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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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와 삶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대학 1학년을 마칠 즈음 기말고사 직전 33명의 떼미팅(?)을 했더랬다. 이런 대책없는 사건을 치루리라고는 언감생심 생각도 없었는데, 술동무 동기녀석이 추천을 했고 학비의 1/5 정도의 장학금에 눈이 멀어 선뜻 수락했는데, 그 때의 선거공약이 '1 학년 40명 전원 떼거지 미팅을 주선하겠다'는 것. 지금 생각해봐도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서 술김에 한 소리인지, 아니면 떨어질 것이 확실해서 객적은 소리를 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당치도 않은 공약때문에 압도적인 표차이(30여명이 참가했으니 표차이가 나봐야 얼마나 나겠냐마는)로 당선되고, 장학금을 탄다는 명목으로 엄마에게 그 금액만큼 선불을 땡겨 동기들에게 술을 샀다(학기를 마치자마자 군입대를 해서 장학금은 무효가 되었고, 땡겨 써버린 선불은 일병휴가때 막노동을 해서 갚아야 했다. 삶이란게 참 퍽퍽하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화장실 다녀온 놈'의 심뽀같아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게 못마땅했던 터라 난 꼭 지키기로 마음먹고 동기녀석 둘과 함께 어느 여전(여자전문대학)을 찾아가 강의가 막 끝난 유아교육학생들의 강의실을 급습해 '30명 단체미팅'을 약속받는데 성공했다. 미팅 당일 총참석 가능인원은 26명, 미팅에 굶주린 85학번 예비역들 7명이나 반강제적으로 참석해 졸지에 33 대 31의 단체미팅이 학교앞 6군데의 카페에 분산되어 치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커플이 된 사람들만 따로 모이는 2차 장소인 맥주집 '레벤브로이'에 30여 명이 찾아왔다. 주선자의 결말이란 늘 그렇듯 지갑은 텅텅 비고, 욕은 배가 터질만큼 먹고 한쪽 구석에서 허탈하게 커플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커플이 된 여학생이 수고했다며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짝이 된 파트너가 마음에 들었을까? 아님 나였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책 이름은 '배꼽'.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도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오쇼 라즈니쉬가 쓴 책이었다.  

  책을 좀처럼 읽지 않았던 때라 선물받은 사실에 의미를 두고 책은 거들떠 보지 않을 법도 한데, 겨울방학 첫째 주에 입대영장을 받아 심란한 마음에 아무것도 못하고 방안에서 고민만 하고 있다가 우연히 그 책을 '재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그리고 책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 두 페이지 정도의 재미있고 짧은 우화를 소개하고 저자인 철학자가 나름의 멘토링을 던져주는 형식의 우화집이었는데, 생각조차 없었기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에서 얻는 배움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기쁨을 맛보았다. 당시에는 꽤 유명한 책이었는데, 속편도 출간되어 직접 찾아 읽을 정도(아마 책구매의 첫기억 같다)로 매료되었다. 훈련소에 입대할 때도 지니고 갔는데, 압수된 후에 잃어버렸다. 지금도 듣고 흘려버릴 수 있는 이야기에도 교훈과 삶의 의미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한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 그런 책을 또 하나 발견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번엔 인도의 철학자가 아니라 브라질의 히피 출신이 쓴 책이다. <연금술사>로 잘 알려진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저자가 1998년부터 2005년 까지 쓴 짧은 감상문과 산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삶과 죽음, 운명과 선택, 실연의 아픔과 사랑의 발견에 대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 책이 빛을 발하는 것은 저자가 경험하고, 들은 주위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저녁식사후 편한 수다처럼 편안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 한 시간을 전쟁치루듯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에게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철학자 같다. '인생을 제3자적 입장에서 관찰할 줄 아는 시간이 널널한 사람들'이 철학자가 아니던가? 젊어서 정신병원에 세 번 입원한 적이 있고, 히피생활을 했으며, 이름난 작곡자였다가 어느날 자신만의 멘토를 만나 산티아고를 순례하고 글을 쓰게 된 저자의 이력은 그에게 '남보다 삶을 줌인 줌아웃하게 하는 관찰력'을 준 것 같다(하늘이 내려준 문장력을 포함해서). 하나의 이야기에는 자신의 삶이 뭍어 있고, 자신의 시선이 꽂혀 있다. 지금껏 쓰여진 그의 책이 '자신을 뱉어낸 글들'이었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책인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글은 '그는 살아서 죽었다'였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쓸데없는 일들을 걱정하고, 일을 멈추고, 중요한 순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늘 푸념하면서도 막상 행동하기는 두려워한다. 모든 것이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스스로는 변화하려들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오랫동안 미뤄온 전화통화를 더는 미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지금보다는 좀 더 활기를 띠게 될 것이고, 육신의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을 두려워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p 164)

 

  저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다며 우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삶 앞에 준비된 자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어제 그녀와 진지하게 한 말과 같아 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언제 죽을 지 모르기에 오늘을 당당하게, 후회없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오늘을 슬퍼하며 지내는 것은 불행한 것이라며 웃고 행복하며 살기를 일부러라도 찾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파울로 코엘료는 그런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아 힘이 솟았다. 이 책에는 답은 없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던져 동의를 구하고, 독자들이 스스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는 마음적 여유를 제공하고 있었다. 누런 종이에 검은 활자 몇 개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다니...책이 주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한 '오쇼 라즈니쉬'가 생을 마감했을 때, 세상은 안타까워 했지만 인도국민들은 "그런 철학자들은 우리나라에 만 명은 넘게 있어서 그리 슬플 일도 아니다"고 뻐기며 심드렁했다고 한다. 세익스피어를 두고 엘리자베스 1세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라고 했는데, 그럼 세익스피어는 오쇼 라즈니쉬를 능가하는 만 명의 철학자를 가진 나라보다 훌륭하단 말일까? 하는 바보같은 질문을 해 본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파울로 코엘료가 세상을 마감한다면 세상도 슬퍼하고, 브라질도 슬퍼할 것이다. 고전이 될 만한 작품들을 쓰는 저자들을 '내 생애'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 책은 그런 기쁨을 또 한 번 만끽하게 해준 책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와의 대화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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