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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The Boss - 쿨한 동행
구본형 지음 / 살림Biz / 2009년 1월
평점 :
날 괴롭히는 무능한 '쓰레기 상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법!
여름에 팥소가 듬뿍 뿌려진 시원한 빙수가 생각나고, 겨울엔 따끈따끈한 호빵이 생각나듯 한 해를 마감할 요즈음의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저자가 있다. 기억의 시작은 10년 전. 대학을 막 졸업한 첫 해에 IMF를 맞은 해 였다. 필자가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 정신없는 직장초년병이었을 때 하늘 높다하고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이 하나 둘 명퇴를 하고, 구조조정을 당하더니 급기야 소식마저 끊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비즈니스맨들에게는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퇴직한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해 한겨울에 양복을 입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노인들의 아지트인 '파고다공원' 한 쪽 켠에 퇴직한 샐러리맨들의 공간이 생겼었다. 종신직장으로 여겼던 회사가 등을 돌리고, 치솟는 주택담보대출이자때문에 집마저 빼앗기는 현실 앞에서 직장인들은 손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무렵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입을 모아 말했다. "이건 꿈이야. 하룻밤 지나면 없어질 악몽일거야." 그 해는 정말 일 년 내내 뼈 속까지 추운 겨울이었다.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현실 앞에서 직장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늘어나는 실업자, 노숙자, 자살... 직장인들은 갈 곳을 잃고 헤맸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 때 그들을 위로해준 책이 있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변한 세상을 등질 것이 아니라, 이젠 변한 세상만큼 함께 변해야 합니다. 세상이 이 지경으로 변한 이유는 그자리에서 멈춰서 있었기 했기 때문이고, 앞으로의 세상은 꾸준하게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될 겁니다. 그 작은 변화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변화만이 살 길 입니다.'라며 직장인들을 위로하고 변화할 것을 권했던 책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내 주위의 많은 직장인들은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세계적인 외국계 기업인 IBM을 나와 당당하게 '1인기업'을 차린 그를 일러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선각자'로 부르기도 했다. IMF를 겪었던 직장인이 그를 모른다면 간첩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그는 많은 강연을 하고 언론에 글을 올리고, 매스컴에 등장했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닥친 현실에 대한 해결책이었고, 그 때마다 필요한 해법이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하고, 그의 책을 늘 학수고대하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적인 불황 중인 올해 말은 어떤 책이 나올 지 더욱 궁금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올 해에 그가 내민 카드는 '내부결속'이었다. 말 뿐인 '글로벌 인재'도 아니고, 의미조차 모호한 '프로페셔널리즘'도 아니다. 시야를 내부로 돌려 나를 단속하고 내 주위를 단속해서 내가 있는 곳을 강하게 만들라고 말한다. 변화하라고 지시하지 말고, 스스로 변화해서 그 모습을 보고 주위가 느끼게 만들라고 한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올해 말 구본형이 내놓은 키워드는 '상사학上司學' 이다. 그리고 궁극의 목표는 '상생相生'이다. 소개할 책은 [구본형의 THE BOSS - 쿨한 동행]이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사와의 관계에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것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았다면 이제 어떻게 훌륭한 수직적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직장은 버릴 수 있지만, 상사上司는 버릴 수 없다'는 부하들의 딜레마에 대해 약삭빠른 처세술이 아니라 '훌륭한 상생의 묘妙'를 제시하고 있다. '상사를 이기려 하지 말고, 나의 지지자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틀에 박힌 이론이나 조사에 의한 실험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자신이 경험해 왔던 직장생활과 듣고 보았던 사례들을 통해 당장이라도 답답한 오늘과 내일에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지금껏 나왔던 저자의 책들이 독자로 하여금 내면의 열정과 힘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면 이번 책은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데에서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변해가는 독자의 욕구에 대해 웹 2.0시대에 걸맞는 저자의 적절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상사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한다. 직장내에서 '상사'라는 자리가 차지하는 위치와 자격 때문에 '후배'들을 괴롭힐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준다. 좋은 상사와 나쁜 상사, 그리고 인격적으로 상대하기 조차 싫은 쓰레기 상사(회사마다 부서마다 이런 사람은 꼭 있다)란 누구며 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두 번째로는 '부하인 나'를 살펴본다. 상사를 미치게 하는 부하직원(이런 부하들도 쓰레기 상사의 수 못지 않게 꼭 있다)는 어떤 부류이고, 상사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부하란 누구인지, 그리고 상사들이 나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미 틀어진 상사와의 관계를 풀어내는 방법과 쓰레기 상사에게서 존중받는 기술, 나쁜 상사들을 반면선생反面先生 삼아 그들에게서 존경할 수 있는 점들을 찾는 방법(피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즐기라 했다)등에 대해 조목조목 자세히 해설해주고 있다. 상황마다 지금껏 내가 모셔왔던 상사들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내가 그르쳤던 모습들도 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나 역시도 누군가의 '상사'가 될 수 밖에 없다면 '쓰레기 상사'가 되지 않는 법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된다.
