는데,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민주화 이후 한국에 양산되고 있는 빈곤층을 포함한, 새롭게 형성된 하류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의 한 표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백수소설을 '신빈곤층 문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부코스키를 붙잡고 '당신은 왜 비만 오면 9시에 밖을 나가는가'하고 직접 물음직도 하고, 그를 끝까지 추적해서 밝혀낼 수도 있건만 오히려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의 '일'은 없어질까 그냥 추적하는 과정을 즐기는 듯한 '나'를 따르며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꼈다. 부코스키의 정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어쩔려고? 라고 묻는다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사보타주같은 푸념이 그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 

  읽으면서 손창섭의 '잉여인간'이 계속되서 오버랩되었다. 자기 현실에서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하여 외면하는 현실세태를 역설적으로 비판한 작품이 '잉여인간'이라면 이 시대에 일하지 못하는 젊은 청춘들을 시니컬하고 격하게 표현한다면 21세기의 잉여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생각 못하고 또 다시 '나'를 미행하게 하는 작가의 흡인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비오는 날 아침 9시면 이 소설이 생각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