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불황을 넘어서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세계금융위기를 이겨낼 해법은 '뉴딜정책'엔 없다.  


경제주체들의 통제력 확보에 달렸다!

 
  IMF 총재 “올 세계경제 성장률은 제로에 이를 것” 이라는 어제자 뉴스를 접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3개월 후에 나오는 차기 IMF 전망은 제로에 바짝 다가설 가능성 있다”며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 계속 나빠지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AFP와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프랑스 경제일간지인 ‘러 에코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상황은 매우 분명하다. 2009년은 이미 흐름이 결정이 났으며 몹시 나쁜 한 해가 될 것” 이라고 말하며 일부 국가들의 부도 위기와 관련해서는, “몇몇 국가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2차로 IMF의 문들을 두드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국가가 현재보다 더 늘어날 것임을 시사했다. 세계경제가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2009년에 있어 가장 큰 화두는 '생존 Survival' 이 될 것 같다.
 

  우리 일상생활 중에 순조롭던 일이 한순간에 막히고,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으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占집'을 찾듯이, 지금 전세계는 경제를 관망하고 맥을 짚어가는 경제석학들의 한마디에 온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금세기 최고의 미래학자라고 불리고 미래 쇼크》, 《제3물결》, 《권력이동》 등 일련의 미래학 도서들을 써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든 엘빈 토플러가 오늘날의 세계경제위기 상황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재미있게도 30 여년 전인 1975년 자신이 쓴 책 <불황을 넘어서 The Eco-Spasm Report>을 다시 내 놓는 것으로 대체했다. 신자유주의경제의 문제점을 밝히며 1975년 이후 다가올 경제위기를 우려한 책이었는데, 그 우려들은 오늘날의 세계경제위기와 절묘하게 맞물려있다. 스스로도 자신의 책을 읽고 놀랐다고 했듯이, 나 역시 그의 통찰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제목, <불황을 넘어서>이다. 원제는 BEYOND DEPRESSION 이다.  
 

 


  이 책의 요지는 저자가 우려한 1975년 이후에 다가올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에 있다. 즉 당시(1975년) 경제학자들은 경제문제들을 1930년대 대공황에 빗대면서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한 해법들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때와 지금의 커다란 차이점 하나를 말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커다란 차이점은 바로 제 2차 세계대전.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진행된 1970년대의 경제상황은 경제적 발전 정도, 인구, 노동자 수, 인구 구성, 가족구조, 여성인력 활용도, 노령인구 비중, 보건의료 시스템등 핵심변수들이 모두 차원이 다르게 달라졌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의 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의 해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물며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해법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21세기의 경제가 과거와 달라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며, 새로이 변화된 21세기 경제의 주된 특징을 크게 진부해진 경제모델, 지식의 역할 증대, 가속화와 탈동시화, 증대되는 복잡성, 국경의 소멸 이렇게 다섯가지로 나누었다.  

  21세기에는 경제활동에 있어 정량화하기 어려운 지식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산업화시대의 경제모델로는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을 올바르게 제시할 수 없고(진부해진 경제모델), 지식이라는 정량화하기 어려운 무형요소들은 점점 더 큰 역할을 맡고, 컴퓨터 통신관련 기술, 공장자동화, 정부와 기업의 재정운용에 필요한 금융비중 증대등 다양한 요소로 확산되고 있다(지식의 역할 증대). 한편 지식 산업을 바탕으로한 민간 부문의 발전 속도는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할 만큼 빨라지는 반면 공공 부분의 속도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어 사회 곳곳에서 탈동시화[de-synchronization]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가속화와 탈동시화). 아울러 금융, 제조, 법률,과학, 의료, 네트워크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등 모든 것이 점점 더 복잡해져서, 각 분야의 전문가[experts]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증대되는 복잡성).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기업과 정부는 경제활동의 범위를 계속해서 확장해나가려 하기 때문에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업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국경의 소멸). 

