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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단숨에 세 권을 읽게 하는 오쿠다 히데오식 하드보일드 소설!
우리나라에서는 [코믹 작가]로 잘 알려진 '오쿠다 히데오'. 우리나라에서 그를 알게 된 소설들이 [공중그네]를 비롯한 일련의 코믹소설들로 이루어져 그렇게 생각될 뿐, 일본에서는 하드보일드한 스토리로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하기로 알려진 작가다. 갓 스물부터 스물 아홉까지를 이야기한 [스무살 도쿄]가 그렇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세 주인공의 스토리가 옴니버스형식으로 엮어진 소설 [최악]은 소설의 진면보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또 다른 소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전개와 눈에 보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문체로 세 권을 단 숨에 읽게 하는 매력을 지닌 소설, [방해자]다. 원제는 邪魔 .
어느 날 일본의 작은 시에 위치한 기업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전후로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그 사건에 연류되면서 얽히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사건에 휘말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세 주인공이 결국 한 사건에서 만나게 되는 전작 최악(最悪)의 사건전개방식에서 좀 더 복잡하고 세밀하게 진화하였다. 최악이 한 스토리를 위한 세 주인공의 결합이었다면, 이 소설에 소개되는 방화사건은 세 명의 스토리를 위한 발단 사건에 불과하다. 세 주인공의 이야기, 그래서 3권, 모두 1,000여 페이지에 이른다.
열 일곱의 소년 유스케는 요헤이, 히로키와 함께 셋이서 늘 그렇듯 용돈벌이로 '아저씨 사냥'을 하다가 그들의 먹잇감이 '형사'인지도 모르고 접근했다가 동료는 팔이 부러지고, 자신은 턱을 얻어맞는 부상을 입고 도망친다. 그냥 재수없는 날이라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는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파트타임으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 쿄코는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으로 인해 두 손에 화상을 입고 입원하자 혼란에 빠진다. 한편 그녀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계기로 본점의 아르바이트원인 고무라와 인권변호사인 오기와라와 함께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할인마트와의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사건에 연류된 남편에게 보이는 수상함과 근무하는 할인마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민감해지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7년 전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은 형사 구노는 동료형사 하나무라의 부정한 행실을 추적중이다. 잠복중에 '아저씨 사냥'에 찍혀 불량소년 셋을 혼내주지만,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질형사 하나무라는 소년들을 회유해 형사의 폭행에 대해 '피해신고'를 하게 해 위기에 점점 빠지게 된다.
처음엔 아주 작았던 사건이 점점 커져서는 '모래귀신'처럼 깊은 암흑 속으로 빨려들고 마는 세 주인공, 그들은 사건의 본질을 발견했을 때는 이를 대처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부정으로 얼룩진 기업의 뒷모습, 그리고 암흑과 결탁한 경찰 수뇌부, 노동인권을 빌미로 기업후원을 얻어내는 NGO들의 황동등 일본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소개하고 그 속에 끼인 작은 소시민들의 절망감을 스토리로 엮고 잘 접목시켜 독자로 하여금 동질감과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의 강점은 역시 심리묘사다. 우리나라의 추리소설가 김성종이 심리학자 못지 않게 인간 성향의 양면을 섬뜩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면, 오쿠다 히데오는 다면적인 인간의 심리를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작 [최악] 때와 마찬가지로 나이와 성별이 서로 다른 주인공들의 감정들을 제 캐릭터에 정확히 들어맞게 잘 표현되어 놀라웠다. 특히 가정은 방화범의 가족으로 몰리고, 자신 또한 기업인을 괴롭히는 공산당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사력을 다해 두 아이와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는 쿄코의 불안한 여성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이 소설이 남성 작가가 쓴 글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소설의 제목은 邪魔사마, 일본어로는 '쟈마'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몸과 마음을 괴롭혀 수행(修行)을 방해(妨害)하는 악마(惡魔)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귀찮은 것, 벌레'라는 뜻이기도 하다. '단체 속의 나'를 강조하는 일본사회이기에 어느 나라보다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이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단어이면서도, 상대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기도 한 단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쟈마邪魔 였다. 대大를 위해서라면 희생해도 좋을, 당연히 희생을 해야 하는 소小, 개인들. 평범했던 그들이 손댈 수 없는 만큼의 큰 사건 속 중심이 된 이유는 그들의 뒤에 존재하는 세력들의 발전을 위해 '정치政治'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선악의 가름은 체제의 존립 앞에서는 애매모호해진다. 아니 체제 존립을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이든 '선'이 되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억세게 운이 나쁜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였다. 정권에 따라 좌우익으로 나뉘고, 보고자 하는 시선에 따라 때로는 숨은 천사가 되고, 의도된 쇼로 보여지는 세상에 사라고 있는 우리들 모두는 체제 속의 쟈마邪魔 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방해자'인 것인다.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홀로 된 세상을 살기 위해 자전거로 도피하는 쿄코에게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젊을 때는 자신만 위해서 살면 돼." 앞으로 자신을 찾아올 대부분의 것들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어지러운 고독과 자유일거라 생각하며 쿄코는 고독과 자유의 두려움을 안고 제 길을 떠난다. 캄캄한 미래, 하지만 저자는 안경 낀 형사 이노우에의 입을 빌어 비록 전부 조건부겠지만, 인간에게 미래가 있는 한 무조건 행복한거라고 말한다. 체제 속의 나의 행복은 신기루 일 뿐, 두렵지만 고독하고 자유로움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행복과 불행은 온전히 스스로 판단한 것일까? 혹시 남이 그렇게 여겨서 또는 남과 비교해서 그렇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방해자邪魔'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내 행복과 불행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고, 평가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했다. 한 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할 만큼 흡인력이 강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이번에도 그의 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최악]을 필두로 이 소설을 통해 '코믹작가'라는 오명을 벗기고, 그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요구된다. 이러한 평가 또한 그에게는 방해자邪魔가 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