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경제학자의 돋보기에 의해 해부된 재미있는 미술걸작 이야기!
 
  연말 모임준비에 즈음하여 오랜만에 대학동기들과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강남 교보생명 사거리에 새로 자리를 잡은 특이한 모양의 Urban Hive 라는 건물의 1층에 있는 커피숍이었는데요, 건물 별명이 일명 '빵빵이 건물'이라고 해서 구멍이 뚫려 있는 매우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도심속 벌집'이라는 뜻인데, 신성건설이 시공을 맡았고 설계는 중앙대 교수이면서 아르키움 대표인 건축가 김인철씨가 맡은 작품이라는군요. 독특하고 멋져서 눈에 띄는 건물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건물을 본 친구들의 한마디가 제각각이었다는 겁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친구 '박'은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 역할을 해서 최고가로 임대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고, 땅값도 많이 올랐을 것'이라고 말하고, 건설사 과장으로 있는 친구 '이'는 '훌륭한 만큼 건축상 애로점이 참 많았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정'은 말이 필요없다는 듯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했죠. 끝으로 함께 나온 '정'의 아내는 '커피숍 분위기가 좋다'며 친구들과 자주 와야겠다고 하더군요. 저요? 그들을 지켜봤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직업의식은 속일 수가 없구나' 하고 말입니다. 성현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느낌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수만큼 다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마다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어쩌면 '어떤 것에 대해 서로 공감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현상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행위'에 친숙감을 느끼게 되고, '여러사람의 공감'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도 모릅니다. 
 
  여기 한 명의 경제학자가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눈으로는 작품은 감상하면서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게도 그림 속에서 경제원리를 발견하고 있는 거죠. 미술과 경제 이야기.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두 학문이 '경제학자 P씨'에 의해 서로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저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 바로 최병서 교수의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입니다.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몇 개월 전에 읽은 다른 책 때문입니다. Daum에서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기씨의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인데요, 이 책 또한 '미술작품에서 찾는 패션 이야기' 였거든요. 사진도 없던 수 백년 전의 패션 경향을 미술 걸작 속에서 찾는다는 저자의 의도가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대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델로 섰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스타들의 화보집'을 능가할 만큼 훌륭한 기획물 이었던 거죠. 패션과 패브릭에 관심이 많던 저자는 자신의 관심을 미술 작품 속에서 찾았고,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낸 겁니다. 훌륭한 기획과 더 훌륭한 글솜씨에 빠져 한동안 그 책 속에서 살았었는데 그 기억이 사라질 때 즈음 나타난 것이 바로 '경제학자가 바라본 미술작품'인 겁니다. 이 모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자라는 사실이 더욱 반갑고, 놀라운 점입니다.
 
  이 책의 저자 최병서 교수는 얼굴조차 뵌 적이 없지만, 그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분 같습니다. 우선 이름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목소리 흉내의 달인' 개그맨과 이름이 같고, 그의 전작前作들 모두 <영화로 읽는 경제학>, <최병서의 Cine Balade: 경제학자의 미시적 영화 산책>, <로빈슨 크루소 경제 원리: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몽키 이코노미쿠스로> 로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게 배우는 경제학'의 뉘앙스를 갖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여대의 교수님으로 재직중이시니 청강을 할 수는 없을테고, 전작들을 추적함으로 그 서운함을 달랠까 합니다(실제로 강의는 지극히 딱딱한 재미없는 교수님일지도 모르는 일이죠). 
 
  저자는 그림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제 이야기나 경제 원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풀어내려고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경제학자 P씨는 한 그림을 보고 이에 얽힌 주제나 경제적 모티브를 생각하고 그에 연결되는 또 다른 그림을 찾아보는 과정을 이 책에서 보여줍니다. 미술작품에 있어서는 화가와 작품의 배경 그리고 숨은 이야기와 에피소드등도 소개되어 흥미와 재미를 더하고, 딱딱하게만 여겼던 경제 원리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어 작품의 소개에 버금가는 재미를 안겨줍니다.
 