  이렇듯 전혀 다른 환경에 벌어진 경제위기에 대해 '사례적 측면'에서 예측할 수 있는 규모와 범위를 짐작하게 하는 예로 들고 있는 '1929년의 경제 대공황'을 마치 지금의 세계경제위기와 비슷하게 보고 정부와 언론 그리고 식자들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질없는 누를 범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동시다발적인 세계적인 경제위기인 점에서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또 하나 비교할 빌미를 제공한 것은 미국 새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버락 오바마'대통령의 취임사에 나온 '신뉴딜 정책'도 한 몫을 한다.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정책의 정책은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이었다. 단지 토목공사 사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자유방임에서 국가개입으로 바꾸고, 소득세 증대를 통해 사회의 부를 재생산하겠다는 정책이었다. 다시 말해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미국을 중산층 중심 사회로 만들겠다는 정책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지나치게 자신의 부를 늘리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부의 재분배, 노동자들의 권리 강화 등 사회주의의 강점을 적극 수용한 것들이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25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2009년 1월 20일 취임 직후 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최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단행키로 했다. 오바마의 신뉴딜 구상은 단순한 토목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에너지 효율 개선 및 교육환경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연계돼 있다. 오바마는 우선 연방건물의 난방과 조명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설비로 교체하는 작업을 전국에 걸쳐 실시, 에너지 예산을 수십억달러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의 노후한 도로와 다리 등 기반시설에 투자할 것을 다짐하면서 예산을 지원받을 주정부들이 신속하게 집행하지 않을 경우 지원예산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는 또 "학교건물 현대화 및 컴퓨터 기자재 확충 등 미국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획기적인 교육환경 개선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특히 "인터넷을 발명했던 미국이 초고속인터넷통신망 가입 순위 세계 15위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모든 아이들이 인터넷에 접근할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과 비교해 에너지 효율 개선과 교육환경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하며 천연자원 고갈과 지식산업시대를 위한 경쟁력 제고라는 21세기에 걸맞는 인프라 투자 계획이 '신뉴딜 정책'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한편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기축년 신년초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올 한 해를 ‘4대강 뉴딜정책’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4대강 사업은 28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4대강 유역을 친환경 공원으로 조성하고 전국 곳곳을 자전거길로 연결해 생태문화가 뿌리 내리게 할 것이다. 녹색뉴딜정책도 본격적으로 점화하고자 한다. 태양광·풍력·연료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의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동시에, 건물과 교통의 에너지 효율화 사업, 폐자원 활용 사업은 올해부터 당장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며ㅡ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설치하고 ‘녹색성장기본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고 발표했다. 이른 바 전국에 ‘망치 소리’를 울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운하식’ 경제 정책인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1930년대의 대공황을 해결한 뉴딜정책을 해법으로 삼는다면 큰 착각이라고 경고한 앨빈 토플러. 한국경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뉴딜정책'을 익히 들었을 법 한데 그는 어떻게 느꼈을까? 예전에 한국에 와서 역설했음직한 그의 대답이 귀에 남는다. "오늘날 산업과 경제는 빨리 발전하는 데 비해 정치와 규제의 속도는 더딘 '탈동시화'가 이뤄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정부는 상명하달上命下達식 관료주의에 빠져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정부는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혁신적인 새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문제해결 전망에 대해선 낙관적이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위기의 본질과 상황을 알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며, 최악이 국면을 벗어나는 데만 1년 반에서 2년이 걸릴 것이다." 이어 이번 세계금융위기를 겪는 세계인들의 과제에 대해서는 "이번 경제 위기로 과거의 전통적 세계는 종결된 셈이다. 경제를 '희소자원의 배분'으로 보는 시각은 한계가 있으며 무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이 맺고 있는 연관관계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대답했다.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이번 금융위기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이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 해답을 단 한사람의 전문가에게서 들으려고 했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하면 안되는 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금쪽같은 시간과 비용을 치뤄야 하는 앞으로의 미래에 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찾아야 한다. 위정자와 정부관료들, 특히 우리의 경제대통령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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