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 유명 작가 32명의 스누피 작가만들기 대작전!
 
  스누피가 글을 쓴다고? 정말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 말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와 견줄 만큼 황당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제목과 귀가 솔깃한 부제에 끌려 선택한 이 책을 읽고 보면서 스누피의 개집 지붕에 타자기가 있었단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책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누피가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껏 스누피와 피너츠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머슥해지는 순간이다. 스누피를 창조한 아버지 찰스 M. 슐츠의 아들이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몬티 슐츠와 스누피가 엮은 책,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이다.
 
 




 
  책이 참 재미있다. 스케치 북 모양의 긴 가로모양의 책도 그렇거니와 한 쪽 면 가득 스누피가 글을 쓰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어 그림책을 보는 듯 책을 읽는 듯 한 기분이 든다. 자신의 집 지붕 위 끝에서 끝을 걸어다니며 고민하고, 심사숙고 하는 열 칸 정도의 장면에 스누피가 쓴 글은 딱 한 문장. "어둡고 바람부는 밤이었다." 그러면서 스누피는 느낀다. '역시 글을 잘 쓰는 건 힘든 일이야.' 몇 장을 넘기자니 역시 스누피는 글을 쓸 준비를 하고 구상을 하고 있었다. 잔뜩 인상을 쓰고 짜낸 단어는 '바로'. 그리고 또 혼잣말을 한다. '훌륭한 작가라면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는데만 몇 시간씩 허비하는 법이지.' '개가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어쩌면 이 우주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체 중에서 가장 뛰어난 까닭'이라는 엄청나게 긴 제목을 본 루시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렇게 긴 제목이 어딨어?" 그러자 스누피는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을 빼야겠군."
 
  전혀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초보자 스누피가 글을 쓰는 모습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나의 글쓰기 작업을 닮았고, 개집 지붕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창작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모습도 도대체 무엇부터 써야 될 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고민하는 나와 닮았다. 말도 되지 않는 몇 줄을 써놓고는 우쭐대는 모습, 팔랑거리는 귀를 가져서는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에 혹해 가차없이 손질해대는 줏대없는 모습 또한 나였다. 목언저리까지 쳐진 귀만 갖지 않았을 뿐 나를 보는 듯해 재미있지만 뜨끔하기도 했다.
 
  얼마를 썼을까? 스누피는 얼마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되는 꿈도 잠시 출판사로부터 답장이 왔다. "투고자(스누피)귀하. 보내주신 원고는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 보내신 거죠?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원고를 보냈다. 그러자 또 답장이 왔다. "투고자 귀하, 원고를 돌려 드립니다. 우리 출판사와는 맞지 않는군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더군요. 또 보내지 마세요.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 그러자 스누피는 하늘을 보며 흐믓해 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편집자가 사정할 때가 있네?"
 
 

 

 

 
 
  이렇게 작가 지망생 스누피가 어떠한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글을 써서 원고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는 낯두꺼운 뻔뻔함과 끈질긴 근성은 작가될 자질을 갖춘 듯. 하지만 써도 써도 늘지 않는 실력에 대해 이 책이 준비한 것이 있다. 시드디 셀던, 잭 캔필드, 다니엘 스틸 등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스누피의 습작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고 '실전 글쓰기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다니엘 스틸은 글쓰기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며 어느 때에 떠오르는 영감에 기대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습작하라고 조언해 준다. 미국 미니 시리즈의 대가였던 시드니 셀던은 자기가 정말, 진짜로 좋아하는 글감을 택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글감을 발전시키고, 모든 단어들이 빛을 발할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다시 쓰는 것. 이것이 베스트셀러를 쓰는 공식이라고 말해준다. 레슬리 딕슨은 글을 쓰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사생결단을 내라고 말하고, 캐서린 리안 하이드는 출판사의 편집자를 일러 '거절하기 위해 원고를 읽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들 손에 의해 작가가 될 확률은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 보다는 높다고, 그렇지만 '차라리 많은 복권을 사라'고 충고한다.
 
 

 

 

 

 

 
 
  귀여운 그림과 생각을 던지는 그림 속 글, 게다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유머러스한 조언이 결합해 수업같은 분위기가 흘러야 할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꽁트를 생각나게 한다. 번번히 루시의 태클에 굴복해서 종이를 구겨버리는 스누피의 표정과 독백은 그림을 보는 맛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책의 주인공인 지망생 스누피를 통해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을 알게 되고, 맛깔난 스토리로 독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쓰는 이들이 벌이는 하루하루의 투쟁을 엿볼 수 있었다.
 
  글쓰기는 참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기는 고사하고 독서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행위 면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멍청하기 그지없던 내가 하니까.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소질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지만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말하는 것은 녹음이나 녹취를 하지 않는 이상 듣는 이의 귀에 남겨질 뿐 담배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기록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 '내가 생각한 것의 결과물이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말은 잘 하면서 글쓰기는 주저하는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오늘 하루에도 많은 글을 썼을테다. 내 휴대전화에 온 문자에 대해 최소한의 용량에 맞게 적절한 단어를 써서 답장을 보냈고, 내 홈피에 들린 사람들의 댓글에도 리플을 달았다. 온갖 메일과 서류를 작성했고, 보고서도 올렸을 것이다. 독자들도 이미 어떤 의미에서는 '글쓰는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얼굴을 대하며 생활하던 시대를 넘어 말과 함께 글로써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웹 2.0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괴로움이 사로잡힌 독자라면 나와 같이 분투하는 스누피를 만나 보기를. 스누피는 개 밥그릇에다 개밥을 만들 때는 물을 먼저 부을 수도 있고, 마지막에 부을 수 있는 '어짜피 개밥'에 대한 요리비법에 대한 책도 고심하여 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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