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디지털 공동체'나라, 대한민국을 읽는 기술!
필자가 대학교 새내기였을 무렵, 성적에 반영되는 과제인 '레포트'는 대학마크가 찍힌 200 자 원고지에 볼펜으로 필사를 해서 제출했었다. 워낙 악필인데다가 중학교 시절 작문시간에 성의없이 숙제를 했다고 '정신봉'이라 명명된 작대기로 '반 죽도록 맞은' 트라우마가 있던 터라, '적당히 베끼기만 해도 중간은 간다'던 그시절의 레포트 숙제는 자정 즈음 공동묘지 고개을 넘어가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경험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전공기초과목으로 들었던 '정치학개론'시간에 종신교수로 계셨던 老 정치학 교수께서 일주일의 시간을 주며 10여 년 전에 출간한 자신의 700페이지짜리 정치관련 서적을 사서 읽고는 더도 덜도 말고 '딱 100장'으로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과제를 통보받았을 때는 학교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을 정도였다(실제로 그 주에 두 명이 입대휴학을 했는데 레포트를 안써서 F를 받느니 일찍 군대에 입대하기를 택했다는 후문이 있다).
다행히 가입했던 동아리UNSA의 동기 여학생이 주일치의 점심 식권과 대필해 준 레포트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그 고비를 넘어갔는데, 그녀가 아니었으면 난 대학을 그만두었던지 아직까지 졸업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0현숙양에게 축복이 있기를...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고 제대를 해서는 사회경험을 한다고 2-3년을 더 밖에서 떠돌다가 복학하고 보니 워드 프로세서와 퍼스널 컴퓨터라는 것이 학교 사무실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자 수기手記였던 레포트는 컴퓨터를 통해 나온 인쇄물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쓰레기 차를 피하니 똥차가 덤비더라고 원고지에 수기手記로 쓰지 않아 다행이다 안도했더니, 이젠 컴퓨터를 모르는 것이다. 메모리, 하드,플로피 5.25, 3.5 플로피 디스크 C 프로그램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들과 절차에 머리가 하얗게 될 지경이었다. 대학에서 예비역 3학년이면 무서울 것 없는 학번의 선배가 되었건만, 새카만 새내기 후배들에게 머리 조아리고 컴퓨터를 배우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했던지.
독수리타법으로 밤새워 친 레포트가 순간 다운이 되거나 사라져 버려 모니터앞에서 울던 숱한 나날들은 어찌나 많았던지. 그 시절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컴맹들의 악의 축은 '빌 게이츠'였고, 가능하다면 돌팔매질로 창문(Windows)이란 창문은 모두 깨버리고 싶은 다윗이 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이 몸쓸 기계덩어리와는 안녕일 줄 알았는데, 지금도 나는 두들기고 있다. 매일 아침 '안녕?'하며 반가운 아침인사를 날리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이런 날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간이 시냇물을 타고 흘러가듯 눈 앞에 있던 현실이 저만치 흘러서 과거라는 이름이 되면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처럼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돌이켜 보니 그런 날도 있었구나 싶고, 변화된 오늘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때에 비하면 사람은 늙었고 덩치는 더 커진 반면, 눈 앞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는 컴퓨터는 커다란 사과상자 크기가가 3-4센치 두께의 서류봉투만한 크기가 되었고,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手 아니 선線에 연결되어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많이 변했다, 세상이. 난 이렇게 변할 줄 정말 몰랐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은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처럼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로 생각을 거스르게 한 것은 오늘 마지막 장을 덮은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덕분이다. 이 책은 오늘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과 걱정스러운 내일을 염려하느라 채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된 대한민국의 면면'을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라는 부제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NHN의 오픈 네트워크형 조직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함께 작업했다. 이 책이 말하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Micro Society란 "작고 사소한 힘이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회. 네트워크 환경의 변화로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작은 신세계"를 말한다.
이 책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해졌는데 그만큼 더 친해진 것일까?', '인터넷 덕분에 연애기간은 짧아졌을까?', '인터넷을 많이 쓰면 늘어난 정보량만큼 똑똑해질까?','오늘날은 잘 놀아야 일도 잘하는 걸까?' 등 우리가 한 번쯤 우문愚問 삼아 던져봤을 질문들 속에서 '정체성, 프라이버시, 지식, 경제, 놀이, 권력, 예술문화'등 7개의 키워드를 통해 인터넷이 결합된 오늘날의 네트워크 세상을 조망하고 분석하여 다가올 미래의 모습 또한 살피고자 했다. 그 중에서 특히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한 '나는 몇 개 인가?'와 경제부문의 '클릭의 경제학을 읽어라', 그리고 놀이를 이야기한 '나는 논다, 고로 존재한다'였다.
