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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를 만나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시와 글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만끽하다
한 떼의 무리들이 미술작품 주위에 몰려 있다. 한 가운데는 조그만 확성기를 든 안내원이 작품을 설명하고, 무리들은 그녀의 귀를 기울이며 뭔가를 받아적고 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돈벌 일이 없다'는 어느 부자의 말을 믿어 그들로부터 떨어진 것은 아니다. 작품을 보고 느끼기 위해 미술관에 온 그들은 안내원의 입을 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어서 였다. '그런건 인터넷만 뒤져도 가득한데...'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난 미술을 모른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메모지에 긁적거리는 낙서수준이고, 남의 그림을 보기는 좋아하지만 미술가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사조인지도 모른다. 그냥 구경할 뿐이다.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이야기를 살피고, 그것을 느끼면 배가 불러지는 느낌. 그것이 좋아서 갈 뿐이다.
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술을 아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미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몰라서 알아듣지를 못하고, 몰라서 말할 수 없는데 굳이 그들과 입을 섞을 필요는 없잖은가? 건빵모자 뒤집어쓰고, 파이프 하나 물고 미술을 논하고, 미술가를 평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냐마는 그만한 깜량이 되지 못함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그저 보고 느끼려고 한다. 누구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와~좋다" 가끔은 혼자서 말하고 좋아한다.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미술작품을 구경한 사람의 책을 만났다. 방법만 비슷할 뿐, 그녀 또한 대단하다. 미술작품을 보고 시를 쓴다니. Don Mcclean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Starry Night'을 보고 동명의 노래를 만들었다더니, 시인은 작품을 보고 시를 썼다. 게다가 작품을 그대로 느끼는 해설까지 곁들여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빛의 화가 렘브란의 작품을 이야기한 책,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렘브란트를 만나다]이다.
고흐와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고 시를 쓴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렘브란트의 작품 17점을 보고 시를 썼다. 가장 좋아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과 [야경] 그리고 노년의 아쉬움을 보여주는 [자화상]등이 포함되어 반갑기 그지 없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인데,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작품은 그것으로도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라지만 편안한, 그냥 일상을 엿보는듯한 작품의 격없음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의 행위와 표정 그리고 주위의 사물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별한 경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제시하는 듯 했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재미도 있는 서양미술을 전공한 해설자가 일반인의 시선에서 작품을 거듭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치 나를 포함해 두 세 사람이 모여 작품을 이야기하는 듯 눈과 귀가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숨은 삽화는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책은 미술가들을 위한 미술책이 아니라 일반인임을 확인하게 한다. 저자의 또 다른 책, [고흐를 만나다]도 찾아 읽고 싶다. '빛과 종교, 그리고 자기自己'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화가, 렘브란트를 새롭게 만나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