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지그난스, 세상을 디자인하라
지상현 지음 / 프레시안북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당신은 이미 호모 데지그난스Homo Designans 입니다!
 
  난 디자인을 모른다. 하지만 눈을 네 개씩(?)이나 달고 있어 '좋은 모습'을 감지할 수 있고, 감탄하며 호들갑 떨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안다. 세상은 변해 제품이 생산되는 족족 팔려나가는 생산자 주도의 시대는 이미 지나 버렸고, 팔색조같이 수시로 변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야만 소위 대박을 내는 소비자주도의 시대로 바뀌었다. 그리고 디지털이 세상을 움직이는 첨단과학 시대임해 반해 인류는 '내 마음을 움직여 보라' 며 감성을 자극하는 무엇을 요구하며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다가가고 있다. 보고, 느끼고, 만지며 체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실용'을 넘어 '감성'을 터치하기를 소비자들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디자인Design이고, 오늘날을 '디자인이 이끄는 시대'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21세기는 디자인을 떼어 놓고는 비즈니스를 말할 수 없다.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디자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이 책 [호모 데지그난스, 세상을 디자인하라]를 펼쳐든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재 미디어디자인 학부의 교수로 있으며 디자인과 심리학을 병행한 저자 지상현 교수는 매체마다 디자인 관련 글을 싣는 것이 유행이 될 만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늘었지만, 반면 내용이나 깊이 면에서는 10여 년 전이나 다름없이 각론은 없고 총론만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디자인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높이고 디자인계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를 느끼고, 디자인을 사물의 외양을 다루는 협의의 분야로 간주하지 않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인간과 사회를 읽는 프리즘으로서 주목하고자 이 책을 냈다. 저자는 '디자인하는 인간'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모 데지그난스 homo designans' : 인간이란 디자인하는 존재라는 뜻.
국내에 몇 안되는 라틴어 전공자의 자문을 거쳐 탄생한 말. 디자인이 가가 사물이 갖고 있는 문화적, 경제적, 기술적 맥락을 찾아내는 일이며, 이는 디자이너의 힘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는 디자인을 이미 우리 모두가 가조 있음을 표현하는 말.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제품이든, 작품이든, 공간이든 유형의 무엇이 만들어졌을 때 인간이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열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들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이들을 감지할 감각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미 그림을 그리고 생각으로 상상하며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디자이너들에 의해 탄생되었을 때 기꺼이 감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때 '호모 데지그난스'라는 저자의 새로운 인류학명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디자인design을 '인간과 사회를 읽는 프리즘'이라고 설명하며 세상을 그리는 디자인의 세계를 보고자 하였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디자인을 네 가지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선 디자인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세상사람)의 취향을 읽어냄으로써 그들이 바라는 디자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디자인, 타인의 취향을 읽는 코드)고 보았다.
 
"디자인은 마치 바둑이나 장기 같다. 겉으로 드러난 행마의 움직임 뒤에 치열한 수싸움이 있듯이, 예쁘기만 해 보이는 디자인의 이면에도 소비자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려는 각별한 노력이 숨어 있다. 매우 아름답고 독창적이지만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디자인이 많다. 이는 소비자의 마음을 건드려야 하는 수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기 좋은 떡'이기에 '맛도 좋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맛도 좋아야' 소비자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외형만이 디자인이 아니라, 그 내부에 남겨진 진실이 모습과 일치해야만 '최고의 디자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디자인을 위해 접합부에 나사구멍을 없애서 고장시 수리를 대신해 교환해주는 A/S방식을 채택한 아이팟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디자인을 위해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세계의 소비자들이 후발주자인 아이팟에 열광할 수 있었던 것은 외형의 디자인 뿐 아니라 터치스크린 운영방식이라는 지금껏 없던 촉각적 경험과 iTunes 라는 아이팟만의 음악제공 플랫폼이 소프트웨어로 제공되어 함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시선을 소비자로 옮겼다. 브랜드에 매혹되고, 문화적 아이콘을 만들어내고, 편리하되 가치있고, 아름답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디자인을 낳고, 그것을 가지려고 하는 소유욕은 소비를 낳는다(나는 욕망한다, 고로 디자인을 소비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시장에서 특정 제품군 혹은 계층을 대표하는 상품이자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넘어서는 문화로 확장되는 제품을 '아이콘icon' 이라고 부르는데,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오토바이가 명품 브랜드를 넘어서 로드road 문화를 만들어낸 예를 들 수 있다. 소비자들은 말을 타고 초원을 누볐던 선조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 할리 데이비슨을 통해 '현대판 카우보이'로 거듭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디자이너들은 이처럼 소비자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캐치할 수 있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인 남다른 감수성, EQ Emotional Quoitent 가 요구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인간의 무한하고 알 수 없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저마다 다른 취향때문에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설명한다. 제품 뿐 아니라, 공간 그리고 환경에까지 미치는 디자인의 영역을 살펴보면서 디자인이라는 한 단어가 지니고 있는 범위와 쓰임에 놀라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훌륭한 디자이너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유도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금비의 미학, 균형의 미학, 색채의 미학, 총체성의 미학, 그리고 견딤의 미학을 말했던 세 번째 장 디자인의 원리, 세상을 읽는 미학은 디자인의 각론을 이야기하였고, 마지막 장 세상을 향한 통로, 디자인의 안과 밖은 디자인사를 필두로 첨단과학과 결합한 디자인 과학과 미래를 이야기 하였다. 디자인의 중요성은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디자인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시원하게 대답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디자인의 존재이유와 그 범위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마인드에 대해 엿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순수하게 외형의 디자인을 즐기고 체감했다면, 이젠 그 속에 숨은 수많은 생각과 디자이너들의 노력을 들여다 봐야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멋들어진 디자인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찬사와 감탄을 던지는 일임을 느끼게 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보다 넓은 디자인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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