 

 
 
  "고흐의 그림은 왜 비쌀까?" 라는 의문에 대해 예술가는 '독점 공급자' 다시 말해 그림은 그린 화가가 죽으면 그의 작품 역시 공급이 중단되는데, 이처럼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 시장에서 유일한 것이므로 늘어나는 수요만큼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생전에 고흐는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고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 동생 테오 덕분에 겨우 붉은 포도밭Red Vinyard at Arles를 단 돈 4백 프랑에 팔았을 뿐인데, 1987년 일본의 한 보험회사에 팔린 '해바라기'가 2천 475만 프랑에 팔리고, 1990년 5월에 팔린 '가셔 박사의 초상Le Portrait de Docteur gachet'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천 250만 달러에 팔렸는데, 고흐의 그림값은 백 년 동안 어림잡아 무려 백만 배 이상 뛴 셈입니다. 공급이 제한되자 희귀성이 높아져 고흐의 그림값이 그의 죽음이후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미술화가만이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는 ['샘'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변기 작품]입니다. 바로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말하는데요, 뒤샹은 1917년 뉴욕의 한 상점에서 구이한 소변기를 '샘Fountain'이라 제목 짓고, 뉴욕의 독립 예술가협회의 전시회에 '리처드 머트Richard Mutt'라는 이름으로 출품합니다. 약간의 참가비만 내도 작품을 전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전시되지 못했는데요, 그 이유는 '천하고 창작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비도덕적이고 저속하다', '표절주의'라고 심사위원들은 평가절하했다는군요. 하지만 뒤샹은 '샘'에 대한 미학적 논쟁을 제기하면서 예술가가 의도적으로 직접 미술품을 제작하지 않았더라도 예술가가 지각知覺 하고 전시하는 행위를 통해 어떤 오브제라도 하나의 미술품으로 변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도 사물의 가치를 새로이 발견하고 예술가가 선택했다면 그것으로 새로이 탄생하는 것이어서 기존의 이름과 용도는 사라진다는 것이죠. 일본이 국보급으로 여기는 자기가 있다고 해서 확인해 보니 '여염집의 요강'이었더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것처럼 기존에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물일지라도 그것을 몰랐던 사람이 새로운 이름과 용도를 넣을 수도 있고,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예술가(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이 사물과 개념을 을 넘어 오늘날의 개념미술과 행위예술의 탄생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의 이러한 획기적인 안목은 재미있게도 경제학의 출발점과 맥을 함께 하는데 경제의 문제는 항상 그 출반선상에 선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제학을 보통 '선택의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몇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그와 동시에 포기하는 다른 하나 혹은 둘이 생겨나게 되죠. 늘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기회비용'이나 '매몰비용'과 같은 경제학적 개념도 낳게 됩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만족 극대화의 원리' 혹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죠. 이 책의 주인공 경제학자 P씨는 "마르셀 뒤샹은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것이다."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마르셀 뒤샹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선택이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우리 모두는 자신만은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렘브란트를 이야기한 '야경과 야경국가' 입니다. 몇 주전 모임의 일환으로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요, 실내가 그리 어둡지 않은데도 일부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어두워서 잘 안보일 정도인 작품들이 꽤 있었습니다. '질이 나쁜 물감을 사용했거나, 잘못된 보관으로 변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미술 분야에 계신 어떤 분이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겠다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듯 잘못된 보관으로 오명(?)을 입은 작품이 제가 좋아하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에도 있더군요. 바로 그의 작품 '야경The Night Watch'가 그것입니다.
 