저자는 우선 회사에 해만 끼치는 쓰레기 상사의 존재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경영자의 의도적 배치이고, 다른 하나는 경영자의 무책임한 방기라고 보았다. 그리고 어떤 이유는 쓰레기는 쓰레기를 낳는다며 모든 피해는 직원들이 입게 되고, 결국 회사는 쓰레기로 감염되기 때문에 경영자가 쓰레기 상사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직에 존재하는 백해무익한 쓰레기 상사는 크게 특정상황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적 막무가내형, 일부러 거칠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전략적 막무가내형, 말 그대로 깡패같은 무작정 막무가내형이 있다고 보고 그에 맞는 대처법과 행동강령이 책에 자세히 제시되고 있다. '위와 아래는 하루에 백 번은 싸운다'는 말처럼 일만 하기도 힘든데 말처럼 십인십색의 상사들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씁쓸한 현실이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대응책이 아닐 수 없었다.
휴렛 패커드의 전 회장이었던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 는 '상사라는 자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사는 직원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직원도 상사를 한 인간으로 보기 힘들다. 상사는 권위와 능력으로 나타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 사람보다는 직위를 본다. 고위직으로 올라가면 업무는 어려워지지만 그만큼 보상도 커진다. 그러나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외로워진다." 저자가 내민 상생相生의 카드가 힘을 발휘하는 점은 상사라고 하는 자리는 바로 '외로운 자리'라는 것이다. 나의 상사도 '외로운 사람'이고, 얼마 있지 않으면 나 자신도 '외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나는 상사를 욕하지만, 언젠가는 후배들의 욕을 먹는 상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상생相生의 카드는 내가 모시는 상사는 머지 않아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저자는 궁극의 해답에 대해 '누군가의 상사가 되면 아랫사람의 충성과 관계없이 그 재능을 가려 쓰는 것이 최선이지만, 누군가의 부하가 되면 모든 재능을 다하여 상사를 가까이 보필하고 상사의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러 공을 세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하 한사람 한사람이 리더, 즉 스스로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권한다. 그러면 부하직원이라도 상사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상사에게 영감을 주며, 상사를 격려하고 고무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상사없는 부하없듯, 부하없는 상사는 없다. 이 둘의 가장 바람직한 존재의 해답은 상생相生이고 그것은 스스로부터의 리더십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경영은 과학이지만 상사와 부하의 패러독스를 풀어내기에 리더십은 예술과 같다고 저자는 덧붙였다.
이 책의 바로 전에 나왔던 책은 [세월이 젊음에게]였다. 취직을 해서 출근하는 큰 딸에게 선물을 대신해 썼다고 전해진 이 책은 직장초년병에게 '일'이란 무엇이고, '직장, 사회'란 무엇인가,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자상한 아버지의 목소리'로 들려준 책이었다. 그 후에 나온 책이 '상사학'인 것을 보면 큰 딸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상사 때문에 고민을 했었나 하는 우스운 의문을 품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약속한 강연시간을 넘겨가며 거의 모든 독자들의 질문에 대해 성실하게 대답했던 저자였던 만큼 전작에 대한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는 아닐까 해서다. 자상하고 부드럽지만, 그 내용에는 칼이 담겨 있는 선배님의 목소리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왕은 하늘이 점지해 준다지만, 왕다운 왕을 만들어주는 것은 왕들의 스승, 책사策士 였다. 왕자는 책사에게서 '제왕학帝王學'을 배워야 비로소 왕이 되었다. '왕은 공부해야 제대로운 왕노릇을 한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무렵 '사장'이 뭔지를 알아야 했다. 대형서점을 다 뒤져 한 권의 보물을 만났는데 일본 중소기업의 사장 이하라 류우이치가 쓴 책, '사장의 제왕학'이었다. 필자는 이 책을 네 번 읽고 창업했다.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도 필자로 비롯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장의 제왕학'을 펼쳤다. '사장도 공부해야 제대로운 사장노릇을 한다'. 직장인인 나를 먼저 만족시켜줄 회사는 세상에 없다. 나를 먼저 만족시켜주는 상사도 없다. 제대로 상사가 되려거든, 제대로 상사를 모시려거든 '상사학上司學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이 책은 '직장인의 상사학上司學'이다. 올 해를 통틀어 직장인을 위한 최고의 자기계발서를 꼽으라면 '이 책'을 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