인터넷 공간 속에서의 '나'는 아바타와 퍼스콘, 그리고 닉네임과 아이디가 결합된 새로운 '나'로 변신한다. 익명성은 행동(온라인상에서는 발표, 표현을 말하겠지만)을 자유롭게 하여 현실에서 드러내지 못한 또 다른 '나'로 존재할 수 있기에 한 편으로 보면 표현하지 못했던 내면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되어 보다 '나 다운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력의 제공과 화재의 원인을 동시에 제공하는 동전의 양면같은 불의 소용'처럼 표현의 자유로움을 제공하는 익명성이 오용되고, 악용되는 사례들도 생겨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악플로 인한 잇달은 자살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정제되지 못한 정보들로 혼란이 가중되어 법치와 규율이 존재하는 오프라인과는 달리 온라인은 무정부화되는 경향도 없잖다.
한편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는 집단을 좀 더 세분화시켜 관계면에서는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이 더욱 활발해 지지만, 과연 온라인상에서의 친분이 인간대 인간의 면대면 만남이 갖는 의미나 가치만 할까 하는 부분에서 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손쉽게 친해지는 만큼 쉬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지, 또 잦은 온라인으로의 접속으로 인해 고독하고 외로운 대로 살아가는 본연의 인간이 살아갈 힘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지도 고민하게 된다. 이를 단순히 초창기에 있을 법한 약간의 혼란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리고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정화는 불가능할까?
경제를 살펴보면 앨빈 토플러가 말했던 생산소비주체자 프로슈머의 등장과 조회수와 클릭수가 화폐가치로 변하는 오늘날의 경제구조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공유와 공감을 기반으로하는 온라인상의 경제구조는 반면 컨텐츠 창조자의 권리와 수익구조를 모호하게 만들어 새로운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다. 새로운 컨텐츠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소비자는 어느새 '범죄자'가 되어버리는가 하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주인은 돈을 받는'식의 수익구조는 '스토리텔링'이 원천이 되고 있는 온라인시장의 기반을 흔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나 정보를 교환하는 시장은 미디어가 대신하고 있어 시장이 곧 미디어가 된 오늘, 오프라인을 보조했던 온라인은 사실상 통합되어 경쟁하고 있다. 앞으로 오프라인시장은 어느 인터넷 서점처럼 상품주문은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물건은 퇴근길에 상품을 찾아가는 '창고로서의 역할'만 하는 시대도 도래할 것 같다. 문제는 시장과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기업과 기업가의 마인드는 여전히 영화로웠던 아날로그 시대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공감하고 참여하는 기업가의 대두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마지막으로 놀이. 하루중 컴퓨터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 현대인은 놀이 또한 전보다 컴퓨터에서 많아진다. 단순히 게임만을 했던 과거와는 달리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지금 놀이와 업무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최고의 업무능력이 향상되는 순간이 '몰입Flow'은 게임중 일 때 극도에 달하듯, 업무를 게임처럼 몰입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중독, 게임중독과 같은 과몰입현상을 불러 새로운 질병으로 대두되고, 반면 성공과 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중독에 이를 만큼 몰입한 사람들은 소수지만 '새로운 창조자'가 되어 과거에는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성공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독일의 극작가 실러는 "인간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 수 있고 가장 인간적이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가장 잘 놀 때 업무적으로 성과도 생기고, 인간다워지는 세상'이 도래한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것은 가능하다면 편집광적으로 미치듯 일하는 사람은 놀 듯 일한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제대로운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대적 요구는 후자에 있고, 그것을 절대선善으로 본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놀이는 몰입과 중독에 이르는 아드레날린적 효과도 있지만, '휴식'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휴식을 권하는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우려된다.
이 책은 어느 것 하나에도 문제제기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날을 살아가면서도 이미 젖어 있기에 넘기고 있는 현실을 조목조목 짚고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분야, 서로 다른 필자들이 말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있다. 화법 또한 틀려 때로는 난감할 정도로 딱딱하고, 지루한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외국의 다른 나라에서는 예를 찾을 수 없는 '인터넷 강국'만이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네트워크 사회를 잘 조명하고 있어 오늘날의 우리를 살피고자 한다면 읽어볼 이유는 충분하다. 통찰력은 과거와 현재를 조망해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지만, 과거에는 있지도 않았던 새로운 세상이 갑자기 찾아와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은 현재를 보는 것만도 숨이 차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트렌드에 민감한 독자들이라면 이 속에서 원하는 답을 찾을 지도 모른다. 오늘을 보여주는 책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