 

 
 
  렘브란트가 붙인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바닝 코크 대장의 부대'로 네덜란드의 시민 자위대가 15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에 출동하는 장면이며, 배경이 밤이 아닌 낮이었다는군요. 그렇다면 대낮에 출동하는 부대를 그린 그림이 왜 '야경'이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저자는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기 위해 밝게 표현하고 배경이 되는 주변은 어둡게 채색하는 특징을 보이는 렘브란트의 독특한 화풍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가 죽은 후 작품의 소유자들이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니스로 덧칠을 해서 더욱 어둡게 변색되었다고 하는군요. 이것 또한 1975년에 되어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림의 복원 작어을 하던 중 니스가 벗겨지자 본래의 색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배경이 밤이 아니라 낮이라는 사실이 3백여 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셈인거죠.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 부분을 읽게 되면서 그동안 눈에 담아 두기만 했던 책 [미술관에 간 화학자, 과학의 프리즘으로 미술을 보다]를 읽기로 마음먹게 만듭니다.
 
  아무튼 그 덕(?)에 경제학자 P씨는 제도학파의 경제 이론 중에 나오는 '야경국가'를 설명합니다. '야경Night Watch' 이란 국가가 국민들에게 치안과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야간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즉 야경국가란 이처럼 국민들로부터 최소한의 조세를 징수하여 국가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최소 국가Minimal State'의 형태로, 이때 국가는 최소한의 기능과 역할만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국가는 국민과 일종의 계약 형태 즉 사회계약을 통해 '아나키적 상태'에서보다 높은 후생을 제공하는 것이 각 개인들의 이기심에 의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 선택에 의한 의사결정 행위로 간주됩니다.
 
  이 같은 최고 국가의 형태가 바로 야경국가의 모습입니다. 최근 북구의 복지국가 들에서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 이들에게 국가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정부의 목표는 국민 복지와 후생의 증진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 적당한 후생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반 재원을 막대한 세금에 의존하고 있어서 복지 수준이 높아질 수록 세금 부담률 또한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금 부담의 증대는 민간 부분의 생산성을 약화시키고 실업을 증대시켜, 결국 경제성장마저 점차 둔화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북구의 여러 나라들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말년에 무일푼에 집 한 켠 없이 떠돌이로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렘브란트에게는 야경국가 체제에서 살기를 원했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누구보다 자화상을 많이 남긴 렘브란트는 자신의 자화상에서 변해가는 자신과 주위를 모습을 그렸습니다. 다시 말해 작품 수만큼 자신을 돌아보며 살다 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집과 가족의 유무와 부귀영화를 떠나 평생을 '자신를 살피다가' 떠났다면 그것도 나름은 충실하게 삶을 산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책은 그 밖에도 많은 작품과 경제원리를 설명합니다. 마그리트의 '보이지 않는 선수'를 통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고, 베르메르의 '저울 든 여인'을 통해 당시의 중상주의와 행복의 무게를 가늠하는 '빈 저울'도 언급합니다. 미술가라기 보다는 최고의 사업가로 알려진 피카소는 그의 큐비즘과 일반균형이론이 소개되고, 현미미술의 거장 잭슨 폴락의 '액션페인팅'을 통해 카오스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등 이 책에만 무려 스무가지의 작품과 미술가, 그리고 경제원리들이 소개됩니다.
 
  정진홍 교수는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찾으라' 주문을 하고, 또 다른 책에서는 그림과 시에서 CEO가 갖추어야 할 경영 전반을 찾으라(시읽는 CEO, 그림 읽는 CEO)향은 문화를 통해 창의력과 통찰력을 얻으라고 이야기 하듯 최근의 경향은 문화 전반이 비즈니스에 결합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21세기는 컬처 비즈Culture Biz 의 시대임을 예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꼭 무엇을 얻는다기보다는 미술이든 음악이든 예술의 한 부분들이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떤 직업의 사람이든 제 입맛에 맛도록 해석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 이 책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를 살피는 의사도 나오고, 미술품 속에 나오는 건축물을 이야기하는 건축가의 작품도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느 한 쪽이든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재미있고, 유쾌한 경험을 안겨줄 멋진 책입니다. 지금까지 미술과 경제가 잘 어울려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 책,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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